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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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4.21.복음말씀 중,"(예수님과 신자들) 육신부활"묵상나누기 예시34 -양남하 시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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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남하 [simonyang] 쪽지 캡슐

2019-04-14 ㅣ No.217794

2019.4.21.복음말씀 중,"(예수님과 신자들) 육신부활"묵상나누기 예시 34-양남하 시


 

◆복음말씀전문;<"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 ">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9


1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3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4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9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복음말씀 전문 중 마음에 와 닿는 성구 >
 

 "(예수님과 신자들) 육신부활"


■< 묵상과 다짐 >

 <묵상 >

부활은 다시 산다는 것으로 가톨릭 신앙의 기본이다. 예수님은 형극(荊棘)의 길을 여러 기적까지 곁들여 보여주시며 걸어가시면서도, 고난을 견디면 너희도 부활할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셨다. 그래서 님께서 죽기전엔 인기 짱이었다. 그러나 그 분이 십자가에 못박히자 수제자인 베드로까지 도망쳤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5-26)는 예수의 물음에 알고말고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한 베드로와 마르타였다. 이들 대답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자기가 부활과 생명이 되어야 한다는 심오한 진리를 전혀 생각하지 못한 점은 오늘 날 예수님을 믿는다는 상당수의 신자·성직자들과 꽤 닮은 듯 싶다. 특히 마르타 식으로 부활을 이해하는 작금의 사람들을 예시하면, 지하철 안이나 길거리에서 피켓이나 어깨띠에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들고 다니면서 목청껏 예수 믿으세요.’ 눈살 찌푸리게 하는 개신교 관계자나, ("사랑하라"는 주님 말씀 대신) 하극상을 일으킴은 물론 증오와 분노를 부추겨 점화한 촛불을 든 신자들과 함께 여러 형태의 데모를 벌려온 삽시(澁枾)들 모습은 아닐까?!

   사실 ’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란 말은 우리 인간에게는 의미가 있지만, 언제나 현재로 존재하는 하느님에겐 별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인간에겐 과거와 현재가 있어서 삶과 죽음과 부활을 구분하지만, 하느님에겐 현재만 있어서 어제의 하느님이나 오늘의 하느님이나 내일의 하느님에 차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의미는 영원한 현재인 하느님으로 돌아갔다는 것임으로(1) 이 정도로 묵상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고백기도인 사도신경에서 언급되고 있는 "신자들의 육신부활"에 대해 묵상해보고자 한다.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히 삶을 믿나이다.” 라는 말로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육신 부활에 대한 고백으로,  사도신경을 끝낸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은 육신 부활고백을 통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인간 모두 하느님의 구원 은총에 힘입어 전인으로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를 희망하는 내용이다. 이는 하늘이 바로 하느님이 사시는 궁전이 있는 장소이고, 태양이 우주의 중심인 지구주위를 돌고 있다고 믿었던 천동설(天動說)의 성서시대 사람들 수준을 헤아린 섭리였었을 것임에도 지금도 그대로다. , 육신 부활은 이미 욥기(19,25-27)에도 명시한 내용이지만, 11차 톨레도 공의회(Concilium Toletanum, 675)죽은 이들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부활할 것이나, 다른 육신으로서가 아니고 현세적 육신을 입고 부활하리라고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육신 부활을 인간의 잔해인 유골이 세상 종말에 하느님으로부터 새롭게 활력을 받아 다시 소생(蘇生)하여 천국 또는 지옥에서 존재하는 영혼과 재결합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듯싶다.

 

<다짐 >

"부활이요 생명을 믿는 자는 죽지 않는다"는 주님의 말씀을 굳게 믿는다면, 구태여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염려할 필요가 없다. 조금 먼저 목숨이 끊어진다 해도 부활과 생명을 믿는 자는 영원히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삶과 죽음은 별개의 것이 아니고 하나인 것이다. 따라서 "죽어서 썩은 육신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자연과학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하느님의 전능에 의해서, 썩을 몸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영적인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1 고린 15,42)는 말씀을 깊게 묵상하기 마련이다.(註2)

그런 고로 살아있는 동안에, 썩어 없어질 육신에 투자하기 보다는, 영적인 육신 부활 신앙고백에 더욱 매진(邁進)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1):부활이나 승천의 참의미는 예수님이 제한적 시공간 안에 머물지 않으며, 죽음마저도 영원한 하느님의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 생명의 사건이 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만물 안에 (창조주이신) 이 존재하고, 그 신 안에 만물이 존재한다는 과학적인 신의 관점이나 "그날,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또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라는 복음(요한 14,20)에서 보더라도, 부활이나 승천은 영원한 현재인 신의 품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2): 신자들의 육신이 비록 영적인 몸으로 부활할 몸이라 할지라도 살아있으면서 이룩한 선행과 기쁨, 고통과 죄 등이 들어있을 것이므로, 따라서 미음도, 고통도, 나쁜 습관도, 분노도 다 생전에 청산해야 하고 지은 죄도 용서받고 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모든 일에 감사하는 하느님의 뜻인 천국의 삶이기 때문이다(1테살 5;16~18).

하지만, 전통적인 종말교리는 종말사건을 죽음과 심판, 천국과 지옥이라는 사말(四末) 사건에 대한 교리는 여전하다. 이 교리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이자 궁극 목적인 부활이 믿음의 사건으로서가 아니라, 죽음 이후 육신과 관련된 윤리문제처럼 이해되고 있는 것이 큰 문제다. 이 상선벌악의 윤리가 하느님 나라와 부활에 관해 생생하게 살아있던 예수님의 가르침을 대체하는 듯한 기운이다. 그 결과는 신자들이 현세에서의 치열한 삶에서 이루어져야 할 적극적인 삶의 실천에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심리적 위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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