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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노조들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태도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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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하 [jiyoha] 쪽지 캡슐

2002-10-25 ㅣ No.41438

                   병원 노조들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태도를 보며

 

 

 

 

 가톨릭 신자인 나는 ’대희년’과 함께 ’새천년기’가 시작되었던 지난 2000년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 남한과 북한의 정상이 처음으로 평양에서 만나 회담을 열고 ’공동선언’을 발표했던 6월의 감격이 7천만 겨레 모두의 것이었다면, ’무오류설(無誤謬說)’의 상징인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가톨릭 사상 최초의 ’참회미사’를 집전했던 3월 12일의 충격과 감격은 모든 가톨릭 신자들에게 대희년의 의의를 가장 크고 분명하게 실감시켜 준 사건이었다.

 

 교황은 그날 사순절 미사를 겸한 ’용서의 날’ 미사를 통해 지난 1000년 동안 가톨릭 교회가 지은 일곱 가지 죄를 고백하고 세계인의 용서를 구한다고 밝혔다. 교황청은 그해 3월초 발표한 ’회고와 화해, 교회와 과거의 잘못들’이라는 문건을 통해 유대인 박해, 십자군 전쟁, 교회의 종교재판, 아메리카 인디언 학살 방조, 1·2차 세계대전 방관 등의 과오를 사과했다.

 

 교황은 교회의 과오 사과와 참회미사 집전으로만 그치지 않았다. 역사적 과오들에 대한 2000년 대희년의 참회를 바탕으로, 2001년 5월 4일 가톨릭 교황으로서는 1291년만에 처음으로 그리스 땅을 밟은 그는 과거 가톨릭 신자들이 그리스 정교회 신자들에게 저지른 잘못에 대해 공식 사죄를 했고, 6일에는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시리아의 이슬람 사원을 방문해 종교간의 갈등과 반목을 해소하고 평화를 건설하자고 호소했다.

 

 이런 일련의 놀라운 사건들을 보면서 나는 가톨릭 신자로서의 보람과 긍지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교회의 ’참회’를 경험한 일로부터 가톨릭 신자로서의 보람과 긍지를 가장 크게 느낀다는 것은 일면 아이러니컬한 일이기도 하고, 그것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기도 할 터였다. 나는 그것을 계기로 참회와 자기 쇄신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뜨겁게 절감하였고, 거기에서 새롭고도 확실한 희망을 보았다.

 

 약간의 우려도 없지 않았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가톨릭 사상 최초의 참회미사 집전에 대한 교황청 대변인의 논평 또한 너무도 의미심장하기 때문이었다. "교황의 이번 참회는 너무도 의미심장한 행동으로, 각 교회나 신자 개개인이 그 중요성과 의미를 받아들이기에는 앞으로 몇 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참회미사의 역사적 의미를 암시하는 이 논평을 접하면서 교회의 재래적이고 관성적인 보수 체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와 더불어 한국교회의 움직임도 예의 주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희년에 이르러 교황의 역사적인 대 행보에 자극 받은 한국교회도 일단은 과거의 과오들에 대한 참회와 함께 자기 쇄신의 의지를 보였다. 교회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12월 3일 대림 제1주일에 과거사 반성 문건, 또는 참회록으로 일컬어지는 ’쇄신과 화해’라는 이름의 문건을 주교회의 명의로 발표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이런 움직임에는 어떤 한계가 내재되어 있었고, 참회와 쇄신의 의지가 적극적이거나 충분치 못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교황청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어쩔 수 없이 행한 수동적인 일이라는 일반의 평가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고, 교황의 참회 내용이 매우 구체적인데 비해 한국교회의 참회 내용은 포괄적이고 추상적이라는 사실은 어떤 제약이라든가 향후 움직임에 대한 부정적인 예측도 가능케 하는 것이었다.

