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0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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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나는 위선자인가: 한 의사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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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준균 [jklee2] 쪽지 캡슐

2000-06-24 ㅣ No.11804

오늘날 이 난리같은 상황을 보며 정말 착잡한 마음을 억누를 길 없다. 온갖 생각이 머리를 휘감고 지나간다. 저녁무렵 엊그제 입원했던 파상풍 환자 기도삽관을 어렵게 하고(사실은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다) 까운입은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는 텅 빈 병동을 지나며 가톨릭 홈 페이지에 들렀다. 그런데 여기 실린 여러 형제들 (감히 형제라고 부르는 걸 용서하기 바란다)의 글을 읽고 느끼는 바가 있어 글을 써 본다. 설사 이것이 구차한 변명으로 들릴지라도 너그러이 이해해 주기 바란다. 의사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기 행위에 대한 변명을 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하여 여기 첨부한 글의 주인공들인 여러 동료의사들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면 더 할말이 없다. 하느님께서는 아시리라고 생각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 나의 진심을 말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나는 카톨릭 신자이다. 군의관 시절에 사는 것이 힘들어 고등학교 시절에 조금 읽은 바 있던 성서를 다시 읽게 되었고 바오로 사도의 마치 일기같은 고백이 묻어난 서간문들을 읽으며 입교하게 되었다. 입교 후 가장 크게 바뀐게 있다면 영적 생명을 인정하게 되었고(현세 뿐만 아니라 다음 세상에 대한 희망을 의미) 자신의 초라한 부분이 있더라도 아무 부담없이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하느님께서 바라보고 계신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의사이다. 85년 의과대학에 입학하였다. 히포크라테스가 누군지도 몰랐고 단지 입시 성적이 잘 나온 상태에서 집안에서 의대를 권했기 때문에 의학의 길에 들어섰다. 특출나게 잘 하는게 없다고 생각했으므로 의대를 가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1년 휴학을 하여 7년만에 졸업하고 인턴 1년, 군의과 3년, 신경과 전공의 4년을 거쳐 올해 전문의 자격증을 받고 현재 모 종합병원의 신경과 전임의로 근무하고 있다. 내 나이 이제 36세이다. 나의 현재 상황인식은 다음과 같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여러 현상의 근본에는 두가지의 핵심 문제가 있다. 첫째는 시스템의 중요성을 간과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국민 대다수의 이중성과 무지이다(나를 비난해도 좋다). 먼저 의사들에 대한 공격의 일선에 있는 허준(서양의 히포크라테스)을 생각해 보자. 어떤 나라에 진정한 의료를 위한 의과대학이 세워졌다. 지식의 습득 뿐 아니라 진정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들만 그 학교에 입학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의사가 된 수많은 허준들은 보수에 상관없이 숭고하게 피곤한 줄도 모르고 환자를 돌보았다. 그게 의사의 당연한 할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결혼하여 아이도 낳고 교육도 시켜야 하는데 보수는 적고 몸은 피곤한데 환자는계속 봐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허준들은 처음의 숭고한 약속을 어기고 하나 둘 다른 일을 하기 시작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너희들이 그럴 수 있냐', 이런 걸 예상 못했어? 처음 너희들의 맹세를 생각해 봐. 너희들은 원래 이렇게 살도록 만들어졌어. 