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0일 (목)
(녹)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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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메쥬고리예는 왜 단죄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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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220.77.163.*]

2005-03-18 ㅣ No.3308

밑의 글은 메쥬고리예가 속해 있는 모스타 교구의 전 주교님이신 파바오 자니치 주교님께서  생전에

발현에 관하여 쓰신 글로 메쥬고리예를 알 수 있는 가장 신빙성 있고 공신력 있는  글입니다.

이미 인터넷 상에서 돌고 있는 줄로 아오나 아직 읽지 못하신 분들을 위하여  올립니다.

밑의 글을 읽으시면 들을 귀가 있는 자는 알아 들으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떠오르시게 될 것입니다.

그 이외에 메쥬고례에서는 현재  어떤 반란에 버금가는 무질서와 혼란의 사태가 일어 나고 있는지

현 주교님의 말씀과 다른 자료들을 올릴 터인데 한꺼번에 다 올리기는 어려울 것이므로

몇 번에 나누어 올리겠습니다.

영어 원문의 출처와 모스타 교구 전화 번호와 주교님의 이메일등 참고 사항도 적어 놓았습니다.

 

<메쥬고례 발현의 진상>


< 1990년 2월: (메쥬고례 관련) 자니치(Zanic) 주교의 선언문 >

 

나는 나를 오해하고, 나를 성모님의 적으로 생각할 신앙심 깊은 영혼들이 아마도
많이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진리와 교회를
수호하는 일이며 나는 내가 이 일을 위해 내 생명을 바칠 수 있도록 하느님께
기도 드린다. -- Pavao Zanic 주교

 

< 메쥬고례의 진실: Zanic 주교의 최근 성명 >
[ Zanic 주교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들 ]

1. 메쥬고례에서의 사건들에 관한 진실이 유고슬라비아 주교회의(BKJ)에서 조사
  되어지고 있는 중이다. 그들의 작업은 천천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진술로써 나는 위원회가 가능한 한 빨리 결론에 도달하도록 도우려 한다.  
  메쥬고례를 우호적으로 선전하는 사람들은 교회와 세계 앞에서 이 사건을 참된
  발현으로 기정사실화 하려는 공세를 펴고 있다. 이것은 사건 초기부터 있어 온
  메쥬고례 옹호자들의 의도였다. 그들이 성공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상대측(조사 위원회)은 너무 느리게 일을 추진 중이거나 혹은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들과, 진실이 유린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전세계의
  많은 이들이 내게 보내온 동기부여로 인해 나는 나의 의무와 나의 양심에
  의거하여 그리고 조사 위원회를 돕기 위하여, 또 하나의 진술을 하기로 결심
  하였다. 이 글로써 나는 메쥬고례 옹호자들의 양심을 일깨우고자 한다.
그들의 길은 쉽고 넓으며 모든 길이 내리막 길이나
나의 길은 힘들고 가시밭 길이며 오르막 길이다.

교회와 성모님은 거짓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예수님께서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 8:32),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났으며 그 때문에 세상에 왔다. 진리 편에 선 사람은
  내 말을 귀담아 듣는다”(요한 18:37) 라고 말씀하셨다.
메쥬고례에 대한 거짓을 간략하게만 설명한다고 해도 200페이지 정도는 족히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과학적 접근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이 짧은 요약서가 전부이다. 나는 몇몇 성명서들에 내 이름이 맨 앞에
나온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이 그리 편치는 않다. 하지만 나의 주교로서의 위치와
의무 때문에 발현의 시작서부터 나는 줄곧 사건의 중심에 있어왔다. 나는 몇몇
유쾌하지 못한 일들을 언급하는 것에 대해서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들이 없이는 논쟁은 힘을 잃는다. 
  그렇지만 가장 유쾌하지 못한 일들은 언급치 않기로 하겠다

[ 진실을 은폐하는 메쥬고례의 핵심세력들 ]  
2. 특기할 만한 태도:
Atlas 여행사의 관광 가이드인 마리나는 1989년 8월, 파나마에서 온 신부를
한 명 내 사무실로 데리고 왔다. 그의 이름은 프레스비떼로 로그리게즈 떼오필로 이며
‘루르드의 성모님'의 사목자였다. 그와 동행하여 기자이며 IATA 여행사
의 대표인 까르멘 세실리아  까프릴레스 도 함께 왔다 - 주소: Avenida Alberto Navarro,
Apartado 1344 Zona 7, Panama.
‘마리나’는 자신이 영어통역 관광 가이드이며 메쥬고례 때문에 회개하게 되었다
  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 신부는 나에게 왜 내가 발현을 믿지 않는지 그 이유를
물었다. 나는 그에게 믿지 않는 이유를 적어도 20가지는 댈 수 있으며 그 중에서
  진지하고 올바른 신앙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이 발현이 초자연적 기원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족하다고 말해
  주었다. 그는 나에게 “제발 최소한 한가지 이유 만이라도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그에게 전 프란치스코회 사제인(ex-Franciscan priest) 이비카 베고(Ivica Vego) 의 경우를
예로 들려 주었다. 그는 ‘불순명’ 때문에 교황님의 명령에 의해 프란치스코회
총장 신부로부터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쫒겨났으며 (수도)서원은 풀리고 성직은
금지 당했다. 그러나 그는 이 명령에 순명하지 않았으며 계속해서 미사를 집전
하고 성체를 분배하며 자신의 애인과 시간을 보냈다.
  이 사실에 대해 쓰는 것은 유쾌하지 못한 일이나 성모님에 대하여(메쥬고례
발현의)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이것은
필요한 일이다. 빅카(혹은 비스카 - Vicka)의 일기와 (기타) 발현 목격자들의 진술
에 의하면 성모님께서는 “베고(Vego) 신부는 무고하며(이를 문제삼는) 주교가
잘못했다” 고13번씩이나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그의 애인인 레오폴다(Leopolda) 수녀가 임신했을 때 이 두 사람은 모두 메쥬고례
  와 수도생활을 떠났으며 그들의 아이가 태어난 메쥬고례 근방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 현재 그들은 2명의 아이를 두고 있다. 그의(Vego) 기도서는 메쥬고례
에서 아직도 판매되고 있으며 여타의 장소에서도 수십만부가 팔리고 있다.

진실을 은폐하는 집단에 걸려들어간 ‘마리나’(관광가이드)를 비난할 수는 없다.
내가 ‘마리나’에게 ‘베고’신부의 스토리를 영어로 통역해 달라고 부탁했을 때
그녀는 메쥬고례의 옹호자들이 의례이 해온 방식대로: “이러한 추접스런 일을
이 사람들에게 꼭 알려야만 되겠습니까?” 라고 즉시 대꾸했다.
나는 대답하기를 “만약 그녀와 다른 메쥬고례 지지자들이 진실을 숨기고 이러한
  ‘추접스런 사건들’을 덮어두지만 않았더라면 파나마에서 온 이 사람들은 더 일찍
깨달아서 메쥬고례로 여행을 오는 헛수고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이것은 옳바르지 못한 일이며 이러한 진실을 숨기는 것은 죄악이다. 비록 이것이
불미스러운 일이라 하더라도 이 사실은 알려져야만 하는 것이다.

3. 마리아 신학자인 르네 로랑땡신부 역시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다.
그는 1983년의 성탄절 즈음에 나를 방문하러 왔으며 나는 그에게 저녁을 대접
하였다. 그가 나에게 왜 발현을 믿지 않는가? 라고 물었을 때 나는 그에게 비스카
  의 일기와 다른 발현 목격자들의 진술에 따라서 이 ‘성모님’(this Lady) 은 주교에
  맞서는 말씀들을 해왔다고 말했다. 로랑땡 신부는 재빠르게 “이것을 출판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많은 순례객들이 있으며 그들이 이곳에서 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했다.
나는 이 저명한 마리아 신학자의 말에 아연실색했다.
불행하게도 이것은 로랑땡 신부의 입장 – 진실을 은폐하고 거짓을 옹호하는 –
으로 남게 되었다. 그는 메쥬고례를 소재로 10권 가량의 책을 써 왔으며 대부분
  의 그의 책에서는 ‘진실’과 ‘자니치’ 주교는 비난을 당하고 있다. 그는 사람들이
  무엇을 듣고 싶어하는 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말을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발견하는 것은 그에게는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다. "A veritate quidam
auditum avertent, ad fabulas autem convertentur" –  “그리고 그들은 진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꾸며낸 이야기에 마음을 팔 것입니다”(디모 후서 4:4) 
(발현의) 시작부터 로랑땡 신부에 의해 지도되어져 온 발현 목격자들과 메쥬고례
의 옹호자들은 공산국가에 사는 현대의 신앙인들이 기적적인 어떤 것이나 성모님
으로부터 오는 눈에 보이는 기적적인 치유와 메시지를 매우 빠르게 믿는다는 것
을 깨달았다.

