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자유게시판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 옛날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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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정 [annateresa] 쪽지 캡슐

2003-03-07 ㅣ No.49349

 

조선 말, 천주교 박해 시절에

한 부잣집의 주인이 그 마음 속 깊이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온 가족과 더불어 성실히 신앙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수천의 이름 없는 순교자 중 한 분이 되시었답니다.

 

다행히 그분의 어린 외아들은 이웃들의 도움으로 몸을 숨겨 살아 남았지만

혈혈단신으로 혼자 남아 지낼 길이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한때는 부잣집 도련님이었던 그 소년은

남의 집에 머슴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토록 힘든 상황에서도 신앙과 용기를 잃지 않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열심히 기도생활을 해 나갔답니다.

 

소년은 어느 덧 청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방을 쓰는 또래의 머슴 청년 한 명의 태도가 이상했습니다.

밤이면 자다 말고 몰래 일어나 뒤꼍으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마음 속으로 짚히는 바가 있어 어느 날 가만히 그 뒤를 따라가 보니

과연 그 청년은 묵주를 돌리며 열심히 기도를 바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만난 두 사람은 절친한 친구가 됩니다.

 

하루는 그 친구가 말하기를

"자네도 나도 외로운 처지이나, 내게는 한 명의 누이동생이 있네.

 그 아이를 출가시켜야 할 무거운 책임이 내게 있으나,

 그 아이가 결혼과 더불어 신앙을 지키기가 더욱 어렵게 될 것을 염려하여

 이제껏 마땅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네.

 그러나 이제 이렇게 우리가 만나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 인연이 아닌가 하네.

 자네가 내 누이를 맡아 준다면 나로서는 더할 수 없는 기쁨이겠네."

 

이리하여 그는 친구의 누이와 결혼을 하게 되었지요.

 

신앙의 전파력이란 그야말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어느 사이엔가 이들의 신앙은 소리소문 없이 집안 전체로 퍼져 나갔습니다.

급기야는 주인집 식구들까지도 가톨릭 신앙에 귀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천주학쟁이라는 이름표만으로도 생명을 보장할 수 없던 그 무서운 시절에

그 많은 사람들이 무슨 힘에 이끌려 하느님께 몸과 마음을 바치게 되었을까요?

 

그렇게 세월이 흐르던 어느 날, 다시 한 번 박해의 모진 바람이 휘몰아쳤습니다.

주인집 부부가 천주학쟁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포졸들이 집에 들이닥쳤습니다.

주인 부부를 잡아가던 중, 한 명의 밀고자가 부엌을 가리키며 외칩니다.

 

"저기 부엌에서 일하는 저 하녀도 천주학쟁이입니다."

 

남편과 오라버니가 밭일을 나간 사이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던 그녀는

"당신도 천주학쟁이인가?" 하는 물음에 "아니오" 라고만 했으면 안전했을터이나

꿈에도 천주교 신자임을 부인할 생각은 없었기에

망설임 없이 "네. 저는 천주교 신자입니다." 하고 대답한 후

순순히 포박을 받고 끌려갔습니다.

 

옥에 갇혀서 시일이 흐르고 또 흘렀습니다.

남편과 오라버니 역시 밭일을 하다가 붙잡혀 어디론가 끌려갔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그 이후에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 하루 많은 사람이 끌려가서 순교했습니다.

그녀 또한 순교를 거부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채 시간만 흘렀습니다.

 

박해의 바람이 한풀 꺾이고

천주교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이었던 당파가 정권을 잡게 되자

갇혀 있던 천주교 신자들은 풀려나오게 되고

그 중에 그녀도 섞여 있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살던 주인집으로 가 보았지만 이미 폐허가 된지 오래였고

남편과 오라버니는 생사조차 알 수 없으니 막막했습니다.

어찌하여 나는 순교를 하지 못하고 이리 살아 나왔는가 억울하기까지 했습니다.

 

며칠을 넋 놓고 울며 지내는데, 마침 어떤 친절한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그 할머니가 천주교 신자였는지 아니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천주교에 대해 적대감을 지닌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할머니는 그 당시 "내외식당" 이라는 것을 운영하던 분이었습니다.

