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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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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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선 [peterpan65] 쪽지 캡슐

2002-08-04 ㅣ No.36912

 

 하필이면 휴가를 떠나는 날이 뉴스에서 보도한 바와 같이 가장 peak날.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진부 IC로 빠져 나가 목적한 오대산 소금강에 도착하니 걸린 시간이 정확히 11시간...

 

모처럼 휴가 기분에 들뜨고 또 결혼후 처음으로 나탈리아와 함께 떠나는 휴가길에 저는 벌써부터 파김치가 되어 있었습니다.

 

나탈리아가 아직은 운전을 못해 나혼자 그 긴시간을 핸들을 잡고 있으니 몹시 피곤이 몰려 왔지요.

 

그것도 소위 오토매틱도 아닌 차 인지라 밀리는 길에 조금씩 조금씩 차를 앞으로 빼는것도 왼쪽 다리에 무리가 오더군요.

 

그리고 어제 오는 길은 정확히 7시간만에 집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총각시절 산과 인연을 맺은후 죽어라 이산, 저산을 누비고 다닌 탓에 대한민국에서 그래도 내로라 하는 이름있는 산들은 다 올라가 본 저로서는 지금껏 다닌 산중에 개인적으론 유독 오대산에 애착이 가더군요.

 

나탈리아에게 오대산 소금강 계곡의 절경에 대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수다를 떨었고 여름 휴가때 꼭 데리고 간다는 약속을 지킨 셈이지요.

 

소금강 계곡은 이번이 저로서는 3번째.

 

물론 나탈리아는 처음이고 말입니다.

 

갈 때마다 아~그 아름다움이란...말로써는 형용할 수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원래는 청학산이라 불리웠다고 하더군요.

 

그러다 율곡 선생이 그곳을 보고 감탄 끝에 작은 금강산이라 이름을 붙이어 오늘날까지 小金剛이라 불리고 있다고 합니다.

 

정상은 노인봉이라 불리우는 해발 1,338m의 봉우리가 있습니다.

 

제가 처음 이 노인봉을 오른것은 10여년전 회사에서 마련한 극기훈련때 였지요.

 

그당시 등반 순위를 매겨 시행했을때 3위로 오른 저력도 갖고 있는데 그후 그곳 절경에 빠져서 훗날 친구녀석과 함께 다시 오른 기억이 나고 이번에 나탈리아와 또 오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미리 숙소를 예약하려 했지만 이미 전부 매진이 되어있는 관계로 어디서 자야할지 특별한 계획도 없이 대책없이 왔지만 뜻이 있는곳에 길이 없겠습니까?

 

저희와 함께 이번 여행을 동행하소서! 라는 기도를 전날 주님께 드리고 함께 왔으니 저희 부부가 휴가 가있을 동안 주님께서 저희 부부와 함께 소금강에 계셨을텐데 여러분들 혹시 주님이 공석중이라 별일 없으셨는지요?

 

죄송합니다. 사정상 어쩔수 없이 저희가 모시는 바람에 잠시 공석중이어서...*^^*

 

도착해보니 야영장도 매진이 되어서 관리인들이 출입을 금지 시키니 난감 하더군요.

 

산속에서 해는 떨어지고 별빛에 의지해서 이곳 저곳을 돌아다닌 끝에 한자리를 마련해 텐트를 쳤지만 여러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과는 조금은 동 떨어진 곳이라 솔직히 말해 무섭기도 했습니다.

 

겁에 질려있는 나탈리아에겐 큰소리도 쳐보고 하느님이 함께 하는데 뭐가 무섭냐고 했지만 텐트속에서 바람에 텐트가 흔들거려도 자다말고 눈을 번쩍 뜨게 된것이 몇번인지 모르겠습니다.(보통 흔들거리는게 아니라 텐트가 뽑혀 날아갈듯이 요동을 치더라구요.)

 

깜깜한 사방이 꼭 무슨 전설의 고향 촬영하는 세트 같은게 영~탐탁치도 않았지만 솔직히 제일 무서웠던것은 그런 허망한 귀신 얘기가 아니라 같은 사람이 제일 무서웠습니다.