4. 메쥬고례 사건을 만들어낸 주역들은 은퇴주교인 F. Franic, R. 대주교, 르네 로랑땡신부,

프란치스코회의 Rupcic 신부, Amorth, Rastelli S.J., 그리고 그외 몇몇
프란치스코 신부들과 전세계에서 온 영향력 있는 지도자들이다. 신문기사들과
잡지, 영화와 기념품들과 함께 많은 책들이 빠르게 출판되었다. 이 사건에는
관광여행사와 성지순례객들이 개입되어 있고 60십만부의 기도서가(프란치스코회
로부터 쫓겨난, 두 명의 프란치스코회 사제들인 ‘Vego’와 ‘Prusina’가  쓴)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어 출판되었으며 ‘성모님’의 피상적인 메시지에 매료된 광적인
기도 그룹들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모든 일의 가장 큰 동기로서의 ‘돈’이 자리잡고
  있다.
발현에 의혹을 가지게 하는 이러한 사실들에 대해서 누구도 언급조차 하지않았다.
주교는 모든 사람들에게 경고해 왔으나 ’기계’는 쉬지않고 돌아가고 있다.
50건의 기적적인 치유가 이야기 되어졌고 그 다음엔 150, 200, 300 건 등으로
수효가 늘어났다. 로랑땡 신부는 이중에서 56건의 서류를 골라 그것들을 ‘루르드
의 의학 연구소’로 보냈다. Mangiapan 박사는 1984년 4월, 이에 대한 보고서에서
이 서류들이 실질적인 가치가 없으며 메쥬고례 발현의 진지한 증거로서 사용되거
나 고려될 수 없다고 답했다. Diane Basile 의 치유에 대해 많은 글들이 쓰여져
왔다. 나는 Mangiapan 박사에게 관련 서류를 보냈고 박사는 이 경우를 연구하여
매우 조심스런 입장("opinion plus que reservée.") 을 취했다. 이것은 ‘복합경화증’의
경우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책에 씌여질 것이다.

[발현 목격자들에 대한 신뢰도 – 미리야나 드라기체비치(Mirjana Dragicevic)]
5. 발현이 시작되고 나서 한달 뒤에 나는 발현 목격자들에게 질문을 하기 위해
메쥬교례로 갔다. 나는 그들 각자에게 십자가 위에 손을 얹어 맹세하게 했고
  그들이 진실만을 말할 것을 요구했다.(이때의 대화 내용과 맹세는 카세트 테잎
으로 녹음되어 있다)
첫번째로 나는 미리야나에게 질문했다.:

미리야나: “ 처음에 (성모님을 뵈었을 때…) 우리는 양떼를 돌보러 갔었습니다.
           (이 때 보좌신부가 그녀의 말을 가로막고서 그들이 사실은 부모들의
              눈을 피해 담배를 피우러 갔었던 것이라고 나에게 말했다)

주교: “ 잠깐만 미리야나. 너는 지금 맹세 중에 있다.
       너는 양들을 돌보러 나갔었느냐? ”
 
미리야나는 자신의 입에 손을 갖다대며…,

미리야나: ” 죄송합니다. 우리는 담배를 피우러 나갔더랬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나서 그녀는 시계바늘이 뒤죽박죽이 되어있는 것을 두고
 ‘기적’ 이 일어났다며 그 시계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시계를 시계 전문가에게
 가져다 주었고 그는 그 시계가 틀림없이 떨어졌었고 그 때문에 맞지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시계를 다시 그녀에게 돌려주고 나서 앞으로는 이것을 가지고 기적
 이 일어 났다라고 얘기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녹음된
 테잎에서 그녀는 시계에 어떻게 기적이 일어났는 지와 자신들이 처음에 양들을
 찾으러 나갔었다고 진술했다. 후에 그녀는 성모님께서 “모든 종교는 동등하다”
 라고 말씀하셨다 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미리야나를 얼마 만큼이나 더 믿어야 하나?
[발현 목격자들의 신뢰도2 – 비스카 이반코비치(Vicka Ivankovic) ]
6 비스카 이반코비치는 처음부터 발현의 주요한 목격자였으며 메쥬고례를 탄생시킨
프란치스코회의 Tomislav Vlasic 신부는 그녀를 통해 메쥬고례에 관한 거짓을
대부분을 만들어 왔다. 그는 1984년 5월 13일 교황 성하께 보낸 편지에서 다음
과 같이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저는 발현이 하느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에 의거하여 메쥬고례의 시현자들을
지도하고 있는 토미슬라브 블라지치 신부입니다.” …

  그가 사막으로 가거나 침묵했더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지난 과거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충분히 이야기해주기
  때문이다.

비스카는 많은 말을 하였고 많은 것을 적었으며 그렇게 하면서 그녀는 많은
모순 속에 빠져들었다. 첫번째 조사위원회의 위원이었던 Nikola Bulai 교수는 그녀
에게 질문을 하고 그녀에 대한 조사내용을 60 페이지 분량으로 작성하였다. 그는
그녀의 일기의 비 논리적인 면과 거짓말들을 모두 열거하였다. 여기에서 나는
단지 ‘피묻은 손수건 사건’에 대해서만 언급하도록 하겠다.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된 한 남자를 만난 어떤 택시 운전사가 있었다는 소문이
퍼졌었다. 이 남자는 이 택시 운전사에게 피묻은 손수건을 주면서 “이것을 강에
던지라”고 택시운전사에게 말했다. 택시운전사는 길을 계속 갔는데 그러다가 검은
옷을 입은 한 여인을 만났다. 그녀는 택시 운전사를 세워 그에게 손수건을 하나
달라고 말했다. 택시 운전사는 자신의 손수건을 주었으나 그 여자는 그 손수건이
아니라 피 묻은 손수건을 달라고 말했다. 운전사가 그녀가 원하는 손수건을 주자
그녀는 “당신이 만약 이것을 강에 던졌었다면 지금 세상의 종말이 왔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비스카 이반코비치는, 이 사건이 과연 사실인지에 대해 그들 발현 목격자들이
성모님께 물었으며 성모님께서는 사실이라고 대답하였고 이와 더불어 “피로
뒤덮힌 사람은 내 아들 예수이며 나는(성모님)은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었다”
라고 말씀하셨다고 자신의 일기에 적었다.

  이것은 어떤 종류의 신학인가?
위 사실인 즉, 손수건 하나가 강물에 던져지면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멸하실려고
하신다는 이야기이고 세상을 구원하실 분은 성모님이시라는 이야기가 된다!

7. 1982년 1월 14일, 비스카와 마리야와 어린 야곱이 나를 방문하러 왔다.
  비스카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으므로 매우 신경질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비스카: “성모님께서는 주교님이 프란치스코회 신부님들에게 너무 가혹하게
          처신하신다는 것을 주교님께 말씀드리라고 저희들을 보내셨습니다…”

  주교: “어떤 식으로 내가 가혹하게 하느냐?”

비스카: “저희들은 모르지요.”

  모스타 교구에 파견된 두 명의 프란치스코회 사제들인 Ivica Vego 신부와
  Ivan Prusina 신부는 사생활의 문란함과 불순명 때문에 모스타 교구로부터 떼내어
새로 지어진 모스타의 주교좌 관할 본당의 신자들을 담당하는 소임으로
  전출시키려고 하였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장상들 앞에서 “자신들은 모스타를
떠나지 않을 것이며 그 이유는 비스카를 통해서 성모님께서 그들에게 떠나지
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면서 자신들을 변호하였다. 이것은
프란치스코회 헤르제고비나 지방 관구의 위원회의 멤버가 내게 전해준 말이다.
나는 면담 때에 다음과 같이 물었다.

주교: “성모님께서 모스타의 파견신부인 Ivica Vego 신부와 Ivan Prusina 신부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말씀하신 것이 있느냐?”

  세 명의 목격자 모두: “ 아니요, 말씀하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 신부님들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들의 대화는 30분간 지속되었고 나는 모든 대화 내용을 테잎에 녹음하였다.
나는 모스타의 파견 신부들에 대하여 여러 번 같은 질문을 하였으나 그들 세 명
의 목격자들은 언제나 “우리는 그분들을 알지 못합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 후에 나는 비스카의 일기에서 그들이 그 파견신부들을 매우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들이 거짓말을 하였다는 것은 분명하였으나 나는
그들과 대화하는 동안 그들이 나를 신뢰하도록 하기 위하여 이 사실을 말하고
싶지가 않았다.

8. 1982년 4월 4일 비스카와 야곱이 “성모님께서 보내셔서 왔다”며 나를 방문했다.
모스타 교구에 파견된 2명의 프란치스코회 신부, Vego 와 Prusina 는 그들 수도회
  의 장상에 의해 그 해 1월에 프란치스코회에서 쫓겨났다. 많은 메쥬고례 추종자
들과 ‘성모님’께서는 쫓겨난 신부들을 옹호했다.
우리가 대화하는 동안 비스카는 매우 흥분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비스카: “지난번 주교님과 이야기 할 때는 우리가 주교님께 모든 것을 다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는 우리를 꾸짖으셨습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이야기하느라 잊어버렸습니다….  “

주교: “ 무엇을 잊었느냐? ”

비스카: “성모님께서는 저희들에게 Vego 와 Prusina 신부는 여전히 사제이며
        그러므로 이 분들은 다른 신부님들처럼 미사를 집전할 수 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

주교: “ 잠깐만!, 지난 번 우리들의 면담이 있기 전에 성모님께서는 이미
         이 사실들을 너에게 말씀하셨느냐? “

비스카: “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 저희들을 주교님께 보내신 것입니다.
         지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 하느라 이것을 말씀드린다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

지난 번 면담 때에 나는 비스카에게 성모님께서 2명의 신부들에 대하여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몇 번이나 직접 물어보았다.  비스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
이 분명하였고 이것은 나로 하여금 그녀의 말을 신뢰 할 수 없게끔 하기에 충분
하였다.