 

 물론 한국교회의 일각에서는 오래 전부터 매우 괄목할 만한 움직임들이 있어왔다. 가톨릭 세례 교인이었던 안중근 의사의 의거에 대해 오랫동안 ’살인’이라는 입장을 취해 왔던 교회가 1993년 김수환 추기경이 ’추모미사’를 집전하는 방법으로 안 의사를 복권시키는 등 교회사의 일부 잘못을 수정하는 자세를 보인 것이라든지, 1995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주교회의)에서 펴내는 월간 <사목>이 일제 치하에서 교회 당국이 일제 침략에 대한 민족의 저항을 인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 언급한 것이라든지, 1997년 인천가톨릭대가 ’병인양요’와 관련한 세미나를 열고 전체 교수 명의로 발표한 사과 성명도 괄목할 만한 움직임의 하나였다.

 

 특히 한국교회는 교황의 참회미사가 있기 전인 1999년 12월 교회 안팎의 이목이 집중되는 특별한 움직임을 보였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산하 ’한국사목연구소’가 개최한 ’한국교회사에 관한 대희년 심포지엄’이 그것이다. 교회의 최고 기구나 교회사 연구소 또는 가톨릭대학 등에서 일하는 성직자들과 평신도 학자들이 대거 참여한 이 심포지엄에서는 천주교도 황사영이 신앙의 자유를 위해 외국의 군함 파견을 요청한 사건, 제사를 부인하는 등 민족의 전통을 무시한 점, 개항 이후 외세를 업은 천주교도가 동족을 박해한 사건, 안중근 의거와 3.1운동으로 대표되는 독립운동을 인정하지 않은 점, 일제의 신사 참배에 반대하지 않은 점 등 ’교회사와 민족사가 충돌한 부분’을 집중 조명했다. 이 심포지엄은 교회의 참회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교회사의 잘못을 솔직하게 바라보려 했다는 점에서 교회 안팎의 큰 관심을 모았고, 나는 그것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하지만 이듬해 대희년 봄에 발표된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의 ’사순절 담화’에서는 한국교회의 과거 과오에 대한 참회가 전혀 언급되지 않아 어떤 ’한계’를 감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12월 3일 대림 제1주일에 발표된 한국교회의 과거사 참회 문건은 내용이 너무 포괄적이고 상당히 추상적이기도 해서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의아심과 아쉬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그 후에 더욱 확실해졌다. 참회 내용이 포괄적이고 추상적이다 보니 일반 신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이해를 시키고 동참을 요구하는 일에 일종의 한계를 안게 되고 말았다. 교회는 신자들에게 과거사 참회를 적극적으로 홍보하지도 유도하지도 않았다. 대희년의 거창한 구호들 속에서, 참회와 쇄신의 대명제 속에서 어찌 보면 그것이 참으로 중요한 일인데도, 그것은 단지 일회적이고 형식적인 사안으로 지나가 버리고 만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되었다.

 

 나는 그것을 참으로 아쉽게 생각한다. 참회와 쇄신의 명제는 분명하고 적극적일수록 좋다. 그것은 가톨릭 신자와 무릇 종교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들에게 두루 해당되고, 적용되어야 할 사항이다.

 

 한국교회의 과거사 반성은 한국 사회에 좋은 기풍을 가져올 수 있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나는 분명히 했다. 분명한 과오들을 지니고 있는 교회의 과거사에 대한 일반 신자들의 명확한 인식, 그리고 광범위하고 적극적인 참회와 쇄신 의지는 역사에 대한 성찰과 반성 능력이 미약한 한국인들의 전반적인 단점을 쇄신시키는 데도 일정 부분 기여하게 되리라는 생각이었다.

 

 참으로 우리 민족은 반성할 줄 모르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지난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 능력이 매우 미약하다. 역사적 사건들에서 진정한 교훈을 얻기보다는 현실과 부합하며 자기 합리화를 더욱 가능케 하는 단순 가치들을 파악하는 쪽에 대체적으로 탁월하다.

