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홍) 성 이레네오 주교 학자 순교자 기념일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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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조각난 슬픔 속에(추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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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shell88] 쪽지 캡슐

2002-04-17 ㅣ No.32114

    우리의 조각난 슬픔 속에 (추모시)

  -- 4/15일 김해 항공기추락사고의 희생자를 기억하며

 

 -글쎄 또 사람들이 많이 죽었대

  큰 사고가 났다는군-

 

  하도 많이 들은 말이라

  이젠 예전처럼 크게 놀라워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부끄러워하지만

  그래도 이번엔 정말 놀랐습니다.

 

   오랜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려

   모두 반갑다며 산과 들과 사람들이

   목마른 가슴을 적시고 있었는데

   이 기쁨에 깊이 젖어들 틈도 없이

   날아온 믿기지 않는 소식

 

   여행을 마치고

   집에 다 와서도

   집에 들어오지 못한 채

   떨어진 비행기와 함께 숨진 사람들

 

   가족에게 줄 선물 보따리도 풀어보지 못하고

   어디론가 흔적 없이 사라졌다고 하네요

   아니 불 속에 새카맣게 타버려

   형체 조차 알아볼 수 없다고 하네요

   사랑하는 이들의 조각난 시신들처럼

   우리의 슬픔도 조각이 나

   어떻게 모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일상의 모든 시간들이

   웃음을 잃고 통곡합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하나요,하느님

   죽음 보다 더 고통스러울 유족에게

   우린 어떠한 말로 위로를 건네야 하나요

 

   원망과 노여움과 비애로  

   아직도 폭우가 쏟아지는 그 마음을 읽어주며

   진정으로 함께 슬퍼하는 것만이

   그나마 작은 위로가 될수 있을까요

 

   오늘은 세수하다가도,기도하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자꾸만 눈물이 나옵니다

   아름다운 봄꽃들도  반갑지가 않고

   생마늘 한쪽 삼킨 것 처럼

   마음이 하얗게 아리고 쓰려옵니다

 

   큰 슬픔과 불행을 당한 후에야

   우리는 스스로 너무 가난하고

   힘이 없음을 절감하며 조금 겸손 해 지는걸까요

   아니면 슬플 때에만 당신을 부르는

   비겁한 자들인걸까요

   어쨌든 마음으로나마 기댈 큰 언덕이

   어느 때 보다 필요함을 잘 알고 있답니다

   그러니 우리의 조각난 슬픔 속에,하느님

   당신은 조금씩 힘이 되어주셔야만 합니다

   슬픔을 슬픔 속에 천천히 치유할 수 있도록

   오래 오래 따뜻한 눈길로 가엾은 우리를

   끝까지 이해하며 기다려주셔야만 합니다

 

   오늘은 무심한 듯 맑고 푸른

   남쪽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기도합니다

 

   죽은 이들 모두 당신의 나라에서

   평온히 쉬게 해 주십시오

   이렇듯 조각난 슬픔 속에서도

   우리의 사랑과 기도는 조각나지 않고

   탄탄하게 이어지도록 도와 주십시오

   서로 돕고 신뢰하는 눈길로

   더욱 한 마음이 되게 해 주시고

   자신을 잊고 희생자를 돌보는 이들처럼

   늘상 남을 배려하는 습관을

   다시 배우고 익히는 용기를 주십시오

   국경을 뛰어넘는 용서와 인내로

   평화의 도구 되는 지혜를 주십사고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직도 드릴 말씀은 많지만

  이만 접어둘게요,하느님

  침묵 속에 봉헌하는 더 깊은 기도를

  더 깊이 들어주십시오. 아멘.

   -------------------------------

 

  부족한 글입니다만.....김해공항에서 희생된 고인들을

  기억하며 적어 본 작은 기도...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 여기 게시판에 두고 갈게요.    

  읽어주심에 감사드리는 작은 수녀..해인

 

  부산 광안리 성 베네딕도 수녀원에서 02/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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