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을 사랑함에
너무 오랫만이네요, 다들 안녕하시지요?
순례기를 마치면서 너무 너무 홀가분 했답니다.그러나 시간이 지나가면서 뭔가 아쉬움이랄까? 채 끝내지 못한 숙제가 남아 마음이 편치 못했는걸요, 그래서 다시 필(筆)-클릭,을 들었답니다.
바티칸을 제가 빠트렸잖아요.너무 엄청나서 감히 시작도 못했다고 할까요.
이젠, 해 볼래요.
그사이, 용기가 생겼나하면 드릴 말씀 없지만 무식이 용감하다고 우선 일을 저질러 볼래요.
교우님들! 용서해 주실거죠?
* * * *
로마에서 첫 째 날이었지요,러시아워는 서울이나 다를 바 없는 로마의 거리는 자그마한 차들이 앙증맞은 걸음을 하는 유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면서 호텔에서 15분 거리의 바티칸박물관에서 그 만남이 시작됩니다.
지난 번에도 그랬지만 성 베드로 성당의 커다란 광장 앞에 일직선으로 난 500여 미터의 넓은 도로를 일컫는 "화해의 길"을 걸어 들어오면서 회개와 용서를 통해 영적으로 화해를 하면서 대 성당으로 가는것이 어떨가마는, 이번에도 대성당의 왼 편 옆구리에 있는 바티칸 박물관 입구에 버스를 대고 아주 가파른 에스칼레이트를 타고 들어 갑니다. 어떤 이유가 있는지 모르지만 눈요기나 하는 관광이 아니라 그토록 갈망하던 "그분"과의 만남이 우선시 되는 의미 깊은 코스로 우리를 이끌어 주었으면 하는 소회를 가져 보았습니다.
비 시즌이라 그렇게 붐비지 않아서 관람하기에 여유가 많을 줄 알았는데 엄청나게 많은 유물 땜에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합니다.역시 "빨리 빨리 관광"이 되나 봅니다.
이태리에서 제일 큰 규모의 바티칸 박물관은 고대 이집트와 아시리아, 고대 그리스-로마와 초대 교회와 중세 박물관으로 여덟 군데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 박물관을 처음 부터 끋까지 보는데 적어도 한 달이나 걸린다는 이 곳을 대충 훑어 보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죄송스러웠지요.
이집트관을 보는둥 마는둥 좁은 통로를 빠져 나오면 바티칸 박물관 태라스가 푸른 잔디밭과 함께 펼쳐 있지요. 로마의 상징인 커다란 솔방울 조각과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이 삐죽 솟아있는 정원에서 모두들 돔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서 시스티나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걸작,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의 복사화 앞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습니다. 인류 최대 걸작을 대면하려는 준비를 소흘하게 할 수 없으니까 말예요.
바티칸 박물관 내에서 백미 중의 백미가 시스티나 소성당(cappella sistina)이라고 하지요. 이 곳은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교황비밀선거)"가 개최되는 교황 전용의 개인 소성당이었지만 수 많은 관람객들은 그보다 미캘란젤로를 만나기 위해 떼를 지어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군요.
시스티나 성당의 이름은 당시의 교황 시스토 4세의 이름을 땄다고 합니다. 길이40.23 미터, 너비 13.41미터, 높이 20.7 미터의 장방형의 바실리카 구조의 이 성당은 1,480년에 완공되었고 후임인 율리오 2세가 소성당의 천장을 화려하게 벽화로 장식하려고 미켈란젤로에게 일임하면서 인류의 위대한 걸작이 탄생하게 되었답니다.
1,508년 5월 10일 미켈란젤로가 천장 밑에 발판을 세우면서 역사적인 대 작업에 들어갑니다.
먼저 천장에 그려진 "천지창조"는 1,512년 10월에 완성되었고 시스티나 소성당의 교황 제단 뒷벽에 그려진 "최후의 심판"은 1,536년 바오로 3세 교황의 명으로 미켈란젤로가 다시 대작업을 시작하지요.조수의 도움 없이 혼자서 해낸 작품으로 1,541년 10월 축성 되었다네요.