  마리아와 야곱도 이 거짓말에 같이 참여하였다.

9. 1983년 1월 말경,  예수회 신부인 Grafenauer 신부가 메쥬고례의 현상에 대해
조사할 목적으로 나에게로 왔다. 그는 20개의 테잎을 들었다. 다 듣고 난 뒤
그는 ‘성모님께서는 메쥬고례에 발현하신 것이 아니다’ 라는 결론을 내렸으며
그러므로 자신은 메쥬고례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내가 강하게 권하여
그는 메쥬고례에 갔다. 그리고 나서 며칠 뒤에 그는 Vlasic 신부에 의해 설득을
당해서 되돌아 왔다. 그는 몇 가지 자료들을 가지고 와서 테이블 위로 내던지며
  말했다. “ 성모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
  나는 이것을 성모님의 도움을 받아 주교를 뒤짚어 엎으려는 음모라고 이해하였다. 
그가 가져온 자료는 비스카의 일기와 교구신문, 그리고 손으로 쓴 자료들을 편집
  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이 자료들이 처음에 어디에서 쓰여졌는지 입증하기가
어렵다. 비스카와 메쥬고례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주교에게 1년 넘게 숨겨
왔던 것이다. 여기에 몇 가지 사례를 인용하겠다:

  1981년 12월 19일: 성모님께서는 주교가 헤르체고비나의 혼란스런 상황에 대해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하셨다. 성모님께서는 또한 이비카
                     베고 신부는 비난받아서는 안되며, 그렇지만 주교는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성모님께서는 “베고
                     신부는 모스타에 남아야하며 그 곳을 떠나서는 안된다” 라고
                     말씀하셨다.

1982년 1월 3일: 모든 ‘발현목격자’들이 함께 성모님께 ‘이비카 베고’ 신부에
                 대해 물었다. 성모님께서는 대답하셨다. ”이비카(베고) 신부는
                 잘못이 없다. 만일 그가 프란치스코 수도회로부터 쫓겨난다
                 하더라도 그는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비카(베고) 신부는 무죄하다.”      
                   성모님께서는 이 말씀을 세 번이나 되풀이 하셨다.

1982년 1월 11일: 우리는(발현목격자들) 다시 한번 모스타의 두명의 신부님들에
                   대하여 (성모님께) 물어보았고 성모님께서는 그들에 대해 이전
                 에 말씀하셨던 것과 같은 말씀을 두 번이나 반복하셨다(참조:
                 1982년 1월 14일 비스카는 주교와 함께 교구청에 있었으며
                 그날 면담에서 그녀는 베고 신부를 알지 못한다고 말하였다.)

  1982년 1월 20일: 아이들은 Ivica Vego 신부와 Ivan Prusina 신부가 수도회로부터
                  쫓겨났는데 그들이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성모님께 여쭈어
                  보았다. 성모님께서는 “ 그들은 무죄이다. 주교의 결정은 가혹한
                  것이다. 그들은 머물러 있을 수 있다.” 라고 말씀하셨다.

  1982년 4월 15일: 비스카는 성모님께 “당신께서는 Ivica Vego 신부와 Ivan Prusina
                  신부에 대하여 모든 것을 종합해서 말씀해 주실 수가 있으신지
                  요?” 라며 질문 하였다. 성모님께서는 처음에 미소를 지으시며
                  “ 그들은 무죄하다 “ 라고 말씀하셨다. 성모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두 번이나 반복하셨다.: “ 주교는 잘못하고 있다….
                  그들이 모스타에 머물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그들은 가끔씩
                  미사를 집전할 수 있으나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않으려면 모든
                  일이 잠잠해질 때까지 조심해야 한다. 그들에게는 잘못이 없다
                  ….”

  1982년 4월 16일: 어제 성모님과 함께 있는 동안 우리는 Ivica Vego 신부와
                  Ivan Prusina 신부를 위해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바칠 수
                  있는 지 성모님께 여쭈어 보았다. 성모님께서는 즉시 대답하셨
                  다: “ 그럼, 할 수 있단다”. 하시면서 그들과 함께 기도하셨다.
                  우리가 기도를 마쳤을 때 성모님께서는 미소지으시며 “이들
                  두 신부는 영원히 너의 마음에 남아 있을 것이다” 라고 말씀
                  하셨고 나는 “ 성모님 말씀이 옳아요” 라고 대답하였다.

1982년 4월 26일: 성모님께서는: “ 주교의 마음에는 진실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 고 말씀하셨다. 주교에 대해서 이비카(Vego 신부)
                  와 이반(Prusina 신부)는 잠잠하게 있어주기를 바란다. 지금 주교
                  가 하는 일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며 그는 자신이 좋아
                  하는 일을 할 수는 있지만 언젠가는 너희들이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징벌이 주교에게 내려질 것이다.

10. 비스카는 성모님께서 이와 같은 것들을 말씀하셨고 그녀는 자신의 일기에
  이것을 기록했다는 사실을 결코 부인한 적이 없다. 이 사실에 대한 확증과
  진실성은 Grafenauer신부(예수회)가 자신과 비스카와 마리야와의 대화를 녹음한
카세트 테잎를 통하여 가장 잘 확인 될 수 있다. 그는 메쥬고례 본당에서 주교에
  게 녹음된 카세트 테이프의 복사본을 한 부 남겼고 Zagreb 의 주교회의에도
  또 다른 한 부를 남겼다. 사람들은 이 테이프들을 들어봐야 한다!

  다음은 비스카와의 대화이다:

  Grafenauer신부: “주교님은 그 여인이 성모님이신지 아닌지를 가려내야 할 의무가
                 있으시다.”
 
비스카: “ 주교님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분이 성모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Grafenauer신부: 그러나 교회는 스스로 확신에 차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바로 이것 자체가 성모님께서 여기에 발현하시지 않았다는 징표
              라고 말하고 있다. 

  비스카: 의심하는 사람들은 의심하도록 내버려 두십시오. 나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Grafenauer신부: 이것은 좋은 징표가 아니다… 너는 한 번은 주교님께서 교황님의
                 말씀보다는 성모님의 말씀을 더 잘 들어야 한다고 말했지?
  
비스카: 네 그랬습니다.

  Grafenauer신부: 이것은 주교님께서 교황님의 말씀보다 너의 말을 더 들어셔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스카: 아니요. 제가 아닙니다.

Grafenauer신부: 그러나 주교님은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대해 모르고 계시고
                 아마도 그것은 성모님이 아닐 수도 있다.

비스카: 성모님이 맞으세요.

Grafenauer신부: 너는 주교님은 비난받으셔야하고 Vege 와 Prusina 두 신부는
                 무죄하며 그들이 그들의 사제로서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스카: 네, 그렇게 말했습니다.

Grafenauer신부: 그들이 고해성사도 줄 수가 있는가?
               성모님께서는 이에 대해서 말씀하셨니?

비스카: 네.

Grafenauer신부: 만일 성모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고 교황님께서는 그 신부들이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면….

비스카: 교황님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나는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Grafenauer신부: 보자. 이것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것이 성모님이 아니시라는 결론
                 에 도달 할 수 있게 하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교황님께서
                 안된다고 말씀하실 때에는 그들은 미사와 고백성사를 집전할 수
                 가 없다. 그런데 성모님께서는 그들이 그 둘을 모두 집전할 수가
                 있다고 하신다니,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비스카: 나는 성모님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Grafenauer신부: 그것은 진짜일 수가 없다. 나는 이것이 성모님의 말씀이 아니라
                 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면 내 손을 불 속에라도 집어 넣겠다.
                 어떤 사람이 큰 선물(은총)을 받았다면 거기에는 큰 위험(유혹)도
                 동시에 존재한다. 마귀는 이 사람에게 달라붙어 활동 할 수
                 있는 것이다.

