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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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신앙상담 하느님의사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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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06 ㅣ No.3623

 

바오로 형제님, 안녕하세요?


정말 더운 날이군요. 이렇게 더운데도 불구하고, 매우 근본적이고 중요한 질문을 제기하셔서 형제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사실, 저의 생각도 아래 마틸다님의 글과 대동소이합니다만 조금 더 부연하겠습니다.


형제님의 질문을 요약하면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이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하는가 입니다.


우선, 지진해일이나 가뭄뿐만 아니라 수백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 학살이나 음주운전차량으로 인한 사망자 그리고 어느 전도양양하던 청년의 급사 등등, 크고 작은 고통을 열거할 수 있습니다. 한 개인의 억울한 죽음에도 해당 가족들은 엄청난 고통에 하느님을 원망하고 왜?를 부르짖으며 그 아픔은 매우 오래갈 것입니다.


수많은 희생자와 고통 받는 사람들의 경우는, 그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고통을 넘어 망연자실할 것이고, 하느님을 믿는 이들은 하느님 사랑을 의심하거나 하느님의 존재를 아예 부정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고, 어찌보면 이는 인간적으로 볼 때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이것도 하느님 뜻이려니 하고 체념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이에 대한 제 소견을 말씀드리면, 지진해일이나 가뭄 등과 같은 천재나 유대인 학살 등과 같은 인재나 모두 우리 인간들의 잘못(죄) 때문에 그런 일들이 발생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즉, 천연재해도 우리 인간들이 자연을 훼손한 죄로 인하여 우리 인간들이 죄의 댓가를 치루는 것이며, 유대인학살의 경우에도 직접원인은 히틀러일당의 만행이지만, 이 또한 우리 인간들이 국가간 평화공존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잘못(죄)에서 기인한다고 봅니다.


요컨대, 그 수많은 억울한 희생자들은 바로 우리 인간들의 잘못(죄)을 대속해서 죽거나 고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음하고는 다릅니다)


다른 예로, 평생 옳은 일만 하던 사람이 고통 속에 갑자기 죽었을 때에도 그 사람은 누군가를 대신하여 대속적인 죽음을 맞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더 황당한 예를 들면, 공상과학영화에서 나오는 강대국간 핵전쟁이 벌어져 지구가 멸망하는 경우에도 그것은 결국 하느님이 초래한 일이 아니라 인간들 자신이 초래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경우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개개인의 죄의 유무와 상관없이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고,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은 정말로 망연자실하실 것 같습니다. 


그러한 인재뿐만 아니라 천재까지도 하느님이 명령하여서 벌어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로인한 고통은 분명히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허용하셨습니다. 따라서, 이 모든 종류의 고통들은 하느님 사랑의 실종과 관련시키기 보다는, 그 모든 고통을 어떻게 참고 이겨낼 수 있는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말처럼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지만...


하느님의 피조물들인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느님 스스로 지상에 내려 오셔서 인간들로부터 고통의 수난과 죽음을 당하신 하느님이야말로 정말 억울하고 제일 황당한 죽음을 맞은 분이 아닐까요? 예수님조차도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고 고통스러워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고통을 피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그 고통을 맞이하시고,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겠지만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라고 격려까지 해주십니다.


아들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모든 순간의 고통을 함께 느끼신 성모님과 하느님은 지금도 인간의 모든 고통을 함께하고 계시며, 어떻게 해서든지 인간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하여 서로 사랑하기를 바라십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자연까지도 사랑하라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자주 듣고 말하는 묵주기도의 ‘고통의 신비“가 형제님이 제기하신 질문의 해답을 얻을 수 있는 ’신비의 열쇠‘가 아닐까요?


날도 더운데 엉뚱한 궤변을 늘어놓아 형제님을 더 짜증나게 만든 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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