약 200제곱미터에 달하는 벽 위에 구원자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두 391명의 인물이 벽화에 묘사되어 있는 대작이라, 시스티나 소성당에 들어오면서 많은 사람들은 미켈란젤로의 작품 앞에서 압도되어버립니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최후의 심판과 천지창조는 프레스코화입니다. 프레스코화는 소석회(消石灰)에 모래를 섞은 모르탈을 벽면에 바르고 수분이 있을 동안 채색하여 완성하는 회화랍니다. 벽화화법 중 대표적인 것으로 기원 전부터 로마인에 의해 그려져 왔는데 이탈리아 유명한 성당의 벽화는 거의 프레스코화라지요. 이렇게 프레스코화는 14∼15세기 이탈리아에서 최성기를 보이다 17세기 이후 유화에 밀려납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미국 ·멕시코 등지에서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네요.
유화는 그리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워버리고 새로 그리거나 언제든 마음대로 쉬었다가 다시 그려도 되는 편리한 방법이라면 프레스코화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어렵대요.
대개 이탈리아의 오래된 성당의 그림을 복원하는 작업은 일본의 NHK가 비용을 대지요. 시스티나 성당은 10여 년이 걸렸다는데 복원비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나답니다. 대신 시스티나 든 유명한 성당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수위 아저씨가 쫒아와서 촬영을 방해하지요. 지적 초상권이라 하나요 일본 방송국에서 독점적으로 가지고 있답니다.
그럼, 천장화부터 이야기 해 볼까요, 이름 그대로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는 천지창조에 관련한 성서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린 것으로 한 눈에 보아도 대강 알겠더라고요.
빛과 어둠의 분리에서 술에 취한 노아까지 아홉가지의 그림 중에 제일 인상 깊은 것은 아담의 창조이겠지요, 수염과 머리칼이 푸른 빛이 감도는 백발의 하느님이 아주 연한 분홍빛이 감도는 흰 옷을 입고서 천사들이 떠받치고 있는 가운데 비스듬히 기대 앉은 아담을 향해 팔을 뻗힙니다.
마주 보고있는 아담의 손가락이 힘이 없는 무기력한 모습이라면 하느님은 힘차게 검지를 아담의 검지에 닿으려고 뻗히는 모습이 아주 역동적입니다.
하나는 고동치는 하느님의 손가락, 또 다른 하나는 무기력한 인간의 검지입니다. 영원하신 분의 팔로부터 그를 삶으로 깨어나게 하려는 힘이 흐르고 있는 이 그림을 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 주시려는 하느님의 모습은 우리를 향해 몸을 던져 오시는 데 반해 우리는 몸을 뒤로 빼면서 마지 못해 그 크신 사랑을 어정쩡 수용하고 있지요. 참, 지독한 주객 전도라고 할까요? 아뭏튼 홀곂의 옷을 입으신 하느님의 몸은 근육이 잘 발달한 터미네이터 같아요, 역동적이며 인간을 사랑하시고 한 없이 부어 주시기만 하는 능동적인 모습에서 충격을 받았는걸요,
미켈란젤로가 그리는 하느님의 모습이 참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우리를 찾아 나서는 "그분", 당신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아낌없이 내어 주시려는 의지를 온 몸으로 깨닳습니다.
천지창조에 관한 그림이 중앙에 위치하고 양 옆으로는 구약에 나오는 예언자 예레미아, 에제키엘, 이사야, 요엘, 요나들이 그려져 있는데 아무래도 예레미아가 제눈을 끄는군요, 예루살렘의 배신에 따른 벌에 대해 괴로워 하는 예레미아의 모습에서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신의 역활과 제대로 알아듣지 않으려는 인간의 배신, 그 중간에서 이 모든 허물을 자신의 탓으로 여기며 괴로워하는 노쇠한 예언자의 안타까움이 저를 한없는 련민과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우리도 주위를 좀더 둘러 보아야 하겠습니다.우리에게 전해주시는 "그분"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지나 않은지 마음의 귀를 열어 두어야겠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인상적인 것은 뱀에게 유혹을 받고 있는 하와의 모습이 너무 육감적이어서 나도 마음이 설래던걸요, 악을 향한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이 이리도 사무치게 섪을 수 있을까요? 곱게도 흘러내리는 성숙한 여인의 나신과 분홍빛의 젖꼭지가 진저리치게 아름답더이다.
