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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 너머의 의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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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식 [goodactor] 쪽지 캡슐

2024-05-10 ㅣ No.231406

사자밥 쌀 줄 알어!

인간들이 겪게 되는 인간적(세상) 상황은 과연 몇 가지나 될까
일단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면 피할 수 없이 맞게 되는 어린 시절의 공동체(대체로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는한 가정인)만 보아도 꽤나 다양하다
엄마, 아빠가 다 있는 집이나 혹은 위킹맘 같은 편모 슬하의 집, 엄마나 아빠 중에 한 명이 의붓인(계모나 계부) 집, 때론 입양되면 양부모와 함께 사는 집, 그리고 엄마가 미혼모인 집 등 많은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런 형편과 사정은 애들 쪽에서는 불가항력일 수 밖에 없다
누구도 부모를 제 손으로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남녀가 만나 한 몸이 될 것이다라는 진리의 보편성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
그렇게 삶의 입장은 갖춰질 수 밖에 없고 어떻게 보면 애들 입장에서도 그게 최선일테니 말이다
드라마에서도 늘 이야기거리가 되는 부모들의 상황은 그에 따른 애들의 이야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다들 단지 배경 삼아서만 그 모든 것을 그려내지는 않는다
될 수 있으면 좋은 부모, 좋은 가정 누가 마다할 수 있는 삶의 토양이겠는가
스티브 잡스도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는 친모가 미혼모라 입양된 케이스인데, 그 친모는 이런 바램을 입양기관에 요청했다고 한다
중산층인 카톨릭 가정에 입양시켜 주기를 바랬다고 한다(어여쁜 아가인 스티브 잡스를 위해 미혼모인 엄마가 가질 수 있는 최선의 바램이었을 것이다)
미국에서도 카톨릭 가정의 부모들은 대체로 가정적이고 아이들에 대해서도 평판이 좋은 편이라고 다들 알고 있다
그렇듯 좋은 부모가 못된다 하더라도 자식에게만큼 좋은 환경이 마련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결코 저버릴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나는 부친의 외도와 사업실패로 파탄나고 쪼개진 집에서 어린 시절을 대부분 보냈다
물론 그 모든 어른들의 상황이 유별날 수도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외할머니댁, 친척집 등을 전전했던 터라 부모와의 정이 그리 깊지도 않았다
그리고 아홉살 무렵, 부산으로 도망가 딴 살림을 차렸던 부친이 나만 그 부산집에 데려갔다
세째 고모댁, 그리고 부산행 완행열차(아마도 무궁화호였을 것이다), 그리고 당감동 외진 슬레트 단칸방, 그리고 젊은 아주머니 한 분과 아이 두 명이 있었던 그 집이 앞으로 내가 초중고 대부분을 다니며 함께 살 집이었다
부친의 외도 히스토리는 그리 로맨틱하지는 않다
다 들어서 알게 된 얘기들인데, 부친과 계모는 나이 차이도 많이 났고, 계모가 술집의 직업여성으로 일할 때 만나서 그렇게 눈이 맞아( 남녀가 서로가 함께 살만하다고 보는 그게 좋아서, 특히나 부친 쪽에서 너무 좋아서 그렇게 같이 살게들 된 게 아닌가 싶다) 계모는 어린 나이(십대였을 것이다)에 그렇게 자영업하는 사장인 부친을 만나 살림까지 따로 차리게 되었고 사업이 실패해서 길거리에 나 앉게 된 상황에서도 그 먼 부산까지 따라 내려가 같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계모가 부친보다 키가 더 크다
그렇게 함께살게 된 그 시대, 그 시절의 전형적인 세컨 스토리였던 것이다
지금은 작고한 최인호 소설가의 별들의 고향도 아마 그런 술집 작부인 직업여성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그렇게 나는 한 9년간을 그런 가정에서 살았다
계모는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억척스럽게 생활력이 강했다
형편이 너무 어려워 계모는 늘 부업 같은 것을 했는데, 당시 당감동은 부산의 변두리 중에서도 변두리였고 고무공장들이(신발공장들) 많았다
그래서 고무 슬리퍼 작업을 하는 부업도 많았는데 나 또한 소년노동자처럼 어릴 때부터 그 부업을 돕기도 했다
단칸방은 늘 그런 부업재료들이 밥 때와 잘 때 아니면 늘 방을 채웠고 그런 속에서 나도 자리잡고 그 일을 했던 것이다
계모는 또 테니스 네트인지 물고기 잡는 그뮬인지는 모를 그물 짜는 부업도 많이 했다
그런 부업은 2층 독채로 이사가기 전까지(대략 중학교 때쯤이다) 계속 되었다
