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7일 (목)
(녹) 연중 제12주간 목요일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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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히 가세요.. 박은종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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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 [jslaura] 쪽지 캡슐

2000-02-10 ㅣ No.8592

떠 오르는 기억 몇가지가 있습니다.

그게 언제였더라....

대학에 들어가고 얼마되지 않았을 때일겁니다.

그때 가졌던 궁굼한 점 중의 하나 중에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요한 학사님은 어찌해서 편입시험 안 보시고 다시 학력고사를 보셨나요?"

대학 졸업을 얼마 안 놔둔 시점에서 학력고사(그때는 수능이 아니라 학력고사였으니까요)를 다시 준비해서 신학교에 입학했다는 게 잘 이해가 안 갔기 때문이지요

거기에 대한 학사님의 생각은 간단했습니다.

"하느님의 신부가 조금이라도 더 빨리 되고 싶어서..."

 

부제서품을 받으시고 주일 학생미사 강론을 하실 때였습니다.

그때 저는 주일학교 교사였기에 청소년 미사를 참석했었지요.

정확한 문구 등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시국사건에 연루되어 경찰에서 고문을 받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인간이하의 악랄한 고문을 담당형사는 가했지만 결국 그에게서 어떤 죄를 알아내지 못했고

 결국 그는 풀려 났습니다.

 어느 오후, 그는 자신의 아파트 테라스에서 자유로움을 느끼고 있었지요. 문득 쳐다본

 아파트 아래 놀이터에는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어느가정 - 아빠와 엄마 그리고 어린 딸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미소를 띄우던 그의 얼굴은 그들의 모습이 좀더 자세히 보였을 때 분노로 일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저기! 한 가정의 자상한 아버지의 얼굴을 한 사람...

 그는 지울 수 없는 악몽을 심어준 고문 경찰관이었기 때문이었습니따"

청소년들에게 해 주셨던 그때의 그 강론!

들은지 10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내용입니다.

 

성탄예술제를 준비하던 어느 겨울!

무대장치를 위해 중앙제단 옆의 제의실에 들어가려고 신발을 벗었을 때(그 성당의 제단은 대리석으로 바닥이 굉장히 차가왔습니다) 부제님은 그냥 신발을 신고 올라오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제대인데...."

그러자 부제님은 웃으면서 말씀하셨죠

"그렇지만, 중요한 건 사람이야.... 인간이 더 중요한 법이지"

 

몇해가 지나고 (지금도 그런 것 하는 지 모르지만) 혜화동의 정의구현 사제단 사무실에서는 매 화요일(이었던가?)에 미사를 했습니다.

그 미사에 참석하던 그 어느날 미사를 집전하러 오신 신부님을 다시 뵈었습니다.

그리고 그후 명동에서 시국관련 미사있을 때 약속한 것도 아닌데도 우연히 뵙곤 했었고, 이것저것 의문나는 것들 있으면 묻곤 했었고(주로 교회에서는 답해주기 꺼려하는 그런 것들이었죠)

 

해외선교차 골롬반 수도원에 가 계시다는 말씀 전해들었습니다.

한국어 발음 유창하신 외국 신부님과 통화한 후에

"잘 다녀올게"

하는 신부님의 넉넉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요.

 

"너 결혼 안 하냐?" 하고 물으시면

"그땐 신부님이 홈배미사 주례 서 주실거죠?"했었는데...

이제 그 바램은 영원히 깨어졌네요..

 

예전에 어떤 글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어느 신부님이 그랬다지요?

’518 광주에서 신부 하나가 죽었으면 어땠을까? 그러면 아마도 그러면 광주의 아픔을 더 일찍 밝혀 낼 수 있었을 텐데..."라고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올 곧게 살았던 사람의 죽음이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고발이 될 수 있을겁니다.

더군다나 그것이 (속된 표현으로) "살만큼 산" 후에 따라온 죽음이 아니라 "아직 할 일이 많은데..."하는 안타까움을 갖게 하는 죽음이라면...

그것은 정상적이지 않은 세상에 대한 반역이고 올바르지 못한 것에 대한 저항일 테니까요..

 

시대의 징표!!!

그런 것  잘 모릅니다,

어차피 일이 생기면 주보를 통해서

가톨릭 정론지 "평화신문" 평화방송 그런 것 통해서 다 풀이되어 나오고 설명해 주니까요.

 

아마도 이 시간이 지나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 처럼

사는 게 바빠서 한 신부님의 대한 기억을 잊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들리는 안타까운 얘기들,

이것들은 사실이 아니기를 기원해 봅니다.

 

그리고 미처 하지 못 했던 말씀을 고백해 봅니다.

"안녕히 가세요 박은종 신부님.....

 그리고 사.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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