  성모님께 대한 이 얼마나 불경스런 모욕인가!
  이 진술들에 의하면 성모님은 교회 내의 순명과 주교에 대한 순명, 그리고
프란치스코 수도회 본원과 교황님께 대한 순명정신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성모님은 Vego를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11. Cerno 에서의 발현.
   Cerno 는 메쥬고례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을이 아니다. 메쥬고례에서의
   발현이 시작된 지 8일째 되던 날에 Cerno 근방에서 ‘발현’이 있었다. 발현 목격
   자들은 이 발현이 있었던 날 저녁에 그 당시 메쥬고례 본당의 사목신부였던
   Jozo(요조) Zovko 신부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였다. 그들은 성모님께서 앞으로
   3일만 더 즉, 7월 1일 2일 3일에만 더 발현하시게 될 것이라고  4 –5 회에
   걸쳐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이 것은 카세트 테잎에 녹음되었고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Ivo Sivric 신부에 의해 출판되었다. 녹음 테이프는 복사되어졌다. 
   몇 년이 지난 뒤, Janko Bubalo 신부는 ‘성모님과의 천번의 만남’ 이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이 책은 비스카와의 대화를 실은 책이다. 비스카는 이 사건(Cerno
   에서의 발현)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Bubalo 신부는 성모님께서
   “앞으로 3일만 더 발현하겠다” 라고 말씀하셨는지 아닌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비스카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비스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과 성모님께서는 비스카가 말한 것을 말씀
   하실 리가 없다는 것은 확연한 사실이다. 비스카는 이 진술들을 거짓으로
   조작했다.
   그렇다면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로 남아있어야만 되겠는가?
   좀 더 큰 선을 얻기 위해서(순례, 기도등) 악을 (성모님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것과 같은) 행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발현 목격자들의 신뢰도3 – 마리야 파블로비치(Majija Pavlovic) ]
12. 발현 목격자인 마리야 파블로비치.
   다음은 Crafenauer 신부와 마리야와의 대화 내용을 글로 옮긴 것이다.

   Crafenauer 신부: 성모님께서는 주교님께서 잘못하고 계시다고 말씀하셨느냐?

   마리야: 그렇습니다.

   Crafenauer 신부: 성모님께서는 Vege 와 Prusina 두 신부가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말씀하셨니?

   마리야: 그렇습니다.
  
 Crafenauer 신부: 성모님께서 주교님이 잘못하셨다고 말씀하실 때 그것은 즉시
                  의심스러운 것이 되며 우리는 이것이 성모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고 결론내릴 수가 있는 것이다. 발현 목격자들은 주교님
                  께 잘못이 있다는 말을 공공연히 퍼뜨리고 있다.

   마리야: 성모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것을 말씀하셨습니다.

   Crafenauer 신부: 이 일은 헤르체고비나 지역에서 신자들의 반발을 야기시키고
                   있으며 이것은 좋은 열매가 아니다. 사람들이 주교에게 분노
                   하며 주교님의 명예를 훼손시킬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성모님께서 그러한 일을 하실 수가 있지?
                   교회는 성모님께서 선하신 분이라는 것과 그 분은 결코 그러한
                   일을 하실 분이 아니시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마리야: 성모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것을 말씀하셨습니다.

F. Franic 대주교와 로랑땡 신부와 기타 다른 많은 사람들이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으나 그들은 침묵하고 있다. 그리스도로부터 교회를 통하여 합법적인 임무를
부여받은, 그들의 교사요 목자이며 전례집전자(사제)인 주교가 “그 마음 속에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없다”라고 말하는 그 발현 목격자들의 진술을 통하여
주교를 전세계 앞에 죄인으로 선언하고 그가 회개해야 하며 메쥬고례에서는
이런 지향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당부하는 이러한 성모님의 말씀에 대해 어떤
종류의 신학이 이를 (진실로) 수용할 수 있겠는가? 메시지 중에는 주교가 발현을
  믿고 메쥬고례의 일들에 협조하는 좀 더 나은 행동을 취하도록 예수님께서 친히
  기도하시겠다는 내용도 진술되어 있다.
주교가 성모님의 심판을 기다려야만 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당치도 않은
말이다. 그것은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대한 모독이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죄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계시며 성모님께서도 나를 질책하실 수 있으
  시다. 하지만 하느님만이 홀로 심판자이시다. 나는 나의 주교로서의 임무에
  대하여 교황청에 의해 경고나 견책을 받아 본 적이 결코 없다.

13. 메쥬고례를 만들어 낸 Tomislav Vlasic 신부는 여러가지 (팜플렛들) 중에서
  ‘ A calling in the Marian Year’(밀라노, 1988년 3월 25)라는 제목의 17페이지 분량의
  팜플렛을 여러 나라 언어로 발간하여 배포했다. 이 팜플렛은 이태리 ‘파르마’에서
함께 생활하는 젊은 남녀의 기도그룹의 설립에 관한 건이다. (교회 역사상 한 번
도 들어본 적이 없는! ) 그들은 세상을 구할 사람들이 될 것이었다. 성모님께서는
분명히 Vlasic 신부와 (메쥬고례에서 치유되었다라고 알려진 독일 여성인) Agnes
Heupel 에게 - Vlasic 신부가 팜플렛에서 언급한 대로- 성프란치스코나 성녀
글라라의 경우와 같은 방법으로 이 두 사람이 함께 이 공동체를 설립하고 이끌어
가라는 확실한 영감을 주셨다. 이 계획을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 Vlasic 신부는
마리야에게 ‘그녀의 증언’을 3페이지 분량으로 첨가할 것을 요구했다. 그녀는
이 공동체의 회원이 되었으며 1988년 4월 21일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 Sento il bisogno….” – “ 나는 …..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원했던 바대로 성모님께
  서는 ‘평화의 여왕’ 공동체에게 공동체 설립에 관한 일정한 구상을 내려주셨고
  그 분은 이 공동체에 메시지들을 주는 Agnes 와 Vlasic 신부를 통해 공동체를
이끄신다. ‘나는 1달 반 동안 이 공동체에 있었다.’ 나는 성모님 발현을 보았고
성모님께서는 이 공동체의 설립이라는 고통의 신비를 통하여 나를 이끄신다.
나는 성모님께서 한 번 내게 말씀하신 이 모든 것에 대하여 기록을 하고 또 출판
해야 한다. 나는 성모님을 통하여 메쥬고례 본당에서 시작되어진 하느님의 계획
을 이해하고 있다.”

이상은 Vlasic 신부의 책 15-16 페이지에서 발췌한 것이다.

메쥬고례의 옹호자들은 젊은 남녀가 같은 집에서 함께 살면서 잠자고 일하고
기도하는, 젊은 남녀로 구성된 그 공동체가 결국 그들 자신과 메쥬고례, 둘 모두
를 붕괴시킬 것이라는 것을 재빠르게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수도회 관구장인 Jozo Vasilj를 파르마(Parma) 로 파견했다. 그는 ‘파르마’의
B. Cochi 주교와 T. Vlasic 신부와 함께 로마의 수도원 설립관련 성성으로 갔다.
그들은 “교회는 이런 류의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을 허가할 수 없다” 는 성성의
답변을 받았으며 T. Vlasic 신부는 이 공동체를 해산시키고 ‘헤르체고비나’ 지방
  으로 복귀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Vlasic 신부는 즉시 순명하지 않았고 나중에서야
  헤르체고비나로 되돌아갔다.
이것이 그 공동체에 대하여Jozo Vasilj 신부가 내게 설명해 준 내용이다.

14. 위의 진술을 쓴 사람과 동일한 인물인 마리야 파블로비치(Majija Pavlovic)는
  1988년 7월 11일 또 다른 공적 선언문을 작성하였다. 종이 한 장 분량으로 작성
  된 이 진술서는 이 전 진술과 같은 방법으로 배포되었는데, 그녀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 나는 하느님과 성모님과 교회 앞에서 도의적인 의무감을 느낀다….
‘A calling in the Marian Year’의 본문에는 T. Vlasic 신부에 의해 제기된 질문에 대한
  성모님의 답변 메시지를 마치 내가 준 것처럼 나타나 있다. 지금 선언하거니와,
  나는 Vlasic 신부와 Agnes Heupel 이 하는 일에 대한 확인을 성모님으로부터 받은
  적이 결코 없다….
나의 첫번째 진술은 진실된 것이 아니다. Vlasic 신부는 여러 차례에 걸쳐 내가
발현목격자의 자격으로 세상이 기대하는 선언을 써줄 것을 내게 제안했었다.
내가 이야기한 그 모든 것은 진실이 아니다. 나는 이것을 거룩하신 성체 대전
에서 선언한다. 

  이 선언은 마리야 파블로비치(Majija Pavlovic)의 이름으로 서명되었다.
 
15. 마리야는 자신이 첫번째 진술을 썼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Vlasic 신부는 아주 여러 번 그녀가 진술서를 쓰게 하였고 이것은 발현목격자 중
  의 한 사람을 (그가) 조종한 것으로 판명이 났다. 그러므로 우리는 첫번째와
두 번째 진술 시에 마리야가 의도적으로 거짓증언을 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녀는 거짓말을 해왔고 이것에 대한 탓을 성모님께로 돌리고 있다. 마리야는
Vlasic 신부의 손에서 놀아난 노리개임이 분명한 것이다. 이것은 일찌기 나에게
명백한 것이었지만 - 그리고 지금까지도 -, 나에게는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할
만한 물적 증거가 없었다.(그런데 이번 마리야나의 양심선언으로 그 물적증거가
확보된 것이다!- 역자주)
T. Vlasic 신부는 같은 방식으로 모든 발현 목격자들을 배후조종 해왔다. 이런
식으로 조종당하는 상황 하에서 마리야는 한 기도 모임에서 누군가가 주교에
대해 거론하자 성모님께서 어떻게 우셨는지를 보았다고 했다: “성모님의 눈에서
많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은 성모님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려 성모님 발 아래
의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성모님께서는 우시기 시작하셨으며 우시면서 하늘로
올라가셨다.- 1984년 8월 22일.
이것은 주교를 겁주려는 의도로 쓰여진 T. Vlasic 신부의 명백한 조작품인 것이다. 

