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자유게시판

절름발이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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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미숙 [shwang] 쪽지 캡슐

2003-03-31 ㅣ No.50487

       

      제게는 절름발이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그 걷는 모습이.. 늘 기우뚱거리는 게...

      멀리서 보면, 항상 어깨를 흔들며

      즐겁게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는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제가 자주 봉사활동을 다니는 고아원에서

      저는 그녀를 처음 만났습니다.

      새로 온 자원 활동가라며,

      고아원 원장님께서 소개시켜 주셨고,

      저희는 어설픈 눈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얼굴의 빈 곳 없는 여드름까지...

      그녀의 첫 인상에 전...

      한순간 눈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정말 순수한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을 혼자서만 맑게 볼 수 있는 사람이었고

      항상 곁에 있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고,

      배려해 줄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처음과는 달리 저는 그런 그녀가 싫지 않았습니다.

      아니, 전

      그런 그녀가 점차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전 그녀의 웃는 모습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봉사활동하면서 아이들을 향해 흘리는

      그녀의 웃음을 볼때면,

      전 마치 하늘에서 내려운 천사를 보는 듯 합니다.

      하루는,

      고아원에서 한 아이가 그녀를 보고 물었습니다.

      누나는 왜 다리를 절룩거려?

      전 그 아이의 말에 크게 당황했습니다.

      혹 그 아이의 말에 그녀가 상처를 입을까...

      하지만 그녀는 살폿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주더군요.

      누나는 어릴 때 나쁜 짓을 많이 해서,

      하늘에서 벌을 준거야.

      그러니까 너는 누나처럼 나쁜 짓 하지 말고,

      착하게 커야 한다.

      그런 그녀였습니다.

      그녀는 비록 몸이 불편하긴 했지만,

      그 어떤 정상인들보다도 더 정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안개꽃을 참 좋아했습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작고 하이얀 안개꽃을 보면,

      마음이 맑아 진다고 합니다.

      왜인지...

      안개꽃이 그녀와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는,

      제가 그녀를 집에까지 바래다 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집을 향하는 골목길에서,

      불량배 두 명이 그녀와 저의 모습을 보고

      저런 병신하고 사귀는 새끼도 있네 라는 말을 하고는

      지들끼리 ’히히덕’ 거린적이 있었습니다.

      전 순간 불같은 화가 솟구쳤지만

      억지로 끄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그냥 그들을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그녀의 집 앞에서,

      그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작별 인사를 하고는

      집으로 들어갔지만

      저는 그 불량배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 곧장 그 불량배들을 찾아내서,

      그녀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했지만,

      그들에게는 씨알도 먹히질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과 전 싸움에 이르렀고....

      전 그날 숨 쉴틈 없이..

      그들에게 흠신 두들겨 맞았습니다.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가 싸움을 못 하는 것에 대해

      원망해보았습니다.

      그때는 제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 했지만...

       

      그녀와 제가 스스럼없이 대할만한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그녀가 저에게 부탁할 일이 있다며,

      어렵게 말을 꺼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너무나 싫어하는 사람이,

      그녀에게 결혼을 요구한다며

      저에게 하루만 그 사람 앞에서

      애인 행사를 해 달라고 부탁 해 왔습니다.

      다음날

      전 말숙한 정장 차림으로 그녀와 함께

      그녀에게 결혼을 요구했다는 그 남자를

      작은 커피샾에서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저란 존재에 그 남자는 많이 당황해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모든 걸 체념한 사람처럼

      아무 말 없이 그 자리를 떠나갔습니다.

      그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전.... 아무 말 없이,

      쓸쓸한 표정을 짓는 그녀를 보며 알 수 있었습니다.

      그녀 역시도 그 남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그녀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동네 오빠라고 합니다.

      어릴 때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못쓰게 된 그녀에게,

      그는 유일한 친구였다고 합니다.

      또래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아왔던 그녀에게

      그는 늘 백마 탄 왕자처럼 그녀를 보호해 주었고

      그런 그가 얼마전 그녀에게 청혼을 해 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대학 석사과정까지 밟고 있는 그에게,

      더 이상 짐이 될 수는 없다며 제게 그런 부탁을 했었답니다.

      훗날..전

      그 남자의 이름이’성 청심(맑은 마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왜 안개꽃(안개꽃의 꽃말은 ’맑은 마음’입니다)을

      좋아하는 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전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녀는 외모가 예쁜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정상적인 사람도 아닙니다.

      하지만 전 그녀를.... 그런 그녀를...........

      오랜 고민 끝에... 몇일 후....

      전 그 남자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전 저를 보고 적잖이 당황해하는 그에게

      이 한마디를 던져 주었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안개 꽃을 좋아한다고..."

      한순간 그 남자의 얼굴이 환해지는 것이

      제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전

      그 남자를 뒤로 한 채 걸음을 옮겼습니다.

      이제 그녀는 행복해질 겁니다.

      그녀에게 그 남자는 정말로 필요한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그 남자 역시도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니까요.

      저는 제 행동이 얼마나 옳은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그녀는 행복해 질테니까요.

      하지만, 이 씁쓸한 기분..... 밀려오는 답답한 가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갑자기 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제 머리를 가득 채워옵니다.

      점차 어두워지는 석양속에서

      전 속으로 외쳤습니다.

      그녀는 못 생겼다.

      그녀는 절름발이다.

      나는 그런 그녀를 결코 사랑하지 않았다....라고.

       

      제게는

      절름발이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그 걷는 모습이..

      늘 기우뚱거리는 게...

      멀리서 보면, 항상 어깨를 흔들며

      즐겁게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는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이제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 버린

      제게는 너무나 소중한 친구가 있습니다...!

      <몇 일 전에 태어난 수민이와 수민이 부모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옮긴글

               

       

      이 글을 읽다보니 얼마전에 타계하신 故 조병화 시인님의

      벗은 존재의 숙소이다, 그 휴식이다,

      그 등불이다..라는 시가 생각나네요.

      제게도 꼬옥 이 글처럼..^^

      중학교때부터 대학시절까지 내내 줄곧 저와 친했던

      약간 다리를 절룩거리는

      소중한 친구가 한 사람 있었답니다.

      지금은 그녀 역시 아기 엄마가 되었지만요.^^

      3월 어느 봄날 오랫만에 걸려온 그녀의 전화를 받고

      제 마음에 "존재의 숙소"와 같았던 제 오랜 친구,

      한쪽 다리를 약간 절룩거리고

      어릴 적 소아마비로 한쪽 고막까지 잃어버린...

      그러나 제겐 너무도 소중한 절름발이 제 친구

      그녀를 잠시 기억하며~☆

      굿뉴스 벗님들과 이 글을 함께 나누고 싶어요.

      벗님들, 은혜로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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