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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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의 두 父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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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미숙 [shwang] 쪽지 캡슐

2003-05-30 ㅣ No.52772

               

               

     

     

    우리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대중사우나 탕엔

    시선이 잘 닿지 않는 한쪽 구석진 곳에 좌석이 2개가 있었는데,

    주말 오후면 꼭 그 자리에 아버지와 아들이 목욕을 하곤 했다.

    나는 처음엔 무심코 보아 왔으나

    갈수록 두 사람의 행동은 나의 시선을 끌었다.

     

    아들과 아버지는 별로 말은 없었지만,

    아버지는 성격이 깐깐한 듯이 보였고

    몸에 지병이 있는 것 같았다.

    아들은 정성껏 몸을 씻겨드렸지만,

    아버지는 이따금 물이 뜨겁다든지 차다든지,

    너무 세게 민다든지 시원치 않다든지

    짧은 어투로 짜증 섞인 의사표시를 했고,

    그 때마다 아들은 몹시 미안해하는 것이었다.

     

    아들은 때를 밀고 나서

    아버지의 어깨와 등을 오래도록 열심히 맛사지를 해드렸다.

    목욕 중이라 땀과 물을 구별할 수 없었지만

    아마 아들은 땀을 뻘뻘 흘렸을 것이다.

     

    한 시간 여 아들이 일을 마치면

    아버지는 아들의 등을 밀어주었다.

    그때마다 아들은 처음엔 한두번 사양하다가 몸을 맡겼는데,

    아들의 등을 미는 아버지의 손은 많이 떨리고 있었다.

    아버지의 손길이 영 마음에 차지 않았겠지만,

    아들은 늘 됐다고 하면서 고마워했다.

     

    그러던 어느 주말엔가 그들 부자(父子)는 나타나지 않았고,

    그 자리는 그대로 비어 있었다.

    웬일일까? 궁금했다.

     

    그런데 2,3주 지나고 그 아들이 혼자서 나타났다.

    그리고 여전히 그 자리를 차지하긴 했지만,

    그는 목욕을 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 자리를 차지하게 위해서인 듯 우두커니 앉아 있기만 했다.

    그러다가 간간히 가느다란 한숨을 쉬기도 하고

    눈물이 가득 고이면 머리에 물을 뿌려대는 것이었다.

    몸은 씻는 둥 마는 둥 한참을 앉았다가

    시간이 되면 말없이 일어서는 것이었다.

    그 걸음은 힘이 없었고

    가는 방향은 좌우로 비뚤어지기도 했다.

     

    그가 앉아 있는 자세를 로뎅이 보았더라면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을 달리 조각하였을 것이다.

    그는 깔개에 쪼그리고 앉아 두 팔꿈치를 무릎 위에 받치고

    두 손을 머리칼을 쥔 듯 머리를 감싼 채

    시선은 25도쯤 아버지가 앉아있던 자리를 내려다보았는데

    한번 자세를 취하면 조각상인양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몸을 씻을 때도 건성이었지만

    이따금 씻어 내리던 손길을 멈추고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기곤 하였다.

    떨리는 손길로 서투르게 닦아주던 아버지의 손을 생각을 하는 것처럼....

     

    그러길 몇 달인가.

    어느 날 갑자기 그는 달라져 있었다.

    아들은 어떤 노인의 때를 밀고 있었다.

    손길은 예전보다 더 부드러우면서도

    자상하게 정성껏 닦아드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노인은 아버지가 아니었다.

    아들은 혼자 목욕하는 법이 없었다.

    누군가 노인을 모셔다 놓고

    지성껏 씻겨드리고 맛사지를 해드리면서

    깍듯이 아버지라고 불렀다.

    즐거운 듯 미소 띤 얼굴로 물의 온도며

    때미는 손길의 세기 등을 자꾸 물으며 씻겨드렸다.

     

    차츰 노인들의 입으로 그 젊은이에 대한 칭찬이 흘러나왔고

    그 사연이 알려졌다.

    고혈압 환자인 아버지를 정성껏 모셨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 동안 마음을 다해 섬기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다가

    지금은 아버지 또래의 노인을 보면

    자기 아버지처럼 씻겨드린다는 것이다.

     

    그러던 그가 먼 곳으로 이사를 갔단다.

    나는 목욕탕에 올 때마다 그 빈자리를 보면

    그 아들과 아버지가 생각났다.

    지금은 그 자리 앞에 누가 써 붙였는지 모르지만

    ’효자석’이라는 글씨가 붙어있고

    아무도 감히 그 자리엔 앉지 않아 빈자리로 남아 있다.

     

    나는 그를 마지막으로 보던 날

    그가 노인과 나누던 대화가 생각난다.

    "자넨 시원하게 잘도 닦아주는구먼, 안마도 잘하고!"

    "네 한 사십 년 걸려 배운 솜씹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실 때까진 몰랐죠.

    아버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어요.

    그런데 이젠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요."

    "사십 년이 걸렸다? 자넨 참 바보구먼-, 바보야-, 착한 바보지-"

    <가져온 글>

     

    안녕하세요. 전국적으로 비가 많이 내린다고 하네요.

    이 글은 제 친구가 메일로 보내준 글인데 제목을 몰라

    제가 <목욕탕의 두 父子>로 정해 보았답니다.

    비가 오는 날, 이 아름다운 아들과 아버지 이야기

    게시판 가족들과 함께 나누고 싶네요.

    빗길에 운전 조심하시고

    오늘도 은혜로운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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