엄숙한 종교화에서 이리도 인간의 육체에 대한 욕망과 아름다움을 숨김없이 그대로 그려낸 것은 이 시대에 태동하고 있던 르네상스 탓이었을걸요.
드디어 최후의 심판이군요.시스티나 소성당의 전면에 자리한 교황제단 뒷 벽에 그려진 "최후의 심판"은 주제가 압도하는만큼 바티칸에 들르는 많은 관람객으로 부터 제일 주목받는 작품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들이 각자 믿고 있는 종교와 관련없이... 제 생각으로 이건 미켈란젤로가 그렸다거나 작품성이 뛰어 나다거나 하는 바에 관계 없이 인간은 누구나 죽어야 하는 유한한 존재이며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저승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마다가 믿는 종교를 통해 이 세상 다음으로 건너가는 세계에 대해 강렬한 호기심을 갖게 되고 또한 그것은 나무랄 수 없는 인간이 지니는 본능이 아니겠습니까?
중앙에는 아름답고도 싱싱한 표정의 젊은이가 오른팔을 약간 구부린체 머리에 올리고 있네요, 예수님이네요,
이제껏 많이도 주님을 보아왔건만 이처럼 싱그런 젊은이의 모습을 본적이 없는걸요. 이 세상 고뇌를 대신 짊어지고 힘들어 하는 것 보다 얼마나 좋아보이는지 쳐다보는 제가 참 마음이 편해지던걸요.
바로 옆에 성모님이 오른편으로 약간 몸을 튼체 앉아 있는데 연 주황색이던가요, 온몸을 감싸는 옷에 푸른빛의 천으로 무릎께를 덮고서 시선을 아래로 두고 있네요, 어쩌면 좌 우로 온통 벌거벗은 남정네들 땜에 시선을 둘 곳 없어서인가요? 예수님의 다섯 상처의 흔적이 너무도 선명하여 제 가슴도 아려왔습니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왼편 약간 밑부분에 묵주를 붙들고 구원 받는 두사람을 기억하세요? 이 그림을 두고 묵주기도를 많이 하면 구원 받는다고 하지않습니까.
그런데 우리 가이드가 아주 생소한 설명을 하던걸요, 묵주를 붙들고 있는 두 사람이 바로 흑인인데 그 당시에 미켈란잴로가 인종차별 없이 누구나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선구자적 발언을 했다는군요. 사실 두 사람은 얼굴색이 어두워 흑인인 듯 했지만 여러가지 참고 서적을 뒤져봐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채 끝내지 못 했으나 신학공부를 하고 수도자였던 가이드가 쓸 데 없는 말을 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 오른편 하단에 대머리에 수염이 치렁 치렁한 바르토메오 사도가 얼굴을 자신이 벗긴 건지 오른 손에는 단검을 들고 왼손에는 자신의 껍대기를 움켜쥐고 있는데 벗겨진 얼굴의 형상이 이 그림을 완성한 미켈란젤로 자신의 모습이라는군요. 혹시 뭉크의 절규라는 그림이 기억나십니까? 일그러진 얼굴에 단순히 검은 눈동자와 비틀린 입술모습, 엄청 단순한 몇가지의 선으로 보여주는 인간의 공포와 비명을, 인간이 가장 절망에 부닥칠 때 보여주는 극심한 절규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미켈란젤로의 자화상이 그랬습니다.
세상에! 바르톨로메오 사도가 온 몸의 피부를 벗겨내는 방법으로 순교 하셨잖아요. 정말이지 우울한 듯 고뇌하는 천재의 자화상이 거기 있는 데, 가진 재주가 뛰어 날 수록 인간 내면의 갈등과 방황은 더한 것인가봐요. 또한 이렇게 치열한 고뇌와 갈등 속에서 위대한 예술작품이 창조 되어 왔다는 엄연한 진리 앞에서 평범하기 짝이 없는 저는 고개 숙입니다.
이때, 무언지 어렴풋이 제 가슴에 잡히는 것이 있었습니다,
위대한 사도들이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다 해냈다는 희열에 찬 모습을 그리면서 외려 미켈란젤로는 움추려들며 자신의 부끄러움과 한계를 느꼈나봐요, 저 위대한 천재 미켈란젤로가!
