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ㅣ기도ㅣ신앙
|
[기도] 묵주기도 학교: 은총의 비 |
|---|
|
[묵주기도 학교] 은총의 비
사랑의 행위
2025년 5월 8일, 새로 교황직에 선출되신 레오 14세 교황님께서는 로마와 전 세계를 향한 첫 강복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폼페이의 성모님께 전구를 청하는 날입니다. 우리의 어머니 마리아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걸으시며, 우리 곁에 머무르시고, 당신의 전구와 사랑으로 우리를 도우시고자 하십니다.”
그리고 꼭 1년 뒤인 2026년 5월 8일, 교황님께서는 ‘폼페이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성당’ 앞 바르톨로 롱고 광장에서 미사를 거행하셨습니다. 교황님께서는 강론에서, 자신이 베드로의 후계자 직무를 맡게 된 날이 바로 ‘폼페이의 지극히 거룩한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바치는 청원 기도’의 날이었기에, 교황 직무를 묵주기도의 거룩하신 동정 성모님의 보호 아래 맡겨 드리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밝히셨습니다.
또한, 교황님께서는 묵주기도 안에서 반복되는 성모송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하느님 말씀의 선포로 시작되고, 주님의 기도와 영광송 사이에 놓여 반복되는 묵주기도의 성모송은 사랑의 행위입니다. 지치지 않고 ‘사랑합니다’라고 되풀이하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본질이 아니겠습니까?” “레오 14세 [미사 강론]”, 바티칸 뉴스 한국어판, 2026.5.8, 박수현 역.
교황님은 이 말씀을 통해, 성모송의 반복이 단순한 되풀이가 아니라 사랑의 지속적인 고백임을 일깨워 주십니다.
마리아의 기도이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의 기도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루카 1,31)라는 천사의 인사는 성모송 전체가 그리스도의 신비를 향하도록 하는 복음적 구조를 드러냅니다. 성모송은 흔히 마리아께 드리는 기도로 이해되지만, 그 핵심에는 언제나 예수님이 계십니다. 특별히 전반부에 놓인 ‘예수님’의 이름은 성모송 전체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묵주기도를 의미 있고 효과 있게 바치는 표지가 바로 이 이름에 대한 강조에 있습니다. 성모송은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하고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며 시작하지만, 결국 그 안에서 우리가 찬미하고 관상하는 분은 태중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사도행전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4,12).
성모님은 당신 자신에게 사람들을 머물게 하지 않으시고, 언제나 아드님께로 이끄십니다. 성모송의 반복은 성모님의 인도를 통해 그리스도 중심성을 더 깊이 살아가게 합니다. 그러므로 묵주기도의 마리아적 성격은 그리스도적 성격과 충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리아의 믿음과 순명, 침묵과 관상을 통해 그리스도의 신비가 더 빛나게 됩니다. 이 점에서 성모송은 마리아의 기도이면서 동시에 가장 깊은 의미의 그리스도교적 기도입니다.
성모송의 전반부: 하늘과 땅이 만나는 기도
성모송의 전반부는 천사와 엘리사벳의 인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하늘에서 온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한 인간의 응답이 함께 만나는 기도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성모송의 전반부를 두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모송은 하늘과 땅의 경탄을 드러내는 기도입니다.”(교서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 33항 참조)
이 표현은 매우 아름답고도 정확합니다. 천사의 인사(루카 1,28)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엘리사벳의 인사(루카 1,42)는 온 인류를 대신한 인간 편의 신앙 고백이 됩니다. 묵주기도를 바치는 우리는 바로 이 두 목소리를 이어받아, 성모님 앞에서 하느님의 구원 신비를 찬미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성모송은 과거 갈릴래아의 한 고을 나자렛에서만 울려 퍼졌던 인사말이 아니라, 지금도 교회 안에서 계속 울려 퍼지는 현재의 기도가 됩니다.
성모송을 정성껏 바칠 때, 우리는 천사가 되어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 엘리사벳이 되어 성령 안에서 성모님을 맞이합니다. 이처럼 성모송은 하늘과 땅, 말씀과 응답, 은총과 인간의 자유가 만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묵주기도 안에서 성모송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매번 새롭게 이루어지는 강생 신비의 기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모송의 후반부: 자녀가 어머니께 드리는 청원
성모송의 후반부는 찬미에서 청원으로 넘어갑니다.“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이 후반부에는 우리의 삶과 죽음의 순간을 성모님의 전구에 맡기며 드리는 간절한 호소가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전구의 기도는 성모님께서 그리스도와 맺으시는 독특한 관계, 곧 마리아께서 하느님의 어머니(Theotókos), 곧 성모(聖母)가 되시는 그 관계에 근거합니다(교서, 33항 참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성모님께 직접 구원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하고 전구를 청한다는 점입니다. 곧 성모송의 후반부는 마리아의 전구를 청하는 기도이며, 그 전구의 근거는 성모님께서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동시에 우리의 어머니이시라는 데 있습니다.
또한 ‘이제와’라는 말은 지금 이 순간의 삶 전체를 가리키고, ‘저희 죽을 때에’라는 말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성모송의 청원은 어떤 특별한 위기의 순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태어남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 존재 전체를 감싸는 기도입니다.
은총의 비
성모송을 반복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새롭게 하시는 ‘은총의 비’를 내리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성모송이 단지 성모님께 드리는 찬미에 머무르지 않고 죄로 메마른 세상과 인간 영혼 위에 내리는 은총의 비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모송이 거듭될수록 메마른 마음은 부드러워지고, 흐려진 시선은 맑아지며, 분주한 영혼은 다시 하느님께 향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묵주기도 안에서 성모송을 바친다는 것은 단지 기도문을 입으로 되풀이하는 일이 아닙니다. 앞서 폼페이에서 하신 교황님의 강론처럼, 그것은 사랑을 고백하는 일이며 은총에 자신을 열어 드리는 일입니다. 곧 하느님의 은총이 나를 천천히 적시도록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성모송은 묵주기도의 본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기도는 우리를 조급하게 만들지 않고, 신비 안에 머물게 하며, 성모님의 마음을 통하여 예수님의 마음에 더욱 가까이 이끌어 줍니다.
[성모님의 군단, 2026년 7월호, 박상운 토마스 신부(전주교구 사목국장)] 0 5 0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
| 2298 |
[신앙] 신앙에 주파수를 맞춰요: 신앙은 지식을 요구한다 |
15:17 | 주호식 |
| 2297 |
[기도] 묵주기도 학교: 은총의 비 |
11:30 | 주호식 |
| 2296 |
[영성] 영성의 샘: 성모님과 함께 걷는 마음의 순례 (7) 공동체의 길 위에서 만나는 진 ... |
11:19 | 주호식 |
| 2295 |
[영성] 영성의 샘: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 |
11:14 | 주호식 |




게시판 운영원칙
Help Des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