그리고 밥은, 점심은 거의 털랭이 죽이라는(찬밥에 김치 넣고 국수 넣고 해서 끓인 죽도 밥도 국도 아닌 그런 음식) 것을 먹었다
계모는 그저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었고 그런 심정으로 나도 떠맡아 키웠던 것이다
9살 때 내려갔음에도 손수 목욕을 시켜줬고, 잘못했을 때엔 총채(대나무 대로 만든 먼지털이)로 머리도 자주 맞았다(바람 소리 붕붕나는 매서운 매였다)
계모는 부친보다 키도, 덩치도 컸다
부친은 배가 많이 나왔고, 계모도 여성의 그것 말고도 배도 좀 많이 나와 보여 덩치가 더 크게 보였다
늘 펑퍼짐한 몸빼 기지의 통치마 원피스를 입고 살았다
그렇게 나는 나의 소중한 유년기, 청소년기를 그런 가정에서 보냈다
전적으로 늘 사랑이 부족하고 모자란 내 탓이겠지만(사람은 자신의 뭐든지 제 탓이라고 보는 게 거의 진리이고 대부분 맞다고 본다, 누군가들은 네 탓이 아니야라고들도 하지만 그럴 경우 탓할 수 있는 무엇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전적으로나 부분적으로 하느님을 탓하고 마찬가지로 남(다른 이들)을 탓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인생의 입장에서 해롭다고 생각하거나 피해를 본 것처럼 여기는 상태 말고는 그런 생각도 쉽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무엇이든 잘 한 거라면 제 공으로 돌리는 심리는 대부분 비슷한 자존심일 것이다) 그래도 모든 것을 보고 배우는 사람 입장에서 보다 좋은 것은 보다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일단은 그렇다, 받아들이는 쪽이 아예 삐뚫어져 형편없는 경우가 아닌 이상, 복에 겨워 아주 환장한 상태가 아닌 이상)은 변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사랑과 같은 본질은 모든 사실을 크게나 작게나 그 사랑의 힘과 영향력으로 좋게 만들고 이루는 진실이기에 나는 나를 깊이 자책하기도 한다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닌 계모는 나에게도 자주 했던 말이 있었는데 사자밥 쌀 줄 알어!라는 말이다
어린 나이에 들어서 사자가 동물원의 사자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나중에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할 때쯤 그게 얼마나 무시무시한 말인줄 알게 되었다
사자밥은 곧 제사밥과 같은 말이라는 것, 그래서 그 말은 초상치를 줄 알어!, 경을 칠 줄 알어! 죽을 줄 알어!와 거의 같은 말이라는 것을 말이다
계모가 살아온 배경에 그 당시에도 험악하고 때론 더러웠을 그 계통의 인간들 사이에서 자주 접하고 그렇게 입에 담게 된 말이 아닌가 싶어 아련하기도 하다
사람은 함께 사는 사람들로부터 거의 모든 것을 다 배운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사랑도, 평화도, 정의도, 자비도, 관용도, 전쟁도, 다툼도, 싸움도, 폭력도, 범죄도 말이다
내 인생의 과정에서 있어왔던 많은 일들, 존중도, 배려도 모르는, 모든 이에게는 인격과 인권이 있다는 진실도 모르는, 그렇게 삶의 본질을 이루는 바탕과 저변이 척박한 세상 속에서 보다 좋은 모든 것을 접하고 배우며 함께 하지 못했던, 그렇게 삶을 찾아 나가지 못했던 나의 탓은 누구에게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딱 그만큼의 사람이 지금까지도 나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사람들은 때론 영감과 각성을 말하지만 그런 빛은 쉽사리 비춰지지 않고 어둠의 저편에서는 멀리 있을 뿐이다
삶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때론 삶의 큰 변화를 일으키기도 하는 그런 영감과 각성은 보통 은총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스스로가 살 원인과 동력을 주는 것만큼, 스스로가 잘 살 수 있도록 스스로를 충분하게 하는 것, 카톨릭은 보통 그 모든 것을 하느님이라고 한다
그 경지까지, 그 선상까지, 그런 삶의 모든 의미까지 사람을 살도록 하는 것은 그렇게 은총이라고 밖에 달리 다른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본능이라면 다들 자연히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더 잘 보여주는 게 세상이니 말이다
하느님과의 관계를 분명히 정립하며 바로 그 지점이 사람이 사람답게 살며 머무를 영원의 지평이라는 것을, 바로 Here & Now 그런 좋은 모든 것으로서의  삶(성령의 열매를 맺고 영원한 생명을 얻으며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이 시작되고 그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 끝에 이르른다는 것은 영원한 진리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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