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0일 (일)
(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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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는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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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02-12-31 ㅣ No.46148

 

 뉴스를 보니 서울 일원에 눈이 내린다고 합니다. 창문을 열어보니 조용히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나무도, 지붕도, 거리도 그렇게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이때 하느님께서 선물을 주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돌이켜 보면 올 한해도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1월에는 한 달 동안 피정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피정을 하면 늘 느끼는 것이지만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그런 하느님의 사랑을 나는 또 얼마나 자주 잊고 사는지 새삼 돌아보게 됩니다. 한 달 동안의 피정을 통해서 좀더 성숙해지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6월에는 전국을 들뜨게 했던 월드컵이 있었습니다. 남녀, 노소가 하나가 되었고, 자랑스러운 한국인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월드컵에서의 성적도 중요했지만 우리 안에 내재되어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7월 8월에는 태풍과 폭우로 인해 강원도 지역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며칠 전에 작은 정성을 모아 강원도에 있는 한 성당을 방문했지만, 아직도 그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해보다 많은 자원 봉사자들이 수해 현장에 함께 있었고, 도움의 손길도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10월에는 부산 아시안 게임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북한 선수들이 함께 했었고, 북한의 응원단은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제 남과 북은 이념과 체제의 벽을 넘어 하나 될 수 있는 그런 가능성을 서로에게 주고 있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저 자신도 3년간의 시골 성당에서의 사목을 마치고 서울의 명동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숙소 앞에까지 자리를 잡은 병원 노조 사람들, 명동 입구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는 사람들을 지나 사무실로 가는 동안 마음은 무겁고, 우리 교회의 또 다른 모습을 눈앞에서 보니 괴롭기도 했습니다.

 이제 병원 노조 사람들은 모두 떠나갔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12월 19일 저녁에는  서울의 어느 성당에서 대림 특강을 하고 있었고, 그 시간에 대통령 선거의 개표는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그렇게 선택했습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국제 사회입니다. 긴박하게 전개되는 북한과 미국의 대립이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나라들의 틈바구니에 있는 우리나라입니다. 이제 새로이 선택된 대통령과 함께 하나 되어 우리에게 다가오는 도전을 이겨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소리 없이 눈은 내리고 있습니다.

신앙 안에서 나는 올 한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고뇌하며 살았는지 반성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입으로만이 아니라 나의 삶으로 얼마나 많이 증거하며 살았는지 반성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하얀 눈이  대지를 덮어주듯이 지난 한해 나의 모든 허물과 탓을 덮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한해를 또 그렇게 하얀 백지로 주실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은 내가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새로운 한해는 좀더 겸손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새로운 한해는 좀더 사랑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새로운 한해는 좀더 인내하며 좀더 나누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교황님께서 이야기 하신 것처럼 새로운 한해는 주님의 공생활을 묵상하는 ‘빛의 신비’를 통해서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 깨끗한 마음을 새로 주시고

끗끗한 뜻을 새로 새워 주소서

당신 앞에서 나를 쫓아 내지 마시고

당신의 거룩한 뜻을 거두지 마소서

그 구원의 기쁨을 나에게 도로 주시고

변치 않는 마음 내 안에 굳혀 주소서

죄인들에게 당신의 길을 가르치리니

빗나갔던 자들이 당신께 되돌아 오리이다.”(시편 51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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