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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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부탁 드리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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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선 [peterpan65] 쪽지 캡슐

2004-03-15 ㅣ No.63268

 

 제가 군생활 시절의 얘기 하나를 해보겠습니다.

 

저는 당시 맹호부대라고 잘 알려진 수도 기계화 보병사단, 흔히 줄여서 수기사라고 하는 부대 125기 출신 입니다.

 

저의 동기중엔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배우 권해효씨가 있었습니다.

 

당시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재학하다 군 입대를 한 동기인데, 군생활도 아주 열심히 모범적으로 잘해서 훈련병 수료식때는 사단장상까지 탔던 그런 동기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고...

 

저는 그러다 보병 66동원사단으로 배치받게 되어 그곳에서 줄곧 근무를 했습니다.

 

물론, 중간에 다시 수기사로 들어가 분대장 교육을 받고 팔자에 없는 하사 계급장을 달고 분대장 노릇을 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일병계급장을 달고 소위 말하는 내무반 시집살이를 아주 혹독히 치를 때였습니다.

 

그러다 87년 대선때였습니다.

 

당시 민정당에서는 노태우가 대선후보로 나왔고, 평민당에선 김대중, 통민당에선 김영삼이 나와 치열한 3파전을 펼치고 있었을때였지요.

 

소위 말하는 군부재자 투표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시리라 봅니다.

 

앞서 저희 형을 비롯한 선배들의 말을 듣노라면 우리나라가 과연 민주국가인가?라는 회의가 들 정도로 선거부정은 개판 그대로 였습니다.

 

중대장실에 줄을 서서 차례가 와 들어가면 기표소라는 것은 그야말로 사치이고, 그냥 중대장이 민정당후보 칸에 손가락을 짚고 있으면 군소리 못하고 그냥 찍고 나와야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개표때는 군부재자 투표가 항상 한쪽으로 몰릴 밖에요.

 

저럴바에야 뭐하러 투표는 시킵니까?

 

그냥 대한민국 60만 군인의 표는 민정당표! 하고 못박고 시작하지, 뭐하러 쓸데없이 종이는 낭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박정희 공화당때는 말함 뭐하겠습니까?

 

아마도 현재 수구세력들도 이러한 사실을 모르진 않을 겁니다.

 

그저 불리하면 "글쎄요~군생활 한지 하도 오래되서 기억이 가물가물해서리..."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들추어 내고 싶진 않겠지요.

 

다시 얘기는 돌아가서 제가 직접 경험했던, 그때 87년 대선 당시로 가겠습니다.

 

연일 사상교육을 시킨다고 나라 지키러 간 군인들 강당에 모아놓고 용공이 어떻고 안보가 어떻고...귀에 못이 배이도록 해놓고는 결국 결론에 가서는 그래서 민정당!!!

 

이것은 선거법위반 정도가 아니라 그냥 만행이라고 단정 지으면 되겠습니다.

 

그러나 먹힙니까?

 

80년대 군인들이 무슨 50~60년대 군인들인줄 알았던 모양이지요?

 

사상교육을 할때마다 오히려 민정당에 마음이 떠나는 병사들이 하나 둘씩 늘어만 가는 추세였습니다.

 

군대에서 이 사정을 모를 리 없었겠지요?

 

한마디로 비상이 걸린 겁니다.

 

각 부대에 공문 띄워 보내고, 결과가 안좋으면 부대장 문책하겠다는 책임론까지 나오니 부대장들 그때부터 완전 제정신들이 아니었습니다.

 

툭하면 비상에 장교들 영내대기령 떨어지고 그런식으로 점차 발악을 하기 시작하더니, 아주 멋진 코미디가 벌어집니다.

 

저희들을 모아놓고 이번 선거는 과거 어느때보다 공정하게, 그리고 민주적으로 한다나요?

 

그래서 군대에 그동안 없던 비밀투표 보장해주는 기표소까지 만들어 준다고 장미빛 공약도 내어 놓더군요.

 

그리곤 정말 커튼이 드리워진 기표소가 각 행정실에 놓이긴 했습니다.

 

저는 당시에 "아! 세상이 정말 좋아질라나?" 이렇게 순진한 생각도 순간 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대에서 사병들 불러 모아 이번 선거에 앞서 예비선거를 훈련삼아 한다고 하더군요.