일종의 선택된 집단이란 말이야. 부끄럽지도 않아? 사람 생명이 걸려 있는데 그것도 못참고. 지금도 돈없어 병원 못오는 사람들이 널려 있는데 너희들 아니면 누가 그 사람들 살리 겠어' 라고 했다. 허준은 떠나면서 생각했다. 이게 족쇄일까? 아니면 아직도 내가 부족한 걸까? 허준이 떠날때 그에게 그동안의 노고에 고마움을 표시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연한 일을 해왔기 때문에 고마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떠나는 사람을 욕할 수 있을까? '이 참에 되먹지 않은 소명의식 없는 의사는 쓸어버려'라고 생각하는 형제가 있다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기 바란다. 만약 형제들이 허준의 과정을 거쳤다면 형제들은 그러지 않았 을까? 요즘 의사들이 돈만 알아서일까? 그들은 언론에서 말하듯이 환자 생명을 담보로 수익률 게임을 하고있는 것일까? 밥그릇 싸움? 사실 밥그릇 싸움이다. 그러나 이게 정말 '밥그릇'이기 때문에 일고의 가치도 없는 그런 문제일까?' 좀 덜 먹으면 되잖아 니가 참어' 하는 식의 문제일까. 아니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시스템의 문제이다. 우리 사회에서 보상에 대한 기대가 없이 도덕만으로 움직이는 집단이 있을까? 자본주의 국가 그 어디에도 성직자나 봉사집단만 뺀다면 이런 집단은 없다. 즉 이윤의 동기가 없는 직업은 어디에도 없다. 자본주의 사회는 이것을 공개적으로 허용한 것이고 사회주의는 이것을 강제로 억압하는 것이다. 이익 추구에 관한 한 우리 사회의 모든 집단에 자본주의 질서를 강요하면서 유독 의사집단에만 성인 군자를 강요하는게 타당하다고 생각하는가? 숭고한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그렇다면 법조인의 사회정의와 법질서 확립은 숭고한 사명이 아니란 말인가? 아무도 변호사가 적합한 변호를 해주고 적절한 보수를 받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다. 사명감은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강요할 문제가 아니며 각 개인이 판단할 문제인 것이다. 시스템의 질서를 흐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외국에 유학중인 신부님께서 쓰신 글을 읽고 약간 허탈함을 느꼈다.(신부님께 죄송) 그 의사들이 아무 보수없이 사명감만으로 무료 진료를 해줬을까? 20-40만불의 년봉이 없었다면(미국 경우)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전문가 집단과 그 가치를 인정하지않는 것이 선진국인가? '이렇게 썩어빠진 생각을 가진 놈이라면 때려서라도 길들여야 되'라고 생각한다면 조금 과장해서 해석해서 3년동안 200만을 모택동주의 이름아래 살해한 폴 포트의 생각과 다를게 없지 않은가? 당시 교사, 지식인은 물론 도시에 산다는 이유로 택시 운전사들까지 살해되었다. 두번째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겠다. 형제들은 병원에 와 본 적이 있는가? 의사와 상담을 한 적이 있는가? 나는 일주에 3변 외래 진료를 본다. 반나절에 대개 30-40명을 진료한다. 문제가 있는 신환을 제대로 보려면 적어도 30분은 줘야 한다. 그래야한다 환자도 이것을 원하고 있고 이것을 안하면 제대로 된 의사가 아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환자와 상담하고 있을 때 밖에서는 난리다. 간호사들에게 '이X! 내차례가 언젠데 의사는 아직까지 안봐주는 거야?' 하는 말은 하도 많이 들어 면역이 생겼다. 그래서 의사와 마주 앉으면 지금까지의 기다림을 보상받아야 겠다는 기대가 잔뜩 얼굴에 있다. 단순 두통등 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될 때는 5분이면 볼 수 있다. 그러면 환자는 난리다. 내가 겨우 5분 면담할려고 1시간이나 기다렸겠어요? 나도 보혐료 다 낸단 말이요 국민들의 이중성은 이것이다. 진료 기준은 미국등 선진국에 맞춘다. 그러나 의료비 부담에는 모두 반대다. 사실 이것은 무임 승차와 다를 바가 없지 않는가? 오늘 민간단체의 성명을 다들 보았을 것이다. 지금보다 더 수가를 인상한다면 의약분업 자체를 반대하겠다고 한다. 정말 뻔뻔스러운 일이 아닌가? 8시간 수술에 5만원 받았다는 서울대 응급실 선생님의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입원환자의 타과 의뢰(consult) 수가가 천원이라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미국은 15만원)? 