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7일 (목)
(녹) 연중 제12주간 목요일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

자유게시판

[RE:25844]다름의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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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경 [kreuz] 쪽지 캡슐

2001-10-28 ㅣ No.25846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고...^^ 저는 요한님께 일종의 친밀감마저

느끼고 있습니다! 연쇄살인범이 유능한 형사에게 느끼는 친밀감같은

그런..............^^;

몇몇 인용한 님의 글은 파란색...제 글은 그냥 검정색으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이라는 곳의 맹점을 이번에도 님을 통해 겪게 됩니다.

선점자 우선주의...선게시자 우선주의라는 것을 말입니다.

어떤 내용에 대해 그것이 진실이건 아니건,

진실임이 검증되었건 아니건,

먼저 올린 사람은 무조건 옹호되어야 하고

그 글이 진실인가, 혹은 잘못인가를 의심하고 지적하는 글은

사랑이 부족한 그런 글이라는 질책을 항상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해양대생 장애인 폭행사건이 인터넷에서 퍼져나갔고,

형제갈비집 사건이 퍼져나갔습니다.

 

1.

왜 용기인가 모르시겠습니까?

저를 보시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정원경 자매님으로 부터 그토록 욕을 먹으면서도

감히(!) 실명을 대고 있지 못한 저를 보면 아실 수 있지 않습니까?

 

(저는 님이 실명 아니라고 ’욕한’ 적 없습니다....T.T)

용기와 만용을 일단은 구분하고 가고 싶은 겁니다.

실명을 밝히고 올리는 글이라고 해서

제가 진실이라고 믿어야 할 아무런 의무도 없는 겁니다.

실명 = 진실 = 믿어야 할 의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달자가 실명이라는 사실과 그 전달내용의 진실성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님이 보시기에도 저는 분명히 실명인데

엉뚱한 소리를 하고 앉아 있잖아요...

예를 들어..

우리에게 북한 공산당은 머리에 뿔이 달렸다고 가르친 사람들은

실명이었습니다.

 

저는 ’남다르기’ 때문에 손가락질을 하는 게 아닙니다.

한 사람의 인생과 관련된 글을 올릴 때에는

’카더라’식의 근거만이 아닌,

어디에 내놓아도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근거를 대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님이 사제이고,

유병만 신부님에게 악감정이 있는 사제일 거라고 쓴다고 예를 들어보지요.

그러므로 님에겐 사제의 자격이 없다고 말하려 한다면

근거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소한 것에서도 근거가 필요한 것이 공식적 선언입니다.

근거를 제공하지 않는 글을

단지

 1)실명이고

 2)사제를 비판했다

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믿고 받아들여줘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치기어린 실수와 다듬어지지 않은 분노라고 하셨지만

그게 누군가의 삶과 관련이 되어서

한 사람을 망가뜨릴 수도 있는 실수와 분노라 한다면

함부로 권장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 자매는 신학교를 일반으로 졸업한 자매로

다수의 신부님들과 오빠동생 하며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통신매체에서 한 수도자와 의견 차이가 났습니다.

(실제로 그 수도자의 의견이 옳았습니다)

그러자 이 자매...그 수도자에게는 아무 말 없이

그 수도원에 자신이 아는 선배 수사신부님에게 오보를 전했고

하마터면 그 수사님은 수도생활을 끝내야 할 뻔했습니다.

이 경우 그 자매님의 행동이 치기어린 실수와

다음어지지 않은 분노라고 하기엔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닙니까?

 

2.

실상 참견하고 가르치는 사람은 자매님이셨음을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자매님께서는 스스로 객관적이라고 하시면서도 전청구 형제의 글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올린 대부분의 글에 댓글을 달아서 그들을 훈계하고 타이르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훈계하고 타이르지 않았습니다.

훈계하고 타이를 만한 위치에 있지도 못합니다.