왜 메쥬고례의 변호자들은 마리야의 두 번의 상반된 선언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는가? 이러한 추접한 일들은 세상으로부터 숨겨져야만 하는가? 로랑땡 신부가
이야기 하는 것처럼 메쥬고례에서 많은 회개가 일어나기 때문에 그런가? 로랑땡
신부는 그의 책 ‘최근의 소식들’ 제 3권의 27페이지에서 다음과 같은 일화를
들려주고 있다: 어떤 한 주교가 마리야에게 자신의 교구 사제들에 대해 메시지를
주시기를 기도해 달라고 청했다. 마리야는 “ 성모님께서는 그들이 로랑땡 신부의
책을 읽어야 하며 책을 널리 보급시켜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라고 대답하였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거짓말을 성모님께 전가 시키는 것은 끔찍한 죄악이다.
세상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느 누가 더 이상 그들을 믿을 것인가?
그들은 신뢰를 잃어왔다. 아무도 이 물적 증거를 없앨 수는 없다. 이 증거는 복사
  되어 질 것이며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나는 이러한 물적 증거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커다란 감동과 사적인 관심을 가지고 메쥬고례 사건을 비이성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소경들이다. 그러나 이 자료들은 교회와 마리아 신학의 역사의 한 부분
으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발현 목격자들의 신뢰도4 – 이반 드라기체비치(Ivan Dragicevic) ]
16. 비스카는 자신의 일기에서 ‘큰 징표’에 관해 13번이나 언급했다.
교구 신문에서는 14번 언급되었고 카셑 테잎에서는 52번, 그리고 주교와의 대화
에서는 셀 수 없이 언급했었다.
1982년 봄, 발현 목격자들에게 나는 공공연한 비밀을 만들지 말고 징표에 대하여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들을 모두 적으라고 명했다. 내가 그들에게 제안했던 방법
  은, 자신이 알고있는 사실을 종이 위에 2부(Duplicate)로 적게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들을 봉투에 넣어 봉한 다음 한 부는 그들에게 맡기고 또 다른 한 부
는 주교가 보관하자는 것이었다. 징표가 나타났을 때 우리는 봉투들을 열게 될
것이며 징표가 예고된 대로인지 아닌지를 보게 될 것이다. 그 당시 메쥬고례의
본당 신부였던 T. Vlasic 신부는 발현목격자들에게 “성모님께서는 아무것도 적지
말라고 말씀하셨으며 그러므로 우리들은 적을 수 없었다”라고 말하라고 그들에게
일러주었다.
  그러나 ‘이반 드라기체비치’는 그 당시 보스니아 지방의 Visoko 에 있는
프란치스코회 소신학교에 재학 중 이었고 그는 이 사실을 제 때에 전해 듣지
못하였다. 첫번째 조사위원회의 위원 2명이 - Dr. M. Zovkic and Dr. Z. Puljic (현재
Dubrovnik 교구의 주교)- Visoko 에 있는 이반(Ivan)을 만나러 갔다. 그들은 ‘이반’
에게 질문들이 타이프로 쳐져있는 푸르스럼한 빛깔이 나는 종이 한 장을 주었다.
이반은 그들 앞에서 징표의 내용을 적었고 서류에 날짜를 적었으며 그들(조사
위원)이 보는 앞에서 아무 말 없이 혹은 어떤 두려움의 표시도 없이 서류에 서명
하였다. 몇 년이 지난 뒤, 로랑땡 신부는 이반이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말하기를
  “나는 종이 위에 절대로 아무 것도 쓰지 않았으며 조사위원회의 2명 위원들을
  속였다” 라고 말했다고 썼다.

1985년 3월, 조사위원회 위원 3명이 로랑땡 신부가 쓴 것이 사실인지를 물어
보기 위하여 ‘이반’에게로 갔다. 이반은 그것이 사실이며 그들이 봉투 안에서
백지만을 발견 할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교구청에 가서 자유로이 봉투를 열어
볼 수 있다 라고 말하였다. 3명의 조사위원들은 다른 조사 위원들이 회의를 하고
  있는 모스타(Mostar)에 돌아와서 모든 위원들 앞에서 봉투를 열었다. 봉투 안에
들어 있는 푸른 빛이 도는 종이 위에서 그들은 징표의 내용이 다음과 같이 씌어
  져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성모님께서는 징표를 남겨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이 징표의 내용을 밝히는 것은 너희들이 믿게 하려는 것이다. 메쥬고례에
  는 나의 발현을 기념하여 나의 모습대로 만든 큰 성지가 들어서게 될 터인데
이것이 징표이다. 그것이 언제 일어나느냐고? 그 징표는 6월에 주어질 것이다”

날짜: 1982년 5월 9일
발현목격자: 이반 드라기체비치 서명

이 거짓말을 듣고 난 뒤 첫번째 위원회의 위원들은 장차 있기로 예정되어있던
조사작업을 종료키를 원했으나 이를 미루게 되었다. 이런 일이 있은 지 몇일 상간
으로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Slavko Barbaric 신부는 발현목격자들을 어디론가 데려
가서 ‘이반’도 포함한 그들 모두에게 “이반은 징표에 관한 비밀을 밝히지 않았다는
것을 주장하는 진술서를 작성하라” 고 교육을 시켰다.

이반은 성모님으로부터의 메시지를 주교에게 보냈다.
1984년 4월 24일 성모님은 주교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내 아들 예수는 주교가 믿을 수 있도록, 그래서 메쥬고례를 위해 더 나은 행동을 취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 성모님은 덧붙이시기를,
  “만약 내 아들이 지상에 다시 나타난다면 주교는 과연 믿을 것인가? “

  조사위원회에 대해서는 성모님께서 다음과 같은 말씀만 하셨다고 한다.
  “기도, 기도, 기도하여라. 내가 준 메시지를 묵상하고 내가 준 메시지대로 산다면
  너희들은 내가 왜 왔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이 진술은 ‘이반 드라기체비치’, 메쥬고례 라고 서명되었다.

17. “ 너무 늦기 전에 메쥬고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가져 그가 재빨리 회개
  하기를 내가 바라노라고 주교에게 전하라. 그는 사랑과 이해와 커다란 책임감
  으로 충만하여 이 일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그가 사제들 사이의 마찰을
조장하는 것을 피하고 그들의 부정적인 행동들을 선전하고 다니는 것을 중단하기
를 원한다. 교황은 모든 주교들에게 제각기 교구들에 일정한 임무를 달성할 의무
를 부여하였다. 이 임무들 가운데는 주교들이 문제들과 논쟁들을 해결해야 하는
임무가 있다. 주교는 헤르체고비나 지역 모든 본당의 영적인 아버지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그가 이 일들(메쥬고례) 쪽으로 마음을 돌리기를 촉구한다. 나는
나의 두번째이자 마지막 경고를 그에게 보낸다. 만일 내가 촉구하는 바가 이루어
  지지 않는다면 나의 심판과 내 아들의 심판이 주교를 기다리고 있다. 이것은
그가 내 아들 예수께로 가는 길을 찾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모님께서는 당신에게 이 메시지를 전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메시지는 인사말과 함께 다음과 같이 서명과 날짜표기 되어있다:
"Bijakovici, June 21, 1983."

Tomislav Vlasic 신부는 아마도 자신만만했던 어느 순간에 자기 스스로 작성했음이
틀림없는 이 서류를 나에게 가지고 왔다.

18. ‘이반’은 2년동안, 발현에 대하여 기록한 자기 자신만의 일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이 일기는 비스카와 다른 이들(발현목격자들)이 적은 기록들과 함께
공개되지 않았었다. 메쥬고례에서의 사건들에 관한 원천적인 단서들임에도
불구하고 이 기록들은 어수룩한 진술들과 명백한 거짓말들 그리고 터무니 없는
말들로 가득차 있다. 이는 그 ‘발현목격자’들이 성모님을 뵙지 않았거나 그녀로
부터 메시지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좋은 증거가 된다. 이들 메시지들은
다른 어떤 사람에 의해 씌여졌고 그 이것들이 마치 이반 자신의 메시지인양
이반으로 하여금 서명하게 만들었다.
Grafenauer 신부가 비스카의 일기 요약본을 내게 가져온 지로부터 좀 지나서 나는
  비스카에게 그녀의 일기를 내게 가져올 것을 명했다.
1983년 5월 7일 그녀는 나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내왔다:
“나는 내 일기의 요약본이 배포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녀의 이 글은 조사위원회가 그 일기는 비스카 자신에 의해 쓰여졌거나 그녀가
그것을 자기 자신의 일기로 여기고 있다는 데 대한 좋은 논거로서 받아들이고
있다는 데에 대한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그 후 Vlasic 신부 역시 이러한
결론에 도달했고 따라서 Vlasic 신부는 1984년 위원회와 내 앞에서
“비스카는 그 편지를 적지 않았으며 프란치스코회의 어느 신부가(십중팔구 Vlasic
자신) 썼고 그는 그것을 그녀에게 서명하라고 주었다!” 라고 진술했다.

