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0일 (일)
(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자유게시판

★ 선생님이, 우리 엄마였으면...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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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정 [NATALIA99] 쪽지 캡슐

2001-05-06 ㅣ No.20118

     배경 음악: 『 A’ddio 』

 

 

   나 탈 리 아  게시판입니다.  

 

 

 안녕하세요?

 

 서울 노량진 성당 주일학교 교사 최미정 나탈리아입니다.

 

 한 주간동안 평안히 잘들 지내셨나요?

 

 지난 게시판에 올린 『 사제의 마음은 부모님 맘~♬ 』글에

 

 보내주신 관심에 감사드리며, 더욱이 회신

 

 통해 격려 말씀 아끼지 않으셨던 베네딕도 형제님과

 

 이재경 요한 형제님께 더욱 감사로운 마음 전해 드립니다.

 

 참 작고 모자란 맘.

 

 때때로 부끄런 마음 갖고 글 올리나,

 

 늘 보내주시는 변함없는 여러분들의 사랑을 통해

 

 글로만이 아닌 마음으로 또 몸으로

 

 더욱 예쁘게 살아가는 주님의 딸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모습 보여 드릴께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to.

 

 빈민 사목하시는 수사님께서 내일 그 곳서 하는

 

 행사에 초대해주셔 앞으로 더워질 날들

 

 땀 흘리실 때 쓰시라 손수건 두 장을 사러

 

 저녁 시간 노량진 일대를 돌아 다녔습니다.

 

 곳 곳에서 참 향기로운 꽃    냄새.

 

 향기보다 더욱 아름다웠던 고운 빛깔들.

 

 온 동네는 카네이션으로 뒤덮여 있었고,

 

 한 손엔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다른 손엔 장난감이며 풍선을 든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내내-

 

 자신의 어린 시절 불우했던 모습을 써 보내주셨던

 

 한 형제님의 글이 자꾸 머리 속에 떠올랐습니다.

 

 『 여섯 살 때 엄마가 돌아가셔

 

    얼룩진 운동화와 빨지 않은 바지등등...

 

    누가 저를 마땅히 챙겨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언제나 아이들은 저를 놀리곤 했어요.

 

    엄마 없는 아이라고```.

 

    그리곤 한 순간의 감정을 자제치 못해

 

    지금은 죄인의 몸으로 살아가구 있다구. 』

 

 엄마 없는 아이라고...  

 

 온 종일 이 글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첫 답장에서 그 갇힌 곳에서

 

 형제님이 겪고 있는 용서와 화해를

 

 함께 나누고 싶다던 제 편지글에

 

 눈물 흘리며 죄의 용서를

 

 주님께 빌고 있다 했습니다.  

 

 부모님,

 

 혹 어제 어린이날    

 

 좋은 선물 못해 주었다 속상해 하지 마세요.

 

 좋은 곳에 데려가 주지 못했다 미안해하지 마십시요.

 

 어머니, 아버지

 

 당신들은 곁에 계셔 주시는 것만으로도

 

 행복입니다     

 

 우리 옆에 있어 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축복입니다.

 

 

 

 

 to.

 

 그 분이 그랬어요.

 

 지난 경향잡지에 실린 글에서

 

 어린시절 자신의 주일학교 선생님의 모습을 보았다구요.

 

 아마 난 선생님의 모습보단 우리 학생들에게

 

 엄마의 모습 으로 있어야 할까 봅니다.

 

 몇 년전 하얀 얼굴의 말 뒤 끝을 꼭 흐리고

 

 말았던 그 아이가 지금은 커 벌써 중2가 되었는데,

 

 아직도 주일학교에 나오면 자꾸 내 손을

 

 자기 얼굴에 가져가 비벼댑니다.

 

 그리고 말하지요.    

 

 " 나탈리아 선생님이 우리 엄마였으면. "

 

 그 아이가 받고 싶었던건 손에서 느껴지는

 

 체온만큼이나 더운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내가 지금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든

 

 이 봄 속에서도 추운 이들에게 따뜻함을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성모님의 더운 사랑의 숨결  을 닮은

 

 따뜻한 모성의 모습이었으면 합니다.

 

       - 아 멘 -    

 

 

 

 

 

 그 분의 편지를 받고 다시 그 잡지를

 

 꺼내 읽어 보았습니다.

 

 아래에 그 분의 편지와 그 전에

 

 제가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썼던 글.