저는 그저 그들의 글을 제가 읽으면서 갖는 의문을 올렸고,

근거가 부족함을 지적했습니다.

그게 훈계와 타이름이라면

님도 역시 지금 제게 훈계하고 타이르고 계신 겁니다.

 

지금 이 게시판에서 저는 수필을 쓰고 있는 게 아니라

토론을 하는 것입니다.

토론의 기본 수단은 상대방 논리의 오류를 집어내는 것이며

근거의 오류나 미약함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님의 논리대로라면

수많은 학자들의 토론에서 생기는 반론들은

모두 훈계와 타이름이라는 건방진 행동으로 치부되어

비난받아야 할 것입니다.

 

3.

님이 법학을 전공했고 성폭력 피해 여성들의 아픔을 많이 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공감이겠지요...의사보다 환자의 고통을 많이 아는 사람들이

어디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의료대란 시기에 환자들 겪을 떠나지 않았습니까?

아는 것과 진실로 공감하는 것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님은 제게

여성들의 성폭행 관련문제에 대해

저는 ’알기만’ 할 뿐 공감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님은 남자분이시지요.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앉은 취객의 손길을 느껴보셨습니까?

만원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뒤에 응큼한 아저씨가 서서 하는 행동을 당해보신 적 있습니까?

그래서 용기있게 반항하자 무고한 사람 모욕한다며

오히려 날뛰는 소리를 들어보신 적 있습니까?

 

거기에 덧붙여서,

저는 다행스럽게 전공을 통해

성범죄와 관련한 경찰과 검사들의 태도를 알게 된 것입니다.

아마 이땅의 대부분의 여자분들은

검사가 강간죄 재판할 때

피해자에게 ’얼마나 들어갔느냐’라고 물어본다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경찰과 함께 병원에 가서 증거물로 정액체취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 더 많을 겁니다.

 

이 땅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사실의 치욕스러움을

버스 안에서 지하철 안에서 끊임없이 겪고 보면서,

거기에 대한 남자들의 태도까지 아는 제가

단순히 전청구씨의 글 안의 여자들에 대해

빅토리아시대적 윤리를 들이대며 공감하기를 포기한 것일까요?

 

저는 성관련 범죄의 고소 고발이 얼마나 힘든지 ’아는’ 사람입니다.

안다는 것은 공감하기 위한 첫발이나 마찬가지지요.

하지만

저는 아무리 제가 여자이고 그런 것을 알고 이해한다 하더라도

그런 사실의 적시가 누군가를 지탄하기 위한 것이라면

근거가 있어야 함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4.

님이 추구하는 ’실체적 진실’의 토대가 얼마나 앙상한가는 님의 글로 부터

여실히 드러납니다. 님이 사제들을 비판하는 글을 우선 의심하는 이유가 님의 개인적 체험

때문이라면 저는 그 반대되는 수 없이 많은 사례들을 제공해 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실체적 진실의 토대가 앙상하다고 하셨습니까?

하지만 님은 그 실체적 진실의 앙상한 토대마저 추구하기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까?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글에 대해

무조건 옳다고, 용기있다고 칭찬하고 받아들이는 것과,

근거를 요구하며 논리의 모순성을 지적하는 것과

어느 태도가 더 실체적 진실의 토대를 두껍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까?

 

포기하는 것과

그나마 추구해보려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님은 이미 포기하셨다 하더라도

남이 추구하는 것마저 님과 똑같이 포기시키려 하지 마십시오.

 

5.

님이 사제들을 비판하는 글을 우선 의심하는 이유가 님의 개인적 체험

때문이라면 저는 그 반대되는 수 없이 많은 사례들을 제공해 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사제 비판 글이 틀렸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무조건 믿고 들어가지는 않겠다고 했을 뿐입니다.

제가 납득하고 받아들일만큼의 근거를 제공해달라고 했습니다.

저 역시 다른 케이스들을 분명히 올렸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인격자라 칭하는 신부님이

성희롱하는 장면을 목격한 적도 있었습니다.

