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7일 (목)
(녹) 연중 제12주간 목요일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

자유게시판

피터팬의 노량진 성당 입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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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선 [peterpan65] 쪽지 캡슐

2002-03-21 ㅣ No.31211

 유아영세를 받을땐 서울 홍제동 성당이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었다고 합니다.]로 표현한것은 이미 짐작하신바와 같이 유아때다 보니까  제 기억속엔 없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그러다가 취학전까지 다녔던데가 서울의 불광동 성당이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도 [~었다고 합니다.]란 표현을 쓰는것을 보면 아직도 제 기억속엔 남아있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다 어슴프레하게나마 기억나는것이 응암동성당을 다녔다란 기억은 확실하진 않지만 잡힐듯 말듯 기억속에 날까 말까 합니다.

 

그러니까 여기까진 제 소프트웨어 속엔 남아있는 정보가 하나도 없다란 얘기가 되겠습니다.

 

제가 아이쉬타인 같은 뇌를 간직하지 못한 이상 아직은 취학전 어렸을때이니까 뭐 그런 것을 기억 못하는 것도 그리 무리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다가 초등부 주일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첫영성체를 받고 복사시절도 보내고 그리고 오랜동안 다녔던 본당이 바로 서울의 가좌동 본당입니다.

 

여기서부터는 기억이 확실하게 날뿐더러 30년 가까이 다닌 관계로 여러가지 추억들도 아주 많이 무궁무진하게 있습니다.

 

얼마전 이게시판에 한 여학생이 본당의 신부님께서 신자들의 탄원서에 의해 강제 은퇴하게 되었다!란 하소연을 올린 곳이 바로 이 가좌동 본당이 되겠습니다.

 

그 글을 올린 여학생이야 저와 생면부지이지만 그래도 저의 지난시절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그곳의 선배로서 대견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아직은 가좌동본당에서 제가 아는 잔당(?)들이 더러 남아있는 관계로 그 사연도 자초지종 잘 알아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제가 올릴 글이 그 사연을 적고자 함은 아닙니다.

 

다만 한가지 그 가좌동성당은 약 30여년의 역사이긴 하지만 그 역사에 비해서 많은 사제를 배출한 훌륭한 성당이란것은 홍보를 하고 넘어 가겠습니다.

 

어찌됐든 그러다 잠시 공백기간을 거쳐서(냉담을 공백기간이라고 표현하니까 훨씬 부드럽군요? *^^*) 다닌 본당이 늘 밝혀왔듯이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행신1동 본당입니다.

 

아직도 제 교적은 그곳에 남아있습니다.

 

그러다가 이 게시판을 들락날락 거리며 한 여인의 처절한 꼬임에 넘어가 그만 독신의 의지를 깨뜨리고...(잠시 왠 짝! 하는 소리와 함께 등짝이 따가와 옴을 느껴서 잠시 휴필 하겠습니다......으으~아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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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는 나탈리아를 만나서 하느님 앞에서 그분의 각본대로 혼인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이 늘 밝혀왔듯이 노량진 성당이 본당이었지요.

 

결혼하기전 신방을 얻는데 많은 고심이 필요했습니다.

 

바로 어디서 살것이냐? 하는 문제 말입니다.

 

그러다 그녀의 일터와 가까운 곳에 방을 얻는게 남자의 도리요, 예의라는 주의의 충언을 받아들여서 결혼후 첫 삶의 터전을 노량진으로 잡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주일날 함께 미사를 드리는곳이 자연스럽게 노량진 본당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행신1동 본당의 후배들은 처음에 나탈리아와 결혼한다고 하자 모두가 와아~나탈리아님이 우리 본당 식구가 되네? 하며 좋아라 했습니다만 왠걸요? 거꾸로 제가 노량진본당으로 데릴사위 아닌 데릴사위로 팔려가는 바람에 오히려 피터팬을 뺏기게 되었다란 푸념을 듣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격주로 본가에 가는 바로 한번은 노량진, 한번은 행신1동 이렇게 왔다리 갔다리 하며 미사를 드리니 별 문제가 없었지만 당분간은 그녀가 교사회를 그만 두는 여름까지는 할 수없이 저는 노량진 성당에 볼모(?)로 잡혀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사이는 계속해서 노량진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곤 합니다.

 

노량진 성당을 아시는분은 아시겠지만 참 작고 아담한 성당입니다.

 

제가 듣기론 서울교구내에서 2번째로 작다고 하니 대충 짐작들이 되리라 봅니다.

 

그 곳에서 이미 유명인사인 나탈리아의 인기를 등에 업고 노량진본당으로 제가 입성하자 덩달아 저의 주가도 따라 오르는것 같더군요.

 

학생들이 저와 나탈리아만 나타나면 "와아~피터팬이닷!"하는 애교섞인 환호와 "한번 날아봐요!" 하는 황당한 요구도 들리곤 합니다.

 

한 2년여전만 같아도 그 요구에 으쓱해서 아마도 담에 올라가 뛰어 내릴판이었지만 지금은 2년전보다야 철이 든 관계로 그런 무모한 짓은 안합니다. *^^*

 

이곳의 황 안드레아신부님도 미사가 끝난후 인사를 올리면 아주 반가와 하시며 "오! 피터팬!!"하며 반색을 해주십니다.

 

특별한 일 없으면 볼링이나 한게임 치러 가자고 하시곤 하시지만 피곤을 이유로 제가 불손하게 빼곤합니다.

 

다들 이렇게 반가이 맞이해주니, 자기 반갑다고 하는데 싫다고 할 놈 있습니까?

 

그러면서 저도 이 낯선 본당에서 또 그렇게 서서히 정이 들어가겠지요.

 

참! 그런데 제 닉네임인 피터팬이라고 불러주시는것이야 더 친근감이 들어 좋긴하지만 이러다 학생들은 저의 세례명이 피터팬이 아닌가? 착각할까봐 걱정도 됩니다.

 

아직은 낯설은 이곳에서 특별한 활동이야 하진 않지만 전 그녀와 함께 미사때마다 맨 앞자리에 자리를 잡아 그분을 알현하곤 합니다.

 

축복의 인사를 나누는 시간에 신부님께선 친히 내려오시어 맨 앞자리에 앉은 신자들과 인사를 나누거든요.

 

저번엔 나탈리아와 제손을 잡으시며 "이 부부는 이제 부부싸움 할때가 되었는데 안하나?"하시며 친근하게 지나가시는데 감사할뿐이었습니다.

 

혹간 싸우다 제가 맞기라도 하면 신부님께 찾아가 하소연 할수 있는 껀수도 만들었으니 말입니다.

 

어딘들 어떻습니까?

 

제가 그분께 선택받고 또 그분을 제맘속에 모시어 그분과 함께 살아간다는 그 자체만도 저에겐 큰 기쁨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의 친정(?)인 행신1동 본당이 가끔은 그리워옴은 또 피할수도 없습니다.

 

모쪼록 이번 주일날 교구내 행사인 축구대회가 포이동에서 펼쳐진다는데 행신1동 본당의 좋은 성적을 빌어볼뿐입니다.

 

그래도 제가 만들어놓은 축구단인데 비록 함께 할순 없어도 마음 속으로나마 응원할뿐입니다.

 

어디든간에 전 그분을 사랑할랍니다.

 

이상 노량진성당의 데릴사위(?) 피터팬의 입성기를 마칩니다.*^^*

 

★사족: 그런데...

       

선물 같은건 없나?...나 피터팬인데...쩝! ◁ 요 사족글은 노량진 성당 주임 신부님만 읽어주시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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