 

그리곤 모의 투표용지를 나누어주고 줄지어 서서 기표소에 들어가 원하는 후보를 마음 놓고 찍으라더군요.

 

일단, 모의투표...이 자체도 명백한 선거법 위반 입니다.

 

어쨌든, 순진한 군인들 세상이 바뀌어도 많이 바뀌었다며 드디어 우리나라도 민주주의로 탈바꿈하나 보다 하곤, 열심히 모의투표에 응했습니다.

 

모의 투표가 끝나고 내무반에 들어온 우리들은 희희낙락 투표 자체가 재미있다며 누구를 찍었냐고 서로들 물어보니까 당시 저희 내무반 인원이 50여명 가깝습니다만, 제 기억에 단 4명만이 노태우를 찍었고, 김종필 1표, 나머진 전부 김대중 아니면 김영삼을 찍은 결과로 나오더군요.(기억이라 대충 표본오차는 더하기, 빼기 1~2로 보시면 됩니다.)

 

우린 그때까진 몰랐습니다.

 

그러냐며 이번 대선때는 김대중 아니면 김영삼이 틀림없이 대통령이 되겠구나! 하며 참 재미들 했었습니다.

 

나이들이 있으니 태어나서 투표라는 것이 어쩜 처음이었으니, 사실 재미도 있었던것이 사실 이었겠지요.

 

그 재미는 여기까지 였습니다.

 

다음날부터 우리들은 탈영이 그리울만큼 시달려야 했습니다.

 

툭하면 비상에 집합, 완전군장에 판쵸의 뒤집어쓰고 한쪽발은 활동화, 한쪽발은 전투화 신고 운동장 뺑뺑이에, 원산폭격, 그리고 연이어 이어지는 입에 담지 못할 욕설, 해골을 갈아 마신다느니, 뇌를 꺼내 새벽 얼음 개울가에 쳐넣어 정신개조를 시킨다느니...

 

점호때는 완전 한딱가리 시간으로 돌변, 툭하면 내무검사에 육군규정 어쩌구 저쩌구...저희들은 저들이 시킨대로 한 재미있는 모의투표 한번에 육체와 정신이 완전 만신창이가 되어 가야만 했습니다.

 

드디어 고문(?)의 효과는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선거전날, 내무반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저희들에게 고참들이 눈에 쌍심지 켜고 소리를 질러 댔습니다.

 

"내일 투표에 노태우 안 찍어버리면 XX놈들 가만히 안놔둔다! 이 XX놈들아! 편히 군생활 하다 제대 좀 하자! 하여간 내일 보자 이 XXX들!"

 

우리는 대선기간 내내 그렇게 공포에 휩싸여야만 했습니다.

 

선거 당일날, 우리는 바짝 긴장한 얼굴들로 내무반 행정실에 마련되어 있는 기표소로 끌려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그 암울했던 시대는 다시 열리고, 이 나라에 민주주의는 이미 죽고 없음을 눈으로 확인 해야 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알게 모르게 내무반에서 우리끼리 조사한 결과 노태우를 찍지 않은 표는 단4표, 다시말해 모의투표때와는 정반대되는 수치가 나왔습니다.

 

자랑스럽게도 저는 그 4명중 한명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훗날 제대후에 시민단체에서 [군생활 시절, 부정선거 신고 합시다]란 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려 이미 신고가 된 사실입니다.

 

이러한 만행을 저지른 후예들이 오늘날의 한나라당인 것은 온 천하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대통령을 선거법 위반이라며 탄핵을 했습니다.

 

똑똑히 그들의 만행에 분명한 희생을 당한 저로서는 어이가 없다 못해 끓어 오르는 분노야 말해 무얼 하겠습니까?

 

이번 사태에 생각없이 말하시는 분들, 다 좋습니다.

 

생각이야 다를 수 있겠지요. 그러나 부탁 한가지는 하겠습니다.

 

못난 대통령 노무현씨를 욕해도 좋고 민주수호 세력을 홍위병이라 비웃어도 좋습니다.

 

다 들어드리지요.

 

그러나 제발 그 입에서 민주(民主)라는 소리만은 하지 말아 주십시요.

 

민주는 당신들이 내뱉을 말이 못됩니다.

 

17년전(87년 대선당시) 군에서 먹었던 밥알이 역겨워 튀어 나오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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