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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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ㅣ여행후기

"그분"이 불러주셔서-- 몽마르뜨언덕의 예수성심 성당과 부제 서품식 (일곱 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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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항 [vinchen10] 쪽지 캡슐

2004-11-29 ㅣ No.426



넘치는 "그분"의 사랑

  재의 수요일로 시작하는 사순시기가 올 해도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 갈 것이다."
  이마에 재로 십자성호를 그으며 올 사순은 어떻게 보내야 할른지, 깊은 묵상도 하지 못한 체 마음이 무거워져 옵니다.
고통의 신비를 바치며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땀 흘리심을 묵상합시다,"
분명 우리의 기도가 깊어져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께 온 몸과 정성을 다하여 기도하고 계실 때 우리는 무엇하고 있었을까요? 한 번만 아니라 두 번 세 번 깨우셨을 때도 우리는 잠에 취해 있었습니다.
이런 우리의 불찰을 다시는 저지르지 말고 깨어서 기도 하여야겠습니다.

* * * *

  파리의 아침은 8시 가까이 되어도 어둑하니 가로등 불빛이 졸고 있습니다. 어제 저녁부터 간간히 이슬비가 뿌리더니 짙은 습기가 도시를 휘감고 있네요. 어제 밤 세느강 유람선에서 넋을 잃고 야경을 구경하느라 가벼운 오한이 몸을 무겁게 했지만 유럽의 전형적인 겨울 날씨라고 하니 외려 주말의 파리 시가지가 더욱 운치가 있어 보입니다. 세상사 다 마음 먹기 나름이 아니겠읍니까?

  오늘은 몽 마르뜨 언덕에 있는 예수성심 성당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가는 행선지가 다이아나 황태자비가 교통 사고를 당했던 지하도를 지나가게 되었지만 관심을 두는 분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간 밤에 내린 비로 깨끗하게 청소가 된 상제리제 거리,개선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청동상이 있는 룩상부르그 공원도 지나며....
아!! 도시 전체가 유명한 고적이며 명품 브랜드 본점이 죽 늘어 서있어서 때마침 크리스마스 바겐세일 시즌인지라 내려서 쇼핑이라도 하고 싶었고요..

  프랑스어로 붉은 풍차,믈랑루즈에서 프랜치 캉캉을 보지 않았다면 파리에 온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극장식당들이 모여 있는 거리를 지나고 있습니다. 익살스럽지만 좀은 외설스러운 프랜치캉캉과 모리스 슈발리에의 품격 높은 샹송을 회상하며 믈랑루즈에 들르고 싶었지만 눈을 돌려버렸습니다, 지금 전, 순례길에 나선 것이거든요. 극장식당이 즐비한 거리를 지나자 버스를 세웠는데요, 길 옆에는 벼룩시장이 죽 늘어 서 있습니다. 그리고 언덕을 오르자 좌우로 하얀 히잡(베일)을 쓴 아랍계 여인들이 북적이는 조그만 상점들이 부산해서 흡사 우리나라 재래시장에 온 것같았어요. 아마, 이곳은 집세가 싸서 아랍인들이 모여 살고 있는 동네가 아닌가 싶네요. 

  실제 파리에 와서 보니 아랍인들, 무슬림이 생각보다 많은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내년부터 프랑스 공립학교에서는 종교로 인한 차별을 금지하기 위해 히잡같은 종교적 고유의 의상을 착용하는 것을 금하게 되었답니다. 프랑스 사람들로 부터 히잡을 쓴 아랍인들이 봉변을 당하는 일이 종종 있나봐요. 그래서 히잡이든지 터번같은 종교적 색체가 짙은 의상을 못쓰게 하자 아랍인들이 연일 데모하며 반대하고 있어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다네요. 사실은 그들을 위한 정책인데 말예요.

 

  파리 어디에 있어도 한눈에 들어 오는 백악의 돔이 아름다운 사크레 쾨르 대성당과 몽 마르뜨 언덕을 빼놓고 파리를 이야기 할 수 없답니다. 도시 전체가 평지인 파리 시가지 북쪽에 위치하며 파리에서 가장 높은 곳(129미터)인 몽 마르뜨언덕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가파른 언덕 위에 자욱한 안개에 가려 예수성심 성당이 하얀 자태를 수줍은 듯 어깨죽지를 살푸시 들어 내고 있습니다. 은은한 안개꽃에 어우러져 눈부시게 하얀 장미꽃처럼 다가 오는 성당, 이 언덕은 피비린내나는 순교자의 무덤이랍니다.
파리 최초의 주교인 디오니시오 성인(st-denis,생 드니)이 이 언덕 밑에서 순교한 이래 이곳은 순교자들의 산이라는 뜻으로 몽데 마르띠르(mont des martyrs)라고 불리다가 차츰 변형되어 몽 마르뜨라는 현재의 이름으로 통용되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설은 군신(軍神)마르스(mont de mercure)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이야기도 있지요. 

