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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관 일기89/김강정 시몬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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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관 일기 89
요즈음 제 개인 사서함에는 하루 십 수통의 메일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름을 감춘 단골들이 매일같이 아름다운 글들을 올려주십니다. 그런데, 그 중 한 메일에 대한 답을 아직도 못해드리고 있습니다. 그분은 글을 맺으면서, 제 삶의 좌우명을 물어오셨습니다. 차일피일 미뤄오다 마침 오늘에야 이 글로 대신코자 펜을 듭니다.
삶의 좌우명이 뭐냐는 물음 앞에 다시금 한참을 생각해봅니다. 좌우명으로 삼기에는 부끄러움이 많지만, 제 나름의 좌표는 있습니다. 그것을 좌우명이라 하시면, 제 좌우명은 "늘 첫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살다보니, 제일 힘든 일이 ’첫 마음’ 을 잃지 않고 사는 일이었습니다. 항시 봐도, 어제 마음과 오늘 마음이 다르고, 첫시작과 끝맺음이 다릅니다. 마음을 굳혀 시작한 일도 하루 하루를 보내며 달수를 넘기는 동안, 어느새 원점으로 돌아와 있습니다. 마음으로 행했던 첫 맹세들도 번번이 다 이런 식이었습니다. .......... 사제생활을 하면서, 이 고질적인 습관을 고치고자 무진장 노력을 해왔습니다. 어차피 사제로 살 바에야 좀더 사제다운 모습으로 살자는 것이 제 욕심입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좀더 가혹한 편대를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솔직히 안일하고 느슨하게 살면서, 죄를 보태고 싶은 강심장은 못됩니다. 하루 삶만 가지고도 주님께 죄스러워 죽겠는데, 방만의 죄까지 더할 수야 없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제 삶의 좌표를 "첫 마음"으로 잡아놓은 것입니다. .........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처음 시작하는 마음은 다 아름다울 거라고........... 언젠가, 서품을 받은 한 신부님의 첫 미사에서 저는 그 아름다움을 보았습니다. 음성을 파르르 떨면서 땀을 팥죽같이 흘려대시던 모습.... 신자들은 저마다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굴렸지만, 저는 그 모습이 샘이 날 정도로 부러웠습니다. 왜냐면, 제게는 그런 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제단에 올라 서도 아무런 떨림도 무섬도 없습니다. 5년씩이나 해를 묵다보니 능구렁이가 다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제게도 첫 미사가 있었고, 그 첫 떨림도 있었습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조마로움과 긴장감,...... 그런데 어느새 그 설렘과 떨림을 잊고 사는 저 자신을 봅니다. 그러면서 당신의 제단을 무례히 밟는 이 겁없는 죄도 함께 깨닫습니다. ...... 지난 일을 여겨보니, 외려 오늘의 모습이 더욱 초라해 보입니다. 좌우명대로 살아내지 못하는 부끄럼에 고개를 못들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밤도 새로운 다짐을 해 넣습니다. 번번이 허물어지는 약속인 줄은 알지만, 그래도 허황하나마 약속 한가지를 더 주님 앞에 내걸고 싶습니다. ........... 주님 ! 내일부터 새로 시작할 겁니다. 그래서 서품 때 지녔던 첫 마음을 제 삶 속에 다시 그려 넣겠습니다. 그리고, 제단에 올라설 때마다 첫 떨림을 항상 기억하겠습니다. 언제든 설레고 새로운 마음을 그렇게 가슴속에 담으며 살겠습니다. 오늘의 이 약속이 늘 변치 않는 한 마음으로 남아있기를 소망하며, 저를 도우시고, 살펴주시라 비오니, 이 기도를 소람해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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