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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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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영 [lby00523] 쪽지 캡슐

2017-01-23 ㅣ No.212051

오늘보다는 내일을 운영자 (2016.9.20) | <798855@hanmail.net>

목마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9월 20일 아시시를 방문하고 평화를 위해 다양한 종교 지도자들과 함께 기도하며 자애를 실천하고 일치를 통한 평화를 실천하자고 언급하였다. - RV 20/09/2016 17:36

 

☞ '요한 복음 17장은 모든 사제의 공통된 기도'입니다.

(http://cafe.daum.net/lby00523/9LvK/571)

 

프란치스코 교황은 9월 20일 화요일 아시시의 성프란치스코 지하 대성당에서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의 날’을 맞아 각 종교 대표들과 순례객들과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포함한 종교 지도자들은 기도와 나눔을 통해 전쟁 중의 나라들을 기억하고 희생자들을 위한 기도를 바쳤으며 한국을 포함한 전쟁을 겪어나 평화가 절실한 지역을 하나씩 호명하며 증오로 점철된 지역의 위한 평화의 초를 봉헌하였고, 대성당 주변으로는 다양한 종교 지도자들이 자신들만의 예식으로 평화를 기원하는 예를 올리기도 하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묵상 나눔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 앞에서 ‘목마르다’(요한 19.28)하신 그분의 말씀이 우리에게도 들려 옵니다.  목마름은 배고픔보다 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고통을 의미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자비로 인간들 가운데 가난한 이가 되어주신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신비를 묵상해 봅시다.

 

주님은 무엇에 목마르셨을까요? 생명에 중요한 요소인 물에 갈증을 느끼셨을 겁니다. 그러나 삶에 그만큼 중요한 요소인 사랑에 그 무엇보다 목마르셨을 겁니다. 당신 사랑의 생명수를 우리에게 주시고 또한 우리의 사랑을 받으시고자 목마르셨습니다. 예레미아 예언자는 우리 사랑으로  만족해 하시는 하느님을 이야기 합니다.

 

‘네 젊은 시절의 순정과 신부 시절의 사랑을 내가 기억한다’(예레 2.2) 동시에 배은망덕한 인간이 사랑을 저버릴 때 하느님의 고통의 목소리도 들려옵니다. 주님께서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생수의 원천인 나를 저버렸고, 제 자신을 위해 물이 고이지 못하는 저수 동굴을 팠다.(13절)

 

이것은 ‘메마른 마음’의 이야기이며, 응답없는 사랑이요,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목마르다 하셨을 때 잘못되어 시어버린 포도주로 응답한 인간의 이야기입니다.  예언하듯 시편에서는 애도합니다. ‘목말라할 때 초를 마시게 하였습니다.’(시편 69.22)

 

‘사랑은 사랑받는 것이 아닙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말이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을 화나게 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고통받으신 주님의 사랑에 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큰 소리로 애도하였습니다.(Fonti Francescane 1413)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사랑에 목마르신 하느님을 묵상할 때에 진지하게 여겨야 할 부분입니다. 칼쿠타의 마더 테레사 성녀는 공동체의 모든 성당과 십자가 옆에 ‘목마르다’라는 말이 적혀 있기를 바랬습니다. 성녀는 가난한 이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이들에 대한 봉사라는 십자가를 통해 예수님 사랑의 목마름을 덜어드리는 응답을 하였습니다. 

 

주님의 목마름은 우리의 자애로운 사랑으로 덜어드릴 수 있으며 당신의 이름으로 실천하는 가장 미천한 이들에 대한 관심으로 위안을 드릴 수 있습니다. 심판의 날이 오면 목마른 이들에게 마실 것을 주고 필요한 이들에게 행동으로 드러나는 사랑을 보여준 이들을 ‘복되다’ 할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예수님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마음으로 만나고 삶으로 응답하라고 호소하며 청하고 계십니다. 그분의 목마르심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와 이 세상의 빛으로부터 소외당한 미천하며 무고한 이들의 소리없는 외침과 가난한 이들과 평화를 간절히 원하는 이들의 고통스러운 호소를 들을 수 있습니다.

