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홍) 성 이레네오 주교 학자 순교자 기념일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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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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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03-06-08 ㅣ No.53142

 우연히 예전에 알던 사람을 만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어떤 느낌이 들까요? 그분과 관계가 좋았다면 반가울 것입니다. 그분과 불편했어도 시간이 많이 지난 경우에는 용서하거나 용서를 청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교육 담당 업무를 맡고 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지난 월요일의 일입니다.  구역장 학교 교육에서 한 형제님께서 체험사례 발표를 하는데,  어디선가 뵌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제가 18년 전에 군 생활을 할 때 모셨던 부대장이셨습니다. 그때 그분과 저는 하늘과 땅처럼 거리가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저는 사제가 되어서 교육을 하게 되었고, 그분은 예편을 하셔서 본당에서 구역장으로 봉사하고 계셨습니다.

 

 지난 화요일에는 예전에 있던 본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게 되었습니다. 7년의 시간이 지나서 인지 조금은 어색했지만 많은 교우들께서 저를 잊지 않고, 기쁘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아이들은 많이 자랐고, 성당도 새로이 신축을 해서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미사를 봉헌하면서 예전에 있었던 일들이 생각났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이해하고, 알기 위해서는 만남과 그 만남을 통해서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만남을 통해서 관계를 맺지 않으면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고, 서로를 알기 어렵습니다. 그런 관계가 없으면 우리는 오해를 하게 되고 그런 오해는 불신과 분쟁으로 이어지기가 쉽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에 명동 성당과 성당 옆 초등학교를 걸으면서 묵주기도를 하곤 합니다. 어제는 초등학교를 갔는데 학생들이 없더군요. 격주로 토요일에는 수업이 없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없는 운동장을 걸으면서 학교를 둘러보고 있는데 어떤 선생님이 나무의 가지치기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 선생님은 저를 보시면서 “아저씨 머 하는 사람이야!”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산책을 하는 중입니다.”라고 이야길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그런데 왜 문 앞에서 서성이는 거요?”라고 하면서 마치 제가 학교에 무슨 나쁜 일을 하러 온 것처럼 쳐다보았습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기분이 나빴습니다. 매일 아침에 묵주기도를 다니는 길인데 아이들이 없기에 학교를 한번 둘러본 것인데 그분이 보시기에 저는 선량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나 봅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잠시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관계를 맺기 전까지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구나.” 저마다 자신의 울타리를 치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이는 더욱 어려운 일이겠다 싶습니다.  

 

 지난 월드컵 때,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둥근 공 하나로 서로를 이해 할 수 있었고, 지구촌은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 국민 모두도 그 축제의 중심에서 하나 됨의 기쁨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작은 축구공이 세계를 평화와 기쁨의 잔치 한마당으로 만드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 강림 대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성령강림의 커다란 의미는 ‘하나 됨’이라 생각합니다. 분열과 불신의 벽을 허무는 것, 신분과 지역의 벽을 허무는 것입니다. 그리고  화합과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 강림의 진정한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사도행전은 이것을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그곳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의 언어로 사도들의 이야기를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상식으로는 이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에 그런 놀라운 일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관계를 맺으면서도 서로 다투게 됩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갈라서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를 보아도 많은 분쟁이 있습니다.

국가간에는 전쟁으로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증오와 미움, 분노와 편견 그리고 욕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성령과 함께하는 우리는 이웃과의 만남에서 평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의 관계는 평화와 화합이어야 합니다. 그런 평화와 화합의 길은 어디에서 출발합니까? 바로 용서입니다.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하면 그들의 죄는 용서 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 받지 못한 체 남아 있을 것이다.”

 

  주님은 자신을 배반한 제자들을 용서하셨고, 평화를 빌어주셨습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매단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나는 나의 이웃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그 관계가 분노와 미움, 욕심과 질투입니까? 아니면 평화와 기쁨, 용서와 사랑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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