이밖에도 ‘배후사주’ 에 대한 많은 유사한 예들이 있지만  그 어느 것도 이것
처럼 명확하고 분명하지는 않다.

[다른 문제점들]
19. 비밀들과 비밀주의.
‘발현’의 시초부터 ‘발현목격자들’은(효과적으로 조사받는 것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확실하게 교육을 받은) “성모님께서는 우리들 각자에게 다르게 말씀
하신다” 라고 말해 왔었다. ‘비밀’이 만들어졌을 때 각자는 자신만의 비밀을
가지게 되었고(모두 60개의 비밀) 그 누구도 그 비밀들을 – 아무에게도 –
밝히려고 하지 않았다.
  ‘미르야나’와 ‘이반카’는 성모님으로부터 아무도 읽을 수 없는 편지를 받았다.
  초창기에는 탈혼이나 공동체를 도피하여 달아나는 때는 없었다. 그들은 공개적
으로 말했고 공개적으로 메시지를 들었다. 그들은 단지 조사위원회만 회피했었다.
조사받는 것을 수락하고 난 뒤, 그들은 ‘성모님께’ 그들이 그 ‘큰 징표’의 내용에
대하여 종이 위에 적어 편지봉투에 봉해도 되는 지를 여쭈어 보았다. ‘성모님’
  께서는 ‘안돼!’라고 대답하셨다. 하지만 ‘이반’은 그 징표를 적었고 나중에 말하기
  를(이 진술은 카세트에도 녹음 되어있다) “성모님께서는 그가 이렇게 한 것에
  대해 꾸짖지 않으셨다” 라고 했다. 이 비밀들은 어느 프란치스코회 사제에게
주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왜 그 비밀들을 조사위원회나 주교 혹은 교황에게는 주지를
않았던 것일까?
처음 몇 달 동안, 그들은 ‘큰 징표’가 곧, 빠르게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첫 해가 지났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어조’(tune)을 바꾸었다.

비스카는 일년 반 동안 ‘성모님의 생애’에 대해 기록했다. 그리고 이것은 성모님
이 허락하시는 때에 출판되어질 큰 비밀이라고 생각되어졌다. 조사위원회는
성모님의 일생에 관해 쓰여진 일기에 대하여 질문했다. 하지만 성모님은 조사
위원회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셨다.
조사위원회가 일기를 입수하거나 열어보지 않고 일기만을 볼 수가 있는 것인가?
아니다, 그건 말도 안된다! 이 사실은 세상 끝날 때까지 이 징표를 기다릴 정도로
순진한 모든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려는 수작(plot)임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나는 이미 이전에도 선언했거니와 지금도 똑같이 선언하는 바이다:
“만일 성모님께서 발현목격자들이 말하는 징표를 남겨주신다면 나는 모스타
  (Mostar)에서 메쥬고례까지(30 Km)까지 무릎으로 기어서 순례를 오겠으며
  프란치스코회 신부들과 발현목격자들에게 용서를 빌겠다.

20. 주교에 대적하는 중상(slander)
사람들은 “주교도 처음에는 믿었다”라고 말해 왔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진실)이 아니다!
공산당들이 프란치스코회 신부들과 발현목격자들 그리고 순례객들을 박해할 때,
나는 그들 모두를 옹호했다. 그러므로 공화국위원회의 위협 때문에 혹은 교구
사제들이 그렇게 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내가 나중에 발현에 대한 의견을
바꾼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단지 많은 사람들에 의해 날조된 중상일 뿐이다.
나는 투옥된 프란치스코회 신부들을 공식적으로 옹호했다. 그런데 Jozo(요조)
zovko 신부는 조사받는 동안 주교는 ‘늑대’요 ‘위선자’라고 말했다. 그는 정확히
그처럼 말했다. 요조신부의 변호사인 Vukovic는 한 동료를 통해 도대체 내가
무슨 일을 했길래 그처럼 심한 비난을 받는지를 물어왔다.

이와 유사하게, Vlasic 신부도 성모님께서 “사탄(이 경우 주교를 뜻함)이 그녀의
계획을 파괴하려고 돌아다닌다”라고 단언하셨다고 자주 말하곤 했다. 바티칸에
있는 자신의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는 이것에 대하여 더 명확하게 썼다.
나는 Vlasic 신부가 주교를 사탄으로 지칭한 것에 대해 그와 그의 수도회 관구장
의 면전에 대고 항의했다. 그는 나의 이러한 이의제기에 대해 부인하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자신이 극도로 감정이 격한 상태에서 이것을 적었다” 고 하면서
자신의 말을 정당화 시켰다. 사람이 감정에 치우치게 되면 이런 말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런 말을 글로 적어서 여러 나라 말로 번역까지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주장되는 열매와 약속되어진 치유들]
21. 그들의 열매에 의거하여.
메쥬고례 옹호자들의 가장 공통적인 주장은 메쥬고례에서의 사건들이 갖는 열매
  들은 성모님께서 여기에 발현하신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라는 것이다. 메쥬고례로
  오는 순례객들보다 메쥬고례 사건에 대해 조금 더 많이 아는 사람들은
“메쥬고례에 가장 충직한 옹호자들은 자신들도 발현에 대해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말한다.
만일 모든 ‘추접한 일들’이 공개적으로 드러날 수만 있다면 메쥬고례 사건에 대한
대답은 모든 사람들에게 명확히 부정적인 것이 될 것임은 확실하다. 하지만
Laurentin 신부, Rupcic 주교, Vlasic신부, Barbaric 신부, 그리고 여타의 사람들이
철저하게 진실을 숨기고 있다. 메쥬고례의 옹호자들은 발현에 대하여 회의적인
사람을 만나게되면 그들 옹호자들은 이 사람을 즉시 고립시키고 어떤 일에 대한
잘못을 뒤집어 씌우거나 J.L. Martin에게 한 것처럼 그를 미친 사람으로 취급해
버린다. 대부분의 신앙심 깊은 대중들은 ‘발현과 치유’라는 거창한 선전 앞에
순진하게도 희생자들이 된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스스로 이 사건의 가장 뛰어난
선전 요원들로 탈바꿈한다.
  그들은 진실이 고의적인 거짓에 의해 숨겨져 왔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멈추는 일 조차 하지않는다. 그들은 그 ‘기적적인 치유’라는 것이 ‘루르드 의학
연구소’(bureau medical de Lourdes)와 같은 연구기관이나 권위있는 전문가들에 의해
확인되어진 건은 단 한 건도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헤르체고비나 지방에서
누가 치유를 받았는지 알고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메쥬고례에 관한
첫번째 소개 책자에서 언급하고 있는 꼬마 Daniel, 노인 Jozo, Vasilj, Venka Brajci,
와 그 밖에 소개된 사람들이 실제로는 치유되지 않았다는 것은 모든 이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22. 치유에 대한 약속들은 이 사건의 특징이다. 약속되어진 치유가 말해진 대로
일어나지 않으면 그들은 그 사실들을 부인해버린다. 왜냐면 이런 약속들은 한번
이라도 녹음되거나 종이 위에 쓰여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많은 약속들이 비극적으로 끝이 났다.
우리의 관심사는 이 약속들이 과연 성모님께서 주신 것인지 아니면 ‘발현 목격자
들이 고안해 낸 것인지를 밝히는 것이다.

벨그라드의 은퇴대주교인 Turk 주교가 설명한 것처럼 Marko Blazevic 씨의 비극적
인 최후는 우리들에게 ‘치유약속’에 대한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Turk 대주교는 1984년 5월 22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대주교는 벨그라드
병원의 심장과 병동에 환자의 자격으로 입원했다. 그가 배정받은 침대는 Mostar
시 근교의 Buna 에서 온 Marko Blazevic 씨가 사용했던 침대였으며 Marko Blazevic
씨는 막 수술실로 떠나려는 참이었다. Blazevic씨는 대주교와 다른 많은 환자들과
의사들 그리고 병원 직원들에게, 성모님께서 ‘발현목격자’들을 통하여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수술실에 참관했던
한 수녀는 나중에 내게 보낸 편지에서, Blazevic씨의 부인과 딸이 ‘성모님의 약속’
에 대하여 자신에게 광신적인 어투로 말하였다고 증언했다. 어느 의사도 이 약속
을 믿게 되었는데 그 환자는 수술을 마친 후 끝내 깨어나지 않았다.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수술실 바깥에서는 일단의 환자들이 열심히 기도를 하였다.
타 종교인들과 무신론자들 앞에서 많은 실망감과 수치감을 남긴 이 사건은 많은
사람들 의 화제거리가 되었었다.
T. Vlasic 신부는 진실을 숨기는 그 자신의 특유의 방법으로 Blazevic 씨의 딸을
설득시키는 데 성공하여 그녀로 하여금 주교에게 가서
“성모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오직 기도하라고 하셨지 수술이 성공할 것이라고
약속하시지는 않았다” 라고 말하게 하였다. 나는 그녀에게 주교와 주교로부터
이 사실을 전해들은 사람들을 거짓말장이로 만들지 말라고 명했다. 

