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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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튼소리"(CMC노조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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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호 [yeswell] 쪽지 캡슐

2002-06-21 ㅣ No.35288

"허튼소리"(집회서 20장 18~23)

 

18절a:실언하기보다는 길에서 넘어지는 편이 났다.

 노동운동,인권...좋은 말입니다.하지만 그대들의 욕심이 한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지!!

 당신네들보다 굶주리고 헐벗고 병들어 심음하는 이들의 소리없는 울음을 진정 그대들은 아는가?

 저또한 대학시절을 민주화와 가난하고 고통받는 민중들의 해방을 위해 온 몸으로 고통속에 싸웠고

 나의 대학이라는 기득권조차 포기하려하며 투쟁했었지요.그덕으로 어려운 직장생활속에 허덕이며 살아왔고

지금은 육신이 병든 쇠약한 몸으로 한가장으로서 무거운 가슴을 안고 산다오.모래시계 세대의 뼈아픈 고통속에

일궈낸 잔치상에 이제 그대들은 술주정꾼의 분에 넘치는 명분없는 투쟁에 이몸도 구역질이납니다.

자신들의 끊임없는 욕망의 질을 높이기에 혈안이되어 투쟁이니 인권이니 운운 하며 집단이기주의와 소영웅주의 심리에 편승하려는 그대들이 심히 가엾군요.과연 그대들은 어떤 십자가를 지는 것인가? 과연 그대들은 80년대의 뼈아픈 자기희생과 두려움과 공포를 이기며 남을 위해 투신하는가? 동료들의 배고픔과 인권유린이 그토록 절박하며 그대들의 자기희생을 요구하는 것인가? 정말그러한가? 정말 그러한가? 정말 그러한가?

여기에서 그대들이 눈물로 호소할 정도로 우리의 미천한 간구와 투쟁동참이 진정으로 절실한가?

 

18절b:저렇듯이 악인은 한 순간에 망한다.

 "이렇게 거듭거듭 나를 시험하고 나의 말을 듣지 않는 자들은 그누구도 저희 선조에게 주겠다고 맹세한 땅을 보지  하리라.이토록 나를 업신 여기는 자는 결코 그땅을 보지 못하리라.(민수14:22~23)

"야훼의 손이 짧아서 못할 일이 있겠느냐?나의 말이 그대로 이루어지는지 이루어지지 않는지 곧 보게 되리라."(민수12:23)

 

19절a:불쾌하게 구는 자는 때에 맞지않는 이야기를 즐기며

  그대들의 극단적인 자기도착적인 이기적투쟁의 표본은 온국민의 소박하고 열렬한 관심이 월드컵에 쏠리고 그를위해 놀랄운 열기속에 함께하는 이 시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투쟁에 몰두하는 그대들의 반민중적 반국민적 반소시민적 반보편적 정서에서 보이듯이 소영웅적인 명분 약한 투쟁에 집착되고 경직되어 있다.

19절b:끊임없이 조악한 말을 지껄인다.

 나는 그대들의 투쟁 현장속에서 내걸린 수많은 슬로건을 보고 분노하지 않을 수없었다.선동을 위해서는 성직자 수도자의 약점을 교묘하게 비아냥거리고 조소하고 인격을 깔아뭉개는 그대들의 비열하고 비이성적인 폭력을 보고서이다.예를 들어 한가지만 말해보면 "수녀님 수녀님은 임신 안해보셨죠?(비아냥)" 이것은 작은 예에 불과 하다는 건 그대들이 잘 알것이다.

20절a:바보의 말은 아무리 훌륭해도 듣는 사람이 없다.

 참된 인권,정의,민주화,자기투신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나를위해?동료를 위해?오로지 물질적이고 세속적복리를 위해? 나의 투쟁은 남을위한 인간적이고 기본적인 도움이 필요하고 사랑이 필요한 곳에 나를 희생함에있다.

그대들은 육신의고통으로 병든자들의 신음소리에 관심과 사명을 찾기보다 오로지 물질적가치로서 그대들의 고귀한 소명을 스스로에 의해 왜곡당하고 선동당하고 있다.고통받고 있는 우리사회의 어둔골목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풀칠하며 짐승처럼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이 있음을 잊지말자.그네들의 삶의 소리없는 신음이 참된투쟁의 현장이어야하거늘!!!

20절b:때를 가리지 않고 마구 말하기 때문이다.

