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0일 (일)
(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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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Re 10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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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석진 [hotsourc] 쪽지 캡슐

2000-05-23 ㅣ No.10996

 앞에서 지방에서 사목하시는 어느 신부님께서 올린 글을 찬찬히 읽고 나니깐, 마치 한 5년 전에 저희 본당 신부님께서 저희 교우들에게 고백했던 미사의 한 순간이 생각나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제가 다니던 성당은 작은 도시에 있었기 때문에, 신부님이 한 분이서 사목하시는 성당이었습니다. 그 성당에 비교적 젊은 신부님께서 부임해 오셨습니다. 신부님께서 부임하신 지 한 3년 정도의 시간(보통 혼자서 5년 정도 계시는 데)이 흘렀을 때 어느 주일 날 저녁 미사 때의 일입니다.

 

 여느 때처럼 미사를 거의 다 마치고, 마침 예식만을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께서 잠시 미사에 참례한 교우들에게 잠시만 서 달라는 부탁을 하셨습니다. 영문도 모른 체 수 십초를 서 있으니, 그제야 신부님께서는 어렵사리 말씀을 꺼내시더니, 고개를 빳빳이 들고서 교우들 모두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성당에 부임해 오셔서, 그 신부님께서 그렇게 다급히 크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시는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너무도 조용하신 분이셨거든요. 또한 누구에게나 다정한 분이셨습니다.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아주 대단하셨습니다. 그래서 냉담하던 젊은 학생들이 신부님이 좋아서 미사에도 잘 참석하고 그랬습니다. 그 신부님 성품이 너무 존경스러운 나머지...)

 

"자매님, 이제 더 이상 사제관에 개인적으로 전화하지 말아 주십시오. 여기 계신 자매님,

 제가 누구를 두고 말씀하는 것인 지 본인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자매님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느님을 더 사랑하고, 전 이 교우들을 자매님처럼 똑같이

 사랑합니다. 그러니 교우들 모두를 자매님 한 명보다 더 사랑하는 셈입니다"

 

 하고 너무도 당당히 저희들을 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순간 얼마나 많이 충격을 받았던 지...아니요, 제단 위에서 성사를 집행하시는 분은 곧 예수님의 대리자로서 서 계신 분이라는 가르침이 그냥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가슴깊이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가슴이 찡해 와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자매님, 저는 할 말을 다 끝냈습니다. 이제 젊은 저를 그만 좀 괴롭혀 주십시오. 교우

 여러분 돌아가서 저를 위한 기도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고 자매님께서도 하느님을

 보시고, 제가 아무리 좋더라도 하느님께 뽑힌 사람인 저를 그만 놓아주십시오."

 그렇게 말씀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여러분은 가지들입니다. 내 안에 머무는 사람, 그리고 내가 그 안에 머무는 사람, 그런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나 없이는 여러분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요한 15,5)  신부님의 그 말씀은 이 말씀과 연결이 너무도 잘 됩니다.

 

 예수님께서 왜 자신을 나무에 비유하여, 거기에 붙어 있으라고 말씀하시는 지 오늘도 잊지 못하겠습니다. 그런 나무(그 신부님과 같다면)라면 난 가지가 되어 단단히 붙어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합니다. 이번 주일의 복음 말씀이 저에겐 그냥 죽은 문자가 아닙니다. 너무도 가슴에 남는 구절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항상 그 때의 그 신부님의 사랑 고백을 떠올리면서...그 날의 신부님께서 교우 모두를 두고 떳떳이 고백하신 것은 곧 예수님의 말씀과 같았습니다. 저희들을 그토록 사랑한다는 말, 그 신부님께서 하신 그 말은 빈 말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사제는 주님께서 뽑은 신 분이라는 가르침이 적어도 저에게도 헛말이 아닙니다.

 

 해서 전 아래 신부님께서 욕하라고 하신 신부님을 욕을 못하겠습니다. 설령 아래 네 가지에 사유가 있다고 해도 말입니다. 그렇다고 그냥 덮어 주자는 말은 아닙니다. 비난과 험담으로 바깥으로 가지고 가서 욕하는 것은 얼토당토하지 않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서울에서 성당에서 다니면서 한 분 이상 씩 계시는 성당, 큰 성당에서 몇 몇의 신부님들을 대하면서 예전에 다니던 곳의 신부님들과는 조금 다른 면도 없잖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다들 좋으시고, 주님께서 뽑으신 분이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저의 말에 모두 공감하지 않으셔도 좋지만, 신부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본당 신부님은 모든 신자들의 거울이라는 사실일 뿐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손바닥 하나로는 박수 소리가 나지 않는 법입니다. 문제는 한 명만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분명히 저의 잘못도 있다는 사실을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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