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성지순례ㅣ여행후기

"그분"이 불러주셔서--로마의 카타콤베 (세 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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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항 [vinchen10] 쪽지 캡슐

2004-10-26 ㅣ No.420

넘치는 "그분"의 사랑

  비에 젖은 로마는 날이 개이면서 호탤창 너머로 보이는 잘 생긴 소나무 몇 그루가 어둠을 털어버리며 싱그러운 아침을 불러 오고 있습니다, 그 거만한 몸짓으로....

* * * *

  오늘은 바티칸, 라태라노(성 요한성당), 콜로새움...두 차례의 로마 방문이지만 지난 번에 둘러 보았던 곳도 또 가고싶은 거 있지요?  미쳐 가보지 못한 곳을 챙겨보니 영 엄두가 나지 않는군요.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만큼 로마는 대단했습니다.  순례 일정을 차근차근 살피지 않으면 뒤죽박죽 되어버릴 것 같아 과감하게 칼질을 하고서 바티칸으로 우선 길을 나섭니다.

  그러나, 순례지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한 곳으로 정리하고자 한다면...

  사랑하는 그대여!
  나는 아피아 가도에 자리한 성 칼리스토의 카타콤베, 깊은 지하 무덤성당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박해시절의 로마, 그리스도인들의 공동묘지던 이곳 체매테리아(chemeteria) 즉, 쉬는 곳에 숨어들어 미사를 드리고 순교자들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지냈던 곳입니다. 그래서 로마 관원의 눈을 피하기에 더없이 적당한 곳이어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물고기 암호를 그려 보이며 모여서 성찬례를 드리고 기도하던 곳이지요.

  참으로 이 곳은 신기하게 30미터가 넘게 파들어간 땅 밑인데도 눅눅하지 않고 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습니다. 흡사 성능 좋은 환풍기가 쉬지 않고 돌아가는 것 같아 미로를 걸어가며 알 수 없는 "그분"의 배려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저는 1,800여년 전의 순교자들과 시공을 초월해서 함께 한다는 경건함으로 가슴 두근거리며 순례길의 두 번째 미사를 카타콤베 깊숙한 곳,초대 교회신자들이 가슴 졸여가며 드리던 다섯평 남짓한 성전에서 바칩니다. 매콤하다고 해야 하나 표현할 수 없는 흙냄새에 천 년을 넘게 기다려온 순교자들의 깊은 신심이 베어 있는 듯했습니다. 죽은 자들의 공간에 서서 바치는 미사, 알 수 없는 그윽함과 편안함에 젖어 드리는....그대는 제 기분을 이해해 주실 수 있을른지요?

  "너희가 오늘 하느님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유혹을 받고 반역하던 때처럼 완악한 마음을 품지 말라...."
거룩한 독서를 맡은 제 목소리는 떨려 나오고, 우리 순례단 25 명과 외국인 순례자 몇 사람이 함께 드리는 미사는 타오르는 촛불의 일렁거림 속에 깊은 미로 흙벽 속에 베어 있는 순교자들의 영혼과 하나되어 거룩하게 봉헌됩니다,
  "성서에 (오늘)이라고 한 말은 우리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니 날마다 서로 격려해서 아무도 죄의 속임수에 넘어가 고집부리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오 하느님! 제가 이자리에 서다니요? 숨소리도 아껴가며 뜨거운 눈물속에 드리는 기도는 깊고도 아늑했습니다.
  순례단의 지도 신부님의 화두 "모두 성인됩시다" 에 대해 이 천년을 두고 내려온 성서말씀, 즉 오늘 독서가 그 해답이었습니다.

  카타콤베, (체매테리아를 나중에 고쳐부름) 초대교회 그리스도인은 "쉬는 곳"이라고 했으나 반면 일반인들은 묘지를 네크로폴리스(necropolis)즉 단순히 "죽은자의 도시"라고 불렀답니다,
  그리스도인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과 일반 로마인들은 근본적인 차이가있음을 볼 수 있지요,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현재 발굴된 카타콤배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인 성 칼리스토의 카타콤베는 화산암으로 약30m정도 파내려가, 옆으로 총 길이 20km나 되는 복잡한 통로로 이어져 있어 자칫 앞 사람을 놓치면 길을 잃고 미아가 된답니다. 두 사람이 옆으로 간신히 빗겨 갈수 있는 좁은 통로 벽에 시렁처럼 시신을 모셔두었지요. 

  미로가 이어지는가 하다 보면 사각형 토굴이 군데군데 있지요. 대개 3세기 교황들의 묘소와 대리석 묘비판, 순교자들의 무덤이지요. 또한 미사를 드리던 교회이기도 하고요. 그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성녀 체칠리아의 무덤입니다,
  303년 귀족 출신인 성녀는 신앙을 위해 순교를 하는데 열탕에 익사 시키는 끔직한 사형 집행을 받았으나 전혀 모습이 흐트러지지 않는 기적을 보입니다. 결국에는 참수형을 당하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하느님을 찬양하며 순교하였답니다.
  성녀는 음악의 수호성인으로 로마의 가장 유명한 음악대학이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인데 성악가 조 수미도 이 대학 출신이라 하지요.

  그런데 성녀 사후 1,300 여년이 지나 교황의 명으로 관을 열었대요. 놀랍게도 성녀의 시신은 전혀 부패되지 않고 순교 당시의 모습 그대로 누워 있었답니다.  교황은 성녀의 시신을 이웃 성당에 안치하고 카타콤배에는 그 모습 그대로 대리석으로 조각을 하여 남겨 두었답니다. 후세의 순례자들이 성녀를 보면서 믿음이 무엇이고 목숨을 마다하지 않는 열정을 다시금 생각해 보라는 뜻이겠지요. 저는 참으로 편안하게 누워있는 아름답기 짝이 없는 성녀가 어떻게 처절하게 순교한 여인인가 상상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분"을 위해서, "그분"의 이름으로, "그분"이 불러 주시면 이리도 평화로운 모습으로 응답한 순교자들의 열정에 숙연해 했습니다.
 손가락으로 3위일체를 표시한체 고개를 벽쪽으로 돌리고있어서 얼굴은 보이지않았지만 목에는 칼자국이 선명합니다.

  깊고도 깊은 미사, 우리가 들여 마시는 숨 소리 하나하나가 고결한 순교자들의 영혼과 맞닿는다는 떨림으로 우리는 꼬불꼬불한 미로를 걸어 올라오면서 우리를 한결같이 이곳으로 이끄시는 "그분"의 숨결을, 따뜻한 체온을 느낄 수 있어 무척 행복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사랑하는 마음은 애절하여 더욱 그리운가 봅니다.

  그대여! 날 저물어 오는 카타콤배, 한 걸음에 편지를 다 띄우지 못하고 인사를 드리는 안타까움 전하며 ....."살 롬"

  두 차례로 둘러본 로마였지만 제일 먼져 들른 바티칸 이야기는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우선 카타콤배와 성 안젤로성당 이야기를 마치고 두고두고 생각을 정리하여 바티칸을 이야기 해볼래요, 제가 운이 닿아 다시 세 번 네 번 로마를 와 본다해도 이 넘칠 것같은 감상을 쉽사리 꺼내지 못할 것같아요. 그만큼 로마는, 순교자들의 숭고한 믿음을 제가 감히 때 묻히기에 송구스러워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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