  이 언덕 남쪽 비탈면에는 19세기 부터 카바레가 들어 서다가 무랑루즈같은 환락가로 변신했지요. 그리고 이 언덕에 남아 있는 생 피에르 성당에는 파리 코뮌(1,871)이 시작된 혁명의 발상지이기도 하지요.
  1,876년 이후 파리 대혁명 때 무참하게 처형 당한 희생자의 주검 위에 반세기에 걸쳐 완성되었다는 사크레 쾨르 대성당(Basilique du sacre Coeur)의 세 개의 흰 돔이 차츰 걷혀가는 안개 사이로 눈부신 자태를 들어 내는군요. 

  이렇게 예수성심 성당은 이웃해 사는 가난한 화가들과 순례자, 언덕 아래 옹기종기 모여 사는 이방인 무슬림들을 어루만져 주고 있네요. 

파리를 여행하는 관광객들은 마음 설래이게하는 몽 마르뜨 언덕이 생겨난 아이러니를 알고 있는가 모르겠습니다.


  웅장한 로마의 성당을 보아온 제게 예수성심 성당은 그저 미사를 드리고 싶은 기분이 들기 알맞은 크기에 검소하고 아늑해서 그리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초를 봉헌하고 한참이나 묵상에 잠겼더랬습니다.
덕분에 일행과 떨어져 성당 옆에 자리한 무명 화가들의 거리에서 그림을 찬찬히 둘러 볼 수 없었고 초상화를 부탁하며 한가로이 여유를 즐길 틈이 없었습니다.

  누구나 아~! 하실 몽 마르뜨 언덕의 무명화가 거리는 19세기 후반, 일찌기 근대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상파,상징파와 입체파의 발상지였답니다. 고흐, 로트레크를 비롯한 화단의 흐름을 확 바뀌게 한 일단의 화가들이 꿈과 이상을 펼쳤던 의미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상상했던 것보다 아주 쬐그마한 쌈지공원으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사실 여기서 파리의 정취가 흠씬 풍겨나는 그림 한 점 사고싶었는데 말입니다...단체로 떠난 순례의 한계이겠지요.

  다음에는 아내와 둘이서 오리라, 빵모자를 눌러쓰고 파이프를 입에 문 구렛나루가 멋스러운 화가가 동양에서 온 아름다운 내 아내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을 때 알맞게 덥혀진 코코아 한 잔 들면서 이 한적한 공간과 여유로운 시간을 한껏 즐기리라. 이제야 몸통을 다 들어낸 백악의 예수성심 성당을 뒤로하고 가파른 몽 마르뜨 언덕을 뛰다시피 내려 왔습니다.


  오후 일정은 파리 갈멜신학교 성당에서 한민택 바오로와 김상문 베드로 부제 서품식에 참석하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습니다. 시내 한 복판에 있는 신학교는 오랜 전통을 가진 듯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한 백여 평이 넘게 잘 가꿔진 정원과 둘러선 기숙사,강의실,성당의 고색창연한 모습이 오늘의 서품식을 기품 있게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신자석은 한 300석 될까, 파리 한인성당 교우들과 프랑스 신자들이 가득 자리했고 여덟 명의 신학생 성가대가 한창 연습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이렇게 좋은 자리에 불러 주신 "그분"께 감사의 기도를 바쳤습니다.
오늘 서품식은 우리나라에서 유학 온 학사 두 사람만을 위한 자리여서 더욱 뜻 깊었고, 생 드니교구 주교님의 입당으로 미사는 시작 되었습니다. 제대에는 멋스럽게 생긴 신학교 총장 신부님과 교수 신부님 여섯 분, 제대 오른 편에는 로마,독일,벨기에,프랑스로 유학 오신 수원 교구 신부님들 열 분이 자리하여 더 한층 서품식이 빛났습니다.
  우리나라 신부님이 해설과 통역을 맡았지만, 생 드니 교구의 주교님의 시작 기도에 모두 놀랐답니다. 유창한 한국말로 인사와 함께 자신의 이름이 오영진이라고 밝혔거든요, 김남수 주교님과의 인연으로 한국에 몇 년 계셨답니다. 특별히 두 분 한국인 유학생 부제 서품식을 주례 해 주신 주교님이 무척 고마웠습니다.
한국말과 프랑스말이 어우러져 서품식은 훌륭했구요. 이곳 신학교는 6년제로 한 학년에 8 명,신학생 수는 48 명에 불과한 유럽의 신학교 현실을 실감하며 좀은 씁쓸해졌습니다.
  서품식이 끝날 무렵 한국에서 축하 손님으로 온 우리를 소개해 주자 참석한 파리의 한인 성당 교우들이 따뜻하게 반겨 주었지요. 우리 순례단이 환영의 박수에 답하고자 "고향의 봄"을 합창으로 노래하자 한인 성당 교포들도 콧날 시큰하게 함께 불러주어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아름다운 서품식이 되었습니다.