손님들이 음식 파는 여인네의 얼굴을 볼 수 없도록 칸막이를 쳐 놓고

음식 접시만 간신히 드나들 수 있는 구멍을 통해 장사를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저 "내외"는 부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남녀간에 터놓지 않고 내외를 한다는 뜻이겠지요.)

 

살 길이 막막했던 그녀는 할머니를 따라 그 내외식당에 몸을 의탁했습니다.

 

다시 몇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음식 접시를 내어주는데 손님의 가슴께에서 무언가

반짝 하고 빛나는 것이 구멍을 통해 보였습니다.

 

가만히 보니 그것은 놀랍게도 십자가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레 말을 건넵니다.

 

"형제님, 어쩌려고 십자가를 목에 걸고 다니십니까?

 주님께서 주신 생명을 귀히 보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그 손님은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아, 자매님... 이제 우리는 자유로이 주님을 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박해는 완전히 끝났습니다.

 지금 서울 명동에서는 커다란 성당이 지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내외식당 안에서만 숨어 살며 세상이 변한 것을 모르고 있었던 그녀는

꿈인가 생시인가 믿기 어려웠지만 과연 세상은 변해 있었습니다.

 

서울 한복판에 당당히 세워졌다는 커다란 성당을 보고 싶었던 그녀는

완공된 명동 성당의 축성식을 보기 위해

고향 시골에서 혼자 몸으로 서울까지 허위허위 올라왔습니다.

 

명동 성당의 웅장한 건물을 올려다보며 눈물짓는 사람들은

다만 그녀뿐이 아니었습니다.

모진 고통 속에서도 용감히 신앙을 지켜 온 형제 자매들이 수없이 그 자리에 모여

기쁜 날을 서로 축하하고 있었습니다.

 

문득 저만치서 그녀를 향해 있는

눈물과 사랑으로 가득한 시선을 느낀 그녀는 고개를 돌려 보았습니다.

 

그곳에는 이미 세상을 떠났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리운 남편이

기적처럼 그녀를 바라보며 웃음짓고 있었습니다.

 

.......

 

두 사람은 함께 고향으로 내려가 보금자리를 꾸몄습니다.

너무 가난했기에 살 집조차 구할 수 없어

마을 사람 모두가 기피하는 이른바 "도깨비집"에다가 살림을 차렸답니다...^^;;

굳은 신앙으로 무장된 두 사람이 어찌 도깨비 따위를 두려워하겠습니까?

 

하느님은 이들을 보살펴 주시어, 성실하게 일하는 만큼의 보답을 내려 주셨고

한동안은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는 암탉이 아침마다 마당으로 들어와

달걀을 낳아 놓고 도망가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 닭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찾으려 무척 애를 쓰기도 했지만

주인은 결국 나타나지 않았고, 닭은 아무리 쫓아도 다음날이면 또 오곤 했기에

하느님의 선물이라 여기고 나중에는 고맙게 받았더랍니다.

 

이렇게 그들은 하느님의 사랑 속에서 다복한 가정을 이루었고

자식은 그리 많이 주시지 않아 오직 아들 하나뿐이었지만

그 아들은 또 아들 형제를 두었고

형제는 각기 9남매와 7남매를 두게 되어 매우 번성한 집안이 되었습니다.

그 남매들이 또 각기 많은 수의 자녀들을 낳았으니까요.

 

또한 자손들 중에서는 적지 않은 수의 성직자와 수도자가 배출되었으며

결혼을 하게 되면 90% 이상의 확률로 배우자를 천주교로 이끌어들였기에

온 집안 식구가 모이면 집안에서 미사전례 전체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신부님, 수녀님, 복사, 미사해설자, 성가대 등등을 모두 가족 안에서 해결...

       게다가 식구가 워낙 많아서 작은 성당에서 미사하는 것과 비슷한 분위기가 남.)

 

이리하여 이 옛날 이야기는 일단 이렇게 막을 내리지만

우리 주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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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허구가 아니라 있었던 사실을 토대로 서술된 것이며

퍼온 글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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