"그분"을 따라 살아왔던 사도들 앞에서는 이 세상 아무도 나설 수는 없겠지요. "그분"과 함께 걸어 가는 인생이야말로 최고의 가치가 있는 일이지 않겠어요?
어쩌면 "최후의 심판", 이 위대한 작품 앞에서 다들 지옥으로 추락하는 자신을 상상하고 오싹 돋는 소름 속에 찔끔하면서 제 자신을 반성하면서 떠올리는 주님을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그분"을 슬프게 할까, 뜬금없이 혼자 생각해 봤지요.
그래요 위대한 예술작품은 보는 사람마다 제 나름의 생각을 불러 일으켜서 좋아요,
그림 중앙 바르톨로메오 사도 밑에는 천사들이 나팔을 불고 있는데 오른편 지옥쪽으로 내려다 보는 천사가 펼쳐쥐고 있는 책은 아주 크고 두꺼운 데 반해 왼편의 구원 받는 사람들을 향한 천사의 책은 아주 적고 얇더이다.
유혹의 말은 저리도 크고 많지만 선한 곳으로 이끌어주는 유익한 말은 참 작기만 한가요?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지옥으로 떨어지는 영혼의 숫자는 많고 구원으로 이끌어지는 영혼은 저리도 적은가 하고 제 마음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가이드 말을 들으며 실소한 것은 그림 제일 하단 오른편에 자리한 지옥의 심판관 미노스 그림이었지요. 당나귀 귀를 한 미노스는 온 몸을 감고 있는 커다란 뱀이 미노스 자신의 심볼을 꽉 깨물고 있어 무척 고통스러워 보이는 끔직하기도 또 어찌보면 아주 희극적인 그림을 보셨는지. 미노스의 모델이 바로 교황의 전례비서인 체세나의 비아조 신부라는군요.
당시 교황도 자신의 작품에 간섭하지 못하게 이 곳 출입을 금하게 했던 콧대 높은 미켈란젤로는 자기가 그린 그림이 온통 나체로 그려져 천박하다고 험담을 하던 비아조 신부에게 통쾌한 복수를 하고 싶었나봐요.
처음에는 너무한 게 아닌가 했지만 거의 5년에 걸쳐 홀로 외로이 이 작품을 완성한 노대가가 이 정도의 심술도 부리지 못해서야 하고 한번 웃고 말았습니다. 제가 퍽 너그러운가요?
그래도 두번째 와본 덕인지 제법 꼼꼼하게 살펴 보는 여유를 가지며 소성당의 왼 편 구석에도 섰다가 반대편 쪽으로 가 앉아서도 쳐다보면서 제 일생에 몇 번이나 더 올 수 있을까 하고 부질없는 상상도 하면서 처음 보았을 때 보다 훨씬 이 작품이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비장감이 도는 지옥불과 홀로 지옥으로 당겨지는 순간의 공포 가득한 악한 영혼의 처절함이 나의 어리석음을 질책하기도 했지만 수 많은 등장인물 중에서 그래도 정숙하게 옷을 차려 입은 성모님과 싱그런 젊은이의 모습으로 중앙에 서 계시는 예수님의 살아 움직이는 역동감이 나를 참 편안하게 했답니다.
"그분"을 생각만 해도 내 가슴이 막 뛰고 나도 싱그런 풀 이파리 한 잎 물고서 너르디 넓은 풀밭을 마구 달려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요 "그분"은 푸른 풀밭으로 우리를 불러내고 계시는걸요, "그분"은 생명 자체인가 봐요, 그저 최후의 심판 앞에서 끝없이 펼쳐진 풀밭과 싱그런 봄 바람을 느끼며 참으로 저는 행복했습니다.
사실 이렇게 순례자로 붐비니 제가 이토록 보고 싶었던 시스티나를 마음에 담을 수 없었습니다. 작년이었지요 중앙일보 음악전문 기자가 신문에 소개한 "알레그리의 미제레레"가 마음에 와닿아 당장에 씨디를 사서 듣는 순간 엄청난 충격으로 온 몸이 전율했지요,
시편 51편의 시작하는 말, 미제레레를 따서 흔히 미제레레라고 부르고 있답니다. 시편 중에서도 가장 많이 암송되고 있지요 왜 연도에서 세번째 기도문이라면 "아~"하시는 분이 많겠지요.
