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2일 (수)
(녹)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나는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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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할아버지의 장례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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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덕래 [imdr1336] 쪽지 캡슐

2001-10-04 ㅣ No.24887

오늘 할아버지의 장례식이 있었다.

 

베드로 할아버지는 일찌기 이북에서 피난내려와

 

가족도 연고도 없이 그저 홀로 사셨다.

 

68년도에 행불처리(사망)된 것을 빈첸시오 형제들이 호적을 살렸다.

 

일주일에서 이주일에 한번씩 방문하여 반찬과 쌀을 드렸지만

 

그분을 즐겁게 해드리진 못하였다.

 

손을 붙잡고 기도드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물론 그동안 보일러도 놔 드리고 도배도 해드리고 찬장도 준비해 드리고...

 

할아버지는 파지와 공병을 수집하여 근근이 생활을 하셨지만

 

그누구도 그분이 어떠한 인생을 마무리 하고 계시는줄은 몰랐다.

 

 

오랜동안 병상에 계시다 식음을 전폐하고 퇴원하신지

 

열흘만에 숨을 거두셨다.

 

3년이란 세월동안  빈첸시오 회원들이 자리를 지켜드렸지만 추석다음날 새벽

 

마지막 숨을 고르시고 뚜렷히 손에 감긴 묵주고상에 촛점을 맞추시다,

 

자매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운명하셨다.

 

나는 연령회장님을 모시러 간 사이였다.

 

작년에 영세받으셨을때 찍은 사진이 고상과 성모마리아 상앞에

 

덩그마니 놓여 있었다.

 

그 쓸쓸한 죽음앞에 조카며느리가 함께 하였다.

 

피붙이도 없이 조카며느리의 울음과 연도속에 그리고 이어지는

 

빈첸시오식구들의 초상준비는 어느 초상집보다 아름다웠다.

 

보증금 400만원의 단칸방에서 치뤄지는 가난한 초상은 숙연하고도 간소하였다.

 

모두들 추석연휴를 반납하고 음식장만하고 연도 바치고...

 

신부님께서 장례미사를 결정하셨다.

 

빈첸시오 장이었다.

 

고별의 순간 나는 더이상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조 베드로 할아버지는 나와 아브라함의 담당이었다.

 

화장터로 출발한 후 일부는 살림집을 정리하였다.

 

생각보다 많은 살림이 쏟아져 나왔다.

 

빗방울 소리가 한참동안 후두득 거렸다.

 

이불과 옷가지들을 태우고 동사무소에서 쓰레기스티커를 사다 붙이고...

 

쓸쓸하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죽음의 뒤안길이었다.

 

성모상과 성서 성가집은 그동안 같은 동네라는 이유로 잠을 설치며

 

돌보시던 레지나 자매님이 가져가기로 하였다.

 

오늘 오후 그 마지막 뒷정리를 다하고 돌아왔다.

 

이웃집에서 성당사람들 고생한다고 찌개와 소주2병을 내왔다.

 

그것까지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닐것 같았다.

 

외롭고 쓸쓸하였지만 결코 그렇지만은 않은 북적대고 풍성한 장례식이었다.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사람들 -

 

주님! 저 나자로와 같은 외롭고 쓸쓸한 베드로 할아버지의 영혼을 받아 주소서.

 

주님! 당신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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