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8일 (화)
(녹)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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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7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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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corenelia] 쪽지 캡슐

2024-05-25 ㅣ No.172705

[연중 제7주간 토요일] 마르 10,13-16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어른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마땅히 아이들에게 주어져야 할 하느님의 축복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유아세례나 첫영성체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표적이지요. 어떤 부모들은 '신앙의 자유'라는 명목을 내세워, 종교를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나중에 아이들이 커서 본인이 원하는 종교를 직접 선택하게 하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하는 자기 모습이 굉장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착각해서 그러시겠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오히려 자녀들의 앞길을 막는 꼴이 됩니다. 자기 자식에게 정말 좋은 것이 있다면 어떻게든 그것을 해주고 싶은게 부모 마음이지요. 그런데 그 정말 좋은 것을 제대로 보고 느낄 기회를 주지 않으니, '자유'라는 이름의 방임으로 자녀들을 무지와 불완전의 상태로 방치하고 있으니 문제가 되는 겁니다. 물론 신앙은 자유가 맞습니다. 그러나 신앙을 진정 자유롭게 받아들이려면 먼저 그 신앙에 대해 제대로 아는 과정이 필요하지요. 그런데 아이들은 이성적, 정신적으로 아직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부모의 인도와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머리만이 아니라 행동과 삶으로 알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런 의무를 소홀히 한다면 아이들이 하느님께 가는 것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아이들이 당신께 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하십니다. 자기가 알아서 당신을 찾아가도록 수동적으로 방치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가 주님께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배려해주라는 뜻입니다. '어린이'는 성경에서 힘 없고 약한 존재, 무력하고 부족하여 스스로의 힘으로는 살 수 없어서 누군가의 보살핌과 보호가 반드시 필요한 존재를 표상합니다. 또한 하느님의 뜻과 계명을 잘 모르는 무지한 이들을 가리키기도 하지요. 그렇게 부족한 이여도 그 부모에게는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부모들이 자기 아이들을 예수님 앞에 데리고 와서 축복해달라고 청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지요. 몸이 아픈 병자가 예수님의 안수를 받아 온전한 상태가 되었듯이, 부족하고 약한 자기 자식들이 예수님의 축복을 받아 성숙하고 온전한 존재가 되기를 바랐기에 그랬을 겁니다. 예수님도 그 마음을 아셨기에 그 아이들을 그저 흐뭇하게 바라보고 계셨는데, 제자들이 그 아이들을 가로막으며 그 부모까지 꾸짖고 있으니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언짢으셨지요.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 말씀은 '어린이'라는 말이 '주어'가 되는가 아니면 '목적어'가 되는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집니다. 어린이가 주어가 되면 우리도 어린이처럼 되라는 뜻입니다. 어린이처럼 열려 있고 비어있는 존재가 되라는 의미입니다. 주님의 뜻을, 하느님 나라를 내 안에 받아들이려면 내가 열려 있어야 하고 비어 있어야 하지요. 그런데 우리는 마음을 굳게 닫아걸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내 마음이 주님이 아닌 '다른 보물'들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뜻을 받아들일 여지가, 그분께서 내 안에 들어오실 자리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린이처럼 되라고 하시는 거지요.

 

어린이가 목적어가 되면 '어린이 같은 존재'들을 내 안에, 내 마음과 삶 속에 받아들이고 보살피라는 뜻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채 힘겹게 살아가는 작고 약한 이들을, 아직 마음과 생각이 부족하여 본의 아니게 미성숙한 말과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며 살아가는 '고슴도치' 같은 이들을 사랑으로 품어 안으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그들을 내 안에 품어 안으면 그들이 지닌 가시가 나를 아프게 찌르기에 참으로 괴롭습니다. 하지만 그 아픔을 인내와 사랑으로 참고 견디면 그와 나 모두에게 큰 축복으로 되돌아올 것입니다. 그들에게 실천한 그 자비와 사랑이 나라는 존재를 성숙하게 하여 하느님을 닮은 존재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도 나라는 존재를 통해 하느님과 그분 사랑을 느끼며 그분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즉 구원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들에게 우리가 필요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들이 필요합니다. 사랑으로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완성에 이르게 하시는 것이 우리를 창조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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