 

 전에 게시판을 통해 올린 적도 있었던

 

 그 글을 다시 한 번 올려 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사랑 때문에

 

 다시는 우는 아이들이 없었으면 하는

 

 간절함은 담아서요.  

 

 

 

 

   제목: ’사랑받지 못하여 더욱 사랑해야 할

 

               우리의 아이들 ’

 

      ( 부제: 우리들의 관심 속에 사랑 받아야 할 아이들 )

 

 

 

  오늘 가을 햇살 이 너무나 눈부셨다.

 

  어제 부탁드린 이 고운 햇볕과 따스함을 어쩌면

 

  나의 하느님은 하나도 잊지 않으시고 모두 고루 고루

 

  챙기셨는지 감사할 따름이다.    

 

  안에 얇은 옷을 받쳐 입었어야만 했을

 

  체크 무늬 반 팔 원피스를 난 그냥

 

  ’춥지  않겠냐’는  엄마의  걱정을 뒤로 한 채

 

   입고 성당을 향해 나왔다.

 

   뒷 목에 닿는 가을 볕이 아직 과수원에 남아있을

 

   마지막 과일들을 익히느라

 

   그래도 꽤 더운 열기를 뿜어내는 탓에-.

 

   그리고 나는 오늘 교리를 마치고

 

   많은 아이들과 함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란

 

   놀이를 하며 고함도 지르고 장난기 섞인

 

   까치 발 걸음걸이로 아이들을 홀려(?)가며  

 

   그들과 함께 성모님이 내려다 보시는

 

   성당 앞 마당에서 작은 축제를 벌였다.

 

   내게는 주일 학교를 하는 날이면

 

   특별히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다.

 

   선미, 선혜, 영찬이 까마귀 삼 남매.

 

   내가 유치부 교리실을 기웃거리는

 

   선혜와 영찬이를 본 것은 2년 전쯤.

 

   유난히 지저분한 그들의 옷차림에서 부모 손이 잘 안타는

 

   아이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래서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되었다.  

 

   그들이 알아 듣든지 하여튼 나는 이 곳이 하느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에 단정히 하고 와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었고 다음 주에는 깨끗이 세수하고 오겠다는

 

   약속을 손가락 걸고 받아 두었다.

 

   그들을 기다리는 일주일은 왜 그렇게 길기만 하던지.  

 

  조카 녀석 옷 장을 뒤져 영찬이 옷가지 몇 개를 고르고

 

  선혜를 줄 토끼가  쭉 붙어있는 노란 색 머리 띠도

 

  하나 샀다.         

 

  그들을 위한 작은 준비를 하면서 가슴 안에 몽글몽글

 

  피어나는 것이 있었는데 그건 분명 사랑이었을 것 같다.

 

  드디어 그 날, 나의 성급함 때문이었을까

 

  아침 햇살은 유난히 졸린 빛을 길게 뿜어내는 듯 했고

 

  그래 다른 주보다 서둘러 성당 을 향해 갔다.

 

  근데 가슴은 또 왜 그리 두근거렸던지.

 

  그런데 그 남매는 야속하게 오지 않았다.  

 

  긴 바지를 질질 끌고 다녀 밑이 다 헤어지고

 

  꼬질꼬질 때가 낀 소매의 맨질맨질함이

 

  내내-  내 머리 속에 잡혀 떠나가질 않았다.  

 

  그렇게 몇 주일을 우울하게 보냈고

 

  내가 다시 그들 남매를 본 것은 이십여일이 지난 뒤였다.  

 

  그 후 우연히 그 아이들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나는 왜 그들이 까만 얼굴을  하고 다닐 수 밖에

 

  없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요즘 세상에 이런 곳도 있구나 할

 

  다 쓰러져 가는 집에 아니 방에 문을 여니

 

  삼 단짜리 장농 문은 모두 열려져 있었고

 

  방에 펼쳐진 밥상 위에는 언제 차려 놓았는지

 

  꾸득꾸득 밥풀이 눌러 붙어져 있고 이불은 펼쳐진 채

 

  방 안  가득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어디를 봐도 세수를 할 만한 곳은 없었다.  

 

  가슴이 찡해옴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무너져 내려

 

  그 아이들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가슴이 쿠욱- 아파 다 자라버린 어른이었지만

 

  나는 어린 아이처럼 큰 길가로 나와서도

 

  펑펑 울 수 밖에 없었다.