사제직을 그만두고 한달도 못 되어 애 아버지가 된 신부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우려하는 것은

또다른 케이스로 제가 올렸던 것처럼

누군가의 악의에 찬 소문이나 발언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신부님도 계시니만큼

 

무조건 그런 글이 올라왔을 때 용기있다고 칭찬하기 전에

정말 그런 일이 있는 것인지,

믿을 만한 것인지를 먼저 물어봐야 한다고 했을 뿐입니다.

무엇이 잘못입니까?

 

제가 전혀 모르는 사람의 글을

덮어놓고 믿고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잘못입니까?

 

5.

그 글의 의도는 악의적이었으나,

그 악의를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구실을 그 신부님께서

제공한 것이 사실이었다고...

 

그 섬 사건은 자꾸 언급하고 싶지 않지만,

님께서 왜 자꾸 언급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님의 경우도 ’한쪽의’ 의견만을 듣고 오신 것으로 보입니다.

(님께서 그 제한된 섬에 가서 신자들을 만나셨다는 말로

님의 신분을 짐작해보고 있습니다........)

저도 한쪽만을 만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최소한의 판단만을 합니다.

즉, 그 당시 천리안 가동 게시판에 올라왔던 비난글의 내용은

사실이 아니었다는 것 말입니다.

그 나머지, 님이 깎아내리고 싶어하시는 신부님의

나머지 삶의 내용에 대해서는 제가 뭘 어떻게 판단하겠습니까?

알지도 못하는데..

 

저는 제게 주어진 정보가 사실이냐 아니냐만을 판단할 뿐

그 이상의 확대추론은 안 합니다.

표현할 수 있는 구실을 제공했다고 해서

누군가를 거짓으로 모함해서는 안 되며

저는 그분께 그것을 지적했을 뿐입니다.

상대가 사제건 평신도건, 누군가를 비난하고 비판할 때에는

사실을 가지고 이야기해야 하는 것인데 그땐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6.

왜 제가 익명의 그늘에 숨어 있는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겁장이기 때문이지요...이것이 이유의 전부입니다.

그러니, 그  그늘에 숨어서 님을 괴롭힐 일은 없으니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 인간을 비겁하게 하는 현실이 교회 한 구석에는 존재하고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르겠습니다. 저는 여태 모든 토론에 실명으로 참여했고..

(반드시 교회 옹호적 측면은 아니었습니다요!)

어떤 불이익을 당해본 기억이 별로 없어서요.

몇몇 신부님들과 원수지간처럼 된 것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한 인간을 비겁하게 하는 현실이 교회에 존재한다고 해서

비겁함 자체가 옹호되지는 않습니다.

일제시대는 친일을 강요하는 현실이 존재하는 사회였지만,

분명 그 시대에도 독립운동가들이 계셨거든요.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과

못 하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을 교회 탓으로만 돌리지 마십시오.

전청구씨도 실명이고 저도 실명입니다.

 

7.

저는 ’우선적으로’ 약자를 택합니다. 설령 그들의 진실이 10%일지라도...

이것은 동정도 아니고 값싼 감상주의도 아닙니다.

다만 제가 믿는 교회는 ’진실게임’을 하는 곳이 아니라 ’약자의 아픔과 눈물’이

가장 귀하게 여겨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교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법은 어느 편에 서야 합니까?’

많은 젊은 치기들이 대답했지요. 약한 자의 편이라고...

그러자 교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법은 옳은 사람의 편을 들어야 합니다’

 

교회는 진실게임을 하는 곳이 아니라

약자의 아픔과 눈물이 귀하게 여겨지는 곳이라고 하셨습니까?

