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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일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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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미사를 마치고 지친 몸으로 퇴근길에 나섰는데 마침 버스를 타자마자 자리가 있었습니다. 기분좋은 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어둠이 내렸고 거리는 울긋불긋 네온사인들로 획획 지나갔습니다. 저는 습관처럼 묵주를 꺼내들고 로사리오기도를 바치기 시작했는데 그 때 누군가가 뒤에서 내 어깨를 나꾸어 챘습니다. -이 자슥이 동방예의지국도 모르나? 거친 소리에 돌아보니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내가 도끼눈을 뜨고 있었고 그 옆에는 부인인듯한 아낙이 지친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사태를 파악한 제가 움찔하며 일어서려는데 그 사내가 느닷없이 제 뺨을 후려치는 것입니다. -젊은 자슥이 왜 이리 꾸물거리노? 보믄 모르나? 버스바닥에 나동그라지자 저는 순간적으로 당황스러움과 함께 화가 치밀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낙이 당황한듯 남편을 제지하는데 보니 말을 하지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봐라,자슥아! 내 나이 오십줄에 들어슷다.근데 내 평생 너같이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놈은 처음봤다. 그 아낙이 결사적으로 사내를 제지하지 않았다면 그는 저를 발로 걷어 찰 기세였습니다.저는 오십이 넘었는데 아마 제가 너무 젊게 보인 탓도 있을 것입니다.그렇다고 맞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지요. 저는 버스바닥에 주저 앉아서 승객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딱한 듯 저를 바라보았고 어떤 사람들은 무심히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창피하기도 하고...부끄럽기도 하고...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순간 성프란치스코 성인이 한 말이 떠 올랐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친구들에게 베푸시는 성령의 온갖 은총과 선물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은 바로 자기를 눌러 이기고,고통,수치심,모욕감,불쾌한 것들을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때문에 달게 참는 그것입니다> 저는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습니다. 지친 어깨가 더욱 무거워지는 순간이기도 했지만 저를 보는 승객들의 딱한 시선,무심한 시선들을 어떤 압박감에서 해방시켜줘야 했기 때문입니다. 집으로 와서 묵상을 했습니다. (아직도 멀었군) 제 기분은 영 나아지질 않았습니다. 담배만 벅뻑 피어댔습니다. 그 때 딸 애가 다가와서 한 말이 저를 오늘의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아빠, 왜 오늘따라 그렇게 심하게 담배를 피우세요? 무슨 일인 지 모르지만 장기기증을 하신다면 몸을 늘 깨끗하게 간직하셔야지 그렇게 담배를 피우시면 누가 더러워진 그 장기를 받겠어요? 순간의 고통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아는 일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의 <지극히 짧은 시간>일 것입니다. 그것이 전부인 것 처럼 분노하고, 슬퍼하고, 비통해하면서 주님이 세우신 교회의 지체인 제 자신을 학대했다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며, 참아서 내색치 않는 것보다 고난과 고통의 십자가밖에는 아무 것도 자랑할 게 없다<갈라 6,14)는 마음가짐으로 내적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더욱 옳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