[ 지역 프란치스코회 신부들과 Mostar 교구 사이의 관계 ]
23. 프란치스코회 사제들과 교구 사제들.
헤르체고비나 지역의 본당들에서의 사목활동에 대한 프란치스코회 사제들과 교구
  사제들 간의 관계는 프란치스코회 사제들 자신들과 당시 프란치스코 수도회 출신
인 Paskal Buconjic 주교의 제청과 교황청의 1899년 결정에 의하여 설정되었다.

이 결정에 의하면 교구 내 본당들은 프란치스코회사제들과 교구사제들에 의해서
나뉘어지되 서로가 신자수를 동등하게 50%씩 나누어서 분담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 당시에는 교구사제가 없었으므로 그 때까지 프란치스코회 사제들에 의해 합법
적으로 관리되던 본당들이 1923년에는 프란치스코회 사제들에게 위임되기에
이르렀다.
“ad nutum S. Sedes”
Mostar 교구 출신의 초대 주교인 Cule 주교는 1948년에, 11년6개월 형을 받아
석방될 때까지 8년 반 동안 복역하게 되었다. 그가 석방되고 난 뒤 교구사제들의
수효는 증가하기 시작했다. 1968년, 교황청은 교구 사제단에게 5개의 본당을
되돌려 줄 것을 프란치스코회 사제들에게 명했다. 그러나 그들은 겨우 2개의
본당만을 내놓았다. 수년 간의 의논과 숙고 끝에, 1975년 교황청으로부터
헤르체고비나 지방의 본당 분할관리에 관한 칙령이 하달되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회 신부들은 자신들이 Mostar 교구에서 80% 이상의 신자들을 사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 그리고 집단적으로 교황청의 이 칙령에 반기를
들었다.
  1976년, 불순명으로 인하여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헤르체고비나 관구와 당시의
  관구장인 Silic 신부는 그들의 권한을 박탈당하였으며 그 이후부터 이 관구는
자립권을 박탈당하고 하나의 ‘시범케이스’(ad instar)로서 프란치스코회 총원장
신부가 직접 관리해 오고 있는 형편에 놓여있다.
  1979년에는 헤르체고비나 지방의 프란치스코회 관구에 대해 총장신부 선출권이
  박탈되는 추가 징계가 내려졌다. 이번에 새로 선출된 총장신부는 헤르체고비나
  관구의 회원들에게 해당 지역 주교에 대한 순명정신을 갖추고 또 고취시키기를
  첫번째로 당부했다.

  그러나 불순명은 예전처럼 지금도 지속되고 있으며 ‘성모님’은 이들 불순명의
  프란치스코회 사제들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옹호해오고 계시는 것이다. 

비스카는 발현에 관한 그녀의 일기에서 “성모님께서 헤르체고비나 지방의
교회 내 무질서는 모두 주교의 잘못이라고 말씀하셨다” 고 쓰고 있다.
  성모님은 이 말씀을 아주 여러 번 반복하셨다.

  프란치스코회 사제들 자신들도 스스로가 내분되어 있다. 메쥬고례를 옹호하는
  불순명파 프란치스코회 사제들은 주교와의 우호적 관계를 증진시켜온 자신들의
  모범적 장상들을 쓰러뜨리는 데 성공하였으며 메쥬고례를 옹호하는 무리를
  그 자리에 대신 앉혔다.
새 관구장인 Jozo Vasilj 신부는 프란치스코회 신부들 사이에 평화와 질서를 심는
데 실패하였으며 그 때문에 그는 ‘자이르’의 수도원으로 피신했으며 앞으로도
되돌아 오지 않을 것이다. - 과연 이것을 좋은 열매라 할 수 있는가? 

그의 자리는 부원장 신부가 대신하게 되었으며 총원장 신부는 헤르체고비나 지역
의 모든 회원들에게 순명할 것을 명했고 그렇지 않을 시 관구를(즉 수도원) 해체
할 것이라 말했다. (프란치스코 수도회 회칙 1/89 에 의거). 교황칙령이 완전히
준수되어 질 때까지 헤르체고비나 관구는 독자적인 권한을 부여받지 못할 것이다.
1988년, 프란치스코회 본원으로부터 헤르체고비나 관구로 파견된 세 명의 방문객
들은 “이 관구에는 교황칙령을 준수하고자 하는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과장된 바가 없지 않으나 시사하는 바가 크다.

24. 이상은 메쥬고례가 낳은 열매의 일부분일 뿐이다.
그런데 순례객들은 “주교가 프란치스코회 신부들을 미워한다”는 사실 밖에는
더 이상의 사실을 알지 못한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지역에는 상당수의
프란치스코회 사제들이 주교와 훌륭히 보조를 맞추어 일하고 있으며 이들도
발현을 믿지 않는다. 그들 중 어떤 이는 메쥬고례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많은 선량한 프란치스코회 사제들은 우리가 함께 메쥬고례의 거짓과 맞서
싸울 수 있도록 나에게 뭔가를 진술해 줄 것을 간청해오고 있다.
왜냐면 이들은 그들 프란치스코회 사제들이 온 세상에 거짓을 퍼뜨리고 있고
그것으로 돈을 벌었기 때문에 장차 하느님께서 프란치스코회 사제들을 아주 엄히
벌하실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헤르체고비나 지역에 속한 100명의 교구 사제들 중 발현을 믿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유고슬라비아의 42명 주교들 중(일반주교, 보좌주교, 은퇴
주교를 통틀어서) 오직 한 사람만이 자신은 발현을 믿는 다고 말했으며 그 사건
들을 옹호해오고 있다. 유고슬라비아의 여러 지방 주교들의 도움을 받아 Mostar
의 주교가 소집한 첫번째 조사 위원회의 15명 조사위원들 중 11명은 “메쥬고례
발현에는 초자연적인 것이 아무것도 없다” 고 믿었으며 그 중 두 명은(모두
프란치스코회 사제) 발현이 참되다고 주장했으며 어떤 한명은 시초에는 뭔가가
있었다고 믿고 또 한명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교황청은(메쥬고례의 옹호자들이
퍼뜨리는 이야기와는 달리) 조사위원회의 3년간의 조사를 큰 이의없이 검토했고
또한 주교를 버리지도 않았다.

[ 영적 무분별의 위험성 ]
25. 사건의 시초부터 나는 프란치스코회 신부들에 대해 “우리 모두가 함께
진실을 발견할 수 있도록 그들은 교회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 라며 경고
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주동자들에게는 메쥬고례에서 가능한 한 빨리 미사를 집전하고
선전을 위해 돈을 마련하고 또 주교와 맞서 싸우기 위하여 성모님을 이용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들은 태양의 기적을 만들어냈고 그 결과 많은 순례객들이
태양을 뚫어지게 바라보느라 눈을 상하게 되었다. 그들은 50, 150, 200, 그리고
300번의 치유에 대해 언급을 했었고 신자들이 그들이 말하는 거라면 뭐든지
믿게 할려고 온갖 종류의 일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이러한 짓은 특히 F. Franic
주교와 로랑땡 신부가 거기에 와서 그들을 지지할 때는 더욱 그러하였다.
메쥬고례의 추종자들은 메쥬고례를, 그들 프란치스코회 사제들이 가르치는 대로
그리고 다른 발현 장소들의 경우처럼 생각한다. 그들이 옳던지 틀렸던지 둘 중에
하나이다. 
때에 따른 이 곳에서의 사람들의 놀람과 흥분의 정도는 이들을 극도의 맹신적
신앙과 광신적 신앙으로 이끄는 척도로서 관찰되어 왔다.

26. 이태리 사람들은 ‘Pia Opera di Gesu Misericordioso.‘라는 가짜 수도원을 설립했던
Gigliole Ebe Giorgini 의 일화를 잘 알고 있다. 사회혼인 상으로는 이혼하고 재혼
했던 그녀는 여러가지 가짜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에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많은 젊은 여성들을 자신의 수도회에 모집하였으며 엄청난 액수의 돈을
기부받고 또 벌어들였다. 그녀에게는 자신을 위해 봉사하는 두 명의 사제와 많은
집들이 있었다. 그녀는 이중생활을 하였으며 자신이 스스로 만든 오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의 여형제들은 그녀를 광신적으로 따랐으며 그녀를 ‘Ebe원장’이라고
불렀다. 그녀는 남자 수도원도 설립했는데 뒤늦게까지 남아있었던 자들은 그녀가
윤리적으로 타락한 생활을 했었다고 진술했다. 그녀는 많은 보석류와 금붙이들
그리고 두 대의 요트와 밍크 코트들을 소유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좋은 열매를
내고있다면서 그녀를 맹신적으로 옹호할 때 교회 안의 많은 이들은 그녀의 생활
상에 깊은 우려를 표명했었다. 그녀는 2명의 주교로부터 기도를 받기까지 했다.
야밤에 경찰이 두 번이나 수녀원장 관사에 있는 그녀의 방을 들이닥쳤고 경찰은
자신의 신학생 중의 한 명과 함께 침실에 누워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스캔달’은
세상에 드러났고 그녀는 자신의 고백신부였던 한 프란치스코회 신부와 함께
두 번이나 수감되어 많은 세월을 형무소 신세를 졌다. 언론은 수년 동안 이
스캔달에 대한 기사를 내보냈다. 이에 대한 불법 영화도 만들어 졌다. 그러나
그녀의 추종자들은 그 수도회가 폐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광신적이며 또한 맹신
적으로 그녀를 옹호했다. 그들에 의하면 그녀는 많은 성소를 길러낸 산 성인이며
이것이 그녀가 하느님으로부터 확실이 영감을 받았다는 열매로서 많은 이에게
충분한 논거가 된다는 것이다. 종교적인 맹신행위는 치유되기가 어렵다.
광신행위는 교회의 초창기 역사를 장식했었고 이것이 오늘날에는 사교집단의
근간이 되고 있다.

