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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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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그 수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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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미숙 [shwang] 쪽지 캡슐

2001-09-25 ㅣ No.24718

 

안녕하세요. 소피의 가을집에 초대합니다.

 

한무리 흐드러진 코스모스에 마음을 싣고,

 

우리 잠시만 마음을 접고서 저 언덕배기 마다에 배인

 

슬픈 고독처럼 하얗게 하얗게 가녀려가는

 

코스모스 마음에..

 

우리 잠시만.....그렇게....머물러 봐요.

 

들은 어느새 황금빛 곱다란 몸단장을 차리고서

 

수줍은 가을 나들이로 설왕설래 분주하네요.

 

 들녘의 허수아비와 참새떼들...

 

들은 온통 온통 가을의 풍요로운 단꿈에

 

포옥 젖어 여기 저기서 가을이 영글어 가는 소리들이 톡.톡..

꼭 곡식마당의 타작 소리 같네요.

 

사랑의 소피, 잠시 일상의 분주함을 벗어나

 

지난 주일 단풍나무 우거진 작은 숲속에서

 

한가슴 가득 이 가을의 낙엽들을 모아왔어요.

 

한 잎....

 

두 잎....

     

지난 여름의 화려한 꿈들을 살포시 접고서

 

이젠  알록 달록한 단풍잎새들로 차가운 대지위에

 

조용히 몸을 눕혀오는 잎새들..

 

단풍나무 우거진 작은 숲속엔 낙엽밟는 저의 발자욱 소리와

 

낙엽들이 대지위로 흩뜨러지는 숨죽인,

 

아주 작은 속삭임들만이 반짝이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작은 단풍나무 숲속엔 꼬옥 하나 보고 싶은 얼굴이

 

뒹구는 낙엽들안에 동그마니 그려져 있었어요.

 

지금 그 분의 얼굴 역시 흙빛깔 닮은 이 고엽들처럼

 

굽이 굽이 돌아선 삶의 노고와 회한으로

 

고운때 다 벗겨진 주름진 이마와

 

깊게 패인 입가의 미소만이 그윽할

 

인생의 황혼빛으로 물들어 계실,

꼬옥 한번 보고 싶은 내 사랑의 강수녀님...!이

 

그 작은 단풍 나무 우거진 숲속에 계셨어요.

 

지난 9월 18일, 그때 그 ...사랑의 강수녀님께서

 

제게 세상에서 젤 이쁘은 이름이라고 지어주신

 

소피아 축일을 또 한번 보냈어요.

 

사랑의 소피, 아직도 전 소피아라는 이름이

 

세상에서 젤 이쁘은 이름이라고 믿고 있어요.

 

지금도 전 세상에서 젤 이쁘은 소피아라는 이름처럼

 

그 때 그 강수녀님의

 

"이쁘은 소피아"로 남아있을까요?

 

오고 오는 세월속에 제 마음 역시 헤집어 지고

 

어디엔가 주름진 그늘들이 많이 있을텐데도

 

세상에서 젤 이쁘은 소피아라는 이름처럼

 

제 마음 역시

아직도 세상에서 젤 이쁘은 마음을 지니고 있을까요?

 

그 때 그 수녀님...사랑의 강수녀님은

 

다섯살때부터 할머니 언니 오빠의 손을 잡고

 

그 높은 언덕 하나를 힘들게 넘어가야만 하는,  

 

언덕위의 낡고 오래된 성당에 사시는

 

우리 주일학교의 천사 수녀님이셨다.

 

아주 작은 체구에 애교 넘치는 경상도 사투리를

 

구성지게 구사하시며

 

아브라함 할아버지와 모세 이야기를 침까지 튀겨가시며

 

정말 맛나게도 온몸으로 절절히 표현해

 

한참 주의 산만해 지기 쉬운 우리들의 마음을

화~~악 잡아버리시는

 

"열정과 열변의 수녀님"이셨다.

 

수녀님에게선 언제 어디서나 우리가 조를때마다

 

어디에선가 그 이야기 보따리들이 타~악 풀어 헤쳐져...

 

귀신 이야기부터 시작해 사운드 오브 뮤직의 영화이야기까지

 

이 세상 거의 모든 이야기들이

 

줄줄이 사탕마냥 달콤하게 흘러나왔다.

 

우린 수녀님이 이야기해 주실 때 마다

 

 귀를 있는대로 쫑긋 세우고 눈을 똥글 똥글하게 뜨고선

하염없이 그 이야기속으로 빠져들곤 했었다.

 

가끔씩 수녀님의 열정적인 이야기 도중

 

두건 아래로 수녀님의 검은 곱슬 머리카락 몇가닥이

 

수녀님의 하얀 이마아래로 흘러내리곤 했었는데,

 

난 그 모습이 그리도 아름다워 보였었다.

 

아마 우리에게 예수님을 낳아주신 성모님의 모습이

 

우리 강수녀님과 비슷했었으리라고 혼자 상상하기도 했었었다.

 

또 수녀님의 마른 얼굴에 약간 도톰히 나와있는 광대뼈와

 

은색깔의 안경테도 그녀의 이지적이고도 열정적인 눈빛에

 

무척 어울린다고도 생각했었다.

 나는 늘 아니 우리 모두는

 

구성지고 애교어린 경상도 사투리와 아주 작은 체구로

 

늘 조용 조용 성당안을 걸어다니시는 수녀님이

 

교리 시간만 되시면 갑작스레

 

목소리가 커지시고 그 작은 체구 어디에선가

 

폭발적인 에너지가 넘쳐흘러

 

온몸으로 손짓 발짓 다 하시면서 열정적인 아니 열변에 가까운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해주시는 수녀님이 너무 너무 좋았다.

