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제라는 희망, 사제라는 우상...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신부님들을 행동거지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릴 마음은 없습니다.

 

어떤 분이 되풀이 강조하시는 것 처럼

저 같이 평범한 사람이 한 사제의 모든 면을 알고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길가에 서 있는 나무가 저 혼자 우상이 되겠습니까?

나를 섬겨라고 스스로 욱박지르는 일이 있습니까?

실상, 우상을 우상으로 만드는 것은 자신의 욕심을

우상을 통해 투사하는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사제를 우상으로 만드는 것은

사제 자신이 아니라 바로 신자들이게 마련입니다.

 

2. 신부도 사람이다..?

 

아무도 사제 또한 사람임을..그래서 약하고 결점 많은 형제임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이기에, 그러나 다만 특수한 직무를 맡은 형제이기에

그의 잘잘못에 대해 형제적 조언과 충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사제는 천사 비슷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살았다면

그러한 환상이 깨져버렸을 때, 도전하고 나설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3. 본당은 가정이다..?

 

본당이 가정이라면 그래서 본당의 어른 혹은 아버지인 사제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자체가 용납될 수 없는 죄라면...

 

갈라디아인들에게 자신이 베드로를 나무랬음을 자랑스레 알려준

바오로 사도는 참으로 불효한 자식이었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재물을 하느님께 봉헌하겠다는 약속을 어긴

아나니아와 삽피라를 처단한

베드로 사도 역시 참으로 잔인한 사람일 것입니다.

 

세상에 자식이 비상금 좀 챙겼다고 죽여버리는 아버지가 어디 있습니까?...^^

 

그뿐만 아니라 본당을 넘어서 존재하는

보편교회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다니는 본당만 내 가정이라면 이웃 본당은 남의 집일까요?

 

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가정의 아버지는 전출을 가는 법이 없지만

본당 신부를 새로운 임지로 이동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에게 고쳐야할 잘못이 있음에도 그냥 묻어버린다면

그 피해는 어느 한 곳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새로 부임한

본당 신자들 역시 본당 신부를 아버지라고 생각하라는 법은 없지요...^^

 

4. 너무나 잔인한 당신..

 

기도와 인내로 견뎌내면 그 신부님이 변화하시거나 아니면

최소한 당신의 성덕은 성장하지 않겠느냐 타이르는 분들께는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조건없이 ’사제라는 이유만으로’...

사제의 어떠한 행동도 용납하실 수 있다면

그처럼 높은 인내와 사랑의 경지에 이르신 것에 대해

마땅한 존경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 왜 나처럼 높은 경지에 이르지 못했느냐..

욱박지르지는 마십시요.

 

같은 정도의 고통이라 하더라도 그 무게를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님들이 진실로 그 고통을 승화 시킨 것인지,

아니면 운이 좋아 최악의 경우는 피할 수 있었던 것인지 그 누가 알겠습니까?

 

누구나 나와 같은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는 말씀은

너무나 잔인한 일반화가 아닐까요?

 

5. 한정수 신부님에게서 발견하는 희망...

 

물론 저 역시, 김충렬님의 글을 보면서 지나치다거나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앞에서 말씀 드린 이유로 저는

한정수 신부님의 글에 전적으로 동감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정수 신부님의 자세를 통해서

교회에 닥친 갈등을 풀어나가는 참다운 모범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반성과 해명을 통해서 문제를 풀어 보려는 진지한 열의를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게시판을 통해 교회의 공적 인물을 비판한 것이  

미사 시간을 이용해 특정 신자를 공박한 것 보다

더한 죄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아 물론..어떤 분은 이 게시판을 전 세계인이 다 볼 수 있다고 하셨지만

제 생각에는 그렇지는 않은 것 같군요....^^

 

비판과 문제 제기 자체를 봉쇄하는 것으로 평화는 오지 않습니다.

반성하고 해명하고 사과하고 때로는 반론을 제기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사제직의 권위를 해치는 것도 아닙니다.

 

평화는 그렇게 열린 공론의 장에서 오가는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 이루어 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