개신교 목사인 Jim Jones 는 미국지역에 대규모의 자선단체를 일구어 냈다. 그는
거액의 돈을 거두어 들였고 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사교집단으로 끌여들였다.
좀 더 자유로운 종교행위를 위해 그들 중 1000명 가량의 사람들은 남미의
Guyana 로 향했다. 거기서 그들은 ‘ Jonestown ‘을 만들었다. 그들은 독재시스템을
구축하고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메시아’에게 광적인 복종을 요구했다. 거기서
어떤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는 지와 Johnes의 불멸성 그리고 몇몇 사람들이
어떻게 거기서 탈출하다 붙잡혀서 죽임을 당했는지에 대하여 많은 것들이 쓰여
졌다. 미국 군대가 투입 될 것이라는 소문이 널리 퍼짐에 따라 Johnes 는 모든
사람들에게 ‘정글’ 로 피난할 것을 명령했다. 더 이상 돌파구가 없음을 깨닫고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에로의 여행을 위해 자살할 것을 종용했다. 그들 중
9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독이 든 커다란 항아리 쪽으로 독을 마시기 위해 각자의
컵들을 들고 나왔고 거기서 죽었다.
무엇이 그들에게 자살할 수 있는 힘을 가져다 주었을까?
그것은 다름아닌 광적인 믿음이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발현과 기적에 대해 듣게 되면 그들은 사건들에 대해
가능한 모든 비판들을 고려에 넣지 않고 그 발현들과 기적에 관한 이야기들을
그냥 기정사실로서 쉽사리 받아들인다. 그런 다음 그들은 맹신과 광신에 빠져
들게 된다. 그래서 뭐든지 들은 것은 자동적으로 믿게 되는데 금으로 변했다는
메쥬고례의 평범한 묵주이야기가 그러한 류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실제로 믿고 있다.

27. 메쥬고례에서의 일들에 대한 맹신적인 믿음은 몇몇 사제들과 주교들도 사로
잡았다. 이태리 출신의 많은 사제들(예를들어 Amorth, Restelli 등 기타)은 주교와
조사위원회와 상당수의 프란치스코회 신부들 그리고 교구사제들이 이 발현을
믿지않는다는 사실에 대하여 어렵지 않게 전해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내가 사건들에 대하여 질문하는 자신들을 만나주고 내 시간을 할애해서
설명을 해주는데도 불구하고 진실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나는 특히 일부 주교들의 지성인으로서의 자질부족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누구든 나의 판단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의무는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어떠한
입장을 취하기 전에 특히 그 사람이 교회 내에서 주교와 같은 책임있는 위치에
있을 경우에는, 양심에 의거하여 메쥬고례 사건에 대하여 연구해 보아야 한다.

성모님! 도대체 이 사람들이 당신에게 무슨 짓을 하였습니까?
이들은 당신을 무슨 구경거리인양 9년 동안이나 끌고 다녔습니다.
이들은 당신이 마치 재담꾼이나 되는 듯이 자신들을 기쁘게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당신께 얘기했습니다. 그들은 메시지를 만들어 냈고 당신이 거기에
오시고 발현하고 계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의 이면에는 자신들의
말이 진실인지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세계가 ‘큰 징표’를
기대해오고 있고 순진한 사람들은 그것을 아직도 기다리고 믿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거짓된 감동은 교회를 망신시키고 불명예스럽게 만들
것입니다.

이 번 사건들(메쥬고례)을 주동하고 있는 사람들은 프란치스코수도회 본원으로
부터 헤르체고비나 지역의 프란치스코회 관구를 해체시킨다는 결정이 그들에게는 
여전히 유효한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에는 개의치도 않고 있다.
  이상은 내가 기록하고자 하는 것들의 작은 단편들의 모음일 뿐이다.
앞으로는 여기에 대해 구체적인 자료들과 함께 더 상세히 설명하고 이 사건에
대해 책으로 펴낼 기회를 마련할 생각이다.

[ 지금까지 믿어온 분들에게 ]
28. 메쥬고례에는 많은 기도와 신심행사들이 거행되고 있다. 어떤 이는 거기에서
회개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사실 나는 진실로 감동적인 편지들을 많이 받았
으며 곧, 혹은 나중에라도 실망하게 될 사람들에 대하여 미안함을 느낀다.

그러나 광신적 믿음, 미신 그리고 메쥬고례에 대한 그릇된 정보들도 있어왔다.
나는 또한 모두‘Queen of Peace’ 회원들이 발신자로 되어있는 무척 무례한 항의성
편지들도 많이 받았으며 그 내용은 차마 밝힐 수가 없을 정도이다.

비록 메쥬고례 사건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손 치더라도 그것이 하느님을
세상에 알린다는 명분으로 위조된 사실과 거짓말을 퍼트리는 행위를 정당화
할 수는 없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왔다”(요한
  18:37) 라고 하셨다. 만일 교회가 천주 십계 중 제 6계(간음하지 말라)를 내팽개
  치거나 이혼을 허락하거나 혹은 모든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믿어도 된다고
  가르친다면 교회는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킬 수 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
께서는 진리를 위하여 십자가의 길을 가셨고 순교자들은 진리를 위하여 목숨을
  바쳤다. 바오로 사도께서는 “누구든지 여러분이 이미 받은 복음과 다른 것을
전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저주받아 마땅합니다”(갈라디아 1:9)라고 말씀하셨다.
오늘날 전세계의 많은 기도 모임들이 ‘Ivica Vego’신부가 적은 기도책을 가지고
기도하며 성모님의 메시지가 성서나 교회의 권위있는 가르침보다 더 중요한
것인 양 그것을 가지고 묵상의 재료로 삼고 있다.

이러한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성모님께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진리를 증거
하는데에 필요로 하는 모든 은총을 얻어 주실 것을 믿는다. 나는 너무나 많은
진지한 신앙인들이 나를 성모님의 적으로 오인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있다.
나는 루르드를 많이 방문하였었고 그 밖에 교회가 인준한 발현성지들을 여러 번
다녀왔다. 내가 하는 일은 진리와 교회를 수호하는 일이며 나는 이 일을 위해
내 생명을 바칠 수 있도록 하느님께 기도 드린다.

29. 메쥬고례에 관한 책을 쓴 사람들은 자신의 책들을 많이 판매하여 큰 이득을
얻었다. 불행히도 메쥬고례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적은 사람들은 그다지 성공
하지를 못했다. 메쥬고례 옹호자들의 조직적인 불매운동에 부딛혔기 때문이었다.
  메쥬고례의 또 다른 측면에 얽힌 이야기들을 사람들은 읽어봐야만 한다.

- 저자:IVO SIVRIC, 신부, 박사 (메쥬고례 태생의 프란치스코회 사제: 현재 미국  
                            St. Louis에 거주),
   제목:The Hidden Side of Medjugorje, volume I, 1989. Editions Psilog,
        C.P. 300, Saint-Francois-du-Lac, Quebec, Canada J0C 1M0.
        Tel. (514) 568-3036.

-  저자: E. MICHAEL JONES,
   제목: Medjugorje: the Untold Story, Fidelity Press,
        206 Marquette Ave., South Bend, IN 46617, USA, 1988, pp. 144.

-  저자: P.A. GRAMAGLIA,
   제목: L'Equivoco di Medjugorje. Apparizioni mariane o fenomeni di medianita? Claudiana,
        Torino, 1987, pp. 172.

Mostar 교구장
Pavao Zanic  주교 씀

** 이 글은 영어본에서 한글로 번역한 것임을 밝힙니다.
   전문번역가가 아닌 탓에 미숙한 점이 많이 있을 줄 압니다.
   이러한 부족함을 보완하기 위하여 아래에 영어 본을 같이 첨부하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참고:
Mostar 교구 연락처:
Tel : 387 – 36 – 33 – 14 – 69
Fax: 387 – 36 – 33 – 14 - 72

Mostar 교구 주교님 E -mail: biskupija@catholic.org

※ 영어 원문자료:
전체web 내용: http://www.theotokos.org.uk
메쥬고례 관련: http://www.theotokos.org.uk/pages/unapprov/medjugor/medjugo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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