 

 이런 국민성의 두꺼운 껍질을 깨는 일에는 천주교회의 범교회적인 과거사 반성과 참회, 그리고 적극적인 쇄신 의지가 어느 정도 기폭제가 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은 너무 순진하고 공상적인 것이었을까?

 

 아무튼 한국교회의 과거사 참회와 쇄신 의지는 지금 거의 흐지부지된 형국이다. 80노구에도 불구하고 2000년 대희년의 참회를 바탕으로 화해와 일치를 위한 행보를 계속하고 있는 교황과 비교해 볼 때 한국교회는 어느 모로 보아도 걸음이 활기차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 속에서도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의 인권 분야와 사회사업 분야, 그리고 통일지향적 대북 지원과 교류 등에 있어서 참으로 중요한 일들을 힘차게 벌여왔고 펼쳐 나가고 있다. 교회의 그런 모습에서 감명을 받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한국교회가 유독 노조 관련 분야에 대해서는 경직되고 보수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 소극적이고 보수적인 속성을 가장 쉽게 엿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최근에 교회가 겪고 있는 가톨릭중앙의료원 산하 병원들의 노사 분쟁 사태이다. 지금 한국 가톨릭교회는 교회 병원 노조들의 파업과 단식 농성 투쟁으로 매우 실질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시련을 겪고 있다.

 

 사회 일반의 관심을 크게 증폭시킴으로써 교회의 일만은 아니게 된 상황 속에서, 이 범교회적 사태를 논함에 있어 나는 노조 측이 안고 있는 지엽적인 문제, 즉 농성장으로 이용하는 명동성당 구내에서의 여러 가지 분별없고 조심성 없는 행동들에 대한 사항은 논의의 중심에 놓고 싶지 않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엽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엽적인 문제들에 집착하면 할수록 문제의 핵심은 가려지기 마련이다.

 

 노조 측이 중앙노동위원회의 직권 중재안을 거부함으로써 실정법 위반으로부터 파생한 반사적 명분을 의료원 측이 쥐고 있는 상황이지만, 지극히 세속적인 명분에 집착하는 것은 종교적 차원에서 볼 때 전적으로 옳은 처사가 아니다. 종교적 차원이나 성격을 결부시키지 않고 철저히 기업적 관점으로만 보더라도, 의료원 측은 기업 정신과 운영의 묘를 최대한 조화시키는 승화된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다. 종교적 차원에서도, 기업적 관점에서도 온전한 상태가 아닌 현재의 딜레마는 종교적 권위주의의 과도한 유입으로 더욱 심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갖게 한다.

 

 아무튼 현 시점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노사간의 ’대화 단절’이 문제의 핵심일 수밖에 없다. 나로서는 ’대화 단절’ 외로는, 그 어떤 것에서도 문제의 핵심을 찾을 길이 없을 것 같다.

 

 왜 하느님의 교회에서 운영하는 병원들에서 발생한 노조 분쟁에 노사간의 대화가 단절되어 있는가? 이 문제를 짚어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대화’라는 것에 대한 성찰이 필요할 것 같다.

 

 대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가장 요긴한 통로다. 그 통로를 이용하여 사람들은 의사 소통을 이룬다. 사람들은 일찍이 대화가 공존의 가장 중요한 바탕임을 깨닫고 대화 자체를 발전시키는 일에도 큰 힘을 쏟아왔다. 그래서 대화문화, 회의문화라는 것도 생겨났다.

