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8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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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현상 너머의 의미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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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식 [goodactor] 쪽지 캡슐

2024-06-01 ㅣ No.231657

사람이 하는 모든 일에는 언제나 같은 사람들의 판단과 시비가 그칠 리 없고 그런 의도만으로 그 의식과 감정에 따른 초점으로 겨눈, 심하게는 그렇게 대상화된 표적이 되어 온갖 구설에 휩싸이며 갖은 비난을 받고 수모를 당할 수도 있는 게 이 세상의 변함없는 모습이다

그것은 예수에게도, 누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도 예외없이 말이다
그런 일들에 있어서 단지 그런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나 걱정과 염려, 그런 해로움이나 악화만을 염두하면 사람이 보다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일을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람이 용기를 내고 힘을 내서 해야 할 일은 비단 먹고 사는 일, 자기 삶만을 잘 사는 일, 자기의 이로움과 유익함만을 찾는 일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자기 바램과 꿈이 중요한 것만큼 세상의 생리나 모습, 세상이 돌아가는 현실도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람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람의 궁극적인 삶의 방향과 목표가 무엇인지, 사람의 진실한 의미와 가치가 어떠한지, 그래서 사람답게 산다는 것과 사람의 진정한 자기실현은 무엇인지, 그런 삶의 바람직한 진실은 과연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모든 것은 인류사에도 종교라든가, 철학이라든가, 인문학적인 방면에서도 숱하게 찾고 구하며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사람의 길이자 세상 속에서의 길이기도 하다
언제나 같은 세상과 같은 삶을 사는 다른? 사람들과 모든 이에게 사람의 삶에 깃든 살아있는 생명의 본질을 드러내려 한 이 세상에 전해진 모든 통찰과 이해가, 지혜와 식견이 담겨 있는 기록 같은 결과들을 통해서도 그 진실과 빛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의 대표가 성경이란 진리의 책일 것이다
성경 또한 이 세상의 모든 책들과 마찬가지로 잘못보면 해가 되고 잘 보면 좋고도 이로운 모든 것에 이르게도 하는 책이다
성경 또한 보는 이들에 따라 그 결과도, 그 양상도 첨예하게 다른 양화와 악화의 두 갈래로 나뉘어지게도, 갈려지게도 하는 책이다
이 세상의 모든 책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같은 진화론에 대한 책도 누군가들에는 지구상 모든 생명체들의 보편 생리와 서식에 관한 심도깊은 이해가 될 수도 있지만, 누군가들에게는 우생학적 관점에서의 우열과 그에 따른 지배논리에 지나지 않는 편협적인 이론에 그칠 수도 있다
그렇듯 이 세상에서 하는 모든 일은 이 세상을 사는 동시대인들에게도, 이전 역사가 되어서도, 미래의 후대세대들에게  이르러서도 그 모든 일에 대한 판단과 비판, 시비와 다툼이 언제나 있으리라는 것이 변함없는 이 세상의 실제이며 속성이라고까지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언제나 사람이 세상에서 혁명적이다고 할 만한 일들은, 그 모든 것의 앞에서도 그런 일들을 하는 사람들의 의지와 신념, 확신의 크기와 깊이, 그 투신과 열정 정도에 따라 일관되게 추구되어 온 일이기도 하다
그것에 대한 판단이나 평가가, 선으로나 악으로나 세상을 위해서도, 사람들을 위해서도 좋게나 나쁘게나, 보다 최선에 가깝다거나 보다 개악적이다라고 하는 등의, 그 첨예한 갈림과 극명한 반대선상이 뚜렷하게 비쳐질지라도 언제나 말이다
언제나 이 세상을 자기 의지와 신념, 확신으로 살아갈려는 이들의 투신과 몸부림은 선으로든, 악으로든, 좋게든, 나쁘게든 어디를 향하고 무엇을 바라보고 있다라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대한민국 경제발전사의 쌍팔년도에 극심했던 비인간적이고 살인적인 노동환경에 대한 시위로 자기몸을 분신했던 전태일이라는 이도, 그 일로써 동시대인들에게도, 후세대에게도 열사로 불리고 있다는 것도  그런 사실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 당시 대한민국의 지도자들과 지배자들은 경제발전의 논리를 추구하며 그 발전을 독려하는 과정에서 당시 노동자들의 피땀과 고통을 담보해 그 살인적인 경제발전사를 도모했던 것이다
마땅한 인격적 대우와 배려도 없이 말이다
당대 대한민국의 열악한 경제환경 속에서 주어진 그 현실 그대로에서 그들(당대 지도자들과 지배자들)은 그렇게가 아니면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사실로, 그들의 됨됨이와, 그들의 능력정도와 면모들에서, 당시 경제환경과 실제수준에서는 그 사실 모두를 감수하는 방식이 아니면 그 모든 일에 대한 추진과 성취가 불가능해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고 그들을 경애해 마지 않는 인간들은 그 고통의 역사와 그 시대의 국민들을 가려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전태일 열사가 고통스럽게 분신했듯이 그만큼의 고통이 당대 노동환경에. 일자리들에, 산업전반에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듯 사람이 이 세상에서 하는 모든 일들은 양화와 악화의 도가니와 사이에서, 그 간극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며 그 상관성 여하에서 여러 갈래로, 가지로 파생되고 점철되는 일이기도 하다
문제는, 언제나 판단과 시비, 그 비판과 평가에 있어서도, 그런 모든 이들의 의지와 신념, 확신들이 어디로 향하고 있고,  그 지향하는 방향성들이 어떤 성격을 띠고 있는지에 대한 바람직한 통찰과 이해가 있어야 하며 그러한 가운데 모든 이와 세상에 대한 진리에 가까운 일들이 또한 추구될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의 본질
생명의 본질은 살아있다는 것이다
단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그것이 생명이다 하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그 매커니즘이나 메뉴얼 상의 판단에 따라 어떤 것은 생명이고 어떤 것은 생명이 아니다 하는 것도 아니다
보통 생명체들을 보면 확인할 수 있는 한 가지 우선되는 생명의 성질은 생명체는 생명체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그 기원이나 시발점을 따지기 이전에 먼저 눈에 들어오는 생명체들의 현상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면 생명은 일단 그런 성질이 있는 것이다
생명체는 생명체로부터 나온다
현대의 아이오닉5는 대한민국이든, 미국이든 현대가 건설한 현대공장에서 나온다
사람들의 손과 공장설비들의 분주한 움직임 속에서 그렇게 아이오닉5 한 대, 한 대가 나오는 것이다
그것은 보통 사람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 기계들이다
단지 휘발유를 들이부어 그 연료로 움직이게 만든 장치라고 해서 기계만은 아닌 것이다
그런 사물들과 달리 생명은 생명체들에게서 그 성질이 보인다
그러나 생명체들을 생명체라고 볼 만한 성질을 분명하게 이해하기 전에는 그 생명체의 매커니즘과 메뉴얼은 또 다른 양식의, 또 다른 차원의 기계적 생리로 볼 수도 있는 관점과 논리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생명체의 모태나 그 씨앗을 파생시키는 암수를 그 공장시스템의 모형으로, 산업시스템의 모체로 말이다
어떻게 그런 관점과 논리를 대입시킬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생명체'다움'이라는 관점의 정립이나 확립이 불분명할 때, 그런 이해의 근거가 부족할 때, 생명체들의 현상을 단지 그런 이동이나 전이 차원의 설계와 전개로 보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란 인간생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번질 수 있는 관점과 논리이다
그래서 인본주의의 근간에는 진정 사람다움이 뭔가에 대한 탐구와 탐색이 짙게 깔려 있다
르네상스란 바로 중세의 신관념이 지배적이던 세상에서 일어났던 그런 일종의 폭넓은 예술 현상인 것이다