 

수녀님껜 무언가 특별한게 있으셨다...?

 

수녀님께서 이야기하실 땐

 

다른 사람과는 달리 무언가 아주 특별한게 있으셨다...?

 

나는 그 수녀님의 열정적인 몸짓과 음성들이

 

그냥 조건없이 좋았다.

 

수녀님이 무슨 이야기를 하시든(드물게 우리를 혼내실 때도)

 

난 수녀님의 그 큰 체스쳐들과 시원스런 음성들이 좋았다.

그랬다...

 

그건 마치 뜨거운 외침 혹은 뜨거운 열변같았다.

 

수녀님의 열정!

 

어린 난... 늘 궁금했었다.

 

도대체 그 무엇이 저 작은 수녀님으로 하여금 저토록 열정적으로

 

이 코흘리개 꼬맹이들앞에서

온몸으로 이야기하게 만드시는 것일까?

 

무엇일까.....????

 

왜 수녀님은 저토록 늘 열정적으로 이야기 하실까?

 

그녀에겐 무언가 아주 특별한게 있는 거 같았다.

 

혹은 신비스러운 그녀만의 비밀이 있는 거 같기도 하였다.

 

어린 우리 주일 학교 어린얘들이 힘들게 언덕 하나를

 

올라가야만 있는 그 낡고 오래된 성당엔

 

늘 우리들의 작은 천사...열정의 그 수녀님이

 

늘 따끈하고도 구성진 이야기를 하나씩 준비해 두시고서

늘 우리들을 기다리고 계셨다.

 

그리고 자주 우린 성당에서 수녀님과 눈을 맟추고선

 

약간 멋적게 배시시 웃곤 했었는데

 

그건 수녀님과 우리들만의 아주 자연스러운 인사법이었다.

 

나는 정말로 세상에서 강수녀님이 나를 가장 사랑해 주시고

 

나 또한 세상에서 강수녀님을 가장 사랑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내 또래의 같은 주일 학교 친구들 역시

 

나와 똑같은 그녀에 대한 동등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지만

 

우린 한번도 서로 질투를 해본적이 없었다.

 

정말이지 강수녀님에 대한 우리들의 사랑과 믿음은

 

깨어지지 않는 바위처럼 확고한 그런 사랑이었다.

 

내 생에 있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그 때 그 수녀님...

열정의 그 수녀님과 함께 했던

 

첫영성체 교리반 시절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리고

 

우리가 점차 키가 자라날 무렵 어느날

 

그 사랑의 수녀님은 아주 조용히..

 

그녀의 열정적인 몸짓과 열변에는 대조적으로 아주 조용히

 

우리 성당을 홀홀히 떠나가셨다.

 

수녀님을 떠나 보낸 우리들은 세월이 약간 흐르면

 

수녀님께서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오실 줄 알았다.

 

그게 영영 이별인줄은 미처 모르고...

 

성당앞 나무잎새들이 몇번씩 철따라 옷을

 

갈아입어도

 

한번 떠나신 강수녀님은 다신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않으셨다.

 

우린 떠나가신 수녀님의 뒷모습... 그 여운자락을 안고

 

가끔씩 머리에 스치는 그리움을 키워가며 자라나

 

모두들..그렇게...타지로 떠나갔다.

 

타지로 떠나갔던 나 역시 가끔씩 귀향하면

 

꼭 내가 자라난 성당 마당에 한번씩 들려보곤했었다.

그 때마다

 

지나간 세월들이 저만큼씩 밀려가고

 

늘 그 곳 우리들이 뛰놀았던 성당 마당과 교리실엔

 

아직도 강수녀님의 따스한 체취와 온기가

 

곳곳에 배여있음을 느끼고

 

혼자서 가만 눈물을 짓곤 했었던 적이 있었다.

 

이만큼 세월이 흘렀지만.....

 

그 때 떠나가신 수녀님은 다신 돌아오지 않으신다.

그리고 그 후 한참 자라나

 

냉담의 터널을 터덜 터덜 지나 내 신앙이 어느정도 익어갈 즈음

 

난 그 때 그 강수녀님의 "열정"어린 몸짓들과

 

"열정"어린 음성들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작은 수녀님으로 하여금 그토록 열정적으로

 

이야기 할 수 있게 했었던 그녀만의 그 신비스러움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이 그토록 그녀를 열정적이게 했을까?

 

세월이 한참 지난 어느날....

 

난, 어린 시절 내가 그 수녀님에게서 보았던

 

강수녀님의 그 뜨거운 "열정"이

내 가슴속에 살아 꿈틀거리고 있음을 보았다.

 

 조촐한 가방보따리 하나 싸들고 우리들 몰래

 

떠나가버리셨던 강수녀님의 그 뜨거운 열정이

 

지금 ....내 가슴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본것이다.

 

수녀님은 떠나가셨지만

 

그녀는 내게 그녀의 "열정"을 선물해 주시고 떠나가셨다.

 

그 때 그 수녀님은 내 가슴에

 

"열정"이라는 형체도 없고 잡혀지지 않는

 

 아주 뜨거운  선물을 하나 주시고 떠나가신 거다.

 

아!, 난 수녀님은 보냈지만

 

그녀의 열정은 보내지 않았던 거다.

 

그녀의 열정은 아주 오랜 세월 내 가슴속에서 남아있었다.

 

꼭~~ 한번 보고 싶은 사랑의 강수녀님!

 

사랑했어요....

 

사랑했어요....

 

그 땐 잘 몰랐지만요...!!

당신이 주신 사랑의 선물 그 "열정" 잘 간직할께요.

 

수녀님의 소피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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