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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두레]수도자들의 눈에 비친 성직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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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구현사제단 [cpaj] 쪽지 캡슐

2001-05-15 ㅣ No.20345

<빛두레 제513>

수도자들의 눈에 비친 성직자상

 

"허물없는 길을 나는 걸으오리이다."(시편 101,2)

 

 

  한국교회의 위상에 지대한 공헌과 헌신의 몸짓을 했고, 하고 있는 이들은 바로 9000명이나 되는 수녀님들과 1000명되는 수도자들이다. 이들은 수도정신에 투신하면서 들어내지 않고 결실의 영광은 대부분 성직자들에게 돌리는 경향이 있다.

 

  특히 한국에서의 모든 본당에서 사도직 활동을 하는 수녀들의 역할은 대단하다. 보통 수녀들은 본당 사제들의 사목 활동을 돕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본당사제의 마인드를 거역해서는 안된다는 종속개념이 있고 "순명"이란 언어 속에 순응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많은 상심을 겪기도 한다.

 

  덕과 신심과 지혜가 있는 본당사제를 만나면 사도직 활동과 수도생활에 보람을 얻게 되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수도생활의 갈등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대부분의 수녀들은 본당관내에 거주하면서 본당 사제들의 일상생활과 사목활동을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만나고 보게 된다. 보고 느끼는 관점이 때로는 주관적이고 편협된 면도 없지 않으나, 대부분 수도자들은 수련된 수도정신의 측면에서 인식하고 느끼는 관성이 형성되고 있다.

 

  2000년 우리신학연구소에서 "수도자들의 눈에 비친 성직자상"을 여론조사하여 통계 숫자를 발표한 면이 있다. 종합적인 인상으로 독불장군(46.6%), 행정가(21.9%)로 비춰진 이면에는 본당과 기관의 전결권을 갖고 일하는 가운데 수도자들이나 평신도들과의 충분한 협의를 갖지 않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고 효과적이고 복음적인 합의를 경시한 가운데 독단적인 결정을 내린다는 의미다. 또한 정신적인 스승(7%), 사목자(19%)로 보고 느끼는 정서가 아주 작은 인상인 이면에는 무엇인가 사제들의 본연의 사목자상이 결여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하겠다. 구체적인 개인의 일상생활에서 비춰진 인상들은 오늘의 한국 사제들에게 본연의 정체성에 대한 시급한 반성과 함께 개선과 쇄신을 요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청빈생활을 소홀히 한다(63.9%)고 지적한 이면에는 수도자들의 몸에 밴 청빈생활에서 그 기준을 놓고 느낌을 표시했기에 정확성이 부족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서울대교구 시노드 준비 평신도 여론 수렴(평화신문 2001.5.6)에서도 성직자들이 부유한 생활, 가난한 이들에 대한 포용력 부족을 제시한 면을 보아도 수도자들의 의견은 사실과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교구 사제들은 청빈허원을 하지 않는다."는 논리로 중산층 이상의 물질생활의 편리성에 편승하다 보면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소홀히 되기 싶다.

 

  수도자들은 성직자들이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이 적다(81.4%)고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중산층 이상에 사목적인 배려를 하고 있고, 소수의 사제들만이 소외된 민중의 아픔에 동참하고 있다는 표시이다. 사실 오늘의 한국 본당들은 대부분 대도시, 중도시에 설치되어 있다. 지방교구의 벽지 농촌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도시에 있다. 중산층이 있는 지역이 신자율과 선교율이 높고(서울강남지역은 10% 이상) 가난하고 소외된 지역의 비율이 낮은(5%미만)이유는 생계를 위한 노동으로 정신적, 시간적 여유도 없고, 정신문화의 한 범주로 신앙을 받아들이기에는 마음의 여유가 거의 없다는 엄연한 현실을 예리하게 인식해야 한다.

 

  또한 수도자들은 사제들이 상류생활(41%), 중상류생활(54.3%)을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의 사제들의 과반수 이상이 물질적인 안정과 풍요 내지 사치성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사실 지방교구의 시골이나 벽지 지역의 사제들은 아주 소박한 생활을 하고 있다. "의식주 생활의 안정을 지녀야만 사목생활을 원활하게 할 수 있기에 사제들의 생활은 중류급 이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으나 물질의 풍요로움의 편리성은 한계점이 없고, 또한 그 풍요로움 속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삶에 동참하는데는 거리감이 있고, 무관심으로 외면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 아닌가!

 

  "사제는 자진해서 가난함을 택하도록 불리었으며, 가난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모습을 뚜렷하게 닮으며 직무를 편리하게 수행할 수 있다."(사제직무교령 17장)

 

  "가난한 이들과 무력한 사람은 특별히 사제들에게 맡겨진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사제직무교령 6장)

 

  사실 사제들의 생활비 보수규정액-교구에 따라 약간 차이는 있지만-은 겨우 생활할 정도이다.(생활비 사목비가 100만원 미만) 그런데 어떻게 중산층 이상으로 50% 이상이나 수도자들에게 비춰지고 있을까? 공개되지 않는 수입이 개인에 따라서 있기 때문일까? 수도자들은 또한 사제들의 영성생활이 부족하고(41.8%) 인격적인 미성숙(27.3%)을 지적하고 있다. 물질의 풍요는 영성을 소홀히 하게 되고,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특히 합리화시키는 생활 패턴으로 만들게 된다.

 

  전반적인 수도자들의 인상이 사제들에 대해서 많은 부분이 부정적인 면으로 비춰지는 저변에는- 사실과 다르더라도- 사제들의 생활전반에 쇄신의 긴급성을 갈구하고 있는 간청인 것으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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