2026년 8월 5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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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요한복음 2장 - 카나의 첫 기적과 성전 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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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11:26 ㅣ No.7458

[가톨릭 교리] 요한복음 2장 - 카나의 첫 기적과 성전 정화

 

 

요한복음서의 특별함과 강조점

 

4 복음서 중 넷째 복음서는 앞의 3권과 좀 다릅니다. 마태오, 마르코, 루카 복음서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바라보는 관점이 비슷해 ‘공관’(共觀, Synopsis) 복음서라 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서는 좀 다릅니다. 공관 복음서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저술되었고(AD 60~80년), 예수님의 탄생, 공생활, 하느님 나라 선포, 그리고 수난과 죽음 등을 연대기적으로 서술합니다. 반면 넷째 복음서는 가장 늦게 기록되었으며(AD 90~100년), 예수님의 신성, 영원한 생명, 그리고 예수님의 심오한 메시지를 신학적으로 다룹니다. 요한복음 제1장은 로고스 찬가(1,1-18)로 시작해, 세례자 요한의 증언과 제자들을 부르시는 모습으로 구성됩니다. 

 

제2장에서 본격적으로 예수님 활동을 다루는데,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첫 표징이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이루시는 놀라운 일을 공관복음은 ‘기적’(δύναμις 뒤나미스)이라 하고, 요한복음은 ‘표징’(σημειον 세메이온)이라 합니다. 전자는 초자연적 행위 자체, 놀라운 사건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후자는 그 행위가 지닌 상징적인 의미, 즉 그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행위를 통해 드러나는 믿음을 강조합니다. 요한복음 2장에는 두 사건이 기록되는데, 첫째는 ‘카나의 혼인 잔치’(2,1-12), 둘째는 ‘성전 정화 사건’(2,13-22)입니다. 요한복음 초반에 기록된 두 사건은 이후 예수님이 겪으실 수난과 죽음, 새로운 계약의 의미와 연관됩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 – 예수님과 성모님

 

“사흘째 되는 날, 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요한 2,1) ‘사흘째 되는 날’은 요한복음 1장과 연결시켜 보면 예수님 공생활 중 7일째 되는 날입니다. ‘7일’은 창세기 1장의 창조사건을 연상시킵니다. 7일째는 안식일이고, 창조의 마지막 날이자 완성의 날입니다. 요한에게 카나에서의 사건은 창조 사건과 연관되어 새 하늘과 새 땅, 즉 새 창조를 상징하고 암시합니다. 하느님께서 말씀을 통해 창조하셨던 것처럼, 포도주, 즉 예수님의 피를 통한 새 창조, 새 계약이 시작됨을 암시합니다. 또한 이 중요한 사건에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라는 표현입니다. 성자께서 이 땅에 오실 때 마리아는 함께 계셨고, 예수님 공생활의 첫 활동에도 함께 하십니다. 요한의 관점에 따르면 마리아는 예수님의 첫 활동에, 그리고 마지막 활동인 십자가 곁에도 함께 하십니다. 

 

특히 마리아는 혼인 잔치를 벌이는 그 집을 걱정하며 아들 예수님께 청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 그리고 마리아는 혼인 잔치에 초대받으셨는데,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집니다. 그때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셨고, 예수께서는 “아직” 때가 오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하라고 일러줍니다. 왜 성모님은 이 집 잔치에 마음을 쓰신 걸까요? 첫째 성모님의 마음은 항상 그러하십니다. 곤궁한 사람의 처지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십니다. ‘중보’(仲保, 대신 빌어 줌, 전구)가 성모님의 중요한 역할이자 위치입니다. 둘째 성모님은 이미 예수님의 능력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아직’ 때가 오지 않았지만, 성모님은 기도를 통해 그 ‘때’를 바꾸십니다.

 

거기에 “유다인들의 정결례에 쓰는 돌로 된 물독 여섯 개”가 있는데, 예수님께서 물을 채우라 하십니다. 그리고 그 물을 포도주로 만들어 나누어 주십니다. 유다인의 관점에서 하느님 은총을 받지 못하는 이유 내지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는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를 씻는 ‘정결례’는 유다교 예식의 핵심입니다. 정화되어야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물독이 비었다는 것은 현재 이스라엘이 위기에 처해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물독 6개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하고, 훗날 최후의 만찬의 잔은 신약을 상징합니다. 7일째 창조의 완성이 이루어진 것처럼, 구약의 6개 물독이 최후의 만찬의 1개 잔을 통해 7로 완성됨을 상징합니다. 하느님께서 ‘무에서 창조’(creatio ex nihilo)하신 것처럼, 예수님도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보여주심으로써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줍니다. 포도주는 이후 예수님의 피, 즉 새 계약을 상징합니다.

 

 

하느님 현존 체험의 장소인 성전의 정화

 

카나의 기적에 이어 요한은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신 사건을 전합니다. 공관복음에는 성전 정화 사건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 후 최후 만찬 직전에 발생한 것으로 위치시키는 반면, 요한은 예수님 공생활 초기 사건으로 기록합니다. 공관복음서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게 된 이유가 유다인들과 갈등 폭발이었고, 이는 안식일 규정, 신성 모독 등에 기인한 것이라 이해합니다. 그런데 요한은 공관복음의 관점과 다르게 이 사건을 바라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진 곳은 원래 아브라함이 외아들 이사악을 바치라는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희생 제물로 바치려던 모리야 산(참조: 창세 22,9.16-18)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극적으로 나타나셨던 곳이고, 아들 봉헌을 통해 그의 믿음도 입증된 의미 깊은 장소라, 솔로몬 왕도 이곳에 성전을 세웠습니다(2역대 3,1). 유다인들은 성전에서 바쳐지는 제사를 통해 죄를 씻고 정화되어 하느님께 나아간다고 믿었습니다. 게다가 성전은 ‘말씀의 궤’를 보관했던 곳입니다. 이미 그 당시엔 말씀의 궤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하느님이 현존하시는 거룩한 장소, 하느님 현존의 현재화가 이루어지는 장소라 믿었던 곳입니다. 그래서 많은 유다인이 성전을 방문해 기도하는 것은 의무사항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성전은 “장사하는 집”(요한 2,16), “강도들의 소굴”(마태 21,13)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느님 현존의 장소인 성전을 정화하고, 본래 의미를 알려주고자 하십니다. 

 

요한은 성전 정화 사건이 물을 포도주로 바꾼 카나의 혼인 잔치 이후 발생한 것으로 기술합니다. 포도주, 즉 피는 이스라엘에서 계약을 의미합니다.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 하느님이 머무시는 곳인 성전은 예수님의 몸을 상징합니다. 이 두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새 계약, 새 성전을 암시합니다. 성전은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 현존을 체험하는 장소인데, 예수님은 새 성전이 건물이 아닌 당신 자신임을 예고합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 2,19) 성전이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당신 자신이 진정한 성전임을 알려주십니다. 성전 정화 사건은 예수님을 통해 새 계약이 시작되고, 그분이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임을 알려줍니다.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요한 2,5)

 

[성모님의 군단, 2026년 7월호, 조한규 베네딕토 신부(가톨릭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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