 

 하느님도 이 세상에 당신의 뜻을 계시하시고 전파하실 때 대화 방법을 즐겨 채택하셨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도 대화가 소통의 중요한 열쇠 구실을 했고, 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하느님이 사람에게 베푸시고 인정해 주시는 ’자유의지’로 말미암아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기 직전에 이루어졌던 하느님과 아브라함의 인상적인 대화를 쉽게 기억할 수 있다. 또 하느님의 뜻―예수 그리스도의 잉태 소식을 안고 간 대천사 가브리엘과 마리아의 인상적인 대화 내용을 즐겁게 기억할 수 있다. 하느님은 일방적인 한마디 통보로 일을 끝내지 않으셨다. 마리아의 의문이 있었고, 그 의문에 대한 가브리엘의 설명이 있었으며, 그런 연후에 마리아의 겸손과 승복이 꽃피어날 수 있었다.

 

 하느님도 인간과 대화를 하셨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좀더 많은 희망이나 가능성을 갖게 한다. 그것은 우선 하느님도 인간과 대화를 하셨거늘, 사람과 사람 사이에 대화를 하지 못할 이유가 뭔가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대화가 막힌다면 그것 자체로서 하느님께 죄를 짓는 일이며, 집단과 집단 사이에 의사 소통 수단이 끊긴다면 그것은 참으로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리는 일이 될 것이다.

 

 물론 대화에는 일정한 ’상식’이 바탕을 이루어야 한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상식에 반하는 요구나 행동을 한다면 대화는 성립되기가 어려울 것이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말만 하는 사람들과는 논리적인 대화란 불가능하다는 것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어려움도 대화를 통해 하나하나 서로의 생각의 차이를 좁히고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것이 또한 대화의 매력이며 가치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은 대화 상대를 인정해 주는 일이다. 미리 어떤 선을 그어놓고 그것을 기준 삼아 대화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대화는 애초부터 불가능하게 되고 만다. 그 어떤 쟁점이나 요구 조건도 일단 대화라는 소통 구조 안에 놓인 책상 위에 올려놓고 봐야 한다. 그래야 사리 판단의 가능성이 더욱 넓어지고 바로 설 게 아닌가.      

 

 근본적으로 대화가 단절되어 있는 이 상황에서는 우리 모두 좀더 겸허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님의 모습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사랑 안에서 만나지 못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접하지 못할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창녀와도 대화를 했고, 세리도 제자로 삼았고, 죄인이라 불리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했다. 율법학자들, 고관, 대사제들도 피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 무엇보다도 대화가 중요 가치인 시대다. 50년 분단의 장벽이 가로놓여 있는 현실 상황에서도 남·북한간에 이런저런 형태의 대화와 교류의 장이 마련되고 유지됨으로써 온 민족에게 통일에의 희망을 안겨 주고 있지 않은가. 조금씩이라도 분단의 벽을 허물려는 노력이 탄력을 받고 있지 않은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노구를 이끌고 그리스 땅에도 가서 1,200년 전에 가톨릭 신자들이 그리스 정교회 신자들에게 저지른 잘못을 사죄하고, 가톨릭 교회 사상 처음으로 시리아의 이슬람 사원도 방문하여 종교간의 반목 해소를 위해 기도하는 시대가 아닌가.

 

 사랑과 화해, 포용의 정신이 꽃피어나고 있는 시대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한국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하는 병원들의 노사 분쟁은 현재 극한 상황만을 계속 치닫고 있다. 거듭 말해 무엇보다도 대화의 단절과 부재가 주요 원인이다.

 

 이 점을 주시하는 교회 밖의 사람들은 오만한 교회권력의 책임 방기라는 말로 가톨릭교회의 소극적인 태도를 지적한다. 어떤 이들은 천주교회의 재래적이고 관성적인 보수 체질을 지적하기도 하고, 90년대 이후 급격하게 나타난 보수화 회귀에서 그 원인을 찾기도 한다.

 

 교회가 스스로 권위주의에 압도되어 완고하게 설정한 자신의 기준선을 절대 넘으려 하지 않는다는 비아냥거림도 들리고, 민주주의의 요체인 대화와 타협이 사회의 최고 미덕인 이 시대에 교리적이고 신앙적인 일이 아닌 사안에 대해서까지 대처 방식을 편협하고 군색하게 가져간다는 질책도 들린다. 우리가 쉽게 간과하거나 흘려버려서는 안될 뼈아픈 말들이다.

