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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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강변의 한 까페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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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선 [peterpan65] 쪽지 캡슐

2002-03-06 ㅣ No.30574

 지지난주 토요일...

 

우리 부부는 머리도 식힐겸 모처럼 시간을 내어서 미사리 까페촌을 다녀왔습니다.

 

언제인가 그곳을 우연히 지나다 강변에 위치한 화려한 까페들을 보게됐고 또 그곳에 출연하는 가수들의 이름이 적혀있는 현수막들을 보았던 적이 있더랬지요.

 

한때는 그들의 팬이기도 했던, 그러나 지금은 방송에서 보기힘든 그런 추억의 가수들이 그곳에 다 모여있구나! 싶더라구요.

 

그래서 내 언제 한번 꼭 와보리! 결심만 하고는 이제껏 실행에 옮기진 못했었습니다.

 

사월과 오월, 한마음의 여성보컬 양하영, 신촌부르스의 위일청, 벗님들의 이치현, 가을엔 떠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던 최백호, 뜨거운 안녕을 외쳐대던 임희숙, 그밖에 통키타 하나 둘러매고 전국의 젊은이들을 열광케 했던 송창식을 비롯한 그 많은 추억의 스타들이 그렇게 지금은 다소 외진 미사리라는 강변의 까페촌에서 나름대로 그 노래들을 잊지말라 불러주고 있었습니다.

 

전 나탈리아를 데리고 그곳에 다녀왔습니다.

 

분위기가 좀 있다싶은 까페 한곳을 정한후 우리는 테이블에 마주 앉았습니다.

 

어느 까페나 다 그렇듯 메뉴판이 먼저 나왔겠지요?

 

우리보다 바로 먼저 막 도착했던 옆의 한 커플은 그 메뉴판을 펼쳐들자마자 조용히 그 메뉴판을 다시 덮으며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일어나 나가는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 비싸겠구나!』-이 생각이 먼저 들더군요.

 

그래도 전 용감히 메뉴판을 펼쳐 들었습니다.

 

그리곤 조용히 눈을 감을수 밖에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기 위해서냐구요?

 

아니요. 그 분위기가 기도할 타임이었겠습니까?

 

...

 

아! 하긴 했구나.

 

마음속으로...

 

『하ㆍ느ㆍ님ㆍ맙ㆍ소ㆍ사!』-이렇게 말입니다.

 

아무리 비싸다 비싸다 하지만 이건 해도 너무하단 생각이 번쩍 드는게 그냥 방구석에 앉아서 그녀가 해주는 부침개나 부쳐먹을걸(제법 맛나게 부칩니다.)...내가 어쩌자구...하는 생각이 드는데 말입니다.

 

인간이 화장실 들어갈때하고 나올때 틀리다고 남자들이 연애시절엔 제 아무리 비싸도 그깟것을 겁냅니까?

 

까짓 안되면 남아서 청소라도 하고 갈판이란 자세로 임하지만 막상 볼일 끝나고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 이겁니다.

 

일부러 점심식사까지 굶게 만들고 큰소리 뻥뻥 치며 왔지만 막상 제 입에서 나오는 모기만한 소리 한마디는...

 

 

"커피 한잔 시켜서 나눠 마실까? 될까?"

 

 

하며 몸을 비비꼬고 말았습니다.

 

순간 강변에 위치한 분위기 있다는 까페에 간만에 온 그녀는 아까까지 홍조띠던 그 소녀같던 얼굴이 어디가고 전설의 고향에서나 볼성직한 파리한 얼굴로 째리며 "나 배고파! 무슨 남자가 그래? 마누라 굶어 배고픈게 안스럽지도 않냐?"하더니 말릴새도 없이 포크 커트릿을 시키는 것이지 뭡니까?

 

하나면 얘기도 안합니다.

 

두개씩이나 말이죠.

 

아! 여기서 포크커트릿이란 돈까스의 원어입니다.

 

그 돈까스라는것이 그곳에서 두개값이면 보통 여느곳에서 8개분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할수있습니까?

 

예까지 와서 체면을 구기기도 뭐하고 다시 일어나 나가자니 뒤통수 구멍 뚫리는것 같아서 도저히 그럴수는 없고 말이죠.

 

할수없이 그 비싼것 시켜서 추억의 고운 노래들을 들으며 먹었습니다.