하지만 이 세상의 약자였다 해서

그것만이 천국행 티켓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전청구씨가 약자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가난하고 헐벗게 살았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다른 이의 인격과 삶과 관련된 사항에 관해

진실이 아닌 이야기를 했다고 했을 때

그것이 하느님 앞에서 칭찬받을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곳이라 하더라도

교회는 ’가난한 이들만’을 위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예수님은 본인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진실, 진리, 참은 결코 외면될 수 없는 가치입니다.

 

그리고 제가 요구하는 것은

진실임을 어느 정도 뒷받침할 근거일 뿐입니다.....

 

8.

사제들을 사랑하는 만큼 당신의 형제를 돌아보십시오...

 

제가 보기에 님은 교회 안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 분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토론에 발은 들여놓고 싶은데

그 위치가 걸리니까 익명으로 나서셨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댁이 누구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님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가가 중요할 뿐입니다.

 

한가지..

아는 신부님들 중 저를 아는 사람이 있으면 한 번 물어보십시오.

정원경 요안나라는 사람이 정말 사제우월주의자인지,

그래서 사제 욕하는 글만 올라오면

전후불문하고 쫓아다니면서 욕하고 몰아세우는 사람인지를 말입니다.

그리고 몇몇 게시판과 몇개의 홈페이지를 잘 찾아보시면

제 글이 있을 겁니다.

제가 평신도보다 사제를 더 사랑하는 사람인지 말입니다...

 

저는 평신도가 욕먹는 게 싫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병신도야’ 소리를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토론을 하고, 토론을 할 만큼의 지식을 쌓기 위해 노력하고,

멍청하게 받아먹기만 하는 게 아니라

달라고 요구할 만큼의 무언가를 갖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9.

이제 님의 마지막 논리적 이상한 점 하나만 짚어보겠습니다.

 

 1) 성폭력은 신고하기가 어려운 범죄다.

 2) 사제가 성폭행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3) 그 사제는 유죄다.

 

맞습니까?

성폭력이 신고하기 어려워 실체적 진실 접근이 어려운 범죄라 해서

그와 관련된 추문에 휩싸인 사람이 무조건 유죄인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이야기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럼 제가 님에 대해 성폭행범일지도 모른다고 말하면

님이 그 자리에서 유죄가 됩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기 위해서는 근거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게시판에서 수필을 쓰고 시를 읽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공개적으로 고발하고,

그의 처벌을 요구하는 글을 읽은 것입니다.

과정만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추문 관련 사제를 무조건적으로 처벌해주기를 바라는 글을 읽은 것입니다.

그 내용은 그 사제의 삶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그런데도 인터넷에 그런 글이 올라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럼 그 사제에게 무조건 우리가 돌을 던져야 합니까?

아니면 ’그게 사실이래?’라고 한번 물어봐야 옳습니까?

 

10.

 

그들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럼 그것도 아실 겁니다.

역사 안에서, 그리고 우리의 주변 삶 안에서

고발함으로 해서 불이익을 당한 이들의 피도 흐르고 있지만,

무고한 선입견과 속단으로 인해 불이익을 당한 이들의 피도 흐르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저는 남종훈씨와 전청구씨가 올린 신부님에 대해 알지도 못합니다.

제가 무조건 신부라면 미쳐 날뛰는 사제킬러급 자매가 아닌 다음에야

사제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옹호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반대로,

어떤 사람이 사회적 지위가 ’사제’라는 이유만으로

아무 근거제시 없이 게시판에서 이야기해도 괜찮다는 논리 또한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 비수는 어느 순간

제게도 날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무고한 죄명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을 못박으라고 외친 사람들 중에는

님이 그토록 옹호하고 싶어하시는,

유대사회의 약자들도 있었습니다...............

님은 누군가에 대한 비판의 근거 제시의 요구를 묵살하심으로써,

그리고 단순히 그들이 사회적 약자일 것이라는 이유때문에 옹호함으로써..

 

예수님 재판정에서 함께 외치고 계시게 될 지도 모릅니다.

예수를 못박고 바라빠를 풀어주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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