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7일 (목)
(녹) 연중 제12주간 목요일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

자유게시판

강철한님 저희 회사에 오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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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경 [kreuz] 쪽지 캡슐

2001-07-26 ㅣ No.22977

 

흐흐..........저희 회사가 좋은 회사라니 음..뿌듯합니다.

노조가 없어서 제가 하나 만들 예정입니다.

완전한 족벌체제로 대리급 이상 진급은 불가능한 회사기도 하지요.

제가 맨날 인터넷에 들어와 있는 이유는 .. 별로 중요한 건 아니지만

회사가 튼튼하질 못해서 그렇습니다.

(새직장 구한다는 소리가 아니지요......알아들을 분은 아시겠지요)

 

저는 조선일보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미워한다면 계속 그모양으로 살다 죽도록 내버려두겠죠.

하지만 조선일보는 수많은 기자들이 그 안에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습니다.

다시 건강해지도록 주변에서 많은 애를 써야죠.

관심이 있으니 지적도 하는 겁니다.

 

제가 말한 다양성이 주체를 없애고 분열된 양상으로 나가는 ... 하는 어려운 말 쓰셨는데요.

간단한 표현 있지 않습니까? 중구난방이라고...

제가 말한 다양성을 그정도밖에 못 알아들으셨다면,

제2차바티칸공의회에서 종교의 다양성에 대해 개방된 자세를 취한 것도 역시

분열된 양상으로 나아가는 포스트 모더니즘이나 해체론의 입장으로 ’확대’ 해석하십시오.

 

하지만 누군가의 글을 읽고 해석할 때에는 가능하면 그대로 해석해야 합니다.

가장 단순하게, 가장 최소한도의 의도로 해석해줘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 거기서 발견되는 논리적 모순을 지적하는 것이 토론입니다.

이것이 인간인 이상 완벽하게는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님처럼 아전인수격으로 아주 당당하게 ’확대해석’한다고 외치는 것은 잘못된 태도지요.

추정, 확대해석 등은 토론의 극약이지요.

님은 토론한다고 하시면서 극약을 드신 겁니다.

지금 이 토론게시판에서 이처럼 앵무새족들이 늘어나는 이유도

귀를 막은 채 타인의 이야기를 확대해석하는 사람들 때문이지요.

서로간의 의견차이를 ’교회의 분열’로까지 확대해석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예.....님의 글을 인용해볼까요?

 

교회에서 주체를 없애면 주님을 없애고, 새롭고 또 새로운 주님을 모신다는 확대된 생각으로 해석할 수 있죠. 새로운 이단주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죠. 제가 앞에 썼듯이 주님을 모시는 다양한 방법을 말씀하시는 건지, 앞뒤없이 다양성을 말하시니까 혼란스러워서요.

 

재밌습니다.

제가 언제 새로운 주님을 모신다고 했습니까?

그야말로 ’확대해석’하시는군요.

그럼 제가 님의 주장에 대해

현재의 정구사 신부님들을 모조리 사제직무집행정지시키고

로마에서 보수파 신부님들을 모셔다가

라틴어식 미사를 하고 싶어하신다고 확대해석해도 되겠습니까?

 

제가 말한 지극히 단순한 다양성에 대해

저런 식으로 왜곡하시는 모습을 보니

조선일보가 그렇게 된 것도 독자들 책임이 있겠구나 싶습니다.

님도 조선일보 독자 중 한분이셨겠지요?

확대, 왜곡하는 조선일보만 보시니...

확대해석이 토론의 기본인 줄 아시는 겁니다.

 

제 글 중에서

새롭고 또 새로운 주님을 모신다라고 해석할 부분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지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토론의 기본이겠지요?

 

제가 매번 글을 쓸 때마다 님의 글을 전체 인용하는 것은

다른 분들이 보실 때 제가 님 식으로 확대해석하거나 왜곡해석하는 부분이 없는지

검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일이 찾아보지 않아도 쉽게 검증이 되겠지요.

하지만 님이 그렇게 하지 않고, 제 글의 한 구절 인용도 없이

위와 같은 표현으로 저를 매도하려고 애쓰시는 것은

무식함의 극단적 발악이라고 보고 싶어집니다.

 

저는 국가라는 한 전체 안에서의 국론의 다양성,

성당이라는 하나의 전체 안에서의 여론의 다양성을 이야기한 겁니다.

님이 말하는 다양성은 외모는 다양하더라도 생각은 통째로 같이 하자,

생각은 다 다르더라도 어쨌든 전 국민이 합심해서 조선일보 사랑하자...그런 건가요?

님이 말하는 다양성이 일본 극우파나 독일 제3제국에서 어떻게 사용되었지요?

민주주의라는 다양성의 첨단을 요구하는 이데올로기의 이름을 끌어다붙였던

수많은 전체주의 국가의 말로는 어떠했지요?

 

또다시 님의 글입니다.

 

다양성의 사고는 논리적인 사고보다는 감각이나 감정을 수용하는 것이라고 보는데요

 

다양성의 사고는 감각, 감정, 논리적인 모든 면에서

자신과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며,

그 다른점이 나에게 해악을 끼칠 때 반대할 권리를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어쩌면 위의 글은 님이 게시판에서 ’토론’을 하기보다는-토론은 논리성을 앞세우는 글입니다

감정적인 울부짖음을 토로하고 싶었을 뿐이라는 자기고백일 수도 있을 겁니다.

논리적으로 어찌 지금 조선일보만을 일방적으로 옹호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정부를 반대해보고 싶은 감정적인 울화 정도라면 이해가 가겠습니다.

 

님의 글 인용합니다.

 

나름대로 생각하고 끌어들여 사용하면 되지요.

 

토론은 각자 자신이 생각한 것을 말하되,

논리적으로 옳고, 정확한 논리를 펴야 하는 것입니다.

수필이나 시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나에게 정확한 논리는 남에게도 정확해야 합니다.

a=b이며 b=c이니 a=c이다...라는 것을 모두에게 인식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a=b이며 c=d이니까 a=c 이런 식의 논리를 펼친다고

나름대고 생각하고 끌어들여 사용하게 되면

그게 바로 왜곡...조선일보가 제일 잘 하던 ’왜곡’이 되는 겁니다.

 

예...

님의 글을 통해 신심이 깊으신 분이라 생각합니다.

미사가 생활의 일부분이시며,

저녁미사 시간에 맞춰 퇴근하실 수 있으시니 좋으시겠습니다.

저도 생활의 일부로 삼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안타깝습니다.

좋은 직장 다니시나봅니다.

신심 깊으시니 주변도 좀 돌아보십시오.

성당 안에서 여유롭게 예수님과 대화만 하지 마시고

예수님께서 정치범으로 피흘리셨음을 생각도 하시고,

예수님께서 그 당시 왜곡된 언론에 의해 돌아가셨음도 생각해보십시오.

(유대인의 왕!!)

만약 현재 예수님께서 그때처럼 소외된 모습으로 다시 오신다면

조선일보는 그때의 그 왜곡된 모습으로

우리 예수님을 못박는 데 또 일조하게 될 겁니다.

 

저는 오밤중까지 여기 들어와 있을 겁니다.

그 이유는 잘 아실 겁니다.

좋은 회사에 다니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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