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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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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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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03-09-14 ㅣ No.56928

 

 명동에도 틈새시장이 있습니다.

여자들의 머리띠가 4개에 천원이고, 예쁜 반지가 1개에 천원인 곳도 있습니다.

 

 제가 가는 분식집 중에 만두가 한판에 천원인 곳이 있습니다.

오늘 그곳에서 라면을 하나 먹는데 젊은 연인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만두 한판과 라면 하나를 시켰습니다.

 

 그리고 건강하게 생긴 남자가 이런 이야길 합니다. “성공한 사람을 만났더라면 좋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텐데 미안하다.” 그러자 다소곳한 여자가 이렇게 이야길 합니다. “이렇게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좋아요.” 남자는 그런 여자의 입에 만두 하나를 넣어 줍니다.

 

 그런 젊은이들을 보는 것이 예전에는 부러웠는데 지금은 그냥 예뻐 보이니, 저도 나이를 먹나 봅니다. 분식집을 나오면서 생각합니다. 이 젊은이들은 앞으로 어려움과 고난을 만날지라도 충분히 이겨 낼 수 있겠구나!!

 

 며칠 전에 잘 아는 자매님을 만났습니다.

작은 레코드 가게를 하다가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아 평범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IMF 때 남편이 사업에 실패를 하였습니다. 집에 압류가 들어오고, 몸만 달랑 나와서 옥탑 방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도 은행에서 수시로 독촉장은 날아오고, 아이들은 이제 점점 커가고, 옥탑 방에서도 계속 지낼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앞으로 빚을 다 갚을 길은 망막하고, 한 남자를 선택해서 가정을 이뤄 왔지만  참 기구한 삶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 자매님을 보면서 한 가지 놀란 것이 있었습니다.  얼굴 표정이 무척 밝았다는 것입니다.  남편을 원망하거나 누구를 탓하기 보다는 그래도 아이들이 크게 아프지 않고 잘 자라주는 것이 감사하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그 자매님은 의료보험을 낼 형편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야 말로 가족이 아프면 속수무책이기도 합니다.

 

 자신에게 닥쳐온 고통과 슬픔을 묵묵히 견뎌내는 그 자매님을 보면서,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그 자매님을 보면서 저 자신 조금은 부끄러웠습니다. 저 자신 그동안 살면서  너무나 쉽게 내 삶의 십자가를 남에게 지워준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조금만 불편해도, 조금만 나에게 손해가 돌아와도, 조금만 누가 나를 비난해도 저는 그것을 참아내지 못하고 불평과 불만을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함께 살던 사람들을 탓했고, 친구를 탓했고, 부모님을 탓했고, 세상을 탓했던 적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만두 한판에 라면 하나를 먹으면서도 즐거워했던 그 젊은 연인에게 하느님의 사랑이 함께 하길 기도 합니다. 그래서 삶의 길에서 만날지 모르는 고난과 어려움을 이겨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그 자매님께도 하느님 사랑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이 기쁨으로 곡식을 거두리라’는 시편의 말씀이 그 자매님께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윤 동주 시인의 ‘십자가’라는 시가 새삼 생각납니다.

 

쫓아오든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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