  서품식이 끝나고 프랑스 사람들의 풍습을 체험할 수 있는 칵태일 파티가 자리를 옮겨서 있었습니다. 간단한 음료수와 술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나는 위스키 칵태일잔을 잡고 두 잔이나 홀짝거리며 파티장을 둘러 보았지만 프랑스사람들, 정말 무슨 할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시종 웃기도 하며 엄청 빠른 속도로 알아 듣지도 못하는 저들 나라말을 하네요. 무슨 재미가 있을리 없고 또 성지 순례 땜에 피곤한 다리를 어찌하지 못해 구석에 밀어 둔 의자를 내려 앉아버렸지요. 칵테일 파티란 저렇게 서서 웃고 떠들며 하는 거라는 걸 제가 모르는 바 아니지만 어쩝니까? 저들이 한국말을 좀 배워서 말을 걸어 주던지...아마 우리가 대단한 결례를 한 것같았지만 어쩌랴...

  오늘 서품식 3부 순서를 축하하기 위해 조암 본당 초등학교 4학년, 예쁜 한국소녀가 부채춤을 위한 한복을 입고 등장하자 야단이 아니었습니다. 다들 우아하고 맵시있는 한복의 아름다움에 경탄하며 기념 촬영을 하느라 부산해졌습니다. 3 시간이나 끈 칵태일파티가 끝나고 넓은 신학교 식당으로 옮겨서 3부, 본격적인 디너파티가 시작됩니다.

  한인 성당에서 마련한 김밥과 김치, 전, 잡채는 프랑스 사람들을 위해 맛만 살짝 보고 양보했지요 이렇게 맛있는 한식을... 이곳 사람들이 매운 김치와 잡채를 서툰 포크로 아주 맛있게 먹는 것이 신기해 보였습니다.
  음식을 날라 올 때는 신학생들이 서빙을 했는데 식사 중 식탁 위의 접시를 거두어 가거나 다른 음식을 서빙 할 때는 교수 신부님들도 한 몫 거들더군요. 이럴 때 신학생들은 덤덤하게 식사를 하면서 서빙을 받는 스스럼 없는 모습이 아주 자연스러웠습니다. 오늘의 주 메뉴는 알사스 지방의 소시지와 삶은 야채였는데, 죄송하지만 먹기가 참 거북해서 이름도 모르는 적 포도주만 홀짝였지요.  
  참, 빼먹을 뻔 했네요. 우리 예쁘기 짝이 없는 소녀가 보여 주는 부채춤에 그 넓은 홀에 가득한 프랑스사람들이 대단한 호응을 보여주었어요. 문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을 대하는 기본 안목은 세상 모든 사람들 누구에게나 똑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파티장에서 제일 신난 분은 유학생 신부님들이셨습니다. 만리 타국에 흩어져 공부만 하던 분들이 고국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으니까요. 우리 일행들이 그분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을 북돋아 주었는지 잘은 모르지만 "신부님들!! 외롭고 힘들더라도 힘내세요, 많이 배우고 깊어진 영성으로 우리 곁에 다시 돌아 오셔서 잘 이끌어 주셔야지요, 신부님 많이 많이 사랑해요!!!"

 

  아직 유럽사람들은 담배를 즐기는 것같았습니다. 신학교 복도에는 재털이가 군데군데 놓여 있어서 피우지도 않던 담배를 피우러 자주 밖에 나올 수 밖에... 떠들썩한 파티장과 달리 깊이 잠든 신학교 정원은 나뭇잎을 모두 떨어뜨린 앙상한 나무가지에 환하게 달빛이 넘쳤습니다,
  "비가 그쳤나 보다"
  애써 성찬을 준비한 정통 프랑스 디너파티였지만 송구하게도 깔깔한 혀를 차면서 3 시간이 넘어가는 파티장에 양해를 구하고 우리 일행은 먼저 나올 수밖에...그러니까 오늘은 파티만 6시간에 걸친 피곤한 하루였답니다.
유창한 프랑스어는 그만 두고라도 영어라도 제대로 했다면 오늘 파티는 즐거웠을텐데...

  그리운 이여!
파리에서 드리는 두 번째 밤인사를 비 개인 창가에서 보냅니다.....

...... 본~뉘 (Bonne nu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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