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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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51058]할머니에 관한 추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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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철 [hl1ye] 쪽지 캡슐

2003-04-14 ㅣ No.51067

                  할머니에 관한 추억들...

 

 

 

  11월 위령성월을 맞이하여 저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저의 외할머니에 관한 추억들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하느님 아버지’보다 ’하느님 할머니’가 더 자연스럽고 와닿는답니다. 거기에는 사연이 있지요... 저희 외할머니는 성 우세영 알렉시오의 자손으로서 무척 신심이 깊으신 분이셨습니다. 저희 7남매를 잘 길러주셨을 뿐만 아니라 제가 수도사제가 될 수 있도록 늘 기도해주신 분이십니다. 외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기억이 나는 대로 적어 보겠습니다.

 

1. 할무이요, 왜 하필이면 내만 깨우능교?

  할머니께서는 류마치스 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하신데도 불구하고 매일 새벽미사를 가셨습니다. 그런데 혼자 성당에 가시지 않으시고 저희 중에 늘 한명을 대동하고 가시려고 새벽녘에 아직도 저희들이 곤히 잠들어있는 방에 오셔서 "애들아, 성당가자!"라고 하시면 저희는 서로 성당에 안가려고 마치 미꾸라지가 숨듯이 이불 속에 숨었습니다. 그런데 이불 속에 손을 쑥 넣으신 할머니 손에 늘 잡혀나오는 것은 항상 저였습니다. 그러면 저는 "할무이요, 왜 하필이면 내만 깨우능교?(할머니, 왜 하필이면 저만 깨우십니까?"하고 불평하며 성당에 가게 되어 결국 새벽미사 복사를 하게 되었답니다.

 

2. 구세주이신 할머니

  어릴 때 매일 밤마다 저희는 술취하신 아버지의 훈화를 무릎을 꿇고 앉아 듣고 자야했는데 그때마다 저희들이 불렀던 성가는 "구세주, 빨리 오사~"였습니다. 그러면 어김없이 할머니께서 저희 옆에 앉으시며, "아범아, 이젠 됐다. 그만하고 애들을 재우려므나.", 그러면 아버님께서, "아이, 장모님이 왜 오셨어요? 이제 곧 재우겠어요."하시며, 곧 "해산!"을 시키셨습니다.

 

3. 기도서가 잘 안보인단다...

 할머니는 바쁘다는 핑계로 기도를 제대로 하지 않는 저희에게 늘 이런 부탁을 하셨습니다. "애들아, 이 기도의 글씨가 작아 잘 안보이니 좀 읽어다오." 그러면 저희가 마지못해 읽어드리면 "이것도..., 저것도..."하시며 결국 조과, 만과를 함께 하도록 만드셨습니다.

 

4. 예수, 마리아, 요셉!

 할머니는 가끔 침을 맞으셨는데 그 통증을 참으시면서 늘 "예수, 마리아, 요셉!"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면 저희도 옆에 앉아 할머니와 함께 마치 우리가 침을 맞는 듯이 얼굴을 찡그리며 "예수, 마리아, 요셉!"을 합창하곤 하였답니다. 그후 저도 힘들고 아플 때, "예수, 마리아, 요셉!"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5. 희생적인 할머니

 할머니는 저희 7남매를 위해 늘 헌신적이셨습니다. 예를 들면 과일을 먹을 때도 항상 당신은 껍질만 드시고 저희에겐 항상 맛있는 부분을 주셨습니다. 한번은 먼저 하늘나라에 간 동생 마태오가 길에서 과일껍질을 주워 "할머니, 이거 먹어..."하며 주시자, "그래, 마태오야, 네가 제일 착하구나."하며 쓰다듬어주시기도 했었답니다.

 

6. 아, 아, 할머니...

   할머니는 상이군인이신 저희 아버지에게 딸을 주셨지만 한번도 그것을 원망이나 후회를 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아버지께서 술을 많이 드시고 어머니를 울리실 때도 말입니다.

  제가 고등학생 때 저희 할머니는 소사 삼거리 부근에 있는 큰 외삼촌 댁에 가계시게 되었는데 그때 치매기가 있어 방에 가두어? 놓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를 제가 인천으로 가출하여 잡혀오는 길에 들리게 되었습니다. 고 3때 아버지의 박해(?)를 피해 가출하여 동인천 부근의 오부자 식당에서 몇 개월간 주방에서 설거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통종합영어와 수2정석’만 싸들고 무작정 가출한 저는 아버지처럼의 자수성가를 꿈꾸며 하루하루 힘든 주경야독의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몇 개월 만에 저를 찾아낸 친척은 저를 데리고 급히 서울로 가다가, "식당에 주민등록증을 맡겨 놓고 왔다"는 저의 말을 듣고 저를 소사의 외삼촌댁에 잠시 맡기셨습니다. 치매에 걸려 저를 못알아보시는 할머니방에 저를 들어가게 하고 밖에서 문을 잠그고 급히 동인천으로 가셨습니다.

 

  저는 몇 달동안의 피곤한 생활 탓인지 그냥 할머니 곁에 쓰러져 자고 말았습니다. 한참 자다가 어떤 따뜻하고 포근함을 느껴 눈을 떠보니, 할머니께서 제게 이불을 덮어주시고 묵주기도를 하시며 저를 환하게 웃으시며 바라 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저도 모르게 마치 돌아온 탕아(루가15,11-32참조)가 아들을 눈이 빠져라하고 기다리던 아버지 품에 안긴 것처럼, "아, 아, 할머니"하고 할머니 품에 안기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후에도 몇 번의 가출(4번째 가출은 출가 즉 수도회 입회가 되었습니다)이 있었습니다만 저는 그때 저를 만난 후 며칠 만에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기도와 사랑의 눈길을 늘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가 다시 할머니 품에 안기길 바라고 있습니다.

 

주님, 저희 외할머니 우막달레나에게 영원한 안식을 허락하소서.  아멘.   가브리엘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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