그대들의 무절제한 도배글과 선동 또는 호소(?사실은 비난이 많다)는 사실 여기게시판에 대한 겸손한 반성을 필요로한다. 여기는 그대들의 선동장이 아니다.수많은 사람들이 작으나마 진리를 찾고 묵상하며 신앙의 나눔을 위해 말없이 오간다.지나친 이기적 충동이 그대를 염치불구한 자들로 스스로 만들어갔다.소리없는 수천명의 회원들의 권리도 그대들과 똑같다는 것을!!! 현명한 개도 시도때도없이 짖지아니하고 때와 장소를 가릴줄 안다.

21절a:어떤 사람은 가난하기 때문에 죄를 짖지 않는다.

 그렇다.사실 그대들보다 더욱 열악하고 힘든 노동조건속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 살람들도 그대들처럼 컴퓨터앞에서 여유롭게 투쟁을 노래할 시간적 물질적 마음적 여유가 없는 사람이 많다.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을 묵상해보라.그대들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고???그럴때 그대들은 영웅적 투사가 아니다...

사실 영웅적인 사람은 동료들의 집단압력과 심리적 이지메를 감수하고 자신의 소명을 말없이 하는자다.

그들은 자신보다 가난하고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자들의 아픔을 알기때문이고 최소한 병들어 신음하고있는 환자들을 내돈벌이와 투쟁의 구조물로 보지않기 때문이다.

21절b:그는 편안한 마음으로 쉴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마음깊은 곳에 양심의 위로를 받고 자신의 용기에 스스로 만족하며 자기일에 더욱 깊은 소명으로 나아갈 것이틀림없다.하느님은 그렇게 겸손하고 순명하는 이의 편이시다.

22절a:어떤 사람은 체면을 지키다가 일신을 망치며

선동은 집단 군중심리를 조직화하는 것이라 그 덫을 빠져 나오기란 쉽지않다. 분명히 양심과 경우를 보아 지나침과

명분이 약함을 알면서도 조직이란 틀은 족쇄처럼 구성원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것이다.조직의 일원으로서 소외당하지않으려는 자기가식이 헛된투쟁의 구호속으로 자신을 가두고 마는 것이다.

22절b:또 어리석은 자의 눈치를 보다가 자신을 망치기도 한다.

또한 조직을 이끄는 선동자의 힘(말의 능력과 직위의 권위)에 스스로 짓눌려 나의 양심과 이성의 합리적 판단은 묵살되고 억지춘향격인 투쟁의대열에 꼭두각시처럼 힘없는 가식적인 전사가 되는 오류를겪는 것이다.물론 그에 대한 책임은 어김없이 자기에게 올것임을 알고있어야한다.

23절a:어떤 사람은 체면 때문에 친구에게 많은 약속을 했다가

공연히 그의 원수가 된다.

노조집행부를 비롯한 선동에 앞장선 일단의 부류들은 동료들을 끊임없이 그대열에 묶어두기위해 우리들의투쟁은 반드시 쟁취된다고 약속한다.갖은 격려섞인 동료애를 자극하는 문구와 투쟁의 목표와 협상내용과는 무관한 감정적이고 자극적인 상대방비하 격하에 열을 쏟는다.그들은 예전의 숭고한 자기희생으로 민주노조를 지켜내고 조국의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투쟁한 선배들과 다르다.선배들이 눈물과 피로 일궈낸 노조를 집단이기주의와 명분없는 투쟁의 깃발만 나부끼는 것이다.간부된 입장에서 자기의존재와 영향력을 과시하고 조직을 활성화하는 것은 이해가가나 조직연대의 헛된 구호와 투쟁속에 많은 동료들을 잘못된 투쟁의대열로 이끌어 들이고 선동을 직업처럼 가물에 비기다리듯 목청을 돋우는 것이다. 그로인한 피해는 누가책임을 질 것인가? 그대들이 쳐든 구호와 요구는 정녕 수많은 노조원들의 가슴저린 아픈 숙원이었던가?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자발적인 신음을 구호로 삼았는가? 힘든투쟁의 눈물속에 서로가 하나되고 인간성회복이라는 숭고한 대업을 이뤄냈는가?그대들이 상대하고 있는 사용자(성직자,수도자)가 그렇게 치욕스런 자본주의의 이기적이고 악덕적인 교활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고 함부로 혀를 놀리는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과연 그대들은 그네들처럼 보다더 숭고하고 인간적 연민에 잠못 이루고 사랑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인가?성직자 수도자가 목소리만 높여 요구하면 순진하게 무조건 사랑이라는 캔맥주를 쏟아내는 멍청한 사랑자판기인가? 그대들은 그렇게 착각하고 유도선동하고 있지 않는가? 더이상 그대들의 함정에 빠져 결국은 독성으로 인한 하느님의 원수가되고 동료들의 양심의가책과 좌괴감과 직장상실이라는 뼈아픈 고통과 절망감을 초래하는 어리석은 결과를 초래하지 않기를 바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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