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0일 (일)
(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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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와 그의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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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근 [js56] 쪽지 캡슐

2003-06-16 ㅣ No.53507

짤리고 첫번째달

 

#백수

 30년간 다니던 회사를 사직했다. 석별을 고하고 회

사 건물을 나서는데 찔끔하고 눈물을 흘릴뻔 하였다.

그러나 눈앞의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오히려 이제

큰짐을 내려놓은 것 같은 후련함을 느낄수 있었다.

 

 아! 드디어 은퇴다. 나는 30년간 열심히 일하여 왔

으니, 이제 그만 푹 쉴거다.그리고 이제부터 은퇴생

활을 즐기는 거야… 그동안 회사에 억매어 내가정작

하고싶었던일 하나도 못하며 30년을 지내왔는데…이

제는 나하고 싶었던일 한번 실컷해보자. 교리신학원

도 등록하고, 산간벽지 공소찾아 여행도 해보고, 그

밖의 취미생활도 한껏누려보자…

 

 아내도 열심히 일한 나를 사랑스런시선으로 바라보

며 나의 손을 꼬옥 잡아준다…..

 

#그의아내

 그이가 실직했다. 이제 오십쫌 넘은 나인데… 이제

부터 정말 돈들어 갈일도 많은데…큰일났다. 쥐꼬리

만한 퇴직금 달랑 던져놓고는 축쳐져있는 그이를 보

니 눈물이 나려고한다. 나를 위로한답시고 이제부터

은퇴생활을맘껏즐기겠노라고 허풍을 떠는 그이가 불

쌍하다. 오늘 저녁에는 삼겹살구어서 소주 한병으로

위로나해주어야겠다.

 

 그나저나 은퇴생활을 즐기겠다니…?? 그게 어디 될

법이나 한소린가. 좀쉬다가 아무일이라도 돈되는 일

꺼리를 찾아야지. 은퇴가 다머냐… 말이야 바로해서

짤린거지. 실업자 된거지...은퇴생활을 즐기겠다고?

에잉~ 농담이겠지...

 정신차리라는 의미로 손을 꽈악잡으며 눈을 흘겼다.

생각같아서는 얼렁 정신차리라고 꼬집어주고 싶었다.

 

 

짤리고 난후 여섯번째 달

 

#백수

 어제는 내 생일이었다. 아내가 정성들여 끓여준 미

역국과 잡곡밥을 먹었다. 미역국에는 고기대신 새우

를 넣어 그맛이 더욱 개운하였으며 밥에는 성인병에

좋으라고 잡곡을 듬뿍 넣어 주었다. 세심하게  나의

건강을 생각해 주는 아내가 고마웠다…

 

 어제 또 하루를 어떻게 때우나하고 소파에 누워 밍

기적거리고 있던차에 손태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회

사다닐때 내가 데리고있던 녀석이었다.저녁이나같이

먹자는 거였다. 갑자기 왠 저녁이냐고 물었더니오늘

이 헹님 생일이 아니냐 그래서 함 대접해드리겠다는

거다. 자기도 놀고있는 처지에…흐으, 감격…녀석이

내생일을 기억하고 있었다니!!!

 

 허기야 내가 누구냐.부하직원들로부터 사랑과 존경

을 한몸에 받아왔던 내가 아니었던가.항상 정의에앞

장서왔고 모든공로는 부하들에게돌리고 비난과 책임

에 대하여는 바람막이가 되어주던 진정한보스..그게

바로 나 아니었던가...

 

 엊저녁 생각지도 않게 근사한 식당에서 옛부하직원

으로부터 생일상을 받고보니 아, 내가아직 죽지않았

구나! 하는 생각에 힘이 불끈 솟는다.

 

#그의아내

 어제가 저이의 생일이었다. 하구한날 아무런대책없

이 방구석에서 개기고만 있는 그가 얄밉기는 하였지

만 그래도 어쩌겟는가 미역국이라도 끓여주어야지..

 

쇠고기라도 한칼넣으려다 백수처지에 고기가 다무어

냐싶어 마침 냉장고에 남아있는 마른 새우를 한웅큼

집어넣고 끓였다. 그리고 얄미운김에 쌀에다는 평소

보다 잡곡을 두배나 더넣고 박박씻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엔 저양반 왜저리 실실 웃고 있는

거지? 무슨좋은일이있냐고 물었더니 어제 옛날 부하

로부터 생일이라고 대접을 받았댄다. 그러면서 회사

다닐 때 자기가얼마나 인기가 있던 상사였는지 침을

튀기며 자화자찬하기시작 하였다. 나는 기가 막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어찌 자기입으로 자기칭찬을

그리도 장황하게 할 수 있는 것인가. 저이가점점 이

상해져가고 있는것 같다. 아무래도 오랜 백수생활끝

에 좀 어떻게 된것같다.다음번 종합진단때는 정신과

도 볼수있냐고 간호사에게 슬쩍 물어 보야겠다.

