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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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 온 몸을 짓누르는 무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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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연 [communion] 쪽지 캡슐

2003-02-19 ㅣ No.48395

칠레의 어떤 예수상이라고 합니다.

 

제가 봐 왔던 예수님의 십자가상과 너무나 다른, 이 십자가상을 보았을 때..

그것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온 몸에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요..

 

 

 

 

 

 

 

김동리의 소설 ’등신불’에 보면..

주인공이 처음 등신불을 봤을 당시를 묘사한 대목이 있는데..

자연스레 그 대목이 생각나더군요.

 

 

내가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부터 나는 미묘한 충격에 사로잡히게 되었다고 말했지만 그러나 그 미묘한 충격을 나는 어떠한 말로써도 표현할 길이 없다. 다만 나는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처음 보았을 때 받은 그 경악과 충격이 점점 더 전율과 공포로 화하여 나를 후려갈기는 듯한 어지러움에 휩싸일 뿐이었다고나 할까. 곁에 있던 청운이 나의 얼굴을 돌아다보았을 때도 나는 손끝 하나 까딱하지 못하며 정강마루와 아래턱을 그냥 덜덜덜 떨고 있을 뿐이었다.

 

(저건 부처님도 아니다! 불상도 아니야!)

 

나는 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목이 터지도록 소리를 지르고 싶었으나 나의 목구멍은 얼어붙은 듯 아무런 소리도 새어나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 십자상을 보고..

역겹다고 했습니다.

악에 받친 모습이라고도 했고요.

 

저 역시 당혹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맞닥뜨린 경악할 만한 예수님의 모습..

과연 가톨릭 교회 안에서 이러한 십자가상이 용납되어질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음 속에 일렁이는 거부감을 애써 잠시 눌러 봅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조용히 생각해 봅니다.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

인간이란 존재가..

처참한 죽음 앞에서..

과연 평온한 표정으로.. 그리고 우아하고 고상한 자태로..

그렇게 죽음을 맞을 수 있을까..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의 고통을 상상하다 보면.

저의 빈약하기 이를 데 없는 상상으로도..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실 때까지..

한번쯤은 찢어질 듯한 외마디 비명을 지르셨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되는데...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적나라한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감히 품게 되기 때문입니다.

 

 

 

..........................................................

 

 

 

오늘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를 보면서..

그런 상황에서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살려고 발버둥쳤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비규환의 그 상황에서..

지금이 바로 삶을 마감해야 하는 순간이구나.. 이 사실을 인정하며 죽음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모습보단..

공포에 질려 사람들 틈에 뒤엉켜 질식하여 쓰러지는 모습이 먼저 떠오르는 건..

삶에 대한 처절하리만치 강한 집착이야말로..

모든 것에 우선하는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죽음의 순간을 떠올리면..

전 아득하다는 것 외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나의 죽음은 어떨까..

그 순간에서.. 잠시나마.. 아주 잠시나마라도 예수님을 떠올리며 기도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런 생각마저 사치겠지요.

섣불리 죽음의 순간을 짐작하는 것조차도 죄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아니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될 것이 있으니까요.

 

마음이 무너져 기도할 힘마저 없을 때..

기도의 힘에 잠시나마 의혹을 품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전 기도의 힘을 믿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참혹하고 처참하게 죽어간 그 많은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말이 쉽사리 나오지 않습니다.

 

가슴을 짓누르는 죽음의 엄청난 공포 앞에서..

제 기도가 마치 너풀거리는 깃털처럼..

한없이 가볍고 하찮고 미약하게 느껴지는 것은..

죽음을 넘어서는 신앙을 가지지 못한..

제 자신의 한계를 느껴서인가 봅니다.

 

고통스러웠던 순간마다..

너무나 쉽게 ’차라리 죽고 싶다’라고 내뱉었던 제 모습..

’죽음’의 무게가 이제서야 비로소 조금씩 다가 옵니다.

 

 

 

 

 

첨부파일: 칠레의 예수님.jpg(79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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