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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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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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 [dormo] 쪽지 캡슐

2002-06-13 ㅣ No.35006

지지난주의 일입니다.

아이옷을 사러 동대문을 갔다가 나온김에 청량리까지 들르기로 하였습니다.

 

저한테는 <청량리서>에 근무하는 친한 동생이 하나 있죠.

저를 닮아 매우 착하고 성실하며, 에 또~ 저와는 달리 생긴건 좀 불쌍하게 생겼습니다.

(이부분은 그냥 넘어가주세요.^^;)

뭐, 얼굴 뜯어먹고 살겠습니까? 그건 얘를 보면 생각나는 말입니다.

 

젊은 남자애가 혼자 살다보니, 것도 혼자산지 얼마안돼고 하다보니...

삼시 세끼를 모조리 밖에서 사먹고, 그게 좀 지겨우면 솜씨껏 라면을 끓여먹고, 그것도 신물이 나면 좀 고난도인 즉석 카레를 데워서 역시 인스턴트로 나온 밥을  데워 뿌려먹는다는군요.

 

저는 얼마전 그애의 생일겸 집들이(?) 선물겸해서 전기 밥통을 하나 선물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전자 대리점을 찾아 주변을 휘둘러 보았으나 눈에 띄지를 않는거였습니다. 저도 그때 그다지 시간이 많질 않아서 에이~ 그냥 돈으로 주지뭐 하고는,녀석이 근무하는 근처로 가서는 잠시 밖으로 나오라고 전화를 하였습니다.그러고는 소음으로 귀는 좀 멍했지만 길거리에 서서 무심히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경찰 순찰차가 한대 스윽 옆으로 와서 서더니 ’근무복’을 입은 녀석이 내리며 제 어깨를 치는거였습니다. 저는 그애의 그런 차림새를 처음 보았기에 속으로 화들짝 놀랐기도했고, 바쁜데 무슨 일이냐는 그애의 채근에 얼른 지갑에서 돈 오만원을 꺼내주며 밥통을 하나 사라고 말했답니다. 근데, 순순히 받았으면 아무일이 없었을텐데 이 녀석이 한사코 거절하며 좀체 받으려하지 않는거였습니다. 좀 현장감을 살리기위해 그때 우리들의 대사를 적어보자면....

 

<자,이거갖고 밥통이나 사라>

<마 댔다, 누나 니가 무슨 돈이 있노>

<밥도 해먹어 봐야지,자 받아라>

<마 댔다, 와이라노>

<어허, 어서 못받니>

<마 댔다카이>

<짜슥아 어서!>

<마 치아라, 알라 까자나 사주라>

                               ---영화 ’친구’ 버전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렇게 참, 길거리에 서서 고상하고도 밥통같은 대화를 밀고당기며 나누고 있을때, 저만치서 누군가가 몹시도 째려보고 있는 따가운 눈초리가 느껴지는거였습니다.

동생은 일해야한다며 눈을 찡긋거리고는 차를 몰고 휙~사라져버렸고, 저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돈 오만원을 손에 쥔채 사라져가는 차를 뻥~하니 바라보고 있었죠.

 

그러고있는데, 저기서 저를 째려보시던 중년의 아저씨가 마치도 독립투사라도 된양 비장한 얼굴로 저를 향해 돌진해 오시는 거였습니다. 그러더니 저를 향해 던지는 일갈은 이랬답니다.

 

       <아줌마, 지금 때가 어느 때요!!>

 

세상에~흑~

옴마나~

이 아저씨...동생에게 단지 선물을 하려던 제 행동을, 마치 경찰에게 뭐라도(!) 먹이려다(!) 거절당한걸로 오인하고는 이 뻔뻔한 아줌마를 단호히 혼내주려고 정의감을 불태우시는것이 아닙니까?

만약 우리들의 대화를 아주 아주 가까이서 들으셨더라면, 그렇게 서로를 위하려는 그 고운(?) 마음씀에 아마 감동의 눈물이라도 글썽이셨을테지만, 그렇게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는 뜯어고쳐줘야만할 병폐거리인양 보였던 보양입니다.

 

그날,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여러가지로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때 오해받은 일은 단지 나와 상관없는 제 삼자에게, 또 그자리에서 터뜨릴수 있는 일이었기에 뭐 한번 웃고 넘기면 될 코메디에 불과했지만....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는 너무도 비일비재하게 크고 작은 오해가 일어나고 또 복잡미묘하기 이를데없어 일일이 해명하기 귀찮아 그냥 포기해버리는 일도 많은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해받은 맘은 아프기 마련입니다.

답답하고 괴로운 심정이 쌓이다보면 모멸감이나 자기 비하에도 빠지기 쉽고, 심하게는 대인기피까지 생기게 되는 무서운 병이 되어버립니다.

 

오해받은 사람만 괴로운건 아니지요. 오해를 하는 쪽은 더 심한 지옥을 마음속에 품게 되는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흔히 착각은 자유...라고 말하지만, 제가보기엔 오해는 지독한 마음의 방탕인 같습니다. 자신도 남도 무지막지 괴롭히게 되는...

 

또 그 오해의 많은 부분은...

언제나 한발짝 떨어져서,

껍데기만 보기때문에,

자신이 보고 싶은것만 보기 때문에,

자신의 경직된 사고때문에,

 

즉 자기중심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어리석음 때문인것 같습니다.

남이 아무리 오해받을 짓을 사서 한다고 하더라도, 그 자신이 진정 자기 중심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혼이라면, 저 사람의 입장이 되어 자신도 남도 괴롭히는 방탕을 할것같진 않습니다.

 

청량리 길거리에서의 우스웠던 에피소드를 떠올리면서,

나는 과연 얼마만큼 긍정의 마음으로, 자유로운 정신으로 살아왔고

살아갈것인가...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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