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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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고해 성사에 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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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61.106.109.*]

2005-12-25 ㅣ No.3880

 

 

   † 찬미예수

 

   안녕하세요? 성탄을 축하드립니다. 문득 성탄을 맞으며 이러한 묵상이 들더군요. 이럴 때 또한번 우리가 유레카!~라고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산타크로스''의 뜻이 연상되는 것이었습니다.

 

산타, 즉 라틴어 발음으로 ''상따''는 거룩할, 성스러울 성(聖)이니 산타크로스가 글자 그대로 거룩하고 성스러운 십자가라는 뜻이구나!~란 말씀이었지요. 다수가 아시는 사실이겠습니다만, 본시 가까운 적이나, 가까운이들에게 겪는 배신감, 아픔, 질시등을 우리는 끊임없이 내탓으로 돌리려는 성사생활을 지향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이야기가 다소 복잡할 소지가 있고하니 이번 성탄은 따라서 상따크로스 할아버지(아버지의 아버지)가 선으로서 주고자 하시는 그리스도미사(크리스미사)로 종합할 수도 있겠지요. 아마도 형제님의 상담 내용을 적지 않은 신부님들이 공감대를 가지고 지향할 수도 있겠다고 봅니다. 그러나 역시 현실적으로 그 반대 급부등을 고려하여 인터넷상의 인스탄트형 고해성사 제도는 어렵겠다는게 저의 일감이기도 합니다.

 

예로써 인터넷상에서의 끊임없는 분파 현상을 바라보는 가톨릭 신자로서의 눈, 입, 그리고 귀를 우리는 하느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령의 그것으로 의탁하고자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붕당가운데 때에 따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자신을 바라보기도 하고, 어느날은 성령의 은사로 평화를 얻어 자신의 끊임없는 판단, 기준등에서도 평온해지는 그러한 것을 누리기도 하겠지요.

 

이러한 인터넷, 교회, 직장, 기타 공동체등에서의 분열 현상을 바라볼 때 나는 과연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를 지금 성사생활의 일부인 고해상의 문제 건의를 하시는 님의 견해와 연관하는 것은 어떨런지요?

 

과연 오늘도 누군가 왕따를 쉽게 당할 수 밖에 없는 난해한 형국 속에서 나는 과연 그에게 또는 그분에게 함께 돌을 던지고 있지는 않는가? 심지어 돌을 쉽게 던지는 무리에 섞여 감각적인 즐거움의 올무에 끌려 새로운 종파(동호회)를 창출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그것을 바라보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이야기지요.

 

문제는 우리가 주님께 세례를 받음으로써 얻는 사제직, 왕직, 예언직이라는 것이 자칫 이러한 이구아나, 하이에나 족속등으로도 스스로 쉽게 유혹받고 넘어갈 수 있기에 님의 문제제기는 다만 아름답다 말씀드리고 싶군요.

 

그리고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계시(영감)을 통하여 99%가 방관자 역할을 할 때 1%의 주인공이길 자처하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엄청난 교만일지도 모르겠지요? 자처란것이 자주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100명중 99명에게 색마가 덤비고 색마가 덤비면 상대가 이성으로 느껴지는데, 우리가 어느때는 시도 때도없이 스스로 그 1%로 자처해야 하는 속물이기도 하니 말씀이지요.

 

결국은 ''꿈은 이루어진다''의 마인드 컨츄롤로 하여금 여러 사람으로 모여지면 ''희망''으로 진화하기에 무엇보다 나와 주님과 화해하는 연습이 필요한데, 과연 이 화해의 주역이 누구인지 묵상하시는 것도 중요한 듯 합니다.

 

사실 고해 성사는 주님과의 화해성사로써 우리가 자주 흘려듣고도 있는 그것이기에 또한 성찰/정개후 고해와 보속의 삼단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고, 상따크로스 체킹 여정으로써의 정적인 가운데서 더 음침한 그런것을 찾지 않는, 동저인 주님과의 화해 연습이 좋은 성찰로 이어질 것이며, 또한 동적인 일상 생활이나 지금 이순간 숨쉬고 있는 가운데서도의 숨결의 파장을 음미하며 내 자아가 찾고자 하는 잡다한 그것들이 아닌, 다만 평화의 주님과 친교하는 것도 살아있다는 고요속으로부터의 깊은 용기를 체득하리라 믿는 것이지요.

 

이것을 잘 응용하고 이웃과 한마음 한 몸을 지향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해 나가는 것, 무엇보다 하느님을 다시 두려워 할 줄 아는 용기로써 하느님을 흠숭할 수 있는 결정적인 빽을 가진다면 세상의 부러울게 없다는 것이 보편적인, 일반적인 고백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톨릭은 고금으로부터 계속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종교로 이어지고 있으며 또한 애석하게도 참으로 많은 신자들이 이러한 삼단계의 수많은 은총을 망각하고 구경으로 그치는 경우도 다반사이기에 신자로서 도태되기도 하는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할 것입니다.

 

상따크로스의 여정의 도구가 그렇게 많은데도 말씀이지요. 지면상 대표적인 것 세가지만 들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을 묵상하는, 성경의 엑기스인 묵주기도(엄마의 손을 잡고 칭얼대기라도 하는), 온전한 기도인 크리스마스(그리스도미사), 최고의 기도인 주님의 기도가 현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가지를 엮는 주모경, 단순하면서 확실한 성호경, 그 밖에도 셀 수 없이 많은 것이 아름다운 기도이겠지요. 홍문택 신부님께선 이러한 은총의 통장을 만드셨더군요. 가톨릭 출판사에서 외형은 세속 은행 통장과 비슷하게 제작하였는데, 그 내용을 잠시 살펴보자면 미사 10,000원, 봉사 5,000원등으로 내안의 깊은 주님께 적립하는 확실한 하늘나라의 통장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통장을 구입하고 싶으신분은 그 때까지 스스로의 단점들을 묵상하며 맞춤형으로 하늘 장부를 개설해보시지요. 

 

쎈것 위조로 나열하여 죄송하단 마음도 듭니다. 아무튼 그 나머지를 잘 고리로 연결하여 봅시다, 꿰어야 보배겠지요. 다만 주님께 의탁하면서 말씀이지요. 말을 덮는 거적더기에서부터 유래되었다는 '강보'에 쌓인 아기 예수님이 이 추위속에서도 울지 않으시며 우리 가슴속에도 잠들어 계십니다.

 

우리가 지금 아기 예수님께 무리한 주문을 하지 않고 행여 다치실세라 곱게 모시려는 이 마음이 더욱 소중하기에 형제님의 그것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오른쪽 옆을 보십시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의 흰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제도를 보완하는 것도 참으로 아름다운 발상이겠으나 늘 먼저 우리 자신의 내면에도 함께 주무시는 세상 가장 미천한 곳에서의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감사드리며 죄많은 우리가 회개하고 나아갈 수 있는 거룩한 크로스 체킹 여정을 계속하여 맛들임으로써 우리는 또다시 아기 예수님과 함께 성장하여 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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