 

올때까지만 해도 이곳에 오면 추억의 노래속에 젖어 분위기 잡아 볼라고 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더군요.

 

돈이 아까워서 접시바닥에 나온것까지 깡그리 다 먹었습니다.

 

혀로 핥기는 너무 추접해 보일것같아 그렇겐 못했지만 대신 포크로 접시 바닥 닳도록 긁고 또 긁어 먹어댔습니다.

 

하다못해 식용이 아니라 장식용으로 꾸민 이상한 풀까지 먹다 뱉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저를 앞에두고 그녀는 그 노래속에 빠져 들었는지 박수도 보내며 흐뭇하게 웃기도 하고 했지만 전 분위기고 뭐고 접시 핥느라 정신 없었습니다.

 

그녀는 그 피같은 음식을 남기더군요.

 

이런 천인공노할 만행을 보고 제가 어찌 그냥 넘어갔겠습니까?

 

그렇다고 분위기에 젖어있는 그녀를 괜히 건드려 무드 깨뜨렸다간 이따 집에가서 그 후일을 어찌 감당할수 있단 말입니까?

 

그 남은 음식 누가 볼새라 눈치 못채게 얼른 바꿔치기해서 또 남김없이 먹었습니다.

 

무슨 여자가 이렇게 손이 크단 말입니까?

 

그렇게 먹었더니 남들 분위기에 젖어 노래소리 들으며 박수소리 나올때 전 개걸스럽게 트름이 나오더군요.

 

후식으로 커피가 나왔습니다.

 

전 그것마저도 아낄수가 없어서 각설탕 남김없이 몽땅 풀어다 그 커피를 한약 마시듯이 마셔댔습니다.

 

괜히 분위기 잡느라고들 한두모금 입에 살짝 댄후 내려놓고 촛불에 커피잔 위에서 피어나오는 연기를 앞에 두고 앉아 있었지만 전 벌컥벌컥 마셔댔습니다.

 

"자기 한약 마셔?"

 

"응?...으...응...허준선생이 말이지. 뭐든지 맛있게 먹으면 그게 곧 보약이래. 헤헤~"

 

겉으론 웃었지만 속으론 뜨거운 커피에 대인 입천장이 쓰라려 혼났습니다.

 

그렇게 그곳에서 석양이 넘어갈때까지 있다가 우리는 그곳을 나왔습니다.

 

"너무 좋다! 우리 담에 또 오자!" 하는 그녀의 소리에 화들짝 놀란 전 속으로 이런 대사를 외고 있더군요.

 

『담엔 딴놈하고 와라! 내 그일만큼은 아무소리 안할테니!』

 

그날 홀쭉해진 지갑을 아쉬워하며 도로를 나와 차를 달리며 집으로 오는길엔 그래도 마음속으로 우리들때 즐겨 들었던 그 노래들을 오랜만에 들어서인지 흥얼 거리며 올 수 있었습니다.

 

집으로 온 저는 그녀에게 바로 부침개를 부치게 해놓고는 막걸리 한통 사다 마셨습니다.

 

막걸리 잔을 기울일땐 『어디 타령하는데는 없나?...』하며 말이죠.

 

지금까지 조금은 과장되게 나름대로 재미있게 꾸몄지만 한번 시간들 내어서 그런곳에 가보세요.

 

삶이 지치고 피곤할때 간혹 그곳에 가서 우리들 젊은날의 그 노래들을 같이 흥얼거리며 잊혀져가는 가수들을 만나 보는것도 괜찮더군요.

 

흠이라면 너무 비싸더라구요.

 

어디 저렴한 가격에 그런곳 있는곳 없나?

 

백마에 있긴 합니다.(미사리 보단 싸다는 얘기입니다. 오해 마시길...)

 

총각시절엔 백마까페촌이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아 가끔 성당 성가대 후배들과 함께 다니곤 했는데 그곳엔 거의 무명 가수들이라서...

 

어쨌든 오늘은 그냥 이런 얘기를 적어보고 싶어서요.

 

오늘의 글은 여기서 마칩니다.

 

여러분 행복하세요!

 

★사족: 집에 돌아와 너무 비싸다라는 소리를 자꾸 해대자 다음날 일요일, 어떤 기적이 일어난줄 아십니까?

제 지갑에 그때 나갔던 돈이 고스란히 그것도 빳빳한 신권으로 다시 채워져 있더군요.

누가 이런 이쁜짓을 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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