신학적, 철학적, 인문학적 관점
'사람아,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성경책에 나오는 그 진리의 유명한 문구이다
사람, 사람이란 인간생명은 지상에 한정된, 지상에 한정해야 하는 존재일까는 실제로 사람의 생명다움, 그 사람다움을 근거하고 자리하게 하는 본질에 가까운 의문이다
그것은 의혹이 될 수도 있고, 딜레마와 아이러니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온갖 유혹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사람에게 인식가능한 최대의 희화는, 해피앤딩은 희망이란 말 속에 담겨 있다
희망이란 한 단어는 사람에게 실제로 엄청난 무게가 있는 무거운 말이다
보통 밝은 미래 정도로 아름답게 채색된 장미빛깔로 연상하기 쉬운데, 희망은 사람의 실존에 비추어서도 죽음과 대척되는 영원성이라든가, 온갖 불의가 만연하고 부정부패가 들끌는 세상, 그 디스토피아와 언젠가 아마겟돈이란 최후의 대전쟁으로 종말을 맞게될 인류의 운명 차원에서도, 그런 예언적 실사와 표징을 앞에 두고도 그렇게 엄청난 사태를 넘어서도 사람에게 그 생명을 보장하고 그 보호를 명시하는 실제적으로 강력한 말이기도 한 것이다
희망, 하면 그런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희망이야 말로 인간생명인 사람에게 그 생명을 살아있게 하는 본질적인 근원이 아닐까
판도라 상자의 마지막 출현도 희망이라고 하지만, 사람은 판도라 상자가 펼치는 세계성에 대꾸하는 단지 그런 피조물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그래서 신화나 설화가 사람에게는 재미있는 교훈이 담기고 무언가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진리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다
성경책이란 그렇게 사람이 자신의 지성을 가지고 바람직하게 보지 않으면 사람이란 피조물을 그 대꾸성에 지나지 않는, 그렇게 한정된 존재로 보게 하는 우에 빠지고 해를 끼칠 수 있는 근거가 되게도 한다(온갖 사이비들과 갖은 위선을 보게 되면 뼈저리게 체감할 수도 있다)
예수 강생(카톨릭과 같은 그리스도교는 예수를 사람이 된 하느님, 곧 그런 신으로 본다) 이 후 2000년간 그리스도교의 전통을 지켜온 카톨릭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영원한 생명(영원한 삶)과 Heaven(하느님 나라)에 연관된 존재로 여긴다(본다, 믿는다, 아멘(그러합니다))
카톨릭신자들이 이 지상 삶을 나그네 삶으로 보고 그 신앙의 여정, 최후에는 영원한 생명과 Heaven이 있다고 카톨릭의 모든 성인들처럼 믿는 진리의 전체(사람입장에서 본다면)와도 같은 것이다
고작 100년도 못사는(129살도 있고 하지만 보통 99% 이상은) 인간입장에서 참으로 엄청난 비약과 도약이 아닐 수 없다
실제 사실을 압도적으로 넘어서는 그런 희망의 실현인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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