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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세례를 받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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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121.162.134.*]

2018-11-15 ㅣ No.11966

제 아우의 가정사 입니다.

서로가 이혼한 사람끼리 결혼을 하였습니다.

제 아우는 결혼전 세례를 받았습니다.

아우의 처가 세례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어떻게 해야하나요

교리도 열심히 하고 성당도 열심히 나갔습니다

세례받기 몇일 전에야 세례를 받을 수 없다고 연락받아서

그충격으로 인하여 동생도 냉담중 입니다.

답변 부탁드립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아우님 성가정 위한 형님 기도가 이루어지길 응원합니다.

가톨릭(보편적 사랑) 교회법에 의하면 이혼=별거, 재혼=중혼(重婚)으로 규정짓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우님이나 형님이나 무거워지기만 할 수 있는 혼인을 예방하고자 제수님이 세례 받을 수 없다고 한 것 같습니다.

감사할 일입니다. 왜냐면 서두에도 말씀드렸듯 가톨릭 법은 보이는 세례성사와 보이지 않는 세례성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성사란 음과 양 결혼 대입으로 이 날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치유받은 사마리아 사람에게 다른 열 명은 왜 오지 않느냐? 지적하신 것과 맥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가톨릭의 그것만이 아닌 성사혼을 축으로 사회혼, 사실혼 모두 삼위일체 주님께 의탁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지요. 나머지는 매일 복음을 통해 왜 이 하느님의 살아계신 말씀들 즉 성경이 동서고금 베스트셀러인지 그것을 가까이 해야 하는 것이 아우와 처의 형식적일 수 있는 세례보다 중요한 것인지 곰곰히 생각할 필요성이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안의 묵상을 둘로 나누면 꿈과 잠이 될 것인데 하느님 도움을 망각한다면 나약한 인간의 한계로서 적그리스도가 활개 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나라 자살률, 이혼률, 교통사고율, 낙태율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군중은 또한 하느님이 주신 생명을 사람이 죽이는 사형제를 찬동하기도 할 것인데 이 또한 심각한 연관이 있음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은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게으른 기도, 공부, 봉사, 성사, 공동체 생활로 인해 가톨릭인인 너와 나는 오히려 겉으로 드러난 그들보다 더 위험한 죽음의 길을 기어다니기도 할 것입니다. 무식하여 용감한 이들을 선도하는 것들도 일종의 신부수업 신랑수업이겠는데 생각과 말과 행위가 어린아이처럼 자유롭지 못하고 서로 경청하지 못하여 자중지란에 빠지기도 할 것입니다. 따라서 회개를 위한 회두로서 아우님과 처도 훌륭한 사마리안 비유로 거듭나도록 이끄시는 주님께 청원을 통한 감사와 찬미 수순으로 거듭나도록 합시다.

 

더불어 교회의 수석 대사제이신 베드로 첫 교종(교황)과 두 기둥이신 바오로 특전법에 의거하여 교구 관할 교회 법원에 재소하시어 아우의 처 이전의 처와의 혼인 유대를 끊어야 할 것입니다. 통상 6개월 걸리며 세속 법원과 달리 비용도 매우 저렴합니다. 여담입니다만 오늘날 많은 죄들은 적그리스도의 교란으로 인해 한 분이신 하느님을 멀리하였을 때 너와 나는 스스로 걸려 넘어짐을 볼 것입니다.

 

따라서 첫 단추 차가움에 대하여 지금은 관면혼은 가능하겠는데 나중 성사혼 혼인시에도 꿈의 단계, 갈등의 단계 조정, 극복의 단계 과정에서 그 턱을 스스로 무겁고 높게 바라보며 포기할 수 있는 답습을 예방할 수 있도록 이끄시는 주님께 다만 감사 드리며 교회 법원 제소도 결과를 미리 예측할 필요 또한 없다고 보여집니다. 너와 나 분심 9할은 지금 함께하시는 주님의 권능을 망각하고 과거와 미래로 도둑맞기 때문인데 대책없는 지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 또한 타파 내지는 봉헌 의탁으로 지금, 내곁에 있는 사람, 내가 하는 일의 소중함을 인식하며 또한 성찰로서 상선벌악과 삼위일체로 가는 첫 출발을 청원하도록 합시다.

 

부부가 모든 것 한 마음 한 몸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기에 천주교(하느님 가르침) 교회법 또한 내 기준으로 보면 분심이 도전할 것이고 성삼위 기준으로 보면 보다 범위를 크게 바라볼 수 있어 행복감과 겸손을 회복할 것입니다. 노래도 지금 그대로의 내 소리속의 말씀을 찾아 떠나듯 사람보다 하느님 사랑과 자비를 먼저 구할때 청중과도 작가와도 하나되듯 아우님이 다행히도 교리와 미사 또한 열심히 참례하셨다니 그 막혔던 맥 또한 수월하게 풀릴 수 있도록 기도하면 좋을듯 합니다.

 

빛이 환하면 어둠의 그림자도 깊은 법이지만 다만 내 그림자이기에 낙심하여 냉담한다는 것 적 그리스도의 교란책에 속았기 때문임을 알려주십시오. 사랑 회심으로 진화하는 생명체기에 천주교회도 평화의 인사를 나눌때 "또한 사제와 함께"를 "사제의 영과 함께"로 나누고 있지 않습니까? 갖가지 세상에 고여 넘치는 악의 간계들을 생포하거나 도주하도록 힘 주시는 주님을 찬미하며 성사생활 첫 관문인 세례성사를 패스 한 그 분들을 서운해하기 보다는 아우님 입장을 잘 살피시어 부드러운 지혜책으로 강구 대처하시면 좋을듯 합니다. 부연하여 수사님 시 한 수 전해드립니다. 海棠花.

 

사랑이 강물처럼 밀려오네

 

                                                      심재영

 


흐르는 물처럼 
세월은 흐르고 흘러
떠나간 사랑인듯 
잡을 수가 없었네


물은 흘러가도 
결코 돌아보지 않는데
그대 사랑은 쉼없이 밀려와
내 영혼의 그릇을 헹구고 다시 채우니


흐르는 물이 고이면 
넘치는 사랑인 것을
그 때 나는 몰랐었네


그대 사랑이 다시 나를 찾아온다면
미워하는 마음 
물처럼 흘러 보내고
영원한 사랑만 
곁에 두리라

영원한 사랑만 

곁에 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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