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일 (토)
(홍)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성지순례ㅣ여행후기

[성지순례기]여사울..이존창생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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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석 [simon] 쪽지 캡슐

2000-10-14 ㅣ No.265

합덕성당에서 걸어내려와 여사울로 향햇습니다. 수녀님께 여쭈어보니 합덕성당에서

차로 5분거리..걸어서는 30분정도가 걸린다고 하시더군요...

이 말만 쩔썩 같이 믿고 바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을 못먹어서 가게에서 딸기우유를 하나 사먹고 또 다시 걸었습니다.

 

합덕에서 주유소 방향으로 걸어가게 되면 중간에 신리공소로 들어가는 입구를

만나게 됩니다. 표지판상으로는 5km정도가 걸린다고 했는데 지난번 성지순례때

확인했을 때는 6km는 되는 것 같았습니다.

 

주유소를 지나 한참을 걸었습니다. 삽교천을 위로 놓여진 다리를 건너고 구불구불

조그만 언덕도 지나고.. 30분이 훨씬 넘었는데도 어디에고 표지판이 보이지않습

니다. 하긴..제가 어제 책의 지도를 재보았을때는 지도상으로 직선거리 5.5km

구불거리는 거리를 생각하면 6km는 족히 되는 거리였습니다.

 

6km면 도보로 1시간 하고도 30분정도는 더 걸어야 하는데 30분정도 걸린다는 것이

의아햇었거든요.... 1시간여를 걷고 나서 너무 힘이 들어서 도로변에 주저앉았습니다

토요일임에도 이곳을 지나는 차는 별로 없습니다. 그냥 편하게 앉아서 담배를 한대

피우고 잠시 내가 걷고 있는 방향을 확인했습니다. 아무리 거리를 재어봐도 아직

멀은 것입니다. 다시 일어나서 걷기를 30분..

 

언덕이 보이고 그리고 그 오른편으로 표지판이 보였습니다. 어찌나 반갑던지...

나중에 알았지만 합덕터미널에서 신래원방향으로 버스가 가는 그 버스를 타면

이곳에 정차를 한답니다... 사실 미리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냥 걸었을 것입니다.

 

그 표지판에서 왼쪽으로 들어가면 정미소가 나오고 바로 그 밑으로 이존창 생가터

를 볼 수 있습니다. 아담하고 이쁘게 꾸면진 정원같은 생가터. 왼편으로 성모상이

위치해잇고 앞에는 십자가와 제대가, 오른편으로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이존창(루이공사가)은 내포의 사도라고 불리는 순교자입니다. 그는 서울에서

천주교를 알게 된 후 고향인 이곳으로 내려와서 열심히 선교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존창을 ’내포의 사도’라고 말하지요...내포란 아산에서 태안까지의 평야를

말하는 것으로 충남지역을 전체적으로 부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존창이 처음 천주교인으로 잡혔을때는 그만 고문에 못 이겨 배교를 하겠다고 한뒤

살아 남았습니다. 하지만 그 후 이존창은 배교를 한 자신을 이겨낼 수 없어서 다시

천주에게로 돌아온뒤 매일 피로 자신의 죄를 뉘우쳤다고 합니다. 결국 이존창은

체포되었고 형리들이 고문에도 아량없이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습니다.

형리들은 이존창이 이지역에서 회장일까지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당시 입국하신 주문모신부님이나 기타 교우들에대해서는 아무것도 이존창에게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존창의 딸과 혼인한 최경환은 나중에 최양업신부라는

위대한 신부를 낳게되지요...이렇게 이존창의 후손들은 모두 참된 신앙인으로

한국천주교회사에 한획을 긋게 됩니다.

 

후문으로 이존창은 여섯번의 칼날을 받고야 결국 목을 떨구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며칠후 집안 사람들이 이존창의 시신을 거두러 가니까 목과 몸은 언제 그랬냐는 듯

딱 붙어있고 그저 목에는 밋밋한 칼 자국만 남아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이존창의

시신은 경주이씨 문중의 묘지인 여사울에 묻었는데 어떤 묘가 이존창의 묘인지는

알 수가 없다고 합니다.

 

저도 경주이씨로서 오늘 새삼스레 가문의 긍지를 느꼈습니다. 저의 피 어딘가에도

순교자의 피가 흐르고 있으리라고 믿기로 하였씁니다. 하긴...우리집안은 이쪽지역

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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