 

 어떤 논자는 성경의 ’돌아온 탕아’ 이야기를 결부시키면서, 일단은 탕아가 돌아와야 아버지(교회)의 사랑과 포용이 결과될 수 있다는 논점으로 의료원 측과 교회를 두둔하고 있지만, 그 역시 전적으로 옳은 관점은 아니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성경에서의 탕아에게는 회개가 절대적 가치였지만, 오늘의 이 상황에서는 그것은 완전한 굴복과 항복을 의미한다. 완전히 굴복시켜 원한을 안겨 주면서까지 사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가혹성을 지나 너무도 비이성적이고 비종교적인 처사가 아닌가.

 

 나는 우리 나라의 민주주의가 이만큼 발전되어 온 과정에서 한국 천주교회가 기여해 온 공을 늘 즐겁게 기억한다. 그것은 천주교 신자인 내게 큰 자부심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민주화가 어느 정도 달성된 오늘, 그 민주화의 갖가지 열매들, 이를테면 대화와 타협의 문화를 좀더 크고 넓게 창출해 가는 일에 천주교회가 외면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천주교 병원들의 노사 분규를 슬기롭게 해결하는 일에 교회가 좀더 적극적으로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더라면, 그것이 민주 사회의 내실과 부합하는 하나의 문화적 시금석이 될 수도 있었으리라는 생각을 아프게 갖는다. 다른 병원들은 조기에 대화와 타협이 성사되어 극한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던 것과도 비교가 되어 거기에서 일종의 언밸런스와 퇴행성을 읽기도 한다.

 

 교회 스스로 대화를 해야 하고, 타협의 미덕이나 미학을 창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병원 노조의 파업이나 명동성당 농성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일반 신자들의 전반적인 기류에 편승하려는 안일한 태도를 고수해서도 안되고, 공권력 투입 요청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극단적인 방식을 선택해서는 더욱 안된다. 공권력에 의한 문제 해결은 진정한 해결이 아닐뿐더러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하는 일이며, 부끄러운 기록이 흉터처럼 남게 되는 일이다.  

 

 지난 2000년 대희년에 가톨릭교회가 세계에 보여 주었던 ’참회’의 모습을 기억하자. 그 참회의 정신을 지속적으로 생활화하자. 교회도 잘못할 수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신자라면 교리적이고 신앙적인 것까지 회의하고 오류 가능성을 믿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지만, 교회의 대사회적인 처신은 언제나 더 깊은 슬기가 요구되며 그리스도화 되어야 할 숙제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 명심해야 한다.

 

 가톨릭 병원 노조들의 명동성당 농성이 150일을 넘기고 명동성당의 공권력 투입 요청 방침이 표명되고 있는 오늘, 나는 우리 교회가 충분히 반성하지 못했던 과거사의 과오들을 다시금 되돌아볼 필요를 느낀다. 관용과 포용, 사랑의 범위를 스스로 제한하려고 하는 교회 당국의 무리수가 자칫 훗날 과거사 반성의 목록 안에 들게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덧붙이는 글

 

 노조도 교회 당국과의 대화에 임하게 되면 겸손하고 반성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 명동성당이 한국 ’민주화의 성지’라 해서 이런저런 시위와 농성에 마구잡이로 사용될 수 있는 장소인 것은 아니다. 그곳을 이용하려는 사람들 스스로 각별히 존중해야 하고, 외경심마저 지녀야 할 곳이다. 민주노총 보건노조는 특히 명동성당에 대해 미안하고도 죄송한 마음을 갖고 여러 가지 잘못된 언행들에 대해서 사과를 해야 한다.    

 

 

 10/25

 충남 태안 샘골에서 반딧불 작가 지요하 막시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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