"선한 분이시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 애련함이 크오시니, 저의 죄를 없이 하소서...."
바로 다윗이 자기 부하인 우리아의 아내 바쎄바를 빼앗고는 거기다 아무 죄 없는 우리아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패륜을 저지릅니다. 한 가지의 죄를 짓게 되면 연달아 죄를 짓게되는 인간의 간악함이 여실히 들어나는 대목이지요. 이 때 예언자 나단이 홀연히 나타나서 다윗을 꾸짖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지요, 바로 이 순간 다윗 왕은 미제레레로 시작하는 참회의 시로 하느님께 자신의 죄를 뉘우칩니다. 연도에도 사용될 정도로 이 참회의 노래는 유명 하답니다.
기사에 의하면 당시 교회 전통에 따라 교황은 부활절을 앞둔 성 삼일, 새벽 3시에 교황전용 기도소인 시스티나 소성당에서 홀로 침묵 중에 드리는 "테니브리"(어둠이라는 뜻)를 갖습니다. 촛불 하나만 남기고 불을 끈다음 교황께서 시스티나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립니다. 이 때 교황청 성가대는 어둠 속에서 무반주(아카펠라)로 "미제레레"를 부릅니다.이 미사곡을 당시 교황청 악장이었던 그레고리오 알레그리1,582~1,652)에게 명해서 작곡을 시켰는데 이 곡이 유명한 '알레그리의 미제레레'라고 불리지요.
1,629년에 작곡한 이 곡은 일화가 참 많아요. 교황께서는 얼마나 이 곡이 맘에 들었는지 교황청 밖에서 연주 되거나 악보가 복사,유출되는 것을 금지시키고 이를 어기면 파문시키겠다고 경고했답니다. 교황은 악보가 음악을 담는 유일한 그릇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이 때 소년 모짜르트가 열두살 나이에 아버지와 함께 이탈리아를 여행하다가 바티칸에 와서 미제레레를 듣고난 후 숙소로 돌아와 음표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그대로 오선지 위에 써내려갔답니다. 이 이야기는 흔히 모짜르트의 천재성을 부각시키는 일화로 삼지요. 9개의 파트로 구성된 두개의 합창단이 부르는 이 합창곡은 약 12분 정도 걸리지요.
어둠 속의 주님 수난 새벽, 시스티나 성당은 촛불만 외로이 켜 있고 홀로 기도하시는 교황님의 근엄한 모습, 합창단원이 부르는 미제레레가 경건하게 중앙제단을 감싸고 돌아 최후의 심판 속에 계시는 예수님께 닿습니다.
"...저를 씻어 주소서 / 눈에서 더 희어지리라./ ....당신의 면전에서 저를 내치지 마옵시고 / 당신의 거룩한 얼을 거두지 마옵소서 / 당신 구원, 그 기쁨을 제게 도로 주시고 / 정성된 마음을 도로 굳혀 주소서....
하느님, 저의 제사는 찢어진 마음/ 하느님께서는 찢어지고 터진 마음을 / 낮추 아니 보시나이다...."
아무리 궁리해도 이 거룩한 현장에 참석할 수 없겠지요만, 미제레레에 얽힌 에피소드를 듣고서 욕심이 제법 났는걸요. 돌아나오면서 시스티나를 또 한번 고개를 돌려 봅니다 제 눈에 꼭 담아두려고요...
제 이야기 듣고 꼭 미제레레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클레오베리가 지휘하는 케임브리지 합창단과 보이 소프라노 사울 쿼크의 녹음(데카)은 영혼을 울리는 맑은 소리와 주옥같은 선율이 일품이지요. 감히 제가 추천하지요.
바티칸 이야기는 시스티나의 미켈란젤로만 가지고 한편을 끝낼게요, 다음은 성베드로 대성당의 이모저모를 말해볼래요. 싫어도 한 번 더 기회를 주셔야지요.
교우님들의 양해를 바라면서....미술관으로 넘어가는 회랑의 창문으로 로마의 겨울 햇빛이 하얗게 부서지는 한가로움이 보기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