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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교황대사 Osvaldo Padilla 대주교,곡수리성당 방문 -2016.11.22.오전1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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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찬 [andreaphc] 쪽지 캡슐

2016-10-04 ㅣ No.211464


2016. 6. 24. 천진암 성지, 한국천주교회 창립 제237주년(1779~2016) 기념, 제38회(1979~2016) 행사 거행-

주한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에게, 변기영 몬시뇰이, 기념제 거행 전 강학실에서 신임 천진암 성지 전담 김동원신부를 소개하고 있다. 신임 김동원신부는 천진암 성지 본당 출신 최초의 사제로서, 서울대신학교를 나와, 오지리 Insbruck 에 유학하여, 신학석사 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사제가 된 후, 천진암 성지 성당에서 첫 미사를 올렸으며, 중국 臺滿 補仁大學敎 신학대학원에서, 천진암 성지의 한국천주교회 창립성조 이벽, 이승훈, 권일신, 권철신, 정약종, 등 학자들에 대한 연구논문으로, 신학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천진암 성지 보좌신부, 수원 상현동 본당 주임 신부, 등을 역임하였다.


  ***2016년 11월 22일 화요일 오전 11시에 주한 교황대사 Osvaldo Padilla 대주교, 곡수리 공소 성당 방문 확정***

 

성당 축성과 사우거사기념서재(沙右居士紀念書齋),유한당권씨기념천학방(柳閑堂權氏紀念天學房),등 신축 건물과 개보수 시설물의 축복식 및 "하느님의 종 권철신 권일신 기념 표석, 제막식

 

 2016년 11월 22일 오전 11시에 주한 교황대사 Osvaldo Padilla 대주교는, 곡수리 성당(양평군 지평면)을 방문하여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와 여러 사제들과 신도들과 함께, 변기영 몬시뇰이 33년간(1984. 12. 31.~2016. 5. 21.) 머물던 천진암 성지에서 오래간만에 새로  옮긴 거처 입주 축복식을 거행합니다. 변기영 몬시뇰이 양평군 지평면 곡수리 공소(양평 본당 관활)로 거처를 옮기도록, 수원교구(교구장 이용훈 주교)에서는 사제관을 신축하였고,또,20여년 전에 가난한 시골 공소 교우들이 피땀으로 건립한 공소 성당을 교구장 주교가 공식 축성하며, 옛 교육관을 개보수하여, 변몬시뇰의 서재로 춧복합니다. 한국천주교회 요람지로 이미 Daveluy 주교가 부르던 권철신, 권일신, 등 대학자들의 복음을 선포한 양평 지역에, 옛 신앙 선조들을 기억하도록, 기념표석과, 사우거사 권일신 기념서재(沙右居士紀念書齋), 사제 식당으로 사용되는 신축 건물도 유한당권씨기념천학방(柳閑堂權氏紀念天學房),등으로 명명하여, 신축 건물과 개보수 시설물의 축복과, "하느님의 종 권일신 기념 표석, 제막, 등을 거행합니다.

 

 * 사우거사(沙右居士安東權日身)는 성오(醒悟),직암(稷菴)으로 불리던,  권일신 성현을 당시 선비들이 부르던 호칭으로, [사우]는 성현의 영세 본명 방지거 사베리오(Franciscus de Xavier)의 고향 본관 명칭 한역에서 따온듯하며(?), 거사(居士)라는 말은 유림들과 불자들 중에 덕망과 학식이 뛰어나면서도, 벼슬을 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서 고요하고 고결하게 사는, 백성과 선비들의 스승다운 대학자를 칭하던 낱말입니다.

 

   1791년, 신해년 말,천주교 신앙 때문에 체포되어, 무서운 고문을 당하고 유배를 가다가 첫번째 주막 용인 관아(현재의  신갈 驅邑면 사무소 마을 관아)의 객사에서 첫날 밤, 뒤따라 온 자객들에 의해 타살된 후(직계 5대손 권오규 변호사와 동생 권오진회장의 증언과 1807년 판, 안동권씨 족보 목각본 참조), 장례식 때, 성현의 큰 형, 권철신 성현이 관 상판에, "沙右居士安東權日身之柩"라고 명기하므로서, 최종 재확인되었읍니다.


   박학다식하여 학문과 수덕을 좋아하던 권일신 성현은 용문사의 몇몇 기념비석에도 그의 명문장과 함께 이름이 새겨져 있을정도로, 당대에는 유림들뿐 아니라, 불교 스님들도, 또  정조 임금까지도 존경하며 아끼던 대학자였으나, 양여지간(楊麗之間)에, 사학이치성(邪學而熾盛),즉, 양평과 여주 지역에 천주학이 불일어나듯,무성한 것은 권철신과 권일신 형제 학자들의 영향이라고, 당시 여러 문헌이 밝히고 있듯이, 당대 저명한 성현으로, 생장향 양근면 갈산리에 있던 자택의 서재에는 다량의 소중한 저서들이 소장되어 있었으나, 그 방대한 서적들은 모두 1791년 신해년 말과 1801년 신유년 초 봄의 천주교 박해시절에, 천주교를 반대하던 건달패들에 의해 서당과 자택들이 불탈 때 소실되었다고 전합니다. 이번의 紀念書齋에는 필자가 소장하며 자주 보고 사용하는 교회역사에 관한 일부 신구서적 약 4,000여권이 우선 이관,장서되었읍니다.