구두 닦아도 2천원이 넘는데 상처소독(드레싱) 수가가 1500원 근처라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정상 분만이 4만원이 못되는데 개가 새끼를 낳는데 15만원이 든다는 사실은 또 어떤지? 의사의 지식이 이렇게 싸구려라고 생각하시는지? 정말 생명을 경시하는 집단이 의사들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이런 싸구려 생각을 가진 관료들이 아니고 말이다. 그래도 너희들은 많이 받잖아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첨부하신 글을 읽어 보길 바란다. 올해 전문의가 된 나의 월급에 관심이 있다면 충실히 답변 드릴 수도 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걸 알고싶어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한가지만 더 예를 들어 보자. 신경과 의사들은 면밀히 진찰한 다음 뇌 병변이 의심이 될 때는 CT 를 찍는다. 그러나 일단 비보험으로 환자들이 부담한다. 보험 심사위원회에서 심사를 하는데 찍어서 이상이 있으면 의사들이 필요한 검사를 했다해서 보험 인정을 해주고 검사에 이상이 없다면 쓸데없는 검사를 했다해서 처음 그대로 비보험 적용이 된다. 심사는 의사도 아니고 간호사가 한다. 검사 전에 미리 정확히 알 수 있다면 뭣하러 검사하겠는가? 정말 웃기는 일이다. 길랑바레라는 병이 있는데 치료는 혈액을 걸러주는 것(plasmapheresis)이다. 여기에는 다량의 알부민이 필요한데 환자더러 약국가서 사오라고 한다. 여기 그런 약도 없어요하는게 대부분의 반응이다. 물론 없을 리 없다. 그러나 비보험으로 적용되어 있어서 처방뒤 병원에서는 알부민 값을 받을 수 없다. 받으면 위법이며 돌려줘야 한다. 그래서 할수없이 약국에 가서 사오는 것이다. 이런 코메디가 어디 있을까? 도대체 어떻게 진료를 하라는 것인가? 이때서야 사람들은 문제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데 대다수의 국민이 무지한 것은 이런 구조적 문제가 드러나는 것을 막는 정부때문이다. 병원에서 소비자의 돈을 가로챘다는 이야기만 나오지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분석한 기사를 본적이 있는가? 할 이야기가 끝이 없지만 의약분업의 핵심 쟁점에 대한 정리된 글을 첨부하니 읽어보길 원한다. 신생아 죽음에 분개하는가? 의사로서 수많은 죽음을 보아왔다. 평상시에도 많은 죽음이 있는데 요즘의 죽음은 대단한 기사거리다. 사실 응긊실을 지키는 수많은 기자들은 누구든 빨리 죽는 사람이 나타나길 기다리는 것 같다. 앞뒤 싹 잘라내고 죽음만 부각시켜 해명할 기회도 주지 않는다면 이것은 무례한 것을 지나 폭력이 아닐까? 이런 폭력에 동조하는 많은 형제들의 글을 읽으며 참담함을 느낀다. 농약음독 경우도 그렇다. 그라목손(제초제) 먹고 죽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알려주기 바란다. 어제 KBS뉴스에서 어떻게 기사를 조작했는지는 많은 형제들이 아실줄 믿는다. 집회장에서 의사 개개인의 인텨뷰 장면을 본 적이 있는가? 방송이 언론이 누구하나 의사들의 말에 귀 기울이려 했나? 선정적 기사, 여론 몰이, 협박 어느하나 군사독재 시절의 사이비 언론과 다를게 없지 않은가? 사람의 죽음을 담보로 하다니? 오늘도 다른 동료들이 집회에 간 사이 나는 중환자실에서 기도 삽관하는라 끙끙댔다. 어제는 응급실 당직을 섰다. 엊그제 환자 입원을 시키는데 보호자들이 놀라는 눈치였다. 어? 입원시켜주네 이런 눈빛으로. 응급실은 열 것이다(사실 교수들 사퇴후에도 사복입고 진료하고 있음) 응급환자는 계속 볼 것이다. 입원 환자도 물론 보고 있다. 이런 미친 놈들. 저런 살인마를 봤나? 돈에 눈이 멀었어. 형제들이여. 진정 나를 살인마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나는 커다란 슬픔을 느낄 뿐이다. 진정 슬픈 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는 말을 가치있게 생각하므로 잘 울지 않지만 오늘은 눈물을 흘리고 싶다. '저 미친 놈들'이 왜 '발광'을 하는지 한번쯤 생각해 보기 바란다. 의료시스템의 문제를 의료 윤리의 문제로 왜곡시켜 국민과 의사를 대립시키는 언론의 횡포에도 슬픔을 느낀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하고 하느님의 평화가 깃들기를 바랍니다. 이 준균 요셉

첨부파일: med2.htm(13K), med3.htm(19K), med4.htm(18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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