 

 그리고 느닷없이 옛날 부하가 생일턱을 냈다는것도

수상하다.쫌있으면 그넘으로부터 사업자금좀 대라는

부탁이 들어올 것같다.

 절대 안된다.안되고 말고…비록 쥐꼬리만하기는 하

지만 이돈이무슨돈인가...낼 부터는 예금통장관리를

좀더 철저히 해야겠다.

 

 

백수생활 8개월째

 

#백수

 백수동기 네명이 오랜만에 모였다.시원한 계곡에서

토종닭 백숙에 소주들이 거나해졌다.총각때부터고스

돕에서 딴 돈으로 재형저축부었다는 전설적인 악질,

송부장이 밥값내기 고스돕이나 치자고 제안 하였다.

 

나는 얼른 주머니계산을 해 보았다. 집에서 나올 때

오만원, 담배사고 전철표에 삼천원, 남은돈이 … 나

는 변소에 가는척하고 오천원짜리 한장을 다른 주머

니에 따로 간직하고는 판에 끼어 앉았다. 집에갈 차

 

비는 남겨야 되지 않겟는가.송부장 저악질을 고스돕

으로 이길수는 엄고...먹는게 남는거다싶어 계속 닭

다리 씹어가며 소주마셔가며,가급적 광만팔아야지하

는 작전을 폈다.만약 다잃는다면 십만원잃었다고 뻥

치고 고리나 뜯어야징...

 

 밤늦게 돌아 오는데 무척 취해서 제법 다리가 휘청

거렸다.아파트입구정문까지 아내가 마중나와 있었다.

나를 발견하자 아내는 나의겨드랑이에 팔을 넣어 부

축해주며 에공~적당히 마실것이지…하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 본다.  

 아, 아내여 고맙다. 내걱정해주는사람은 천하에 당

신밖에 없구려….

 

#그의아내

 맨나다 컴퓨터앞에서 담배펴대며 하루종일을개기던

저인간이 오늘은 외출을 하겠단다. 옛날 회사동기들

을 만난다는거다.집에서 개기는것 보다 백수끼리 만

나서 백수탈출방안을 논의해보는것도 좋겠다싶어 용

돈도 충분히 주어서내보냈다. 그런데 밤열두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이인간이 들어오질 않는거다. 술 취해

서 무슨사고라도 친건아닌가 은근히 걱정이 된다.그

리고 술취해서 비틀대는꼴을 동네여팬내들이 볼까봐

겁도난다. 그래서 아파트정문입구까지 가서그인간을

기다렸다.

 

 아니라 다를까…비틀대며 그인간이 나타난다. 나는

얼른 뛰어가 그인간의겨드랑이를 틀어쥐고는 집으로

끌고 들어갔다. 나는 생각했다.앞으로 이인간에게는

절대로 과하게 용돈을 주지 말아야지.용돈점 생겼다

하면 이렇게 술이 떡이 되어 들어온다니까.

 

 

어느덧 백수생활 1년째

 

#백수

 오늘은 고교동창넷이서부부동반으로 만나는 날이다.

솔직히말해서 나가기가 좀 부담스럽다. 한넘은 변호

사고 한넘은 의사이다. 나머지 한넘은 머 요즘 중국

에서 한식당을하겠다고 뻔질나게중국을드나들고있다.

 

 온전한 백수는 오직 나하나뿐인 셈이다.그렇다고몇

십년째 이어오는 만남을 피할수도 없고...몇 달전에

모일때도 이핑게 저핑계로 빠졋는데 또빠질수는없다.

내가  머, 죄지은것도 아니고 피할 이유가 없잖은가.

좋다, 이왕 나갈것...기죽지말자.

 

 식사내내 나는 술만 퍼마셨다. 세놈들도 가급적 백

수인 나를 신경써주는 것이 고마웠다.식사가 끝나고

근처 노래방으로 이차를 갔다. 나에게 마이크가왔을

때 무슨노래를 부를까 고민을 하다가 비교적 부르기

쉬운 -눈물을 감추고-를 불렀다. 신나게 불렀다. 동

창모임이란 참 존거다.

 

 아, 무척 취한다.깜빡정신을놓았다가 차려보니차안

이었다. 아내는 내가 잠이깰세라 조심조심 저속으로

운전하고 있었다.우리는 집으로 돌아가고있었다. 여

러모로 나에게 신경써주는아내가 참 고마웠다.