 

  정말 둘러보면 우리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 성당에도 무어라 물으면 "네, 네, 선생님 있잖아요``."

 

  하고 뒤 끝을 꼭 흐리고마는 하얀 얼굴이 삐쩍 마른 큰 키가

 

  그래서 더욱 애처로워 보이는

 

  엄마와 떨어져 사는 아이도 있고

 

  늘 밤 마다 형제끼리 또는 자매끼리 저들끼리만

 

  지내는 집은 또 얼마나 많으며  

 

  어른들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가정이라는

 

  울타리 밖에서 서성거리는 아이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그들을 우리는 얼마나 감싸 안을 수 있을까?

 

  집 안의 경제력이 많든 적든 상관없이  

 

  세수 깨끗이 씻기우고 단정한 옷 입혀가지고

 

  성당에 보내지는 아이들은 너무나 행복한 애들이다.

 

  부모의 사랑만큼 아이들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것이 또 있을까?   

 

  작은 몸에 시집도 아직 못간 처지에

 

  왜 그리 모성 만 강하게 있는지!

 

  정말 사랑 밖에 있는 우리의 아이들만 보면

 

  그저 핑 눈물만 날 뿐이다.

 

  우리 공동체가 그들을 정말 나의 자식처럼

 

  끌어 안을 수 있을 때 하느님이 원하는 주일학교,

 

  사랑의 공동체는 실현되지 않을까 한다.

 

  이를 위해 나 또한 주일 학교 교사로서만이 아닌

 

  사랑을 가진 하느님의 한  자녀로 그들과 함께 할 일에

 

  꼭 같이 하고 싶다.     

 

  그래서 지금도 늘 성실하고 노력하는 자세로

 

  무엇에 대한 마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강한 책임감으로 늘 준비하고 깨어 있어야겠다.

 

  그 길로 가는 길에 혹 하느님께서 시험 삼아

 

  나의 눈물을 한 사발씩 원하신다 하더라도

 

  나는 사랑을 원하는 아이들에게 반드시 그 사랑을

 

  나누어 주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을 가진다.

 

  아마 그 마음을 받고 자라난 아이들은 더 큰 사랑덩이들이

 

  되어 또 다른 사랑을 만들어 내지 않을까 한다.

 

  나눌수록 커지는 마음들이 있길래.   

 

  나의 사랑하는 주님이 꼭 이를 들어주심을 알기에

 

  나는 오늘도 예쁜 손 기도하는 손을 하며

 

  그 마음을 하늘로 쏘아 올려 보내 본다.

 

 

 

 

 

 

  부활 4주일 간장 종지와 복음 말씀 ( 성소주일 )

 

      그 목장  그 목장

 

   그 목장의 문은 좀 작지만

 

   한 번 들어서면 참 광활한 풀밭입니다.

 

   나는 그 풀밭에 누워 주님 피리소리 듣고 싶지만

 

   내 발목 휘감는 세상의 칡넝쿨 너무 질겨서

 

   피리소리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점점 멀어지는 뒷모습만 바라봅니다,

 

   너무 멀어서 보이지 않는 날도 더러 있습니다.

 

 

 

 나는 내 양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 요한 복음. 10장 27절 - 30절.   

 

 그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라온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 을 준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고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맡겨 주신 것은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아무도 그것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    "

 

 

 

 

 답장을 쓰면서도 항상 몇 번의 망설임은 꼭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편지를 받아들고

 

 주저함이 생길 수 있을까요?

 

 빈 방을 지키고 앉아 늦은 밤 돌아올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처럼.

 

 내게 편지를 보내고,  

 

 어둡고 좁은 방에서

 

 긴 목 빼들고 기쁜 소식을 기다릴

 

 그 분을 난 절대 더 기다리게 할 수 없었습니다.

 

 편지 안에 그 분의 여섯 살 이후

 

 받아 보지 못했다던 엄마의 사랑을

 

 빼곡히 채워 보내드릴까 합니다.

 

 여러분들도 그 분을 위한 기도

 

 함께 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더불어 가정 밖에 있는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서도요.

 

 

          - 2001년 5월 6일 성소 주일에 -

 

    +^.^+  따뜻한 모성을 갖고 싶은 나탈리아 올림.

 

 

 P.S: " 부모님, 당신들은 계셔주심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충분히 행복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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