 

증오로 사람들을 물들게 하며 무기도 땅을 덮어버린 전쟁의 희생자들이 평화를 간청하고 있습니다. 폭격의 위협 아래 살아가거나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낯선 땅으로 떠나가도록 강요당하는 형제 자매들이 평화를 호소합니다. 이들은 십자가의 형제 자매들이며, 육신이 다치고 메마른 보잘 것 없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목이 마릅니다. 그들에게도 예수님에게 드린 신 포도주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가 그들의 목소리를 듣습니까? 누가 답해주려 마음을 씁니까? 대부분의 경우에는 무관심으로 인한 침묵과 실증이 나버린 이기심, 텔레비젼 채널을 바꾸듯 도움을 요청하는 외침을 쉽게 외면하는 냉정함과 마주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앞에서,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1고린 1.24)를 떠올리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랑받지 못하는 사랑의 신비를 묵상하며 세상에 자비를 전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생명의 나무인 십자가에서 악은 선으로 변화됩니다.

 

우리들도 십자가의 사도들로서 무관심으로 오염된 것들을 빨아들이고 사랑의 산소를 내뿜는 생명의 나무가 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십자가의 예수님 옆구리에서 물이 흘러 나오는 것은 생명을 주시는 영의 상징입니다.(요한 19.34 참조) 같은 방법으로 오늘날의 우리 신앙인들도 목마른 이들을 향한 자애심으로 흘러 넘쳐야 하겠습니다. 

 

십자가 곁에 계셨던 성모님처럼, 우리도 주님과 고통받는 이들과의 일치를 이룰 수 있기를 청합니다. 오늘날에도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이들 곁에서 함께 하며, 십자가를 지셨으며 부활하신 주님의 사랑의 힘을 받게 해 주시고 저희의 일치와 화합이 더욱 성장하도록 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에페 2.14) 그분께서는 당신 가까이에 있는 이들과 멀리 있는 이들에게 평화를 선포하러 오셨습니다.(에페 2.17절 참조)  우리 모두가 사랑 안에서 일치를 이루어 그분께서 바라시듯 ‘모두 하나가 되도록’(요한 17.21) 하여 주소서.

 

오늘보다는 내일을 

가난한 자입니다

☞가톨릭정보 자유게시판

 

☞ 교황, "교회도 거리로 나가라. 불평등과 맞서 싸워라."(루가 7장 12-17) ▶ 예수님께서 그 고을 성문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 마침 사람들이 죽은 이를 메고 나오는데, ▶ 그는 외아들이고 그 어머니는 과부였다. 고을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그 과부와 함께 가고 있었다. ▶ 주님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울지 마라.” 하고 이르시고는, ▶ 앞으로 나아가 관에 손을 대시자 메고 가던 이들이 멈추어 섰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 그러자 죽은 이가 일어나 앉아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 ▶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찬양하며,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 ▶ 또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 하고 말하였다. ▶ 예수님의 이 이야기가 온 유다와 그 둘레 온 지방에 퍼져 나갔다. ☞ 약한 사람을 보호하는 규정 ▲ "… 교회와 관련된 모든 일에 있어서 평신도는 성직자에게 무조건 순명해야 된다는 생각은 어리석고 틀린 생각이다 " ▲ "이렇게 생각하는 성직자는 사목직이 봉사직이라는 교리를 모르는 사람이고, 이렇게 생각하는 평신도는 자신의 정당한 권리와 의무를 모르는 영구한 미성년자이다.” ▲ “원시종교에서 그들이 숭앙하는 신과 인간을 중개한다고 하는 무당이나 도사를 숭배했듯이 신자들이 성직자를 숭배해서는 안된다.” ▲ "이러한 신앙 행태를 '무당 숭배 잔재'라고까지 규정한다." ▲ 무당 : 귀신을 섬겨 굿을 하고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점치는 일에 종사하는 여자. 한자로는 ‘巫堂’으로 쓴다. ▲ 숭배 : 훌륭히 여겨 우러러 공경함. ▲ 잔재 : 과거의 생활 양식이나 사고방식의 찌꺼기 ▲ "결국 성직중심주의를 조장하는 책임의 절반은 미성숙한 신앙의식을 지닌 미성년자인 평신도에게로 돌아간다."(정하권 몬시뇰) ☞ 가톨릭대학교 백운철 신부는 ▲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는 사회에서 누구나 늑대처럼 영악하게 살고자 하지만 교황은 골리앗과 다윗의 예를 들며 양으로 살라고 권고한다” ▲ “사제들은 성장 추구형 관리자가 아니라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찾아 떠나는 착한 목자의 자세를 배워야 한다” 방문해 주심을 감사드리며 머무시는 자리마다 고운마음 피우시길 바랍니다. 지팡이 로벨도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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