 

  * 유한당 권씨(柳閑堂權氏)는 권일신 성현의 친척으로, 병조판서 권엄의 딸로서, 이벽 성조의 부인이었으며, 천주교 서적이 처음 우리나라에 소개되고나서, 1779년을 전후하여, 천진암에 입산수도하던 장부 광암 이벽 성조께서 심층 연구한 후, 이승훈, 정약종 형제들과 함께 실천하기 시작하여, 한국천주교회가 창립되던 때, 유한당 권씨는, 모두가 중국에서 들여온 한문으로 쓰여진 책들이어서, 우선, 12단 기도문을 비롯한 천주교 서적들을 처음 언문(한글)으로 버역하여 정갈하게 베껴서, 즉,諺譯淨寫하여, 한문을 모르는 상민들에게 전파하였다고, 이벽전에도 기록되어 있을만큼, 당시 天學이라고 부르던 천주교를, 포천의 내촌면 화현리 본가와, 광주 두미의 별장에서, 유한당 언행실록, 등을 저술하며, 집안의 노비 가솔들과 평민들을 집으로 불러 모아서 가르치던, 여류 학자이었으며, 동시에, 한국천주교회 복음전파의 대표적인 한국천주교회 최초의 여성평신도 지도자였읍니다.

-Msgr. B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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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6. 24. 천진암 성지, 한국천주교회 창립 제237주년(1779~2016) 기념, 제38회(1979~2016) 행사 거행(주한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 경축사 메세지 발표.)


 

MESSAGE

 

 

MASS AT CHON JIN AM
JUNE 24, 2016 ? 11 A.M.
  

 

I wish to unite myself with the Bishop of Suwon Most Rev. Matthias RI Iong-hoon, the Ausiliary Bishops the Priests, Religious and Lay people ? as we celebrate the feast of St. John the Baptist.

 

 

 

Today we commemorate in our spiritual intentions the Servants of God, John Baptist Yi Byeok, and companions, whose remains are buried here at Chon Jin Am. We pray that their causeof martyrdom will soon be approved and that they will be, in the near future, elevated to the Altars as “BLESSEDS”, martyrs for the faith. The “servants of God” at Chon Jin am were the first Christians in Korea who gave their lives for Christ ? the blood of these first martyrs is the foundation stone of the life of the Church in Korea.
 

 

 

The Visit of the Holy Father to Korea (August 14-18) brought out three spiritual realities of the life of the Church in Korea ? its past, present and future: MEMORY, HOPE, WITNESS.
 

 

 

- MEMORY: we cannot forget the peculiar origins of the Church in Korea, by the grace of the Holy Spirt ? it is a Church that was started by lay persons. The first Christians and martyrs are here at Chon Jin am. This memory isnow blessed with our 103 saints, 124 blessed, all holy martyrs, and at present there is the advanced process in Rome, John Baptist Yi Byeok and 4 other companion whom we venerate and commemorate at today’s Holy Mass.
 

 

 

- HOPE ? We do not commemorate only the past, but also the present and the future. The martyrs of the Church are shining examples to all the baptized of total commitment to Christ.The Holy Father, Pope Francis, after his visit, asks all Korean catholics to commit themselves totally to Christ, in their lives and in their mission to others.
 

 

 

- WITNESS ? in the midst of secularization of society and relativism in serach for personal material comforts, the life of the holy martyrs and servants of God bears witness to the grace of the Spirit, as the continued fertility of the grounds of evangelization and personal sanctification.
 

 

 

Pope Francis asks us to be guardians of memory of hope” to be truewitnesses of the Gospel: “The Church is the guardian of memory and hope: she is a spiritual family in which the adults pass on to the young the torch of faith received from their forebears. The memory of past witnesses becomes a new witness in the present and hope for the future” (Pope Francis, August 20, 2014)
 

 

 

It is the prayer of Pope Francis that: The tree that was planted and nurtured by the blood of the martyrs will spread its branches ? in Korea and in other countries of Asia- like arms of love for Christ in Korea. We pray that MEMORY, HOPE, AND WITNESS will continue to urge us on to the joy of gospel.

 

AMEN  

 

 

Seoul, 24 June 2016 /  

 

 

+Osvaldo Padilla
Apostolic Nuncio in Korea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 5.16 광장에서 거행된 한국순교복자 103위의 시성식 광경.당시 언론과 보도기관에서는 100만여명으로 보도하였으나, 필자는 55만명~60여만명으로, 내한한 성청 인사들에게 보고 하였었다.

 

본문이미지

 


Sua Santita Giovanni Paolo II aveva concelebrato la messa per la canonizzazione dei 103 Beati martiri coreani, con molti Cardinali, Arcivescovi, Vescovi, sacerdoti e fedeli cattolici - circa 500.000 - a Seoul il 6 maggio 1984. Per quella canonizazione, il Rev. Byon, rettore di Chon Jin Am, il luogo natale della Chiesa, aveva servito per 5 anni (1980~1984) come segretario esecutivo generale della commissione episcopale per la canonizzazione dei 103 Beati Martiri coreani.

(Photos by Baeck - Nam-Shick).


변기영 몬시뇰이 [사랑방]을 열었습니다. 한글과 영문 출입문 어떤 것을 치셔도 됩니다.

 

www.변기영몬시뇰사랑방.kr  또는  www.msgr-byon.org  홈페이지 [단문.기별.신문]에서 퍼 온 글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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