 

그렇게 거의 뜬눈으로 밤을 보내고 다음날 반가운 햇살을 받으며 저희는 계곡을 따라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나탈리아는 산이라고는 고작 도봉산 한번 오른것이 전부라고 하니 이 여자가 과연 1,338m, 그것도 가파른 그 봉우리를 오를까? 걱정도 되었습니다만 그것은 기우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어찌나 날다람쥐 같이 산을 잘 오르던지 무너지는 제 자존심은 나중엔 자존심이고 뭐고 살려줘~please~를 외친것이 몇번인지...

 

전날 11시간의 운전과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운탓인지 아니면 세월속에 저의 세포도 낡아가는지 도저히 전 정상을 오를 자신이 걸으면 걸을수록 없어져만 갔습니다.

 

드디어 한계가 왔다고 생각한 저는 내평생 산을 접한지 처음으로 항복을 하고 마는 사태가 오고야 말았습니다.

 

얼굴이 창백해오고 다리가 풀리는데 아! 여기서 더 강행하면 큰 무리가 옴을 본능적으로 감지, 아직도 앞서서 펄펄 날아 올라가는 나탈리아를 불러 세워 철수 할것을 부탁했습니다.

 

실망이 큰 그녀의 얼굴이 내내 가슴이 아프고 미안했지만 산이란 오기 하나 갖고만, 오를수 없는 교훈을 잘 아는지라 정상을 2.3km를 남기고 저희는 철수를 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내려오는 내내 이럴수가...이럴수가...를 속으로 외치면서 그간 내몸을 제대로 관리 못했음을 원망하고 반성하면서 서러운 맘이 밀려드는데 그냥 울고도 싶더군요.

 

내려오는 길도 다리가 풀려서인지 몇번을 주저앉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월탓이라고 하면 어르신들께 야단을 맞을터이고...지금까지도 내가 낙오를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전 육군 보병 출신입니다.

 

산악행군으로 군생활을 마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텐데...창피한 마음에 그날 내려와 술잔을 기울이며 필요 이상으로 나탈리아 앞에서 [내가 왕년엔...]하는 수다를 떨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녀가 괜히 웃으며 듣기라도 하면 마치 저를 비웃고 있는것만 같아 괜히 화도 내기도 하는 제가 스스로 생각해봐도 우습기만 했습니다.

 

그날 술에 취해 다시 그 텐트속에서 세상 모르고 뻗어 누웠지만 다음날 죄없이 미안해하는 나탈리아를 달래주기 위해 행선지를 바꾸어 정동진과 안인, 그리고 등명 해수욕장에서 발 담그고 놀수 있는 기회를 주며 우리는 다시 헤헤 거리며 놀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휴가를 보내고 왔습니다.

 

뭐, 제가 전문 산악인도 아닌데 낙오좀 하면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예전에 2박3일간 산등성이를 누비며 올랐던 노인봉보다 훨씬 힘든 산들도 거뜬히 올랐던 저로서는 사실 충격이 없다고는 할수 없더라구요.

 

아마도 산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조금은 이해해주리라 믿습니다.

 

건강은 건강할때 지켜야 한다는 큰 교훈을 얻고 이번 휴가를 마치고 다시 내일 일상으로 돌아가는 마음을 새로이 다져 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사히 다녀올수 있게 함께 동행해 주신 주님께 감사를 올리며 오늘 미사를 봉헌할수 있었습니다.

 

※사족: 정상을 2.3km 앞두고 주저 앉아 나탈리아를 부를때 한무리의 학생들이 우르르 내려오더군요. 가슴에 세례명을 써 붙인 명찰을 달고있어 주일학교 여름 캠프임을 한눈에 알아봤지요.

 

어느 성당이냐고 물었더니 면목동 성당이라고 대답하는데 퍽이나 반가왔습니다.

 

면목동 성당 중, 고등부 주일학교 여름 캠프도 무사히 마쳤는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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