 

#그의아내

 남편은 그저 술만 퍼마시고 있었다. 좋은 안주도 많

건만,흐이그,저미련한 인간같으니...- 아직도 쉬고계

셔? 영석이 엄마가 내귀에 조대이를 박고는 속삭였다.

저이가 놀고 있는것이마치 고소하다는 표정이었다.나

쁜년,그래 우리남편백수다,그러나 우리집엔내가 있다.

 

나,남편에게만 기대서놀고먹는 니들과는 다르다 이말

이다.나는 전문직의 라이센스를 갖고있는 파워우먼이

란 말이다. 이제부턴 내가 우리집을 책임질거닷.이차

로 근처의 노래방을 갔다.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남

편의 행동이 차츰 수상스럽다. 비츨대며 화장실을 자

주가는거다.저인간의 특기는화장실가는척하며 술값을

계산하는 거다.

 

 테이불을 슬쩍훑어보니 이건 술값이 장난이 아니다싶

다. 국산양주 두어병에 과일안주,마른안주..혹시나 오

늘 기죽지 말라고 집을나서며 삐씨카드를 저인간의 손

에 쥐어주었는데..아,걱정스럽다. 만약 오늘 제분수도

모르고 저인간이 술값계산한다면…바로 죽음이닷.앞으

로는 절대로 저인간에게 삐씨카드를 쥐어주지말아야지

 

비이에저어저 누운무울에 저어져

쑤우라리인 카아스메

코오도옥이 너엄쳐 너엄쳐

내야아윈 카아수메 너엄쳐 흐으르은다아~

 

 저인간이 오늘따라 왜 저리 청승맞게 노래하는거징..

갑자기 내눈에 눈물이 쏘옥 빠져 나올라고 한다. 얼른

화장실로 뛰어가 눈물을 콕콕 찍어내고 있자니 저인간

이 측은하다는 생각이들어 또자꾸만 눈물이 그치려 하

지않아 애를 먹었다.조년덜에게 짜고있는거 들키면 무

슨 망신이냐.

 

 집으로 돌아오는길,옆좌석에 술에 취해 추욱쳐져있는

남편의 입가에 침이 흘러나오고 있는걸 보자니 또한번

눈물이번져시야가 흐려진다.차의속력을 줄이며 운전해

야했다. 오늘은 이래저래 저인간땜에 눈물점흘려야 하

는 날이언능갑다.

 잠에서 깬 그남편이 나를 보면서 헤벌쭉웃는다. …..

 다시보니 참 착하게 생긴 얼굴이다.

 

 

백수생활 2년

 

#백수

 아내가 출근한사이 설겆이와 집안청소를 말끔히 해치

웠다.그리고 배란다화초에 물도 주었다. 잠시 쉬며 커

피한잔을 끓여마시며 성서를 읽었다.

 오후엔 하나로에 들려 아내가 써준 메모를 보며 장을

보았다.아내가퇴근한후에 집안일에 신경쓰지않도록 또

무슨일을 하여야할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아,나는 운좋은 사람이다. 능력있는 아내가 아니었다

면 우리집안 형편이 어찌될뻔 했겠는가…

 은퇴생활을 즐겨보겠다고? 공소찾아 여행이나 즐겨보

겠다고? 교리신학원이나 등록해보겠다고?다아 나의 철

없는 객기였다....그리고 부질엄는 한여름밤의 허황된

꿈이었다.

 이크,아내가 퇴근할시간이네..얼렁마루에 걸레질이나

함 더해야지....

 

#그의아내

 남의 돈을받고자 일한다는게 얼마나 고달픈일인지 뼈

저리게 깨달앗다. 그런데 남편은 이고달픈 월급쟁이생

활을 30년이나 해오 않았던가.생각해보면 불쌍한 사람

이다. 힘들다는얘기 한마디없이 30년간 묵묵히 우리가

정을 행복하게 꾸려왔던 남편에 대한 애정과존경이 새

삼 우러난다.백수되었다고 내가 그동안 남편을너무 업

수이여겼던것같다. 그러면 내가 죄받지...앞으로 공소

찾아다니는 여행도 자주 해보라고하고…또 내년봄에는

교리신학원에 등록도 하라고 해야겠다.

 

 열심히 일한 당신이니까 은퇴생활을 즐길권리가 당연

히 있는거지머, 오늘은 퇴근길에 광어나한마리 회떠가

지고 소주한잔 대접해 드려야겠다...

 불쌍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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