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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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우리거리」 읽기6-서울의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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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우 세자요한 신부 [john1004] 쪽지 캡슐

1999-03-10 ㅣ No.39

 

[동아일보 99/02/08]

[서현의 우리거리 읽기 6] 무질서의 극치, 서울의 간판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정거장… 한 많은 피란살이 설움도 많아. 그래도 잊지 못할 판자집이여….”

 

전쟁이 끝나고도 한동안 온 국민은 나그네고 피란민이었다. 타향살이와 나그네 설움을 한탄했다. 나그네들의 상업행위는 단순했다. 고무신을 사기 위해서는 이 낯선 도시의 어딘가에 있을 고무신 가게를, 고무줄을 사기 위해서는 역시 어딘가에 있을 고무줄 행상을 찾아 나서야 했다. 가게는 가게대로, 행상은 행상대로 자신들의 위치를 알려야 했다. 가게 주인은 판자집 지붕에 간판을 붙였고 행상은 소리를 쳤다. 손님이 옆 동네로 가지 않게 하려면 행상은 우렁차게 외쳐야 했고 자주 외쳐야 했다. 간판은 커야 했고 여러 개가 붙어있어야 했다. 피란살이는 끝났다. 그러나 여전히 간판은 늘어만 갔다.

 

서울 거리의 간판은 몇 개나 될까? 시청직원들도 궁금했을 것이다. 시정개발연구원에서 낸 보고서는 답을 알려준다. 옥외광고물 1백50만 개. 이 보고서는 다른 비밀도 귀띔해 준다. 그 중 70∼80%정도가 불법광고물이라고. 도로 풍경이 비슷한 걸로 봐서 다른 도시의 형편도 비슷할 것이다. 열 명중 여덟 명이 반칙을 하는 사회는 제대로 된 사회가 아니다. 법이 잘못되었든지 사회가 잘못되었든지 둘 중의 하나다. 어쩌면 둘 다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 간판에 관한 한 한국은 아직도 피란시기다. 건물들은 비싼 돈을 들여 지어도 판자집이 되기 일쑤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판자집은 63빌딩이다. 처음 계획안에서 하늘색이었던 건물은 갑자기 마이다스가 손을 댄 듯 금괴처럼 빛나는 황금 건물이 되었다. 정치적 입김의 소문이 무성했다. 건물의 외장에 쓰인 반사유리라는 재료는 신기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소위 ‘원웨이 미러(One Way Mirror)’라고 불리는 바로 그 유리다. 어두운 곳에서 밝은 쪽으로 보면 보통 유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밝은 쪽에서 어두운 쪽으로 보면 반대편이 보이지 않고 거울처럼 내 얼굴이 보인다는 것이 이 유리의 특징이다.

 

이 건물의 꼭대기 전망대는 장안의 화제가 됐고 촌로(村老)들은 여길 올라가겠다고 버스를 대절하고 와서 줄을 섰다. 그런데 해가 지자 상황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밖에서 안이 훤히 보이게 된 것이다. 늦게까지 남아 일을 해야 하는 넥타이 부대의 고달픔도 고스란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전망대에서는 문제가 생겼다. 아무리 밖을 보려고 해도 도시의 밤은 보이지 않고 거울 앞에 선 듯 내 모습만 보이는 것이다. 전망의 백미가 야경에 있음을 고려하면 이건 심각한 문제였다. 결국 전망엘리베이터와 전망대 부분에만 반사유리를 떼어내고 보통유리를 끼워 넣었다. 문제는 해결되었다. 그러나 건물에는 검고 길다란 수술자국이 남았다. 건물은 누더기가 되었다.

 

그 위에는 굳이 간판도 달았다. 날이 좋으면 인천 앞 바다도 보인다는 곳이니, 그런 날이면 간판이 인천 앞 바다에서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건물의 다른 부분과 조화를 이루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고, 잘 보이라고 가장 높은 곳에 붙이는 것은 중요했다. 가장 키가 큰 형님이 간판을 이렇게 걸었으니 조무라기 건물들도 간판을 걸면서 굳이 조화를 따질 분위기는 아닐 것이다.

 

간판은 필요하다. 간판이 없으면 우리는 약국도 미장원도 한번씩 기웃거려봐야 한다. 그리고는 “담배 있어요?”하고 물어야 한다. 광고가 없는 거리는 황량하다. 얼굴 없는 달걀귀신이 떠다닐 것만 같다. 간판과 광고는 자본주의사회 거리의 가장 대표적 모습이다. 옛 소련과 그 언저리를 배회하던 나라의 도시에는 간판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진으로 보는 평양 거리에서 간판은 찾기가 어렵다. 구호와 슬로건만 보일 따름이다. 그러나 서울 거리는 간판, 광고, 구호, 슬로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우리 거리의 간판은 유독 울긋불긋하기가 곡마단 화장 같기만 하다. 법은 지키지 않아도, 가장 싸고 가장 유별나게 만든다는 제작 원리는 충실히 지키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간판은 우리의 거리를 너무나 값싸 보이게 한다. 어제의 고무신가게는 오늘의 동동구리무가게, 오늘의 노래방은 내일의 인터넷 게임방인데 굳이 간판을 꼼꼼히 챙겨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지.

 

우리가 땅값 싼 나라에서 하듯 널찍한 상점을 얻어놓고 정승처럼 장사를 할 형편은 아니다. 상점 당 임대 면적은 최소화되어 있고 당연히 건물 하나에 입주한 상점의 수는 많아진다. 간판도 많아진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문제는 상점 하나에서 내거는 간판의 절대 수에 있다. 거리를 지나면서 세 보자. 간판을 하나만 달고 있는 상점은 거의 없다. 은행도 증권회사도 병원도 간판은 두 개, 세 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다방, 맥주집은 심지어 다섯 개의 간판을 내걸기도 한다. 모두 불법이다.

 

제대로 된 간판 하나를 다는 것보다는 싸구려 간판을 여러 개 거는 것이 낫다는 피란민 시대의 사고는 아직 남아서 거리를 판자촌으로 만든다. 넥타이를 매고 앉은 의사 선생님도, 은행장님도 모두 아직 판자집에 사는 피란민들이다. 대강 만든 두 개가 잘 만든 하나보다 낫다는 생각은 이제 버릴 때도 되었다. 목소리가 큰 사람,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믿음은 국회의원들의 몫으로 남겨두자.

 

이제 우리의 거리는 간판이 휘두르는 문자의 폭력에서 벗어나야 한다. 간판과 건물은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고 살아야 한다. 우렁차게 외치는 간판의 소리는 피란민 시대에는 필요했을지 몰라도 오늘의 도시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자동차의 소음, 간판의 소음이 가득한 도시를 벗어나고 싶을 때도 있다. 날이 풀리고 꽃이 피면 이 도시를 떠나 교외로 나가자. 때로는 문화유산도 답사하러 가자. 그 무섭다는 사람 떼의 하나가 되어 충남 서산의 개심사(開心寺)에 가보기도 할 일이다. 개심사의 안양루(安養樓) 현판을 보는 건축가의 심정은 착잡하다. 쩌렁쩌렁한 현판은 건물을 내리누르고 건축가의 마음도 내리누른다. 참을 수 없는 문자의 무거움에 건축가의 가슴은 무너져 내린다.

 

서 현(건축가)hyun1029@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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