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7일 (목)
(녹) 연중 제12주간 목요일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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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가 새빨간 교구청 수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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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원 [lee57] 쪽지 캡슐

2003-01-06 ㅣ No.46367

찬미예수님.

 

저는 서울에서 부자들이 많이 사는 반포 4동에 삽니다.

부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 사는 저도 부자입니다.

저는 아들이 하나 있으므로 부자이지요.

그러나 옷은 언제나 세일 중의 세일을 찾아서 삽니다.

저도 고급백화점에서 저와 가족들의 의복을 명품으로 사고 싶습니다.

그런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삽니다. 물론 우리 모두에게 말입니다.

저는 1996. 2. 결혼식에 입었던 검정색 예복도 30% 할인하는 롯데백화점에서 샀습니다.

아내에게 줄 예단도 역시 세일 품목을 골랐을 정도이니 아직은 가히 세일인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제 엄청 추웠습니다.

내복을 입어도 아랫도리가 냉냉한 날이었습니다.

저는 아내와 함께 지인(조환식)으로부터 소개받은 경기도 안양시 비산동 사거리에 있는 제일모직 상설할인 매장을 찾았습니다.

10여년 전부터 애용한 곤색 양복이 더 이상 입을 수 없을 정도로 쪼그라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이 옷을 버리겠다고 협박한지도 몇 년이 흘렀습니다.

이 옷을 살 때는 오래 입으려고 일부러 품이 넉넉한 것으로 골랐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작아졌습니다.

30대 후반에 입기 시작한 양복이 40 중반을 넘으면서 깡총하여 사용불가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양복이 헤어진 곳이 한 군데도 없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옛날 어른들은 "옷은 나이에 따라 치수가 늘어난다"고 하셨나 봅니다.

 

오랫만에

80%와 50%를 할인해 주는 새 옷을 두어벌 삿습니다.

남편에게 새 옷을 사준 아낙의 카드 긋는 모습이 의기양양 합니다.

양복 바지 단을 즉석에서 맞추어 줄 것을 부탁하고 근처의 식당을 찾았습니다.

안양 비산동 신시가 골목 모서리에 "왕우동" 집이 있었습니다.

작은 분식집인데 손님이라곤 우리 내외 뿐입니다.

우동 정식 두 개를 마주 놓고 먹었습니다.

아내는 싸구려 우동 사발을 앞에 놓고 간만의 데이트라면서 좋아합니다.

열심히 훌훌 불며 왕우동을 먹고 있느데, 찬바람이 휭하니 들어 오더니 새 손님이 왔습니다.

코가 새빨간 수녀님과 자매님 한분이 동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어릴 때 표현으로는 코가 시퍼렇다인데, 수녀님의 콧등이 빨갛다 였습니다.

매서운 추위가 수녀님의 코를 그렇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수녀님 역시 우리와 같은 메뉴를 주문했습니다.

제가 통성명을 했습니다. 그리고 수녀님께 물었습니다. 어인 일로 이런 외진 식당에 늦은 점심을 드시냐구요?

수녀님 말씀이 교구청 일로 여기에 이르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옆의 자매님도 교구청에 계시는데 본명이 저의 아내와 같은 베로니카라고 했습니다.

일찍 먹기 시작한 저희 내외가 왕우동 집을 먼저 나오면서 수녀님의 우동 값도 함께 지불했습니다. 수녀님이 한사코 사양하셨지만, 우동값 몇 천원의 100배가 넘는 즐거움이 있는 외식이었습니다. 제 아내 베로니카는 더 좋아했습니다. 남편과 오랫만에 멋진 나들이를 했다나요. 아내는 연신 헤헤거립니다. 여차하면 팔짱이라도 낄 것 같습니다.

어제, 코가 새빨간 연세가 지긋하신 수원교구청 수녀님.

오늘도 춥습니다. 내일까지 혹한이 계속된다는 뉴스입니다. 수녀님 추위 조심하세요.

 

                    주님, 밖에서 교회일을 보러 다니시는 수녀님들 안춥게 해주세요.

                    서울 반포4동 성당  이 정 원 알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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