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6일 (토)
(녹)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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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낳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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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혜 [sharptjfwl] 쪽지 캡슐

2002-07-24 ㅣ No.6833

 

 

 

 

진통이 10시간이나 계속되었다.

처음엔 간헐적으로 시작된 것이 점점 진통 간격이 줄어 들고, 심하게 아파왔다. 첫 분만이라서 힘겨운 것이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지만 그 말투가 어딘지 불안했다.

 

참기 힘든 고통 속에서 엄마의 얼굴이 떠 올랐다. 다른 여자들은 분만실에 누우면 남편의 얼굴이 제일 먼저 떠 오른다고들 하던데, 이상하게도 난 엄마 생각만 났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엄마 얼굴이….

 

난 어릴 때부터 잔병치레가 잦았다. 내가 아파 누워 있을 때면 엄마는 내 손을 꼭 잡고서 당신이 나를 낳던 얘기를 하며 울곤 하셨다.

엄마는 연탄불도 들어오지 않는 차가운 다다미 방에서 12월의 한기를 온 몸으로 느끼며 혼자서 나를 낳으셨다고 했다. 사람을 데리러 간 아버지는 올 기미도 보이지 않고 주위에 도와주는 사람 한 명 없이 추운 골방에서, 혼자 몸으로 세상을 향해 고개를 내밀던 나를 받아서 손수 탯줄을 끊고, 씨알만한 내 몸을 깨끗이 씻겨 뉘어 놓고는 산후 분비물을 말끔히 정리해 놓고서야 나에게 젖을 물리셨다고 한다. 그렇게 날 낳아 놓긴 했으나 한 주먹도 안 되는 아이가 배고파 칭얼대도 젖이 나오지 않아 빈 젖을 물릴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때 그렇게 못 먹여서 내가 병치레가 잦은 거라며 눈물을 훔치시던 어머니, 그런 엄마의 얼굴이 분말실에 누워 통증을 느낄 때마다 떠올랐다. 아기를 받아야 하는 의사 선생님이 밖으로 나가신 잠시 뒤 남편이 분만실로 들어왔다.

 

"여보… 애기가 꺼꾸로 있대… 그래서 당신이나 애기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순간 고통스럽던 진통이 다 사그라지고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럴 때 엄마였으면 어떻게 하셨을까? 아무도 없는 차디찬 골방에서 혼자 아기를 낳았던 엄마라면 어떻게 했을까?’

 

남편은 내 손을 꼭 잡으며 다시 말문을 열었다.

 

"당신 괜찮지? 아이는 다음에도 또 낳을 수 있잖아. 그러니 우리 이 아기 포기하자."

 

그럴까? 지금 이 아이를 다음에 또 낳을 수 있을까? 아니,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나에게 10시간 이상의 고통과 어쩌면 생명까지도 위험하게 하는 지금 이 아이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 아이였다. 다시 아기를 갖는다 해도 그 아기는 다른 영혼을 지닌 다른 아이일 뿐이다. 나 하나 살자고 이 아이를 포기해 버린다면 이 아이는 영혼이 되어 하염없이 떠 돌다 끝내 나를 원망하게 될 것이다. 엄마는 이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를 낳아 주시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런 은혜를 모르고 나는 나 혼자 살겠다고 어린 핏덩이를 버리다니…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그래서 나는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어렵게 낳은 아이, 자림이.

자림인 방금 이유식을 먹고 내 곁에 누워 쌕쌕거리며 잠을 자고 있다. 제법 통통하게 살이 오른 자림이를 보고 있노라면 세상의 모든 평화가 여기 있는 듯 하다. 자림이의 건강한 모습을 보니 자연스럽게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그 때 엄마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았다면 지금 내 옆에 있는 자림이의 예쁜 모습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거다.

 

남편은 고른 숨을 내쉬며 자고 있는 자림이를 보면 고맙다는 말을 끊임없이 해 댄다. 하지만 남편이 정말로 고마워 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저 세상에서 나를 지켜보고 계실 내 어머니다.

 

 

-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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