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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210.107.118.*]

2005-07-11 ㅣ No.3563

 

마틸다님,

저는 문법을 따지자고 쓴 얘기는 아니며, 역사를 따지자는 것이 아닙니다.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면, 얼마든지 다른 방법으로 순종케하고 이교도나 이방인들을 자기만 믿을 수 있도록 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요?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만 사랑하시고 다른 민족은 사랑하지 않으셨습니까?

왜? 아무죄도 없는 선량한 다수의 사람들을 죽여야만 했습니까?


로무알도님, 친절히 답해 주시고 주님의 은총을 기원해 주셔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님의 글을 읽고 간추려 본다면,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며,촛점은 영생을 얻는데 있기 때문에 의심하지 말고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겸손한 신앙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라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무조건적인 맹신은 배타를 유발시키는 것은 물론, 발전을 저해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을 무시하고 억제시킨 결과는 우매한 광신자를 만들뿐이며, 민주주의의 다원성도

인정하지 않는 꽉막힌 배타적 인간만을 양산할 뿐이며, 과학마저도 부정하면서 인간이

걸어가야할 발전을 퇴보시키게 되는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문을 갖는 것은 본능적인 인간의 본성이지만 기독교에서는 그 본성을 억압하고 있습니다.

사단이니 마귀니 시험에 든다느니 죄악시 합니다. - 제처가 가끔씩 얘기함.

어째서 기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지적 호기심을 원천봉쇄하는 것입니까?

왜 기독교의 신은 자신을 의심하지 말라고 하는지 한 번 역으로 생각해 본적이 있으십니까?

오히려 어떤 종교는 끊임없이 회의하고 물음을 찾으라고도 합니다.

하느님은 혹시 무지몽매한 인간들만 좋아하는것은 아닌가요?

기독교의 출발부터 오류에서 비롯된 때문은 아닌가요?

기독교는 결코 보이고 싶지 많은 비밀을 숨겨두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요?

기독교 내에서 믿음과 의심은 정녕 병립할 수 없는 것인가요?

기독교교의 문제는 무조건적인 믿음의 강요와, 믿지 않는 자에 대한 무시와 비난,의심과 회의를 원천 봉쇄함으로서 인간을 바보로 만들어 버리지는 않겠는지요?

이런 것들의 폐해는 필연적으로 무지한 기독교와, 허약한 신앙과, 배타적 신앙을 낳게 되지 않을까요?

회유와 협박, 불안과 공포, 물질적 축복의 갈구 등을 통해 기독교에 입문한 사람들은(어쩌면 거의 대다수이지만), 진리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 자신의 부족분을 채우는 것으로만 만족하기 쉽습니다.

불안한 사람은 평화로우면 그만이고, 몸이아픈 사람은 마음의 위안을 얻으면 그만이고, 빈궁한 자신의 신에게 부를 가져다 달라고 기도를 드리며 위안을 얻으면서 더이상 진전이 없는 상태로, 거기에서 안주하고 마는 것입니다.

안주하고 만족하는 순간, 치열한 과정을 통해 진리를 깨달음으로 인해 의심이 해소된 것이 아니라, 의심 자체가 불필요한 상태에 머물게 되어버린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의심하지 않는 신앙, 의심 없는 믿음....... 언뜻 강고한 신앙인의 자세로 착각하기 쉽지만, 실은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복제품일 따름입니다.

상식적으로 논리적으로 따져보아도 도대체 의심 없이 믿음이 있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요?

그것은 믿음이 아니고 맹신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신학대학의 많은 학생들 뿐 아니라 일반 교회의 많은 신자들도 조금만 자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처음 기독교를 접하고 당연히 회의를 갖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이 종래 어떻게 변해가겠습니까? 기독교가 지난 2천년 동안 회의하는 지성과 자의식을 잠재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의구심, 회의, 지적 호기심을 죄악시 하기위해 "성령을 의심하지 마라"라고 주장하지 않았던가요? 자신들의 하나님의 전지 전능이 부족해 결국 마귀나 사탄까지 동원하면서 말입니다.

이것은 거의 세뇌의 기술이라고 밖에는 볼수없다고 생각합니다.

반복적인 행위와 반복적인 억압, 동류의식 그리고 죄의식에 주입해서 말입니다.

기독교인들은 흔히 "신의 뜻은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으니 그냥 믿어버려라."라는 주장을 흔히 합니다.

정녕 믿음이 그런것인가요? 답이 나오지 않은 것을 일단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인것인가요?

그것이 확신인가요? 그것이 신앙인가요? 믿음으로 얻는 진리, 그것이 무슨 구구단인가요?

그렇다면, 무당이 섬기는 신도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으니 그냥 믿어버리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요?

과연 치열하고 처절한 의심의 터널에서 헤메보지 않고서 쉽사리 얻을 수 있는 진리따위가 있겠습니까? 있다 한들, 혹시 광신자의 싸구려 진리가 아니겠습니까?

종교와 학문을 착각하는 것 아니냐고 물으실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철저하게 믿음의 복종만 강요하는 기독교는 고쳐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자, 성직자들 역시 신학교에서 우리들이 알고있는 것과는 딴판인 신학을 배웠을 것입니다.

기독교에 대해서 의심하는 것이 죄악이라면, 신학따위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왜 신학생들은 성직자가 되기 위해서 신학교에서 신학을 배워야 합니까?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눈으로 기독교라는 종교를 보기위함이겠지요.

만약 성직자의 조건으로 믿음이 우선이라면, 광신자를 성직자로 세우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광신자의 관점으로는 신자들을 올바르게 이끌어 낼수가 없습니다.

기독교인 되기 쉽다고 한다. 일단 믿으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무조건 믿는 자세, 즉 맹신하는 믿음은 어린이들의 태도에 불과 할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로무알도님께서도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가지라고 하셨습니다만, 제가 원하는 답은 서두에도 말씀드렸지만 사랑의 하느님이 왜 꼭 그런 방법으로 했어야만 했던 것일까요?

상식과 지식과 몸과 영혼을 모두 내던져 부딪히면서 치열하게 자연에게 도전하면서 삶의 난제들에 대한 숨은 해답을 찾아가는, 그런 인간이 숨은 해답의 진실을 찾는다면 그 인간은 더욱 하느님의 참된 일꾼이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하느님의 섭리를 완전히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많은 모순을 발견할 수 있기에, 최소한 성경이라는 것이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한다면 모순은 없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또한 성경공부를 하면서 제 마음 속으로 편협한 공부보다는 좀 더 넓은 공부를 하고 싶고, 그래서 이 게시판을 통하여 상담을 드립니다.

진정한 공부를 하기 위한 한 인간을 위하여 좋은 상담을 부탁드립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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