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ㅣ여행후기
순교자들을 직접 보고 느낀 호야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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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순교자들의 순교 장면을 목격한 목격 증인(?)이 아직도 살아 있다면?
해미는 내포 지방의 여러 고을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진영(鎭營)이 있던 천주교 신자들을 무려 3천명이나 국사범으로 처결한 곳으로 전해진다. 수십 명이 이름을 남겨 놓고 있지만 그 외의 수천 명은 무명 순교자다.
해미 읍내에는 순교 기념지가 여러 곳이 있다. 그러나 공식 형장은 서문 밖이엇던 것 같다. 다음은 성내에 있던 옥터인데 여기서 많은 교우들이 옥사 또는 교수형을 당하였다. 인언민(印彦敏, 1737~1800, 마르티노)과 이보현(李步玄, 1773~1800, 프란치스코)이다. 이어 1814년에는 김진후(金震厚, 1739~1814, 비오)가 해미에서 옥사로 순교했으며, 그 외에도 1811~1838년의 중기 박해 기간 동안 민 베드로 첨지(?~1839)등 9명이 해미에서 신앙을 굳게 증거한 뒤 순교의 영광을 얻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1866년 이후로 진행된 병인박해 때에는 모두 122명에 이르는 순교자가 해미에서 탄생하였다. 이는 순교록에 나오는 57명, 관변 기록인 <<공충도사학죄인성책>>에 나오는 70명 중에서 중복된 것으로 추정되는 순교자 5명을 제외한 숫자이다.
이처럼 모든 기록을 통해 성명이나 세례명 중 적어도 하나를 확인할 수 있는 해미의 순교자는 132명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 무명 순교자 47명 이상의 수를 더하면, 기록으로 확인되는 박해기의 해미 순교자 총수는 179명 이상이 된다.
교회의 순교자 증언록을 통해 볼 때, 박해기의 해미 순고자 67명 중에는 교수형으로 순교한 33명의 경우가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참수와 옥사가 각각 5명, 병사가 4명, 생매장이 3명, 그리고 장사가 3명, 미상이 14명 으로 나타난다. 약력을 자세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순교자들의 순교를 지켜본 것만이 아니라 자신이 그 도구로 쓰임을 받았던 증인이랍니다. 그런데 말이 없습니다.... 해미 읍성에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http://paxkorea.kr/ <<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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